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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378 남은 살리고, 자신은 죽이는 개혁

LNCK 2006. 11. 2. 14:20

◈남은 살리고, 자신은 죽이는 개혁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은, 전 세계 개신교회가 지키는 종교개혁(기념)주일이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요19:19



▲1. 남은 살리고

개혁운동이 철저히 남을 살리는 목적일 때는... 언제나 성공한다.

반대로 남을 죽이는 목적일 때는... 언제나 실패했다.


과거 한국의 ‘토지개혁’의 목적이

만약 부자들을 때려잡는 목적이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한 목적이었으므로 성공했다.

사회에서 정치개혁을 할 때에도, 민주시민의 권리 보장 등

그것이 철저히 남을 살리는 목적이라면... 성공한다.


그러나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죽이고 정리하는 목적의 개혁은

언제나 실패하고 말았다.


▲2. 자기는 죽이는 개혁

예수님의 종교개혁운동의 최고 희생자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개혁운동은... 자신이 가장 먼저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


누구든지 자기가 제일 먼저 희생할 각오로 개혁에 임하면... 성공한다.

그러나 개혁을 하자면서,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희생할 각오로 임하면...

실패한다. 시끄러운 꽹과리로 끝난다.

개혁을 하려는 사람은, 이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람과 싸우는 개혁 or 마귀와 싸우는 개혁

좋은 종교는,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택한다.

나쁜 종교는,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택한다.


중세 가톨릭이 비난받았던 것도

교권을 이용해, 힘이 약한 개신교도들의 목을 발로 짓밟고

교회가 창끝으로 그들의 목을 겨누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조각상과 그림들을 유럽의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진정한 개혁은, 마귀와 싸우지,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예를 들면, 북한 김정일 집단도 마귀적이라고 한다.

사실이다.

김정일 집단에게 역사하는 마귀는, 우리가 싸우고 대적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용서하고, 사랑하고, 포용해야 한다. 

비록 그가 귀신이 들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귀신을 포용하다가 도리어 귀신에게 먹힐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가!

귀신들렸다고 그 사람을 욕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예수님의 개혁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었다.

율법으로 사람을 때려잡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달랐다.


▲스스로 정통이라 주장 말라

신앙생활의 표준과 교과서는 성경이다.

그러나 그 성경을 해석하는 시각의 차이점 때문에 많은 교파가 갈라졌다.


종교개혁 이후의 가장 큰 성과는 <개신교회가 탄생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 개신교회로 통해서 교회가 새로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장로교도, 다른 교단도 끊임없이 개혁해(새로워져) 나가야 한다.


혹자는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정통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누가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인정해 주는가?

자기들 스스로이다.

자기들 스스로가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 교만이고 모순이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감히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장로교도, 감리교도, 성결교도, 순복음도, 가톨릭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지 않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각자는 날마다 진리로 새롭게 개혁되어져 나아갈 뿐이다.

세상에서 아무도 완벽하게 깨닫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분명하게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도

다음 세대에 더욱 분명한 진리가 등장하면, 바뀌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은 모든 시대에 항상 필요하다는 것이며,

아무도 스스로 정통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칼 바르트는, 예수 믿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세계관에도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 세계관은 언젠가는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 스스로 정통이라 주장하면서, 타 교인을 끌어들이는 것은 안 좋다.

그런 교회끼리의 성도유치경쟁은 스스로 개신교회의 이미지를 갉아먹는다.


근래에 천주교가 부흥한 이유 중 하나는, 천주교의 전도 때문이 아니라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옮긴 사람들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이 가장 천주교에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가까운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세요!” 라는 신부님의 권고이다.


세상에 완벽한 정통 교회는 없으므로

스스로 연약성을 인정하고, 타 교회를 적극 권고할 때

무엇보다 성도들이 자유를 느끼며, 교회를 행복하게 여길 것이다.


교회는 성도보호를 핑계로 은근히 족쇄를 채우는 일이

최근 많이 없어지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06.10.29. 인터넷 설교 발췌, 편집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993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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