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6.28 은혜샘물교회 주일예배말씀 - Youtube 정리
◈교회 창립 16주년 설교 왕하1:4~6, 렘23:16~22, 슥4:6~7 2026.06.28.
◑아하시야와 스룹바벨
(*아하시야와 스룹바벨은, 둘 다 왕 또는 왕족인데
한 사람은, ‘네가 살지 못하리라’ 하는 부정적인 예언을 받았고,
한 사람은, ‘큰 산이 네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하는 놀라운 약속을 예언으로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럴 수 있다는 거죠.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180도 다른 예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장을 보면 아하시야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왕자로 태어났고, 그리고 마침내 왕이 됐습니다.
‘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이 됐다’ 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하1장을 보면, 이 사람에 관한 간단한 소개가 있은 다음에,
‘아하시야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는 기록이 3번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1:4, 6, 16
아하시야가 난간에서 떨어져서 병들었는데,
엘리야 선지자가 ‘그는 죽을 것이다’라고 예언한 상황이죠.
여러분, 역사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지난 날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사는,
그 기록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고, 하나님의 해석이 담겨있고,
그리고 읽는 사람들이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이 담겨있습니다.
한 사람을 향해서... 그가 왕인데, 가장 중요한 지위에 있고,
가장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아하시야)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받고,
그리고 마침내 그가 죽고 말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걸 읽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뭘 가르치기 위해서입니까?
‘너희는 반드시 죽는 그런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아하시야)을 우리가 먼저 떠올리면서,
아까 읽은 스가랴 4:6~7절에 등장하는 스룹바벨을 또 기억하십시다.
이 두 사람을 먼저 우리가 마음에 품기를 원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스룹바벨은 왕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는데,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왜요? 그의 할아버지가 남왕국 유다의 19대 왕 여호야긴입니다. *마1:12 ‘여고냐’가 여호야긴
마1장 족보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할아버지(여호야긴)가 느부갓네살하고 전쟁하다가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래서 37년 동안 바벨론에서 수감 생활을 합니다.
여호야긴의 다음 왕이,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입니다.
이 시드기야도 느부갓네살하고 전쟁을 하다가, 나라가 완전히 망합니다.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혀서 끌려갑니다. 비참하게 남유다 나라가 망합니다.
그런데 스룹바벨은 언제 태어난 사람입니까?
스룹바벨 이름은 '바벨론의 씨(후손)' 또는 ‘바벨론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태어나 보니까, 자기의 할아버지가 유다의 왕이었고 *여호야긴
그 할아버지와 전쟁 포로로 잡혀와있고,
아버지(스알디엘)와 자기(스룹바벨)는 그 포로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다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하시야가 북왕국의 왕이었다면,
스룹바벨은 남왕국의 왕손입니다. 그런데 왕이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바벨론에서 노예로 살았고, 포로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서 살지도 못하고,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 땅에서 쫓겨난.. 그런 불행한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스룹바벨)이 받은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방금 읽었습니다.
스가랴 4:7절에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룹바벨 앞에 있는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길을 걷는 사람에게 큰 산이 나타나면,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터널이라도 뚫려있으면 좋은데, 그 큰 산을 빙 돌아서 걸어가야 합니다.
길이 얼마나 멀지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우회로가 없으면, 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큰 산에는 짐승들이 있고 산적들이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그런 위험한 곳, 그런 험지, 장애물이 있는 바로 그런 땅에서,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그리고 그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다윗의 왕손,
‘그 큰 산이 평지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아하시야와 정 반대되는 예언의 말씀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두 사람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아하시야와,
또 다른 아브라함의 후손인 스룹바벨에게 말씀하고 있는 이 말씀이,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돼야 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전을 지으라는 시대적 명령을 받은 사명자 스룹바벨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우라는 사명을 받는
스룹바벨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네 앞에 있는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스룹바벨에게,
하나님께서 왜 이런 약속을 주셨을까요? *난관을 뚫고 성전을 지으리라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런 약속을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때 당시 적어도 대충 짐작한데 그 이전에 몇 번 인구 조사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몇 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을 걸어간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한 1,500만 정도 살고 있답니다.
