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EA%B8%80%EC%9D%98%20%EB%82%98%EB%A8%B8%EC%A7%80%20%EB%B6%80%EB%B6%84%EC%9D%84%20%EC%93%B0%EC%8B%9C%EB%A9%B4%20%EB%90%A9%EB%8B%88%EB%8B%A4. ARTICLE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할 때 렘23장 06.12.24. 인터넷설교 일부 녹취
▲당시 시드기야 왕의 실정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B.C. 597~586)는
처음에 친 바벨론 정책을 펴다가,
애굽이 점점 강자로 떠오르자 친 애굽 정책으로 선회한다.
그러자 바벨론의 보복으로 결국 유다는 멸망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이쪽저쪽 눈치 보다가 망한 것이다.
그는 애굽과 회의했고, 바벨론과 회의했고,
외교관들과 회의했고, 신하들과 여러 번 회의했지만
하나님과의 회의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았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아니했다.
하나님의 회의에 참석하고자 아니했다.
▲백성이나 종교지도자도 마찬가지!
당시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고, 심어지는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예레미야 23장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신다.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 하였다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렘23:22
항상 깨어서 주님의 뜻과 말씀을 분변하고,
그것을 왕과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할 사명을 지닌
종교지도자들까지 영안이 감겨 있었고, 귀가 막혀 있었으니
당시 사회는 암울함과 절망 그 자체였다.
◑ 예레미야의 예언
이런 절망의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나타나 왕과 백성을 향해서
울면서 예언의 말씀을 전달한다.
왕에게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제발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한다.
애굽을 의지할 바엔 차라리 고집을 버리고 바벨론에게 항복하여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백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호소한다.
예레미야 23장에 나타난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교훈을 듣게 된다.
▲1. 주님의 통치를 기대하라
나라의 지도자 시드기야는 총체적으로 혼란에 빠뜨렸지만,
오직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주님이 다스리실 때
유다 나라에 ‘공평과 정의의’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렘23:5
이렇게 주님의 통치(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백성들은 구원(문제의 해결)을 얻으며, 평안히 거하게 된다.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렘23:6
어느 정권이 통치하든지
궁극적으로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될 때, 안정과 평화를 찾을 것이다.
▲2.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하라!
주님은 당시의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다 타락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소집하는 회의에 참여하라’고 재촉하신다.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알아들었느냐? 렘23:18
혹자는 이것을 일컬어 ‘여호와의 어전회의’라고 칭한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최하시는 어전회의(국무회의)에 참석하여
주님과 더불어 ‘주님의 세계경영(경륜)’을 의논하는 특권을 갖게 된다.
주님은 오늘도, 이렇게 당신과 더불어 회의에 참석해서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연말연시가 되었다. 여러 가지 모임과 회합이 많은 시즌이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이 소집하시는 회의에 우선순위를 두시기 바란다.
지금 우리 시대는 이렇게 주의 음성을 듣는 지도자들을 필요로 한다.
그들이 바로 역사의 선견자들, 비저나리들이다.
그들이 바로 지금 우리의 희망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렘23:23
그렇다. 주님은 먼데 계시는 것 같지만, 바로 가까이에 계신다.
우리 가까이에 계셔서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지시하고 가르쳐 주시며, 절망에 처한 백성들을 격려하고 싶어 하신다.
◑ 눈물의 선지자가 필요하다
▲프랜시스 쉐퍼 박사(1912~1984)
프랜시스 쉐퍼 박사는 20세기의 선견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스위스에서 라브리 운동을 하시며, 기독교 지성과 사상을 이끄셨다.
그는 기독교적 영향력을 상실한 유럽문명과
희망을 상실한 20세기 문명,
그리고 그 속에서 아무 역할을 감당치 못한 채 죽어가는 기독교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눈물로 설교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눈물로 가르치고 호소했다.
