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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아 먹어라

LNCK 2024. 11. 1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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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15] 이 책을 받아 먹어라 | 계시록 10:1-11 - YouTube

이 책을 받아 먹어라          계10:1~11              -교정예정-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으실 겁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반드시 어려움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능히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절대로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시록을 가만히 읽어보면, 큰 재앙이 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요한에게 먼저 하늘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재앙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계7장에 보면, 두루마리 일곱 번째 인이 떼어지고 큰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요한에게 하늘의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장엄한 광경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인의 재앙이 그 뒤에 이어집니다. 

계10장은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다시 한번 그 재앙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장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중에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가운데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이길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얻게 되시기를 추천합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하늘을 보게 하셔서, 한 힘센 천사를 보게 합니다. 
장래의 예수님처럼 공중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와서 
오른발은 바다에, 왼발은 땅에 디디고 섰는데 
그 손에는 작은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천사가 든 작은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이 땅을 향한 심판과 
그리고 성도들의 구원에 대한 완전한 계획이 담겨져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 천사가 한번 소리를 지르는데, 사자가 우는 것 같은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일곱 천둥이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요한이 그것을 기록하려고 한 걸 보니까, 
그 일곱 천둥 소리는, 그 두루마리의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서 '그 천둥 소리를 기록하지 마라' 하셔서 
사도요한이 그걸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계10: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은 분명히 다 세워져 있지만 
그것을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다니엘이 하늘의 계시를 마지막 때의 계시를 그가 들었는데 
하나님이 기록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단12:9

사도바울이 셋째 하늘 3층천에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건 틀림없이 마지막 때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 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볼 수 있는 성경책을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사실은 충분합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하나님의 안내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외칩니다. 

계10:6~7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일곱째 천사가 불려고 하는 나팔소리가 나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에게 전하여 주신 대로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드러내지 않은 것은, 그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이고, 
사실 알 필요도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은,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계시록을 읽어보면, 대부분 환상으로 말씀하신 거 보면, 
정확하게 언제 어떤 모습으로 그 재앙이 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모르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성경에 있는 어떤 감추어진 계시를 
자기는 알게 됐다고... 자기는 그 계시를 깨달았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이단입니다. 
미혹하는 자입니다. 
그 점이 분명해야, 여러분들이 마지막 때 미혹 당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그 천사에게 가서 
그 두루마리를 달라고 하라고 지시를 하십니다. 

그래서 요한이 그 천사에게 가서 '두루마리를 달라'고 하니까 
그 천사가 한 말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책을 받아 먹어라!'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두루마리를 받아 먹어라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죠? 
두루마리를 주면서 '이것을 받아 먹으라'는 겁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참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사전을 뜯어 먹는 걸 보았습니다. 
그거는 그 사전을 통째로 다 암기하겠다고 하는 결단인 거 같아요.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는 것도 사실 의미적으로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해석이 됩니다. 

'말씀을 내 것으로 완전히 삼으라' 
'이 말씀대로 네가 살라!' 그런 뜻이죠.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 성경을 '양식'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신8:3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까 이 성경은 먹는 '양식'인 것입니다. 
육신의 양식은 아니지만, 내 영이 사는 양식인 겁니다. 

렘15:16절에도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겔3:3절에는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셨고 

 

고전3: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젖이고, 밥'이라고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고전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떤 태도로, 어떤 마음의 자세로 이 성경을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성경은, 읽고 어떤 지식을 얻는 책이 아닙니다. 
그냥 먹어야 되는 양식인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내가 이 말씀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말씀의 역사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성경은 알지만, 말씀을 먹지 않으니까 
실제로 말씀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 

아프리카에 선교사였던 리빙스턴이 16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그리고 고국 영국으로 잠깐 귀국하여서 글라스고우 대학에서 연설을 하였는데 
어느 한 사람이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그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16년 동안이나 그렇게 외롭게 살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서 온 겁니까?' 그때 리빙스턴이 대답했습니다. 