한 8백만 ~ 9백만은 지금 팔레스틴 땅에 살고 있고
나머지는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사는데, 여러분 절대 혼돈하지 말아야 될 것은,
지금 저 이스라엘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예수 믿는 분들이 자주 혼돈을 합니다. 예수님의 혈통적인 후손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자꾸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거기를 성지라 그러고,
그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특별한 마음을 갖는 것은, 그건 별로 올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저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다 전혀 하나님과 상관없는 족속인 것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오늘 하나님과 상관이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하시는가를
바르게 알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 사람이 아프리카 사람이건, 그 사람이 유럽 사람이건, 동양 사람이건,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여러분,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스룹바벨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삶을 명령하셨습니까? 그걸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스룹바벨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땅이었을 겁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왕이었고, 그의 조상들의 죄악으로 나라가 완전히 망해버린,
그리고 지금 아무것도 없는 땅, 정부도 없고, 군대도 없고, 행정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폐허가 된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지어라’ 라고 하는 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습니다.
그 명령에 순종해서 스룹바벨이 고향땅으로 돌아갑니다. *1차포로귀환
정확하게 다시 한 번 말하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하나님께서 옳다 그러면 나도 옳다 그러고,
하나님께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면, 나도 잘못된 것이라고 동의하는...
이런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네 앞에 있는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다’ 슥4:7
라고 약속하고 있는 겁니다.
오래 믿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옛날에 헌신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옛날에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뭘 했던지 간에,
오늘 내가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주님이 인도하는 길을 가겠다는 그런 작정이... 오늘날 우리에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충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내(네) 앞에 있는 큰 산이 평지가 된다’는 약속은, 아예 기대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시지 않을 겁니다.
이 놀라운 약속을 누구를 위해서 하신다고요?
스룹바벨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하나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 삶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내가 걸어가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슥4:7절을!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말씀하셨다고요?
아하시야에게 하신 말씀이 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네가 죽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하리라’ 왕하1:4, 6, 16
그 아하시야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니까요. 그것도 아주 중요한 직잭인 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너는 죽을 것이다’
*아하시야와 스룹바벨이 비슷한 위치에 있었지만, 믿음의 결이 달랐죠.
▲여러분, 이게 신약시대에도,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룹바벨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남북왕조가 다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포로로 잡혀가면 ‘그 땅에서 열심히 자식 낳고, 열심히 농사짓고,
열심히 살아라. 70년이 지난 후에 너희에게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겠다’하고,
예레미야 시대에 이미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렘29:10
그리고 그 때가 찼을 때,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놀라운 포고령을 내리게 합니다.
그리고 1차로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는 사람이,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리고 함께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49,897명, 5만 명이 조금 안 되는 이 사람들이었습니다. 스2:64~65, 느7:66~67
나머지 유대인들은 다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요?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때 유대로 귀환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몇 십만 명이 되었을 당시 바벨론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공동체 운동을 하고자 할 때, 그 명령의 부름을 받고
그 부름에 순종한 사람들이 숫자가 이렇게 적었다는 것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만, 하나님께서 ‘너희 앞에 있는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것을 기억하십시다.
◑에스라, 느헤미야도.. 무너진 이스라엘의 신앙을 재건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스룹바벨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입니다.
에스라의 귀환은, 스룹바벨의 귀환 (BC 537) 후 약 8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BC 457
조금 후에 느헤미야도 예루살렘 총독으로 임명 받아 귀환합니다. BC 445
그들에게는 성전을 지으라고 말하지 않고, 뭘 지으라고 얘기합니까?
예루살렘 성의 성벽 공사를 하라고 감동을 주십니다.
에스라는 제사장 집안 출신입니다.
이 사람은 돌아가서 뭘 하라고 합니까? 말씀운동, 기도운동, 회개운동을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뭘 하시겠다는 겁니까? 하나님이 새로운 이스라엘 재건 운동을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새로운 신앙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라를 세우는 일을 지금 시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부를 세우고, 군대를 만드는 일을, 시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와서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왕 나라를 세울 거면, 성전만 세울 게 아니라,
정부도 만들고, 국가도 만들고, 군대도 좀 만들고...
