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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공간이 있다

LNCK 2024. 10. 29. 11:1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삶의 통찰력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공간이 있다 | 행 1:4-5 |  24.10.25 - YouTube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공간이 있다         행1:4~5     

어느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인데요. 
인생과 영적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을 얘기를 해요. 
-시계를 보는 방식과 
-나침반으로 보는 방식입니다. 

시계를 보면, 우리가 시계를 겉으로만 보면 모르는데, 
시계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안에 아주 크고 작은 다양한 부속품 들이 정교하게 
이 시계 안에 세팅이 돼 있습니다. 

가끔 보면 속이 다 비춰는 투명한 시계도 있죠. 
보면 정교한 부품들이 아주 잘 배열되어 있어요. 
그것에 의해서, 그 내부의 잘 세팅되어 있는, 정교하게 짜맞춰져 있는 그 작동을 통하여 
시계가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그 내부에 설정된 것에 의해서 돌아가면서 
그 결과가 나오는 게... 그게 시계라는 거예요. 
이런 '시계 같은 인생'이 있어요.  *이 설교에서는 비추 (비추천)

근데 나침반은 좀 달라요. 
나침반 안에 뭐 세밀한 어떤 부품들이 별로 없습니다. 
나침반의 내부는 굉장히 심플해요. 

그러니까 나침반 작동하게 하는 힘이, 나침반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겁니다. 지구 전체가 일종의 자석처럼 되어 있어서 
나침반 바늘은 향상 북쪽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설교에서 추천

나침반의 구조는 시계에 비해서 매우 간단해요. 
중요한 것은 내부의 힘에 의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나침반은 바늘이 양극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 이것을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예시로 가져올 수도 있어요. 
시계 모델의 교회는 어떤가요? 
굉장히 그 어떤 효율성을 갖추기 위해서,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조직도 하고, 그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유능한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으는 거죠. 

그래서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 메뉴얼을 만들고 
다양한 시스템을 만들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거죠. 

그래서 이런 교회들은, 세상의 조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세상 조직의 운영 방식이나 기업 경영의 원리들을, 교회도 비슷하게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기업 경영의 원리를 도입한 교회들도 외국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침반의 원리로 움직이는 교회는 달라요. 
매우 단순해요. 바깥에 그 무엇에, 그 힘에 반응하는 구조예요. 

여러분, 이것이 뭘까요? 바울이 이런 말을 해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 라고 했을 때, 
이 말의 의미를 다양하게 우리가 해석할 수 있지만, 

이 말은 '우리의 시선이 계속 어디를 향하고 있어야 된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겁니다. 

마치 그 나침반의 바늘이 늘 북쪽을 향해 있는 것처럼, 
성도는 항상 하나님을 향해 있는 것입니다. 

'계속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말은 뭘까요? 
우리의 내부의 힘에 의해서 무엇인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즉 나의 능력과 나의 재주, 우리의 조직이나 사람의 유능함으로 인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바깥의 힘(성령)에 의존하려고 하는 태도!

그래서 교회는 시계보다, 나침반과 같아야 된다는 거죠.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 안에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죠.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던지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 많이 모였던지 
-내가 얼마나 실력을 갖춘 사람이냐? ....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에 의해서 내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바깥의 힘에 의해, 바깥의 어떤 존재(하나님)에 의해 내가 결정된다.. 
라고 믿는다면, 우리의 시선을 그 분에게만 고정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할 때 
그 열심을,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분주해요. 

목회자도 분주하고, 교인들도 분주하고, 바쁘게 살고, 
바쁘게 살면 잘하는 것이라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경향이 우리 사회에 굉장히 많이 있어요. 

물론 우리가 열심을 내어 무엇인가 이루어 내기도 해요. 
그러나 가만히 보세요. 
우리가 이루어낸 성공은, 우리가 스스로 무너뜨릴 때가 정말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10년) 쌓은 것을, 자기가 (하루 만에) 허물어 버려요

그리고 우리가 쌓은 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너무 초라한 것들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능력의 한계를 늘 느끼게 되죠. 
우리의 힘은 영원하지 않아요. 