"나에게는 두 가지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약속은 요14: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또 하나는 마28:20절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는 거예요. 
말씀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 말씀을 먹는 것은, 삶의 완전한 차이를 가져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육신의 병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죽은 사람도 살리는 기적을 행했던 사도 바울이지만, 
자기 병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세 번이나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네가)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그때 사도 바울이 깨달았어요. 
'내가 병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나타나는 거구나' 

그 말씀을 듣고, 사도 바울은 더 이상 병을 고쳐달라고 안 했습니다. 
오히려 자기 병을 기뻐하고 자랑했다고 그랬습니다. 

고후12:9절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게 말씀을 먹는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으면 
이제는 그 말씀이 내 것이고, 내가 그 말씀대로 사는 거죠.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고, 
예수님의 부활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자 이런 말씀을 내가 받았다면,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먹는 겁니다. 말씀을 먹었으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죽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나는 벌써 장례식을 치르고 사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으로 사는 겁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고백하게 되는 거죠. 

만약에 그 말씀을 먹지 않으면, 그러면 '내가 죽었나? 안 죽은 것 같은데? 
내 혈기와 성질은 여전히 있는데? 아휴 난 안 죽었어!' 그렇게 말하게 되는 거예요. 
말씀은 들었지만 말씀을 먹지 않으니까 
분명히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말씀을 누리지 못하는 거죠. 

여러분이 말씀을 먹으면, 
(먹기 전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 같고 
실제로 아직은 체험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실패가 오고 낙심이 올 때, 
말씀을 먹은 사람은 끝까지 믿음의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나는 죽었어, 예수님과 함께 나는 이미 죽었어! 예수님이 내 생명이셔' 
(이렇게 말씀을 먹을 때)
그때 그 말씀이 비로소 자기에게 실제가 되고, 살아있는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순회선교단의 김용의 선교사님에게 막내 아들이 있는데 
그 막내 아들 이름이 '김선교' 선교사 입니다. 

그렇게 이름을 붙인 그 아버지도 참 대단한 분이에요. 
선교적인 존재가 되라고, 아예 이름을 '선교'라고 지어버렸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어서 
자기는 어려서부터 선교사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엄청난 신앙적인 회의와 갈등과 방황을 겪었다고 해요. 

자기 이름답지 못하게 산거지요. 그렇게 살기 쉽지 않는데 어떻게 해요? 
'도대체 왜 내 믿음은 이런가? 아니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데 
나는 왜 체험이 안 되는가? 왜 말씀이 내게는 이루어지지 않는가?' 

그는 너무너무 방황했다는 겁니다. 
17살 때 선교사로 현신을 하긴 했지만, 그는 답이 없었어요. 
계속 영적으로 더 무너져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그 믿음이 회의에서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책을 썼어요. 아직 20대 청년인데 <믿음은 분투다> 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제게 추천사를 부탁을 해와서 읽어보았어요. 
그 책이 참 놀라운 도전이 됐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신앙의 방황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나?'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신앙의 방황을 할 때 조차도, 
끊임없이 그것을 기록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록하고... 
믿어지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무너졌으면 내가 무너졌다고 기록하고... 
또 말씀을 주시면 그 받은 말씀을 기록하고... 

그렇게 10년 동안 기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너무 마음이 답답하고, 
도무지 자기가 다시 믿음을 믿음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절망하던 어느 날 
자기가 그동안 기록했던 걸 우연히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10년 동안 자기의 방황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그 기록을 읽어내려 가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는 방황만 한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자기가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자기가 썼던 그 일기 속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분명한 말씀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정도가 아니고, 나를 알고 계시고... 
나에게 친히 말씀하시는구나'
 이 사실이 믿어지면서, 그는 신앙의 방황이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가 신앙의 방황을 극복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부모님과 순회선교단 공동체 안에 있는 믿음의 선배들이 
자기가 그렇게 방황할 때도, 명확한 복음, 
분명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기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방황하고.. 그렇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러고... 
그렇게 살아지지 않는다고 할 때... 
부모님이나 주변에 있는 믿음의 선배들 중에 누구라도 