‘Christianity Today’는, 20세기 세계 기독교 역사에
가장 의미 있는 영향력을 남긴 지도자가 바로 쉐퍼 박사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뒤를 따라 여러 나라에서 소위 세상을 바꾸고 교회를 개혁, 갱신하려는
많은 지도자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아무도 쉐퍼 박사만큼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신학자 D.A. 카슨Carson 박사는,
‘쉐퍼 박사에게 있었던 눈물이 없는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쉐퍼 박사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정확하고 더 예리한 문명 분석과
교회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오늘의 시대를 끌어안고 정말 기도하고 정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카슨 박사는, 우리 시대를 바꾸는 것은 ‘단순한 정의가 아니라,
심오한 긍휼을 지난 정의’라고 지적한다.
not just simple justice, but justice with profound compassion
▲예레미야 같은 눈물의 선지자가 필요하다
그렇다. 지금 우리 시대는 다시 한 번 예레미야를 필요로 하고 있다.
예레미야의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weeping prophet 였다.
그렇다. 지금은 울면서 먼저 하나님을 만날 때이다.
울면서 그 분의 음성을 들을 때이다.
울면서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할 때이다.
이번 연말에,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하는 시간을 내 보시기 바란다.
그렇게 새해의 계획을 세워보시기 바란다.
저도 성탄절이 끝남과 동시에, 이틀 정도 조용한 곳에 가서,
그 회의에 참석하려고 한다.
▲다시 희망을 말하자!
이렇게 울면서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할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희망을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그분을 만나 뵙고 회의한다면,
우리는 희망을 안고 일어설 것이다.
▲‘폭풍곶’도 변하면 ‘희망봉’이 된다.
아프리카 최남단에는 ‘희망봉’ the cape of good hope 이 있다.
그러나 그 원래 이름은 ‘폭풍의 곶’ the cape of storms 이었다.
그 지역은 너무 폭풍이 심해서, 지나던 배들이 많이 좌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497년 스페인의 항해사 ‘바스코 다 가마’가 이곳을 통과해서
인도양으로 가는 항해에 성공한 후에
이곳의 명칭은 ‘희망봉’으로 바뀌어졌다.
험한 폭풍의 해협이 바로 신비한 땅 인도로 가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 인생길에 종종 ‘폭풍길’을 경험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그것은 ‘희망봉’으로 변한다.
그것 때문에 도리어 약속의 땅으로 더 지름길로 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개인적, 또는 국가적으로 겪는 폭풍 같은 현실이 변하여,
복된 나라로 가는 ‘희망의 지름길’이 되기 바란다. [주제별 분류] 선지자론
*원제목 :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할 때(렘23:5-8) 이동원 목사님 설교
저/설교자는 고등학교 1학년때 자꾸 옆구리가 아프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병으로 말미암아, 학교를 쉬고 병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앞날이 걱정이 되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저를 UBF로 인도하셔서 말씀공부를 하게 하셨고
새벽기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저는 학력고사 보는 날 아침에도 콩팥 속에 돌이 움직이는 바람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도 1년 쉬었는데
시험도 못 보고, 대학도 못 가고, 인생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온 집안 식구가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신기하게 통증이 사라지고, 시험을 거뜬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신장결석은 저를 괴롭혔지만
하나님께 나아가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에, 돌이 저절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7번 정도 돌이 나왔는데, 꼭 새벽기도 갔다 오면 돌이 나왔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도할 때에 콩팥의 돌도 부서뜨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나중에 렘23:29~30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불 방망이와 같다”는 말씀이 있더라고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어떤 병마도, 어떤 장애물도, 어떤 완악한 사람도
불방망이로 부스러뜨리시는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440 은혜를 입게 하소서 (0) | 2006.12.29 |
---|---|
432 시어머니의 반지 (0) | 2006.12.27 |
◈안식일은, 여호와와 그 백성이 맺은 언약의 표징 (0) | 2006.12.25 |
428 귀를 뚫은 노예 (0) | 2006.12.23 |
427 예수님의 마음 읽기 (0) | 2006.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