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의존할 수 없는가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어떤 것을, 우리가 의존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은 다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을 써도, 영원히 힘을 낼 수가 없어요. 그렇죠. 
우리가 요즘 핸드폰도 늘 가지고 다니는데,
이게 참 우리를 잘 표현해 주는 거예요. 

핸드폰에 배터리가 런 아웃이 되는 거예요. 
영어로는 battery runs out 이라고 하죠.
조금 쓰다 보면, 배터리가 그냥 다 끝나버리게 되는 거예요. 

배터리가 다 끝나면, 아무리 대단한 게 있어도, 아무 쓸 데가 없는 거예요. 
충전 charge 을 해야 됩니다. 끊임없이 차지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열정이 꺾이는 날이 옵니다. 
우리의 힘과 우리의 재능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지칩니다. 
우리의 힘과 실력은, 믿을만 하지 못하다는 거죠. 

여러분 베드로를 보면, 그 베드로의 신앙이 얼마나 허구에 차 있는가를 잘 보여주죠. 
그가 얼마나 열심이었습니까? 열심 하면 베드로 예요. 
근데 그의 열심의 한계가 금방 드러나죠. 

그래서 여러분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그 얘기를 해요. 
'분주함은 배교와 같다!' 무슨 말일까요?                      

분주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신앙의 초점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열심에 도취된 삶은 위험한 거예요.

그런 하나님을 위해 섬기기보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벗어나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분주한 삶'이라는 거예요.  

우리 인간은 내가 신이 되려고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여러분 '열심'을 잘 분석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뭐 어떤 분야이든지 열심히 할 때, 그 열심을 분석해 보세요. 
왜 열심을 내는가? 그 내적 동기를 스스로 물어보라는 거예요. 

-내가 좀 더 멋지게 보이려고 
-남보다 더 우위에 서려고 
-내가 최고가 되려고 
-누구에게든지 나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이렇게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을 점검해 보아야 돼요. 
무엇인가 최선을 다 하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열심히 사는 건, 나쁜 건 아닙니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도 필요해요. 
남들보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아주 철저 하죠. 
시간 관리도 철저하고, 스케줄을 보면 분초를 다툽니다.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관리를 하면서 살아갈 때 주어진 어떤 즐거움이 있고, 성취가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만 알고, 큰 것을 놓칠 수 있어요. 더 큰 그림을 봐야 됩니다. 

여러분, 내가 주도적으로 내 인생을 끌고 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주도하심을 놓쳐 버리는 거예요.           

내가 만든 세계 안에 내가 빠져버리는 거죠. 
내가 만든 세계에 내가 빠져버리고, 내 열심에 치우쳐서 살아가다 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자기의 것으로 꽉 찬 사람이 있습니다. 빈틈이 없어요. 완벽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흠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여러분,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나, 열심히 일하는 교회가 놓치는 게 있어요. 
우리가 너무 열심히 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만들지 못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우리는 넘어 설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은 신앙 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꽉 채우려고 합니다. 너무 완벽한 개획을 세우고 전략을 짭니다.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는 너무 책임 의식이 강해서 문제가 될 때가 있어요. 
내가 모든 걸 관리하고,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려고 하는 거죠.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죠?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하기 이전에, 
우리는 기다려야 돼요. 내가 먼저 결론을 내면 안 돼요. 
내 생각에 꽉 차 있으면 안 된다는 거죠. 

여러분들 대화를 하면, 자기 생각으로 꽉 차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는, 인간 관계에서는 용인될지 모르지만 
신앙의 세계에 들어오면, 그런 태도는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신앙 세계에 들어오면,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기가 뭐냐 하면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철저히 수동태를 먼저 익혀야 됩니다. 내가 뭘 하는 게 아니라 수동태예요.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Response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려고 하면 들어야 돼요. 잘 들어야 돼요. 
근데 문제는 우리는 잘 못 들어요. 왜 잘 못 듣죠? 
나의 생각이 꽉꽉 차 있으니까! 

여러분 신앙의 핵심은 반응입니다. 반응 Response 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지를 먼저 물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고 기다리는, 그 기다림의 시간에 
바로 빈 공간이 만들어지는 거죠. 

여러분, 우리의 편에서 의욕이 강할수록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은 축소 됩니다. 