 

'그래, 그래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거야.. 어떻게 성경대로 다 살 수가 있겠어? 
너는 최선을 다했어! 너는 나름대로 할 만큼 했어, 그러니 그냥 여기서 끝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누구라도 그렇게 이야기를 해줬다면, 자기는 아마 거기서 끝났을 거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방황하는 걸 보고도, 그 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데도 
부모님도, 주변에 있는 믿음의 선배들도 다 한결같이 이렇게 다독여 주었다는 거죠.  

 

'그래도 복음은 분명한 복음이야!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 더 어김 없이 다 이루어져!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예수님으로 사는 자가 되었어! 
24시간 주님을 바라봐! 
정말 땅끝에서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 한 복판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삶이야!' 

하고 계속해서 진리를 결론 삼고, 복음을 복음으로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결국 자기가 그 믿음 안에 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먹은 사람입니다. 

말씀을 먹으면, 
자신의 인생도, 말씀이 성취되는 삶을 살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쓴 말씀

여러분, 요한이 그 두루마리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먹어보니까 '입에는 단데. 배에는 썼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계10:10절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내 입에는 꿀같이 달았으나, 먹고 나니 뱃속은 쓰라렸다' 이게 무슨 뜻이죠?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말씀을 들을 때는 꿀 같은데 
실제로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어렵다... 그런 뜻이죠.  

2) 사도요한은, 주님이 보여주셔서 
그 하늘의 모든 영광과 앞으로 될 일에 대한 모든 말씀을 다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요한은 매우 낙심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요한에게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말씀은 듣고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말씀을 이제 전하라는 거예요. 
들을 때는 은혜가 되지만, 말씀을 전하는 삶은, 여러분도 다 아시잖아요. 
핍박도 있고, 조롱도 있고, 멸시도 있고... 
말씀을 전하는 삶은 정말 배가 쓰라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따금 저는 '내가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잘 하고 있나?' 
그런 어떤 회의가 올 때가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설교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좀처럼 성도들이 말씀대로 반응을 안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잘못 가는 거 아니야? 내가 잘못 전하는 거 아니야?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는 십자가 복음을 그렇게 전해도 
계속 나는 안 죽었다는 교인들을 보면 내가 이거 잘하는 거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고 성경에 말씀하니까 
우리가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매일 같이 일기로 써보면서 주님과 교제를 한번 훈련해 보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전해도... 좀처럼 반응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너무 지나치다'고 비난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내가 잘못하는 거 아니야? 내가 지금 잘못 생각한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주님은 저에게 명확한 말씀으로 
제 모든 갈등과 회의를 다 종식시켜 주셨어요. 
그것은 '성경을 보라!'는 것입니다.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은 오직 하나예요. 
느낌도 아니고, 사람들의 반응도 아니고, 환경도 아닙니다. 오직 성경이에요!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살면... 잘 가고 있는 거예요. 
성경이 말하지 않은 길로 가면... 잘못 가는 거죠. 

분명히 성경은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고, 
예수님으로 사는 자가 되었다'고, 

주님과 우리 사이는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완전히 하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아니고, 
제 비전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까 
말씀을 실제로, 실제로 경험해보자!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해보자! ... 하는 것이죠. 

▲여러분의 개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가고 있는 겁니까? 지금 잘 살고 있는 겁니까?' 
기준은 오직 말씀입니다. 

목사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그러면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고전9: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 함이로라' 

목사가 이런 어려움이 있어요.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라 성경은 잘 알지만, 
스스로 말씀을 먹지 않은 사람은 
마지막에 오히려 본인 자신이 버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교인들은 다 구원하고도, 자기는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목회하시던 두 목사님이 계셨는데, 
비슷한 때에 다 예배당을 건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예배당을 건축하는 중에 
공사장에서 사고가 생겨서, 두 목사님 다 다치셨어요. 심하게 다치셨어요. 
그래서 병원에 각각 입원을 하시게 됐어요. 
그런데 한 목사님은 너무 감사했어요... 

