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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406 선교 안 하면 침략 당한다

LNCK 2006. 11. 29. 11:25
 

◈선교 안 하면 침략 당한다.             행8:4              스크랩, 출처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행8:4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지상명령을 주셨다.

기독교회가 성실히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니까

선교대상 주변국 민족들이 도리어 침략자로 바뀌게 된다.

 

그들은 로마로 침략 해 왔고, 그것을 계기로 그들은 기독교로 복음화 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 선교를 안 한 것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국내전도도 마찬가지다. 전도 안 하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선교 안 하면 침략 당한다.

로마의 멸망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313)부터 이미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미 기운 국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독교를 공인했다는 설도 있다.)


더욱이 그는 동로마로 수도를 옮기고, 자기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로 명명했다.

이렇게 되자 로마는 동, 서로 분리되어 더욱 힘을 잃어갔다.


특히 4세기에 훈족(흉노 족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동양계)에 밀려

게르만 족 대이동이 일어나면서, 그들은 로마로 넘어와서 로마를 무너뜨린다.


여기에 ‘혼란한 세상 가운데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가 숨어있다.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 망한 로마제국과 기독교는(5세기)

도리어 게르만 민족의 복음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기독교에 흡수되었다.

게르만 민족의 개종을 통해서, 중부유럽이 기독교화 되었고 중세가 시작된다.


4세기에 기독교가 공인되고, 기독교가 국교로 선포되자

땅 끝까지 가라고 한 선교 명령은 도외시하고, 선교는 안 하고

로마에 성 베드로 성당 화려하게 짓고, 자기들끼리 부와 권력을 형성하자

하나님은 게르만 민족을 불러들여.. 천년의 평화 제국을 삽시간에 무너뜨리셨다.

 

땅끝까지 선교 안 하다가.. 그들(게르만 족)에게 침략당한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선교도 마찬가지

후에 스칸디나비아 반도 일대의 해적 바이킹들이 기독교인이 된 것도

약탈로 잡아온 유럽의 기독교인 여자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외적의 침략을 허락하셨고,

사람들은 죽고, 집이 불타고, 포로로 잡혀가는 수모와 수난을 겪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복음화, 세계선교의 도구가 되었다.

 

땅끝까지 선교 안 하다가.. 그들(바이킹 족)에게 침략당한 것이다.

그래서 기이한 방식으로.. 선교가 이루어졌다. 

포로로 잡혀 온 기독교인 여자들에 의해서, 바이킹 족 선교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중세의 기독교 왕국

중세는 ‘그리스도 왕국’(Christendom, Christ-Kingdom)이라 불린다.

문자 그대로 교회가 왕 노릇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세상을 통치하던 시대였다.

실제로 그런 기간이 무려 1,200여년이나 계속되었다.(나폴레옹 등장까지)


라틴민족이 다스리던 서로마 제국이 476년에 완전히 멸망했지만

주인만 바뀌었을 뿐 제국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럽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교회 때문이었다.


로마제국을 차지한 야만인들은, 스스로 제국을 통치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교회 조직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이미 행정 조직이 마비된 로마제국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사불란한 제국 차원의 조직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제들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이 제국의 통치 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 시기에 교황과 주교에게는 막강한 권한이 부여되었고

사실상 그 지역의 정치적인 지배자였다.


962년 ‘신성(神聖)로마제국’의 등장은 교회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황제는 교황을 찾아와 대관식을 받아야 황제로서 등극을 할 수가 있었다.


또 ‘종교재판’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단박멸이 목적이었으나

교황으로 하여금 모든 기독교국가에서

치외법권적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제도였다.


교황의 ‘교서’(敎書)라는 것이 있다.

주요 문제에 대하여 교황이 공식적인 의견을 발표하는 것인데,

교황의 의견은 잘못될 수 없다하여 ‘무오설’(無誤說)이 등장했다.

교황이 잘못을 범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이런 교리가 등장했다는 것은 교회에 절대권이 주어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로마제국 중에, 동로마는, 이슬람 세력에게 망한다. 

 

회교도들에게 동로마가 망한 후에

콘스탄티노플 중심의 그리스 정교회는

슬라브 족 러시아로 옮겨서

러시아가 그리스 정교회의 중심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 등, 동로마 지역이 복음화 된 것도,

동로마의 멸망과 무관하지 않다.

선교를 안 하다가.. 이방에게 망하는 방식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참고 : 기독교 공인 전 1~3세기 선교 역사 : 박해를 통한 성장, 확장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로 사도행전 8장에 사마리아로 흩어지는 사건은

그 이후에도, 사도행전이 끝난 다음에도 계속 된다.

네로 황제를 위시해서 기독교는 3세기 동안 계속 박해를 받았다.

그런 가운데 교회는 정화되었고, 지하로 확장을 거듭해 나갔고

물론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최악의 박해는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칙령 발표 이후이다.

전 제국에 대한 일반법으로 제정되자, 기독교에 대한 최후의, 최악의 박해가 발생한다.

교회 파괴, 기독교 집회 해산, 기독교 서적 불태움, 공직에서 기독교인 추방,

비밀 집회하는 기독교인 처형 등이 일어났다. 10년간 지속, 1500명 순교자 배출했다.

 

주교를 비롯한 수 천 명의 변절자 발생하고, 기독교인들이 재산 몰수당한다.

그러다가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박해가 사라졌다.

 

▲마치는 말
이렇게 볼 때, 기독교의 선교적 확장은, 역사를 보면, 박해로 통해 주로 일어났다.

그 이후로도 구교의 신교도 박해, 청교도 박해(미국 개척)등이 계속된다. 

 

박해 없이 기독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대규모로 선교에 참여했던 것은

19세기에 이르러 영국과 미국에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본다. (소규모는 좀 있었지만)

그래서 혹자는 19세기를 '위대한 세기 The Great Century'로 불렀다.

 

오늘 세계선교 2위 강국을 자랑하는 한국도, (중국처럼)

일제신사참배, 6.25의 박해를 통해, 주변 국에 비교가 안 되는 큰 성장을 이루었다. 

앞으로 우리는, 박해를 통해 선교역사를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영, 미처럼 스스로 자발적인 선교역사를 수행할 것인가?   

 

그런데 19~20세기 영국과 미국의 자발적 선교운동의 배후에는

웨슬리, 에드워즈, 휘필드, 무디 등의뜨거운 신앙부흥운동, 영적회복운동이

선행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②그리고 그 선교주역들은 주로 젊은이 대학생들이었다. '젊은 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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