그런데 하나님이 전혀 그런 쪽은 명령하지 않고
'성전을 지어라!' 하신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만들어가는 것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통해
말씀운동, 기도운동, 회개운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 성벽공사가 의미하는 게 뭡니까?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미 집들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들 외곽에 성벽을 쌓아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짐승들로부터 보호를 받는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외적인 '이스라엘' 나라가 아니라,
내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새로 세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순서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그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셨던 운동에 헌신하고 동참했던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네 앞에 있는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다시 세우는’ 사명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살다 가실 겁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집 한 칸 장만해야 됩니까?
빨리 장만하시기 바랍니다. 병이 낫고 건강해지셔야 되겠죠. 그러시기 바랍니다.
애들이 잘 자라서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을 잡는 것,
그것도 부모된 모든 사람에게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일상생활을 하나님께서 좀 편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남부럽지 않게 번듯한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큰 산을 옮기겠다고 말씀하지 않았던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자꾸 착각을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잘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16년 전에 이 지역에서 교회운동을 시작하게 하신 이유가 뭘까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이 주시는 부를 누리고, 하나님이 주신 편안함을 누리고...가 그 목적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그런 약속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러면 우리가 죽기 살기로 고생만 하다 가야 되느냐?’
아닙니다. 여러분,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우리 삶의 편안함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꾸 실수하는 것은,
죄를 짓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는 것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내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내 인생의 부요.함에 있고, 내 인생의 편안함에 있고,
내 자식들의 편안함이 내 삶의 우선순위가 되는...
이런 잘못된 기독교인의 삶의 목적, 또는 방향성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앞에 있는 ‘큰 산’을, 하나님은 옮길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 기도는 해봐야 힘만 빠지지, 절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라고 하시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그렇게 작정하고 길을 가는 것은 아닌 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다시 한번 이 창립 16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교회를 세운 이유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오늘도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신 이유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간다,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면 멈춘다.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나는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옳다고 말하면 나도 옳다고 동의하겠다’ 여러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저를 많이 쳐다만 보시고, 아무 말도 없는 표정이신네,
지금 여러분은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예 여러분, 우리가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내가 그런 삶을, 주님,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겠습니다. 살아 보겠습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은 살아보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네 앞에 큰 산이 평지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적용
▲1.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산이 평지가 되게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런 결심을 방금 하신 분들이면, 이제 기대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앞에, 우리 가족들 앞에, 또 우리 목장 식구들 앞에,
또 우리 교회 공동체 앞에,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 앞에 있는 이 큰 산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언제 옮기실 것인가?’ 그건 기대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아무 관심이 없으면서,
마치 아하시야 왕처럼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주일 되면 교회에 나가서 예배는 한번 드리고 오고,
성전에 가서 제사 한 번 드리고 오고,
그러면서 ‘큰 산이 평지가 되게 할 것이라고, 성경에 말씀하셨어!’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거짓 성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스가랴 4:6~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큰 산이 평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건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력으로 되지 않고, 나의 영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으로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겁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삶의 방향성을 제대로 찾았으니까,
내가 죽기 살기로 노력하고, 애써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일을 이루리라’..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 이 일은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셔야 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영이.. 이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을, 여러운 개인이 받은 사명을) 어떻게 이룰까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뭘 목표로 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언제 멈춰서라고 하시고,
하나님께서 심지어는 우리 입에 말까지도 주관하시겠다 그러지 않습니까? 마10:20
우리가 두려운 상황 속에서 혹은 체포되는 상황 속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할 말도 너희 입에 주겠다’고 마10:19
여러분 성경에서 하나님은, 얼마나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다양한 약속을 하고 계시는지...
성경을 읽어보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여기서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땅에 떨어져서, 동전 한 닢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0:29
▲2. 말씀과 성령을 의지합시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행하시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방법이
말씀으로, 또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내가 떠나가면 보혜사 성령이 너희 가운데로 오실 것이다.'
그 성령님이 오늘 우리 가운데, 내 속에, 우리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거하십니다.
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표를 담으시고, 그의 마음을 담으시고,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담아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묵상하면서
살아가야 됩니다.
▲3. 여호와의 어전 회의에 참여하는 성도가 됩시다!
