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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 로마 제국의 몰락

LNCK 2006. 11. 28. 08:44
 

◈로마 제국의 몰락                 출처, 축약 및 편집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전혀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동, 서로마 제국 역사를 보면서 통탄할 일이다.

 

핍박이 사라지고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독교는

세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함 보다는

영적 나태와 타락과 안일의 길로 갔고,

 

그 결과 주전 586년 유다가 바벨론에 망한 것처럼

(서)로마, 동로마 등 기독교 제국들이 차례로 이방에 망했다...

 


▲로마 제국 함락의 미스터리

밀란칙령 이후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4세기 후반에

로마제국의 국력이 급속히 약화 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국경수비에 그대로 반영되어 국경선이 무너지고

오랑캐라고 여기던 이민족들이 로마까지 몰려와서 약탈을 일삼았다.

 

50~60만 명으로 구성된 천하무적의 로마군대가

어떻게 1만 5천여 명의 야만족에게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졌는지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국경선이 무너지고 난지 몇 년 후인 410년 8월 24일,

제국의 중심지 로마가 함락되어 약탈을 당하자

시민들은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도시 로마가 침략을 당한 것은 8백여 년만의 일 이었다

어쩌다가 “성 로마 제국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라는 탄식과 함께

여론이 흉흉해졌다.

 

“로마제국을 망하게 하는 원인이 무엇이냐?”라는 시민들의 질타에 대한

여러 대답들이 나왔다. (중략)


▲기독교가 국교가 되자마자 망한 (서)로마

교회는 난감한 문제에 부딪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해야 하나?

그러기에는 석연치가 않았다.

 

기독교는 이제 막 제국의 종교로 출발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313년의 밀란칙령은 종교의 자유, 즉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금하는 규정이었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국교가 된 것은 380년이었다.

 

제국의 국교가 되자마자 죄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독교 공인 이후 약 백년 만에, 기독교 국교 이후 약 30년 만에 망했다.)


▲어거스틴의 대답

그렇다면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라고 해야 하나?

도대체 대답이 쉽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기독교는 국교로서의 명분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할 수 없이 이 문제에 팔을 걷어붙인 사람이 있었다.

히포(Hippo)의 감독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354~430)였다.

당시에 최고의 지성인이자 교부, 학자인 그에게

그 시대가 당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주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이 물음에 답을 할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어쨌든 히포까지 몰려오는 피난민 행렬을 바라보며 59세였던 그는

남은 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14년 동안을 이 문제와 씨름하여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이라는 책으로 이 물음에 대답을 남겼다.

 

이후 이 책은 교회와 세속권력과의 관계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하나의 지침서

역할을 해왔고, 중세와 현대에 거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22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어거스틴이 말년에 쓴

마지막 저서이기에 그의 사상이 집약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구속사 4천 년을 예언자 영성(사관)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영어 발음으로는 어거스틴(Augustine)으로 불리는

그의 대답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도성」에 나타난 그의 대답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전반부는 호교론(기독교 보호, 방어론)을,

후반부는 두 왕국에 기초한 이원론적인 역사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①전반부에서 어거스틴은 호교론을 전개시키기 위하여 당시 최고의 지성인답게

로마의 역사와 희랍의 철학사를 해박하게 꿰뚫으면서

조목조목 교회에 대한 누명(기독교 때문에 로마가 망했다는)을 벗겨내는데 註1)

그 주요 골자는 이렇다.


로마제국의 번영은 로마제국이 섬기던 다른 신들에 의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이전에도 로마는 여러 차례 재난을 겪었음이 그 증거다.

 

로마제국의 번영은 아직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었으며,

로마의 몰락은 로마인들의 도덕적인 타락과 부정, 부패 때문에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것이며,

또 공의의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것이다.


후반부 요지는 다음과 같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가 공존해 왔는데,

그 나라는 사랑의 대상에 따라 결정된다.


세상나라는 자기사랑(amor sui),

즉 탐욕, 이기심, 불순종, 파당, 질투 등에 지배 받으며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생존의 원리이기에 흥망성쇠를 겪으며

전쟁의 역사로 진행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사랑(amor dei)에 지배를 받으며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데 교회(구속사)를 통해 역할을 해낸다.


두 나라는 역사 속에 얽혀 있으면서 갈등을 겪지만

종국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한다.

로마의 몰락은 정신적, 도덕적 타락에 대한 결과이며

세상나라의 운명을 겪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나라의 흥망성쇠를 초월하여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며 영원할 것이다.