여러분 믿음이 커진다는 게 뭘 말하는지 아세요?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점점 더 많이 내어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기대하면 할수록, 빈 공간은 더 커져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한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열심이, 우리의 재능이, 우리의 탁월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하나님 보다 우리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내어드리지 않고, 내가 주도해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이 공간은, 진공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로 가득찬 기다림의 시간을 의미하는 거예요. 

여러분 본문을 보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은 모든 활동을 멈췄습니다. 왜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거예요.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여기 머물러 있으라, 기다리라는 거예요.

뭘 의미합니까? 무슨 의미예요?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 왔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라는 거예요. 

이제 너희들이 뭘 할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일을 할 때라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너희들에게 보여주겠다. 
그래서 그때까지 기다려, 가만히 있어, 올스톱 해!' 라는 거예요., 

여러분! 제자들이 이 말귀를 알아들었어요. 
그동안은 여러분, 제자들이 너무 열심히 했어요. 
베드로가 특히 너무 열심히 했어요. 막 나가요. 오버를 해요. 

그러다가 완전히 실패했어요. 보통 실패가 아니라 참패를 냈어요. 
그러니까 그 즈음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그러니까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들었어요. 

그들에게는 어떤 미래의 계획도 가지지 않았어요. 
더 이상 나서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베드로도 꾹 참고 있는 것 같아요. 잠잠해요. 할 일이 없는 거죠. 

이 시점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도하며 기다리는 시점이)

신약 교회가 세워지는 데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어요.
우리의 신앙에도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알려줍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장에, 마가에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의 모습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뭘까요? 그들은 거대한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들은 조금도 서두르지 않습니다. 

전략을 짜려고 아침, 저녁으로 모여서 회의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의견을 나누고 그러지 않았어요. 

오직 기다린 거예요. 오순절 날이 이를 때까지 그들은 기다렸어요. 
그들이 한 것은 딱 한 가지예요.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1:14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이게 뭐예요? 철저히 수동태 예요. 
그들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 입니다. 

그들 안에서 (시계처럼) 무엇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위로부터 임하실 것에 대한 기대감! (나침반처럼)

마가의 다락방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어요.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곳을 제가 한 번 가봤는데, 가보니까 굉장히 좁더라고요. 
'여기에 120명이 어떻게 다 들어왔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좁은 공간이에요. 꽉 찼어요. 
근데 그들은 하나님이 일하실 거대한 빈 공간을 만들었어요. 
비로소 그들 안의 빈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누가 기다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빈 공간을 만들게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잠시 멈추는 겁니다. 
내가 하던 일을 멈출 줄 아는 게 믿음이에요. 

그 멈추는 시간이 공간이 만들어지는 시간이에요. 
그 공간은, 하나님이 일하실 여백인 거예요. 

여러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은, 자기로 꽉 찬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여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결심에 도취되어 있고, 자기의 제주와 능력에 사로잡혀 몰입되어 있는 사람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고우! 계속 가는 거예요. 

왜 달려요? 누가 뒤에  좇아오는 것 같으니까 그냥 달리는 거죠. 
세렝게티에 그 스프링벅 산양 떼가 절벽아래로 막 떨어져 죽는, 
몰살하는 일이 가끔씩 일어나는데,
누구 한 마리가 뛰니까, 영문도 모르고 막 그냥 같이 뛰는 거예요.
그래서 절벽 앞에서 정지하지 못하고, 떼를 이루어 절벽 아래로 떨어져서 죽는 거죠.

불안하면 계속 달려야 돼요. 멈출 수가 없어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막연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찬 기다림이며 
이 시간은 폭풍전야와 같아요. 긴장감이 돌아요. 

여러분 2천 년 전으로 돌아가서,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은 
좌절감과, 실패의식과, 낮은 자존감과, 불안과, 두려움과, 초조함과, 무기력증으로 
그냥 뭐 확 쳐져 있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기도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여백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에 자기들이 가졌던 모든 것들이 다 필요 없는 거예요. 
거대한 빈 공간이 만들어졌어요. 

그곳에 무슨 일이났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십니다. 
갑자기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찾아오셨어요. 

이게 뭘 말하는 거죠? "위로부터" 입니다.
"위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이 임하신 거예요. 