이렇게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을
예레미야 23장에서는 ’하나님과 회의하는 것이다‘ 라고 나옵니다.
렘23: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나와 회의를 했느냐? 여호와의 회의에 누가 참석했느냐?' (거짓 예언자들을 겨냥한 말)
나(하나님)하고 회의 한 번 하지 않고,
자기 임으로 꿈을 꾸고,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하고,
자기 마음에 간교한 생각을 하고,,, 이런 거짓 선지자, 이런 거짓 성도들이
당시에 너무 많았다는 겁니다. 옛날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회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회의를 왕과 하는 회의니까, 제가 ‘여호와의 어전 회의’라고 표현한 겁니다.
*Council of God. 소드 야웨
여러분 영화나 드라마에서 왕과 함께 회의하는 장면들 떠올려보시면,
이게 (렘23:18) 무슨 장면인지 아실 겁니다.
왕이 앉고, 신하들이 쭉 서 있지 않습니까?
우리 조선왕조를 놓고 얘기하면, 당상관 같은 신분인 좀 높은 사람들,
아마 정4품, 종4품 이상의 사람들은 왕 가까이에 섭니다.
그리고 조금 낮은 사람들은, 왕에게서 조금 멀리 있는 멀찌감치 섭니다. *당하관
가까이 서서 왕과 회의를 하면, 왕의 얼굴 표정까지 읽을 수가 있습니다.
‘어전 회의’란 얼굴을 왕과 마주 대하고 하는 회의입니다.
렘23:18절에, 예레미야가 대언하기를
‘누가 나 God 와 회의를 했느냐? 누가 내 말을 알아들었느냐?'
여러분, 이 말씀은 그야말로 하나님께서는 왕중왕이신 그분이,
이 보잘것없는 우리와 함께 회의하자고 요청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회의를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고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회의를 하면 아주 작은 일 하나까지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회의하지 않고, 엄벙덤벙 살고, 그냥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누가 내 등을 떠밀면, 등 떠밀리는 대로 가고,
그리고 주일날 교회 와서 말씀 한 마디 들으면 ’참 좋은 말씀이네...‘ 하다가,
교회 문 열고 나가면 깨끗이 잊어먹고... 이렇게 신앙 생활하는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
△여러분, 십수 년 전에 어떤 기독교 기관에서 이런 조사한 것 아마 얘기 들어보셨을 겁니다.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을, 문 앞에서 만나서 바로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방금 들은 당신의 교회 목사님의 설교 본문과 제목이 무엇이었습니까?‘
이거 실제로 했던 조사입니다.
여러분, 몇 퍼센트의 신자들이, 담임 목사님 설교 제목과 본문을 기억했을까요?
제 기억에, 30~40%밖에 안 됐던 것 같습니다. 대다수가 들은 즉시 잊어버린다는 거죠.
그런데 목사님 설교는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과 회의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우리 공동체에게 뭘 원하시나?‘
이런 걸 우리가 파악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등 떠밀리는 대로,
돈 되는 대로,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대로... 이렇게 길을 걸어가면서,
주일 예배에 나와서는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런 신앙은 안 된다니까요.
그런 사람을 놓고 하나님께서 무슨 ’큰 산을 옮기는‘ 씨름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손 써 주셔봐야, 또 자기 마음대로 살 게 뻔한데...
하나님은 우리가 바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주님과 회의하면서, 내 마음에 간교한 생각, 인본주의 생각이
바뀌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중에서, 대부분은 간교한 생각일 수밖에 없는 게,
우리가 이기적인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어도,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 대부분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이고, 편안하고자 하는 생각이고,
꼭 죄를 짓고자 하는 그런 악한 범죄는 아니더라도,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별 상관이 없는, 나 하나의 편안함을 주로 추구하고,
내 생각에 집중해서... 하나님께서 가자신 생각이 뭔가를 묻기보다는,
내가 가진 생각에 ’하나님께서 복내려 주시기를 구하는‘
전형적인 죄인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인 것을 잊지 마십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서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우리 앞에 있는 큰 산을 옮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슥4:7참조
▲4. 세속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십시다.
그러면 어떻게 살라고 하는가요?
