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6

407 크리스천의 자부심

LNCK 2006. 11. 30. 09:40
 

◈크리스천의 자부심       행26:24~29           인터넷 설교 스크랩 



▲건강한 자존심은 있어야 된다.

자존심이란 결코 배타가 아니다. 또한 교만도 아니다. 다만 자기 확립이다.

자존심이 없는 곳에 얄미운 아첨과 굴복이 있다. 넋 빠진 우상숭배가 있다.


건강한 자아의식 자존심이 있고야 사람답게 살 수 있고

또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된다.


그런데 좀 번듯하게 살고 내어놓을게 있어야 전도도 할 텐데

이렇게 가난하다 보니까 내 형편이 이렇게 초라하다 보니까

감히 전도할 엄두도 못 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자부심이 어디에 있는가?

크리스천의 자부심이 스스로의 의로움, 스스로의 강함에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인가?


▲바울의 자부심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행26:29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들이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당신들보다도 내가 훨씬 더 행복하다는 소리다.


이것이야말로 크리스천의 당당한 자부심을 표현한 말이다.

왕이 있고, 총독이 있고, 고관들이 있지만 조금도 그들이 부럽지 않다.

그들의 화려한 의복과 진수성찬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그들이 가진 부와 권세 명예, 좋은 것이긴 하지만, 조금도 부럽지 않다.

내가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죄수복을 입었고 쇠사슬에 묶여 있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서 마음속을 보면

주님께서 주신 놀라운 죄사함의 자유함이 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감격이 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비전과 성취감이 있다.


그러나 저들은 겉으로 볼 때는 자유로운 것 같으나 사실은 노예였다.

죄악의 노예요, 정욕의 노예인 것이다.

총독은 아래로 백성을 두려워하고 위로 황제의 눈치를 봐야 된다.


왕도 총독의 눈치, 귀족의 눈치를 봐야하고, 백성의 눈치를 봐야 된다.

여론에 묶였고, 사람에 묶였고, 인기에 묶여 있는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일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에 불안함이 있다.

언제 총독자리에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들의 내면을 보았을 때 바울은 당신들도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황제 루이스가 국정에 지쳐서 지친 몸을 이끌고 기분전환을 할 겸

야행을 나갔을 때 우연히 들은 노랫말처럼 ‘세상사람 날 부러워...’

진정한 크리스천은 왕도 (우러러보지만) 부럽지 않게 된다.


▲비신자를 부러워하지 말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그 마음속에는 늘 불안과 초조와 공포가 있다.

진정한 만족이 그 속에 없다.


어떤 사람이 조사를 해보니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특징은

모두 다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여러분 비신자들이 웃는 그 웃음, 거기에 속지 마시라.

주일 날 우리는 성경 들고 교회 가는데

예수 안 믿는 이웃집의 부부가 알록달록한 예쁜 옷을 입고

멋있는 등산복 차림으로 부부가 함께 웃으면서 나간다.


‘캬! 나도 예수만 안 믿었으면 저렇게 놀러 가는 건데...’

그게 부러운가? 그들의 웃음 속에 공허함이 있음을 발견해내야 한다.

그 내면 속에 진정한 기쁨이 없음을 우리가 간파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그들에게는 목자가 없다.

 

그들에게는 죄 사함 받은 확신이 없다.

때문에 좋은 것을 먹어도 만족함이 없고

아무리 많이 가져도 늘 불안한 것이다.


▲신자의 고통의 의미

한 기독교인 의사가 있었다. 성공한 의사였다.

그런데 어릴 때 자라면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지금까지 남아있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 하신다 하면서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 그것이 해결되지 않아서

늘 마음 한편으로 괴로움을 당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있는 연구소 앞에 한 만여 평 되는 넓은 초원이 있었다.

그 초원을 산책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는데 늘 산책할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중간 부분에 넓게 패인 모래 웅덩이가 있었다.

 

‘아, 저것이 없었으면 더 아름다운 초원이 되었을텐데..’

늘 이렇게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 저녁에 비가 몹시 많이 왔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비는 말끔히 개어있고

비를 담뿍 머금은 그런 잔디들이 아주 파릇파릇 예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산책길을 가다가 탄성을 질렀다.

넓게 패인 모래웅덩이가 있던 그 곳에 아름다운 호수(연못)가 있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호수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의사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평평한 곳은 물을 담을 수가 없다.

그러나 패인 곳에, 낮은 곳에 그 웅덩이에 물이 고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의 과거의 상처가 웅덩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상처가 있었으나 그 상처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간직하고

이제는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제야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을 왜 자신에게 허락했는지 깨닫게 되고

그 순간에 모든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도 가난할 수 있고

예수 믿는 사람도 병들 수 있고

예수 믿는 사람도 고통당한다.


그러나 우리의 고통은 결코 무의미한 고통이 아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은 예수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고

미래에 천국에 더 큰 상급을 이루는 재료들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형통하든 곤고하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는 가장 행복한 자인 것이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서

‘당신들도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 있게 전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설교 발췌, 요약        ▣ 크리스천 리빙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의 육화  (0) 2006.12.04
408 동화를 믿는 여자  (0) 2006.12.01
406 선교 안 하면 침략 당한다  (0) 2006.11.29
405 로마 제국의 몰락  (0) 2006.11.28
404 (신문사설 스크랩) 서울의 기이한 평온  (0) 2006.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