어디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딱 멈추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기다리고 기도하고 있는 그 곳에, 그 빈 공간에, 
하나님이 일하실 역사를 기대하고, 모든 걸 멈추고 수동태로 있는 그 순간에, 
"위로부터" 임하신 거예요. 

▲이게 나침반 인생이교, 나침반 교회이에요.
여러분 우리 안에서 뭐가 작동 돼서 무슨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시계
전적으로 외부, 바깥에서의 무엇이 임해야 역사가 일어난다는 거요.   *나침반
그게 신약의 교회요, 오늘 그리스도 인의 삶이 되어야 하는 거에요. 

우리 안에서 선한 게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바깥에 계신 그 분이 
우리 가운데 임하셔야 된다는 거에요. 어디에? 빈 공간에. 

그 빈 공간은 뭘까요? 
우리의 모든 활동과 열심과 재주를 멈춘 그 순간!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이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빈 공간을 충만하게 채우셨어요. 

여러분 영어로 플레이스 가 있고, 스페이스 라는 단어가 있어요. 둘은 좀 달라요. 
플레이스 Place 라는 말은 그냥 장소에요. 
오늘도 우리가 여기에, 그냥 모였다가 아무 일도 없이 떠나면, 여기는 그냥 Place 가 되는 거죠.

근데 거기에 위로부터 성령이 임하시니까, 그게 Place 가 아니에요. 그게 Space 가 돼요. 
특별한 공간 Space 이 되는 거예요. 

아무리 멋진 예배당 건물을 지어 놔도, 
주의 영이 임하시지 않으면, 거기는 플레이스 에요. 창고나 강당과 똑같아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흐름한 창고 같은 데도, 주의 성령이 거기 임하시면, 
그 빈 공간을 채우면, 그곳은 어마어마한... 하늘이 임하시는 거죠. 

(회중들) "아멘!"

교회는 인간이 의기투합해서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모여도, 뭐 놀랄 일이 없어요. 
하나님이 그 빈 공간에 찾아오시는 순간부터, 놀라운 공간이 됩니다.

능력이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돈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세상에 권세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아무 의미 없어요. 
우리로는 안 돼요. 하나님이 오셔야 된다는 거예요. 

(회중들) "아멘!"

▲여러분!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뭘까요? 여백을 만드는 거예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멍청해 보일 수 있습니다. 
마가에 다락방에 모인 120명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 실패자들, 정말 뭐 사회적으로 볼품이 하나도 없는 그 사람들, 
모여서 그냥 매일 뭘 웅성거리는데, 뭐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계속 그러고 있는 거예요. 

얼마나 무기력해 보이고, 얼마나 능력이 부족해 보이고, 얼마나 찌질해 보이겠어요?
기도가 뭔지 아세요? 기도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무기력해 보일 수 있어요. 
'야, 철야기도회 가는 시간이 있으면. 밤에 한 탕 더 뛰어라!' 

왜 기도하지 않아요? 여러분, 자신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의 실패 지점을 가보세요. 열심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대부분 열심히 일합니다. 
자신의 청춘을 다 쏟아 붓습니다. 많은 걸 쏟아 붓지만, 남는 건 하나도 없어요. 

베드로처럼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잡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은, 오늘 우리 인생을 잘 대변합니다.

▲여러분, 모세를 보십시오. 그런 제국의 왕실에서 사십 년을 화려하게 보냅니다. 
그때 모세에게 생겼던 착각이 뭘까요? 
'이제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그러나 여러분 그 자신감의 결과가 뭐예요? 사람을 죽이고 그는 도망자가 됩니다. 
처절한 실패를 맛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언제 부르셨습니까? 팔십 세 할배 때 부르셨어요.
그는 힘이 다 빠졌어요. 말도 어눌해요. '나는 말할 줄도 몰라요'

그 똑똑하던 모세가, 궁중의 학문을 터득했던 그 똑똑했던 모세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뺑뺑이를 돌렸더니, 어리버리 하게 되어버린 거죠.

하나님이 왜 그때 찾아 오셨어요? 신기하잖아요. 여러분, 
그 창창 할 때, 그 젊음이 있을 때, 명석한 때, 에너지가 넘칠 때, 그때 불러야죠. 
그래야 잘 써먹지요. 

