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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2장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

LNCK 2026. 5. 16. 08:2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다음 세대>          ▣ 꿈, 비전, 소명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           삿2:6-10, 막10:30   2026.05.10. 설교일부녹취, 정리

 

※부모 세대의 신앙, 정신 유산을 물려받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자기 세대에서 도전적인, 창의적인, 파이오니어 정신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제의 설교입니다.  

*관련글 / 새로운 부류의 설교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rfcdrfcd.tistory.com/15974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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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세대마다 이름 지어주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MZ세대, X세대, 인터넷세대, 코로나세대..

지금만 그런 게 아니고 과거에도 베이비붐 세대라는 것이 있었죠.

 

세대의 이름을 짓는 이유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들이 다르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대 간의 갈등은 새로운 게 아니고,

이미 1960년대, 70년대에 유행했던 말 중에 ‘제너레이셔널 갭, 세대차’라는 말이

그때 이미 유행하지 않았습니까?

 

로마 시대의 유적지를 가보면, 벽에 로마인들이 낙서를 해놓은 것을 발견을 하는데,

그 낙서 중에 ‘요즘의 젊은 세대는 뭐가 없다’ 이런 글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처럼, 신세대에 대한 극명한 판단을 한 구절을

다른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삿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그래서 오늘은 ‘다음 세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늘 다음 세대를 염려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다음세대가, 이전 세대가 이루지 못했던 놀라운 일을 이룰 때도 있습니다.

일례로,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출애굽 2세대는, 여호수아를 필두로 가나안에 들어갔지요. 완전한 노예해방을 이루고

국가의 기틀을 잡기 시작한 거죠.

 

참고로, 위에서 말한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출애굽 3세대를 뜻하는데,

또 안타깝게도, 한 세대만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중략

 

▲본론/ 여러분 저는 모태신앙에 그렇게 메리트를 주지 않는 이유가

제 자신이 모태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부모님에게 신앙을 물려받지 않았기 때문이고,

제 스스로 믿을 기회를 얻고, 제 스스로 복음을 듣고 거듭나고 헌신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건 누가 저에게 물려줘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누가 저에게 주입을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제 자신이 경험하여 믿고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이

부모가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세가 모세된 이유가 부모님 때문입니까?

 

엘리야가 엘리야 될 수 있었던 것이 부모님 때문입니까?

여러분 바울이 바울된 것이 그 부모님 때문입니까?

오히려 그 이전 세대의 전통과, 그 이전 세대의 경험과는 별도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세례 요한이 태어났을 때, 그 문중이 모여 아기의 이름을 지으려고 할 때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사가랴' 라고 짓자라고 했을 때

그 아버지 사가랴가 말을 못하니까 서판에다 적은 이름이 '요한'이에요.

 

그랬더니 문중이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우리 가문에는 그런 이름 가진 사람이 없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문중에는 그런 역사와 그런 사명을 가진 사람이 없다' 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가문의 전통, 부모의 믿음의 유산이 그렇게 절대적인 것이었다면,

그 아들로 태어난 요한이,

부모가 문중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사명과 능력과 은혜를 가능하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가문의 전통과는 완전 별개의, 새로운 신앙 세계, 하나님의 나라를

스스로 개척해 나갔던 것이죠.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모태신앙의 표본인 탕자의 형은

성공적인 모태신앙인의 표본이에요.

한 번도 아버지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는.. 

아주 모범적인 부모의 믿음을 물려받은 아들인데

그러나 여러분 '탕자의 형'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죄인에 대해서 그렇게 쌀쌀맞고, 죄인에 대해서 그렇게 가혹하고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을 못 알아주고,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없는(마음이 넓지 못한)

그게 만일 모범적인 모태신앙의 표본이라면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차라리 탕자처럼 한때 방황을 하더라도,

그 시련 중에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훨씬 더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하고, 훨씬 더 겸손하고

훨씬 더 간절하고, 한 번 돌아온 후에는 떠나가지 않는

그리고 이건 아버지가 주입한 것에 따른 것이 아닌,

자기가 경험하고 자기가 만난 하나님,

자기가 하나님을 실감한 그 위에 세워진 신앙이 아닙니까?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이방인 출신 기독교인들은 다 모태신앙이 아니었어요.

루디아가 모태신앙이 아니고

고넬료가 모태신앙이 아니고

에티오피아 내시가 모태신앙이 아니고

그들은 다 자기 세대에서 복음을 듣고, 자기 당대의 예수님을 믿었고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이 된 것입니다.

(모태신앙을 비하하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 당대의 신앙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여러분 개척정신에 대하여 우리가 흠모하지 않습니까?

미국을 미국되게 만든 정신이 개척정신이에요. Pioneering spirit

  

미국 나라는 개척을 통해 발전한 나라예요.