여러분, 신약성경에서 우리의 큰 삶의 방향을 말씀하시는 몇 가지 성경 귀절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1) 고린도전서 10:31절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
여러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는 게 아닙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는 말씀은,
‘그럼 우리보고 다 신학교 가라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다 신학교에 가면, 소는 누가 키울 겁니까? 농사는 누가 지을 겁니까?
열두지파 중에서 성전 봉사는 한지파만 하게 했습니다. *레위지파
나머지는 전부 농사짓고, 목축하고,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게 했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모두가 부르심이 각각 다를 뿐이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돼야 한다...
이게 하나님께서 큰 그림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방향입니다.
2) 사도행전 1:8절에서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라고요?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을, 그냥 내가 경험한 대로,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내가 23살 때부터,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이렇게 개입을 하셔서,
하나님이 그때부터 이렇게 이렇게 나한테 행하셔서, 또한 이렇게 말씀하셔서,
내가 오늘 이 자리까지 왔고, 오늘까지 살게 되었다’
여러분, 그런 (주님과 동행하는) 경험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 경험 없이 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은, 가장 복받은 사람입니다.
앞으로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신 것에 대한 증언이 있습니다.
이걸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공부 많이 해서, 이론적으로 어떻게 설명을 하라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행하신 일들’에 대한 증언할 만한 얘기가 없습니까?
만약 그러면, 내가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얘기인데, 빨리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증언거리가 많기를 바랍니다.
3) 마28:18절 이하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으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내가 80억이나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누가 당신한테 80억을 맡긴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런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인데, 80억을 당신한테 나한테 맡기겠다는 게 아니고,
우리한테는 우리 가족들을 하나님이 맡기신 겁니다.
내 아이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우면 됩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교사를 맡았으면, 교회에서 내가 맡은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목자들이면 목원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가는 일,
또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내게 붙여주시는 어떤 사람,
여러분 우리가 눈을 닦고 잘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많이 세워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빠서 못 봅니다. 우리가 바빠가지고
그냥 나하고 좀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내 동창 중에도 있고,
우리 이웃들 중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너무 바빠가지고,
그냥 무엇 때문에 바쁜지는... 여러분 우리가 잘 파악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다 부자 되고 싶어가지고, 너무 바쁘지 않습니까?
주식한다고 바쁘고, 그냥 코인 한다고 바쁘고...
저는 그런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제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거 안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하면,
그런 걸 하면, 우리 마음이 온통 거기에 다 꽂히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심하면 매 시간마다
그 등락 장세 그래프, 지수 숫자 보느라고... 다른 일은 아무 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식은 해 보지 않았지만, 비슷하게 바둑은 해 봤습니다.
사람이 그런 것에 한 번 꽂히면, 다른 일을 아무 것도 못 하게 된다는 것을,
저년 비교적 일찍 경험해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죠.
제가 고1 여름방학 한 달 반을, 하루에 10시간씩 바둑만 두고 앉아있었습니다.
우리 옆집 아저씨 때문에.
우리 옆집 아저씨가 실직을 했는데, 우리 아버지하고 나이가 비슷한 분인데,
이분이 실직한 여름 동안에, 그때 제가 중학교 2학년인가 뭐 그랬습니다.
날 보고 바둑을 같이 두자는데, 제가 바둑을 한 번도 두어본 적이 없는데,
근데 이 아저씨가 ‘야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두어라’ 해서, 9점을 깔고 두었는데,
오 이게 해보니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해보니까 아저씨가 간식까지 사다 놓고는, 나를 딱 아침이 되면 부릅니다.
바로 우리 옆집이었거든요. 그러면 그 아저씨도 참 재밌는 분이죠.
우리 아버지 나이인데, 중학생인 나를 데리고, 바둑 가르쳐 준다고...
가끔 짜장면 시켜서 날 먹이고, 그리고 하루 종일 바둑을 둡니다.
한 사흘 지났을 때, 8점으로 줄었습니다. 한 사흘 더 지나고 7점으로 줄었습니다.
한 두 주간 지나고 석점으로 줄었습니다. 여름 방학이 끝날 때쯤 맞바둑을 뒀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제가 그 아저씨를 이겼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일날 교회를 갔는데,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 있으면,
앞에 보이는 교인들 머리가, 전부 바둑돌로 보입니다.