팔십이 작은 나이입니까 왜 그때 찾아오셨어요? 
인간이 인간의 힘이 다 빠져야, 하나님이 비로소 일하실 공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기 직전을 보세요.
그때가 바로 빈 공간이 만들어질 때예요. 

홍해 앞에서 모세는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가만히 있어...' 
'꼼짝 마! 너희들이 할 일은 하나도 없어, 
너희들이 뭘 하려고 하면 나를 방해하는 거야'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모든 역사의 순간마다 인간은 수동태입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가 뭘 하려고 하면, 오히려 사고가 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해야만 하는 것에 익숙해 있어요. 
무엇을 하기보다, 기다리는 훈련을 잘 못 받았어요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가 무엇을 발견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고,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돼요. 

누가? 어떤 사람이? ... 아니에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빈 공간을 만들 때 매우 중요한 것은
말을 침묵하는 거에요. 
많은 경우, 말로 일을 그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행2장에 보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성령이 사람들의 혀를 주장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게 아니라,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그 혀가 움직여진 거예요. 독특한 사건이죠. 

여러분, 이것은 선교적 의미도 있지만, 
인간의 말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혀를 통제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작전 지시가 뭡니까? 
매일 여리고성을 돌 때,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왜요? 

'이 싸움은 내가 할 싸움이라'는 거예요. 
작전 지시는 내가 내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는 듣기만 하고, 순종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핵심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 행위는 우리의 수동태예요. 듣는 거예요.
그 듣는 것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가 왜 좋은 곳입니까? 
광야는 듣는 훈련을 시키는 곳이에요. 
광야는 텅 빈 공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광야에서 좋은 것은,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거죠.
도시는 뭐에요? 잡음과 소음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가 너무 어려워요. 

특히 요즘은 유튜브나 미디어 매체들이 많아서 
막 온갖 잡소리가 많이 들려서, 더더욱 주님의 음성을 듣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냥 쓰레기 더미가 막 밀려 오는 것 같아요. 

여러분 광야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광야에는 기적이 많이 일어나는 거예요. 
광야에는 인간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광야는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 빈 공간이에요. 
하나님 외에는 답이 없는 곳이 광야잖아요. 

▲여러분, 이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능력 있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 힘으로 다 해 버려요. 
북 치고 장고 치고.. 자기 혼자 다 해버려요. 

여러분 세상에는 유능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유능이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인간의 능력이 안 먹힐 때가 있어요. 반드시 그 날이 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 어려운 거죠. 
여러분, 바울은 '약할 때 강함' 이라는 놀라운 레슨을 주죠. 

여러분 약점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남다른 어떤 아픔을 겪고 있습니까? 그것을 제거해 버리고 싶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공간이 만들어져요... 

그래서 여러분의 모자람을 부정적으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모자람을 부끄럽게 여기지 마세요. 
나의 모자람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그게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의 일평생,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몸부림을 칩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끝까지 발버둥 치다가, 다 채우지 못하고 
고혈압으로, 뇌졸증으로 쓰러집니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거죠.

여러분, 내가 채우려고 하지 말고, 비워짐을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우리는 항상 채워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습니다. 불안한 거죠.

여러분 비우는 연습을 하셔야 돼요. 여백의 미를 가지셔야 돼요. 
무엇이 부족하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부족함을 빨리 채우려고 하지 마세요. 좀 기다리세요.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는 가를 보세요. 

내가 내 부족을 채운 것과, 하나님의 나의 부족을 채운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하나님이 채우실 때는,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나의 부족함을 다 채워 버려요. 
그러면 그 수준에서 끝나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너머, 그 이상의 더 놀라운 것들로 준비하고 계시는데 
자기가 자기의 능력이 있다고, 스스로 다 채워 버렸어요. 그러면 그걸로 끝이에요. 
하나님이 더 이상으로 준비하신 것을, 수여받지 못하게 되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을 알고 계세요. 
그리고 그 부족을 어떻게 채우실지, 그 방법까지도 알고 계세요. 
하나님이 채우시는 것을 여러분들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메이징! 그건 놀라워요. 

바울이 이런 표현을 하죠. 빌4: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여러분, 자녀 양육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녀를 몰아가면, 자녀의 숨이 막힙니다. 그런데도 막 자녀를 몰아갑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어디든지 준비해 놓으셔야 돼요.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셔야 돼요. 

