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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가판대에서 바라본 세상

LNCK 2006. 1. 2. 15:06

◈[신도림역 가판대에서 바라본 세상]    

 

 

*출처 : [신도림역 가판대서 바라본 2005] 훔쳐 먹어도 못 본 체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어라.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주어라' 시82:4

 

“한 달 전인가, 정말 근사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청년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래요.

‘아줌마, 이 핫바 하나만 주실 수 없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회사에서 잘렸대요. 불쌍하긴 정말 불쌍했는데, 핫바는 20개 팔아야 본전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먹고 싶어도 못 먹어요.”

 

그래서 김명숙(49, 아래 사진)씨는

초코파이 하나를 집어줬다고 했다. 청년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김씨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에서 신문 가판대를 한다.

작년 9월부터 1년3개월째, 1평 남짓한 가판대 안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가로 80㎝ 세로 60㎝짜리 네모난 유리창 너머에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막노동자의 억센 손, 술 취한 중늙은이 명퇴자의 허탈한 손,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의 고사리 손과

그들의 눈망울과 입에서 터져나오는 한숨을 보고 듣다가 1년이 훌쩍 지났다.

 

신도림 역은 서울과 인천, 수원, 천안 등지에서 오가는 20여 만 명이

매일 마다 이합 집산하는 환승역이다.

지하철역 중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서울 신도림 역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김명숙씨.

한 평 남짓한 가판대에서 올 한 해를 지켜봤다.

 

“그 청년과 같은 일, 몇 달 전부터 정말 자주 벌어져요.

훔쳐 먹는 사람도 많아요. 못 본 척도 해보지만, 배고파서 훔치는 거,

이거 신고를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하죠?”

 

1평짜리 네모난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했다.

“작년 이 맘 때는 사람들 얼굴에 활기가 넘쳤어요.

그런데 지금은 표정도 굳고, 하는 말도 한결같아요. ‘큰 일 났다’라고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난생 처음 일터로 뛰어든 전업주부 김씨,

직접 번 돈으로 아들 딸 모두 대학교 보내고 집안 살림에도 보태고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더라고 했다.

“해가 바뀌고 나니까 매출이 막 떨어지는 거예요.

가판 아줌마들끼리 걱정이 태산이죠.”

 

연초만 해도 인심이 비교적 넉넉했다.

“두 사람이 오면 한 사람이 두 사람 먹을 걸 샀어요.

지금은 두 사람이 돈 나눠서 한 사람 것만 사서 나눠먹어요.”

 

중년도, 노인도, 용돈 줄어든 학생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학생들이야 쌍쌍이 와서 나눠먹는 거 보면 예쁘기라도 하지,

어른들은 정말 안됐어요. 오죽하면….”

 

김씨는 역사(驛舍)의 풍경도 변했다고 했다.

“올 초엔 노숙자들이 딱 2명 있었어요. 그런데 갈수록 노숙자들이 많아졌어요.”

 

밤이 오면 노숙자들이 추위를 피해서 하나 둘씩 모여든다.

하지만 공익근무요원들이 자정만 되면 다 쫓아낸다.

 

“아침에 출근해보면 저기 계단에 빽빽해요. 이렇게 추운데….”

 

낮이 오고 노숙자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면,

김씨에겐 가슴 아픈 일이 또 생긴다.

 

노숙자들이 차지하던 그 계단에 할머니 한 분이 신발을 벗어놓고

양말만 신고서 껌을 팔고 있다.

할머니는 호객(呼客)할 힘도 없이 껌 몇 통 든 팔을 허공에 내밀곤 한다.

 

밤이 오면 얼굴 불콰한(술기운으로 얼굴이 불그레한) 취객들이 역을 맴돈다.

“취객들, 무섭죠.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

화난다고 화만 낼 수는 없잖아요.”

 

김씨의 남편은 번듯한 기업에 다니다가 명예 퇴직했다.

그래서 김씨도 취객들 심정을 잘 안다고 했다.

 

음식과 거스름돈을 받으며 취객들이 던지는 말은 비슷하다고 했다.

“세상이 어이가 없대요. 대통령 욕하는 사람도 많아요.

대꾸도 못하겠고. 그저 웃어요.”

 

“황우석 교수 얘기, 정말 충격이죠. X파일? 그것도. 그런데 사람들이 그래요,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먼 이야기일 뿐,

사람들 주머니 초라하기는 마찬가지고

입에서는 한숨만 나오더라고 했다.

 

그래도 김씨는 웃는다.

“훔치는 사람보다는, 배고프다고 직접 얘기하는 사람이 더 많죠,

지하철 사고가 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 도우려고 나서죠.

 

아, 7월인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어떤 젊은이가 배가 고프대요.

그래서 700원짜리 우유 하나를 그냥 줬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사람이 ‘변장’을 하고 와서는

천 원짜리 과자를 사주더라고요.

변장해도 보면 알죠. 우유가 그렇게 고마웠나 봐요.

 

모른 척했어요, 민망할까봐.

아니, 내가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각박하지만, 남을 위한 배려와 대가를 치르려는 자존심은

사라지지 않더라고 했다.

 

김씨와 대화를 나누는 2시간 여 동안 열차가 수십대 멎었다가 떠났다.

플랫폼은 각양각색의 군상(群像)으로 가득했다가,

텅 비었다가, 다시 만원을 이루곤 했다.

 

이틀 뒤로 다가온 2006년. 김씨의 바람은 오직 하나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쟤들 좀 봐요.”

 

김씨가 열차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가리켰다.

“토플 책 너덜너덜하게 들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애들.

저 아이들한테 희망을 줘야 하는데,

어른들이 잘못하는 바람에 그러지도 못하고….

내년에는 정말 모두가 희망을 갖게 됐으면 좋겠어요.

있잖아요, 똑똑한 사람만이 아니라 골고루 잘되는 그런 세상.”

 

<박종인기자 200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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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가 보니, 사정은 더한 것 같다.

연말연시, 연휴라고 비행기는 쉴 새 없이 뜨고 내리고

비행기표는 구할 수가 없어 동이 나는데

 

그 하늘 바로 아래서 식당 등 소규모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실례를 무릅쓰고 길거리에 나와 지나시는 분들 팔짱이라도 끌고 와야 할 판이다.

한국에 식당이 인구 80명당 1개꼴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는 별로 식욕이 없어도 외식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더욱 천국을 사모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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