제 평생에 그렇게 빠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한 7급쯤 됐습니다. 바둑을 뜨는 분들은 아실텐데,
그때 제가 한달 남짓동안에 제가 바둑 7급을 이겼습니다.
지금은 제 바둑 실력이 한 3급 됩니다.
그때 제가 ‘사람이 뭔가 하나에 빠지는 게 뭔지를’ 똑같이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만 빠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우리의 생을 다해서 빠질(집중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그렇게 빠지면 안 됩니다.
그렇게 빠지기는 너무 아까운 내 인생입니다.
▲마치는 말
우리가 ‘여호와와 회의’에 참여해야 될 이유가 뭔가 하니까,
우리가 이렇게 아침마다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목표가 뭔가를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방법이 뭔가를 생각을 하고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 하늘의 평강이 임하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속에 임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에 얼마나 가짜뉴스들이 많이 돌아다닙니까?
이 가짜뉴스들을 잘 분별을 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 가짜뉴스에 휩쓸려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중에는 일부 목사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가짜는 계속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향해서 다가올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 진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날마다 ‘어전 회의’하면서,
그분이 주시는 삶의 목표, 그분이 주시는 삶의 전략, 방법을 우리가 배워나가면
신명기 28:1절에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이 세상 모든 민족 위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될 것이다’
학벌이 우리에게 그런 걸 주는 게 아닙니다. 세상 독서가 그런 걸 주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학벌도 중요하고, 세상에서 우리가 얻는 지혜도 어느 정도의 가치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이 공급하는 지혜, 지혜는 하나님이 공급하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를 가질 때, 우리가 세상 어떤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약속을 하나님이 주셨고, 이 하나님이 우리와 회의하자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언제 회의하셨습니까?
‘제가 요즘 바빠서 그냥... 언제 좀 성경 펴놓고 좀 잠잠하게 마음을 열고 고개를 숙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면 당신은 ‘죽을 겁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왕하1:4, 6, 16
아하시야가 그런 사람이었지 않습니까?
아하시야와 스룹바벨,
두 사람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왕의 직급’을 받은 사람인데,
한 사람 아하시야는, 조상들이 뭘 잘못했는지, 조상들이 걸어간 길이 어떤 길인지,
하나님이 계속 가르치는데도, 그거 무시하고, 하나님하고 회의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살고, 자기 판단을 따라 살다가... 결국 들은 말이 뭐라고요?
‘너는 죽을 것이다! 네 병에서 고침 받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라고
왕하 1장에 세 번씩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하1:4, 6, 16
‘아휴, 나는 아하시아 같은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매주일 예배 나오는데...
아하시야가 매주 성전에서 제사했다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도 했다니까요.
선지자들이 그의 옆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니까요.
우리가 아무도 아하시야의 길을 가는 사람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스룹바벨이 걸어간 길을 가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 창립 16주년을 맞으면서, 우리 윤목사님이 쓴 글을 아침에 제가 읽어보니까,
-가정교회운동은.. 내적 성숙운동입니다.
-기독교학교 운동.. 다음 세대로 복음이 확장되는 운동입니다.
-분립교회운동.. 우리 시대의 복음의 영역이 좀 더 확장되는 운동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순교정신’으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우리가 순교정신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 역사 속에서 세 분의 순교자를 (배출했는데)
우리가 갖고 싶어서 가진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어서 우리에게 주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예배당 홀 이름이 ‘안대욱 홀’인 거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배형규 선교사 아프간 단기봉사팀 피랍사건의 실상 rfcdrfcd.tistory.com/15981423
☞배형규 심성민 선교사 순교 일화 https://rfcdrfcd.tistory.com/15971883
(*'환경을 이기는 그리스도인' 설교의 하단에 나옴)
중국에서 순교하신 안대욱 선교사, 본명은 차영규 선교사입니다.
여러분 이런 역사 속에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개인의 영적 전투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영적 전투에서 결단코 아하시야의 길을 걷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드시 스룹바벨이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는 주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어전 회의를 하고, 날마다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목장 모임도 하나님과 어전 회의를 하는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목장을 향해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또 목장 식구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좀 더 잘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