이 정신을 우리가 적어도 영적인 차원에 적용을 해서

내가 부모님의 믿음을 물려받지만, 과거의 유산에만 의존하거나

내가 그 틈바구니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기서는 탈피해서 '개척'해야 된다는 거죠.

왜냐면 시대가 바뀌었거든요. 과거의 방식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새 시대가 되었거든요.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세대에 자기 신앙 스타일을 개척해 나갔어요.

 

‘나는 하란으로 가는 길에 밤이 됐는데, 돌을 베개로 자는 중에 하나님을 경험했어’

‘나는 돌을 베개로 베고 자는 중에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셔서

내 형 에서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부자가 됐지만

나는 아버지의 유산을 의존한 게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셔서, 믿음의 가문을 세웠어요. 12아들을 다 믿음의 족장으로 키워냈죠’

이런 자서전적 간증이 있는 것입니다.

 

형 에서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았죠. 아버지의 재산을 이어받은 거예요.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은 받았지만, 아버지의 재산은 형님이 가졌고,

야곱은 빈손으로 시작을 해서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축복을 통하여

여러 가지 면으로 재물이든 가문의 비전이든 믿음의 사명이든

그리고 하나님이 이름을 바꿔준 것이든

그 모든 것이 야곱이 당대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자기 세대에, 자기 스타일의 신앙을 개척하고, 체득해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다(이스라엘)' 라는 이름까지 받은 것이 아닙니까? 할렐루야!

 

▲여러분 제가 이런 설교를 하면서 조심스러운 것이

'내 위주의 편향적인 신앙 관점을 심어주는 것은 아닐까?'하고 조바심이 날 때가 있는데

그러나 제가 성경을 읽고 또 읽고 깨닫는 것은

이것은 한두 사람의 경험이 아니고, 성경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원칙이라는

사실이에요. 원칙!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어느 때든 역사하셨어요!

 

(새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신앙스타일, 개척자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저 과거 부모 세대의 신앙유산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킨 사람들의 공통적인 성격은

남이 하지 않는 일, 남이 가보지 않은 땅에서, 남이 앞서 본을 보이지 않은 일을

자기의 믿음을 좇아 행하여,

남이 들어본 적이 없고, 남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이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고, 야곱이 그랬고, 예수님이 그러셨고,

세례요한이 그랬고, 12사도들이 다 그랬어요.

 

이들은 믿음을 가진 결과로써, 자기가 이전에 해보지 못한 일을 하고,

가보지 못한 곳을 가고,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만나고,

그리고 자기의 타고난 성격이든, 자기의 타고난 성향이든,

자기 과거의 배경이든, 가문의 배경이든...

이런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그 테두리를 벗어나서, 그 테두리를 벗어나서,

정말로 믿음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삶을 개척했다는 사실이에요.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물려받은 재산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교육의 기회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내 성격의 한계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이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담대함이 부족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 인생과 삶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자산이 됩니다.

우리가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물질에 의존하고, 거기서 위로를 받고

그것을 족하게 여기려는 그 관성적인 성향을 탈피해서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야곱도 부잣집 아들이고

어떤 물질적인 자원 위에서 믿음을 추구한 게 아니고

오히려 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좇았더니

내가 버린 것의 백배를 주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너무 경제 논리에 휘둘려서, 개척정신을 눌러버리면 안 된다는 거죠.)

 

'네가 집이나 전터나 부모나 형제나 자매를 버린 것의 백배를 얻고

그리고 내세에서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할렐루야   막10:30

 

내가 백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한 것이 아니고

사실 백배까지 기대하지 않는 것이 불신이에요. 그렇잖아요.

신앙 자산, 믿음, 하나님 나라의 '백배' 입니다.

 

여러분 중에 백배까지 바라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럼 우리는 다 못 미친다는 얘기예요.

내가 욕심이 많은 게 아니고 못 미치는 거예요.

'한두 배라도 어디야? 세 배라도 좋겠다...' 그런데 예수님은 백 배를 말씀하셨어요.

백 프로가 아니에요. 백 배 따라해보세요.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본문에 '새로운 세대가 예전에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알지 못했다'

라고 했잖아요. 열 가지 재앙, 홍해가 갈라진 일, 광야 40년의 기적, 여리고가 무너진 일

등을 알지 못했다는 거죠.

 

근데 그건 당연한 거예요.

이들이 알지 못한 이유는 자기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부모님의 경험이었어요.

 

부모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부모님이 하나님이 그 기업을 얻게 하시는 것을

경험을 했지, 다음 세대는 그걸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건 당연한 거예요.

 

만약 부모님이 '우리 시대에는 이런 이런 일을 하나님이 하셨어'라고 알려줬다고 해도,

다음 세대에게, 그건 간접적인 지식이지,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체득한 지식이 아니에요.