(비록 기독교 제국이었지만, 로마의 멸망은 세상나라의 멸망이며,

하나님 나라의 멸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로마 제국이 멸망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되며 종국에 승리한다는 논리로 이해함)


▲로마의 멸망 원인

기독교를 국교로 공포하자마자 300년대 말에 국경선이 무너지고

400년대 초에 서로마의 수도가 함락되어 약탈을 당하고

명목상의 황제가 겨우 버티다가 476년에 서로마제국의 멸망하면서

라틴민족의 통치가 끝나고 게르만족의 황제가 등극하는 이르는 이 역사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나?


로마제국이 세워진 이래로 단 한번도 수도가 유린을 당한 적이 없었고,

한니발(B.C.247~B.C.183)의 공격을 제외하면 6백 여 년 이상 국경선에서

침략자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을 만큼 전성기를 누리던 로마제국이

왜 하필이면 기독교가 제국의 국교가 된 후 패망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을까?


전후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기독교 때문에

로마가 망했다는 평가와 공격이 나올 만 했다.


①세상 역사가들의 진단 - 부패와 타락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진단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신적, 윤리적인 타락, 무능한 정치가들로 인한 내분과 혼란 註2),

군사문화의 쇠퇴... 역사가들은 늘 이런 식으로 진단한다.

 

그리고 또 이런 진단은 객관적인 면에서는 사실이다.

한 나라와 민족이 멸망할 때는 늘 내적인 부패가 있었고,

흥망성쇠의 지배를 받고 있다.


②초보적 기독교적 진단 - 죄에 대한 형벌

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하여 기독교인은 무어라고 해야 하나?

기독교 사가들은 이런 재앙은 세속적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여

일반역사가의 평가에 하나의 진단을 덧붙인다.


역사에 대한 세속인의 판단과 기독교인의 판단의 차이가 이것뿐일까?

이로서 기독교인의 역할을 다 한 것일까?


452년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가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자 당시의 한 수도자는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징계의 채찍입니다”라고 외쳤다.


‘재앙=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상투적인 도식이

기독교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으며,

하나의 성역(聖域)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개인이 당하는 시련이나 나라가 당하는 시련에 대하여

늘 이런 식으로 성직자들은 단죄를 했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은 있다.

예언서를 비롯한 성서의 여러 곳에서 이런 근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모든 재앙과 고난은 다 하나님의 심판이다”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온갖 불행을 ‘죄 때문에’라는 낙인을 찍은 자는 서기관, 바리새인이었으며

그들은 예수님의 엄중한 경고를 들었다.


③심층 기독교적 진단 - 안정과 풍요가 사명 감당을 도리어 방해하다

로마제국은 새로운 계약 공동체인 초대교회에 주어진 언약의 땅(가나안)이었다.

그 땅에 입주한 것이 313년(밀란칙령)이다.


이후 교회는 가나안에다 거룩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 각종 제도를 정비해 나갔다.

300년대(4세기)는 이런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그런 신앙의 자유, 정치적 안정, 경제적 풍요 이런 것들이

도리어 사사기의 타락을 가져왔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거룩한 제도를 정착시킨 이후에

사사기 시대에 와서

후손들은 하나님 나라를 통한 세상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리어 전혀 다른 방향의 일들(방종, 타락)이 벌어졌다...

...........................

 

註1)

“로마제국을 망하게 하는 원인이 무엇이냐?”라는 시민들의 질타에 대한 여러 대답들이

나왔는데, 가장 우세한 것은 “기독교 때문에 로마제국이 망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①하나는 기독교가 세상을 거부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봉사와 애국심을 감소시켜 국력이 쇠퇴했다는 것이며,

 

②다른 하나는 로마제국은 개국이래로 수많은 신들을 믿어왔는데

밀란칙령 이후 그 모든 이방 신들을 부정하고 그 신전을 파괴하였기 때문에

그 신들이 진노하여 로마제국에 재앙을 내렸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몰락에 대한 책임을 기독교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여론이었다.

법으로 금지당하고 신전을 파괴당한 이교도인들이

이런 비판에 결사적으로 앞장을 서서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다.


註2)

180년에서 284년까지 25명의 황제가 등극을 했는데, 그 중 21명은 암살을 당했고,

한사람은 전쟁 중 부하에게 배신당했고, 한 사람은 페르시아에 잡혀가서 실종되었다.

자연사를 한 이는 겨우 두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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