예배당을 건축하고 나면, 흔히 이런 3가지 징크스가 있습니다. 
-그 목사가 죽든지 
-아니면 예배당 건축 끝난 다음에 교회를 떠나든지 
-세 번째는 큰 부상을 당하는 일이 있다는데,

그런데 자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세 가지 중에 제일 쉬운 걸,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셨대요. 
그래서 그분은 너무 감사했어요. 
'하나님 감사해요. 제가 몸을 다치는 정도로 끝내서 감사해요...' 

그런데 다른 한 목사님은, 너무 마음에 실망이 됐습니다. 
'제가 예배당을 짓자고 한 건데... 하나님께서 나를 안 지켜주셨다...'
그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이 확 들어왔습니다. 

은퇴하는 날, 그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를, 
'제가 너무 그동안 목회를 열심히 했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그러고는 교회를 떠나셨어요. 

말씀을 가르쳐도, 그분은 말씀을 먹은 건 아닙니다. 
말씀을 먹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자기 삶 속에 이루어지는 걸 경험할 수가 없어요.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우들이 다 이 말씀을 먹게 해주세요. 
그러면 저부터 말씀을 분명히 먹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지 않고, 어떻게 말씀을 먹을 수 있겠어요? 
혹시 이 시간에 여러분의 삶 속에, 내가 성경책이 집에 있지만, 
그렇지만 대부분 집에서 성경을 보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교회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경을 안 읽습니다. 

예배 때 설교 본문으로 읽으라고 그러면 같이 읽을까... 
그렇지 않고는 대부분 읽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아마 거의 대부분이 성경을 안 읽으실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성경을 먹을 수 있겠어요? 
읽지도 않는 성경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뉴스를 검색합니다. 항상 새로운 소식이 있어요. 

그러니까 궁금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 해요. 
인터넷 뉴스를 보고서, 여러분의 심령이 절차 살아나지 않습니다. 
영혼은 점점 메말라집니다. 짜증나고, 원망하고, 불만이 차고, 그리고 우울하고... 
마음의 상처가 되고, 화가 나고.... 왜 그렇습니까? 

영혼을 살릴 메시지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고리타분한 책, 뻔한 책... 
어휴 읽으면 늘 그 말씀...' 

그 사람은 성경을 안 읽고 가지는 선입관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진짜 성경을 읽기 시작한다면, 그러면 비로소 알게 됩니다. 
놀라운 마음의 평안,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사람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넘치는 기쁨,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인류문명이 발달하면서, 예전에는 없던 것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인터넷도, 휴대폰도... 예전에 없던 것들이죠.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우리를 영적으로 살리는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인류 역사 동안, 항상 똑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음식의 재료가 똑같아요. 곡물과 채소와 고기. 
똑같은 양식을 지금까지 계속 먹으면서 삽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정말 영혼이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셔야 돼요. 

오늘 이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여러분 안에 분명한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 
'성경을 내가 가지고 다니고, 그리고 내가 계속 성경을 보아야 되겠다' 

여러분, 계시록에 대한 말씀을 읽고 들은 사람과 
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듣지 못한 사람이 
이 계시록에 나오는 예언이 성취 될 때... 반응이나 결과가 같겠습니까? 

말씀을 읽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당황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옇든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들으셨어요. 
그래서 여러분은 말씀이 여러분을 분별을 주고,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지금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있다면 
아마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이 많이 올 겁니다. 그게 성경의 예언이에요. 
어떻게 해야 되죠? 

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되, '말씀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먹는다'는 자세로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 
어떻든지 그 말씀대로 살아보는 겁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도록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