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새끼가 뱀이 된 이야기 출처보기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삿18:30
▲단 지파 이름이 흐려지다.
'이기는 자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지 않는다'(계3:5)는 말씀은
이기지 못하고 패배한 이들은
생명책에서 흐려질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입니다.
계시록 7장에서 단의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열두 지파 중의 하나이지만, 생명책에서 흐려져 있습니다.
오, 하나님은 단 지파를 통하여 어떤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지..
하나님이 평가하신대로 평가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경고하신대로 경고받게 하소서.
▲1. 처음에는 사자새끼였음
'유다'는 사자요(창 49:9), '단'은 사자새끼입니다.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 33:22)
(신명기 33장은 모세가 마지막으로 12지파를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창 49:9에 유다지파 역시 사자새끼로 예언된 적이 있습니다.)
단 지파는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사자새끼처럼 싸웁니다.
실제로 여호수아서를 보면
좋은 땅에 들어갔을 때 단 자손이 레센을 치고
성을 빼앗아 확대되고 확장한 기록이 있습니다(수 19:47).
시대가 조금 지난 후 기록인 사사기에는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라는 곳에 이르서
단 성을 중건하고 거하는 기록이 있습니다(삿 18:27-29)
단은 사자새끼로서 승리를 맛보고 영역을 확대하였습니다.
▲2. 사자새끼가 뱀이 되었음
단에게 사자새끼로서의 승리는 교만과 독단을 가져왔습니다.
처음 시작은 좋았지만, 그 좋은 것이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교만은 자신만을 관심하고
다른 형제들을 관심치 않는데서 왔습니다.
승리 뒤에 곧바로 실패가 왔습니다.
단 자손은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웁니다(삿 18:30).
단은 승리를 얻었지만,
작은 승리의 결과는 교만과 단독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확장하는 데에도
교만을 가져다주고 단독에 떨어지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경고를 주는지...
말년의 야곱은 단에 대한 예언 중에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 49:17)고 합니다.
처음에는 모세의 예언처럼, 사자새끼처럼 용감했지만,
나중에는 야곱의 예언처럼, 뱀에 독을 더한 독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좋은 땅으로 확대하는 사자새끼가
다른 사람을 물어 넘어뜨리는 뱀이 된 것입니다.
뱀이 된 단을 본 야곱의 마음은
절망하여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 주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창49:18).
3. 단은 이스라엘 분열의 시작이었음
이스라엘 민족이 좋은 땅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의 집인 장막은 실로에 있었습니다(삿 18:31).
당연히 하나님의 장막이 있는 곳이 경배지입니다.
되풀이해서 들려주는 율법인 신명기에서
모세는 최소한 열다섯 번 이상을
임의로 자신이 선택한 곳에 번제를 드리지 말 것을
거듭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신 12,14,15,16장)
그러나 단은 북쪽에 또 다른 중심지를 세웠으며
이것이 이스라엘 지파들 간에 최초의 분열이었습니다.
아, 분열의 시작은 죄나 세상 때문이 아니고
여기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속는지...
나도 하나님을 섬긴다.
여기에 더 좋은 누림이 있다.
하나님은 결코 편협하지 않으시다.
너무 많은 적극적인 변명일지라도
그 속은 <자기를 위해><자기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단 자손은 <자기를 위하여> 신상을 세웠습니다.
자기를 위한다는 것은 다른 지파,
다른 형제들을 관심하지 않고
몸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로지 자기 영역, 자기 이익, 자기 가족, 자기 안전...
오, 얼마나 자신에 대한 관념이 뿌리 깊은지...
분열은 의외로 엉뚱한데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주님.. 얼마나 두려운 문제인지 보여주소서.
(원래 사자새끼 숫놈은, 크면, 아버지 사자의 영역에서 방출되는
모습을 보고 한 예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4. 분열은 경쟁을 가져오고 변절로 발전함
작은 분열의 씨앗은 변절로 마감됩니다.
변절은 하나님의 경배의 탈을 쓰고 기어들어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해도 속은 썩어질 것이 있습니다.
변절의 근원은 자기를 위한 것에서 시작되어
몸의 다른 부분을 관심하지 않고 스스로를 몸에서 변질시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쉽게 다른 경배지를 세웁니다.
도둑질하자, 도박하자며 다른 중심을 세우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핑계로 다른 중심지를 세웁니다.
사사기 18장 31절은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다'고 합니다.
<동안에>라는 말은 새긴 신상이 경쟁을 한 것을 의미합니다.
후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운 뒤에도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우상을 단에 세워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경쟁합니다(왕상 12:26-31).
여로보암도 <자기를 위한 왕국>을 잃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장막과 경쟁하던 단의 새긴 우상은
성전과 경쟁하는 단의 금송아지로 발전합니다.
처음에는 지파들끼리 경쟁하던 것이
르호보암 왕과 여로보암 왕의 경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변절입니다.
변절은 하나님을 따르는 올바른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경배를 구실삼아 타락하는 것입니다.
5. 분열해 나가면 뱀이 틈탈 '가능성' 크다
단은 자기를 위한 것에 하나님의 경배를 슬쩍 섞었습니다.
사자새끼로서 승리를 얻고 확대와 확장이 있은 후
자신을 위한 분열의 길을 갔습니다.
분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으며
분열보다 더 손해를 입히는 것은 없습니다.
분열적으로 될 때마다 아무리 그럴 듯한 이유를 앞세워도
새긴 우상, 금송아지 우상 뒤에
뱀이 또아리 틀며 말탄 자를 떨어뜨리려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과 예루살렘 사이에는 결코 화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뱀, 독사와 타협하면 할수록
겉은 친절할지라도 속으로는 독을 주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하고 자신만의 유익을 관심할 때
근처에 뱀은 호심탐탐 말굽을 물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뱀과의 타협은 결코 없습니다.
작은 타협은 또 다른 타협을 불러오고
타협의 극치는 변절입니다.
많은 파를 이룬 교파의 절정에 있는
큰 바벨론은 타협으로 이루어진 큰 성입니다.
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결코 단과 같은 길을 가지 않게 하소서
자기를 위한 길, 분열과 변절의 길에서 구원하소서.
사자새끼였지만, 뱀으로 마쳐지지 않게 하소서!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3 기도의 플러스 알파 효과 (0) | 2006.03.06 |
---|---|
의사와 백정의 차이 (0) | 2006.03.04 |
140 수고 이전에 누림 (0) | 2006.03.03 |
무엇으로 물을 긷는가? (0) | 2006.03.02 |
거절의 미덕 (0) | 2006.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