자녀는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하나님의 소유 입니다. 우리의 소유 아닙니다. 우리는 위탁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자녀를 하나님께 맡긴 사람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염려하지 않아요. 
염려 하면... 맡긴 게 아직 아니에요. 
진짜 맡겼으면, 염려하지 않아요. 

▲마치는 말

여러분 부족한 부분을, 내 힘으로 채우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모자란 부분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채워 주십니다. 

내 연약함과 부족함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그 여백을, 하나님의 손길로 역사해(채워) 주시는 것을 경험해 나갈 때 
그제야 우리는 비로소 삶에 은혜와 만족과 감사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나의 열심으로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 하나님이 일하실 빈 공간을 만들어 놓지 않기 때문에, 
내 힘으로, 내 열심으로, 내 계획으로, 내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으로, 
내가 원하는 그 일을 이루어 내려고 하는 그 노력을 계속할 때, 인생은 점점 더 고달파집니다.
(대부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죠. 그게 열심히 잘 하는 것으로 착각해요)

 

그렇게 한다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예요.
혹시 운이 좋아서, 그걸 얻었다 해도, 거기에 참 만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갈증과 배고픔 (또는 욕심)은 점점 더 커져 가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맹목적으로) 열심히 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해보면 뭘 느낍니까?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고, 세상에서 어떻게 무엇이든지 우리가 열심히 하면 결국 느끼는 게 
'나로서는 안 되는구나.. 이뤄지는 게 없구나.. 나의 의로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구나!' 
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돼죠. 

그래서 여러분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가야 해요. 
신앙 생활을 잘 하려고 애를 써 본 사람들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힙니다. 

 

무너지고, 깨어지고, 그렇게 찾아다니고.. 그렇게 열심을 내기도 하고.. 
그렇게 성경공부와 훈련을 받았는데 
어느 날 어이 없는 일에, 한 방에 무너지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나로서는 소망이 없고, 내 의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리스도 밖에 없구나...' 

죄 문제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 들이에요.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죠.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가 더 필요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뤄낸 업적과 성취에 도취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우리의 일에 우리가 스스로 도취 되고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위대한 일을 바라보고, 경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빈 공간을 만들어 드리면, 
그 분이 내게 임하실 때 
내가 10년~20년에 할 수 없었던 일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한 순간에 하나님이 이루어 내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 날에, 불처럼, 강한 바람처럼 임한 
이 성령의 역사가 
결국은 신약교회의 역사를 시작하고,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온 세계에 흩어져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는 출발점이 됐다는 거죠. 출발점! 

거기에 뭐가 있어요?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절대적 포기를 통하여, 제자들이 가만히 멈춰 있었을 때 
그 빈 공간 속에 잠잠히 기다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거예요. 

우리의 열심과 최선을 다한 땀 흘림으로 시작된 게 아니라 
위로부터 임하신 그분으로 인하여 시작되는 역사예요.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써 시작되는 역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이 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위대하고,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열심, 우리의 재주, 우리의 완벽한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내어드리고, 수동태로 그 분을 잠잠히 기다리고, 
조급해 하지 않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위탁할 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가, 
기이하고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이 행하시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무엇을 가장 많이 해야 되느냐? 
저는 요즘 뭘 생각을 하냐면, 우리가 할 일은 찬양이에요, 찬양!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목도한 사람들은 뭘 해요? 찬양 밖에 할 게 없어요. 

 

'하나님은 위대하시도다!'
'주님은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이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행하시는지...' 찬양밖에 할 게 없어요. 

우리의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우리가 이룬 일과는 게임이 안 되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를 압도 하게 하는 역사를, 이루고도 남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 분을 기대하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거예요. 
그 외에 우리에게 다른 소망이 없습니다. 

내 열심으로, 내 재주로, 내가 그냥 결사적으로 
그냥 몸부림을 치고,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룰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 모여서, 위대한 일을 함께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여러분! '그래서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 보다 낫다' 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저는 그런 일이 개인에게 일어나고, 우리 교회에도 일어나고, 
우리 민족 가운데도 일어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날마다 찬양이 터지게 되기를 기원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