 

간접적으로 남에게 들어서 아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만약에 우리가 우리 후손에게 믿음을 가르치는 것이

'엄마 때에는 아빠 때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 라고 가르치는 것뿐이라면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을 거예요. 관심을 갖게 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자체가, 그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건 아니에요.

이들이 하나님을 알려면, 자기 세대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직접 경험을 해봐야 되는 거예요.

그건 이전과는 다른 새 시대에, 새 방식이 될 거예요. 왜냐면 시대가 바뀌었거든요!

 

오히려 '과거에 이런 일을 경험했어, 내 때는 이랬어' 라고 말하는 것이

괜히 세대차이 간극을 넓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너무 시대가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오죽하면 그 어른들이 손녀 손자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때는 밥이 없어 못 먹었다' 그러면

'라면을 사서 드시지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때의 궁핍함을, 손주 세대가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경험해보지 않은 걸 아무리 말해준다고 해서,

그것이 부모님의 어떤 정신을 배운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세대차 간격을 더 크게 하는 거예요.

 

▲제가 신학생이었을 때 훌륭한 부흥사들의 간증을 많이 들었어요.

왜냐면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서 위글스 목사님은 죽은 자를 몇 명을 살렸다느니..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느니..

다른 부흥사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했다느니...

그걸 읽으면서 제가 늘 고민했던 게

‘나는 왜 죽은 자를 못 일으킬까? 나에게는 왜 이런 일이 안 일어날까?’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전혀 쓸데없는 우려였어요.

왜냐하면 남이 했다고 하는 것들이, 저에게 재현되지 않았는데

 

오늘날 저는 제 시대에, 또 그들이 예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것이고,

그들이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 것을, 하나님이 제 안에서 하셨기 때문이고,

 

그러니 '남들이 과거에 이런 일을 했다더라' 라고 아는 것이

하나님이 제 안에서 하는 일을 인정하는 데에, 오히려 걸림돌이 됐어요.

 

그러니까 부모님의 세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이렇게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이런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것을 아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참고가 되겠지만

그걸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그런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아요.

하나님은 같은 일을 되풀이하셨다는 말이 없어요.

시대마다 새로운 사명을 주시고, 시대마다 사명의 장르가 다른 거예요!

 

남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를 그렇게 알려고 하지 말고 (물론 본질을 똑같겠지만)

오히려 방해가 돼요. 비교가 돼요.

 

그것보다는 하나님이 오늘날 내 안에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찾고, 그걸 귀중히 여기고,

그걸 개발시키고, 그걸 인정하고...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구나, 이것이 나의 사명이구나. 이게 나의 은사구나.

이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이게 나에게 주신 길이고, 하나님의 뜻이구나'

이것을 통해서 얼마든지 하나님을 섬기고,

이것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구나...'

 

여러분 이것이 믿음이에요. 할렐루야!

여러분 이걸 키우는 게 오히려 더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건 남의 하나님이 아니고, 나의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건 놀라운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게 젊은 세대가 쓴 구절이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 거예요.

'다음 세대는 하나님 여호와를 몰랐더라' 이건 어른의 입장에서 쓴 거예요.

아마 모든 세대마다,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우려가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기독교가 망하지 않고, 오늘까지 계속 내려온 것을 보세요)

 

어른은 늘 염려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염려하는 것처럼

오죽하면 팔십세 된 어머니가, 육십세 된 아들에게 '길 건널 때 조심해라' 라고

염려하는 마음과 같죠.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돼요.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신 것처럼, 저 아이에게도 은혜를 주실 거야'

'나도 애초부터 하나님을 알던 게 아닌데, 하나님이 내게 당신을 알려 주셨어!'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 가정에서 엄마가 십대 틴에이저 딸을 매일 걱정합니다. 

'옷은 어떻게 입고 다녀라. 파티에 가면 꼭 10시까지는 귀가해라..' 등등

 

그러자 딸이 하루는, 엄마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더랍니다.

'도대체 엄마는 십대 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나에 대한 걱정이 많냐고?' 

 

그런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젊었을 때 그렇게 헌신적이지 않으면서, 

이제 나이가 들어서, 현재 젊은 세대를, 늘 걱정만 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내가 젊었을 때보다 더 잘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몰랐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가 절대적이거나 영구적인 게 아니고

이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거예요.  잠시 모를 때가 있어요.

우리 모두가 그런 때가 과거에 있었죠.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런 상태는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에게 끌어당기실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시고, 그걸 우리가 믿어야 되고,

그러므로 낙관적인 마음으로 다음 세대를 바라볼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 어떡하지? 하나님을 모르면 어떡해? 큰일 났어'

이렇게 염려하는 것과, 이런 관점을 가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참고글 rfcdrfcd.tistory.com/15974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