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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432 시어머니의 반지

LNCK 2006. 12. 27. 22:30
 

◈시어머니의 반지                     <낮은 울타리>에서 스크랩

선한 사람, 정직한 사람에게 야훼여, 은혜를 베푸소서  시125:4

 

착한 사람이 버림받거나 그 후손이 구걸하는 것을 나는 젊어서도 늙어서도 보지 못하였다. 시37:25

 

지금 내 왼손 검지에서 반짝 빛나고 있는 반지.

대학을 갓 졸업하고 간병인 도우미 일을 하고 있던, 3년 전의 일이다


▲말기 암 환자 아주머니께 애착이 가다

내가 돌보는 환자 중에 55세의 대장암 말기인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아주머니의 까만 피부는

유난히 내 마음에 애착을 가게 했다.


더구나 다른 환자들과 달리 시한부로 남은 삶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과

어떻게 직접 도움을 주지 못하는 가족들을 볼 때도

내 마음은 괴롭기만 해서 더 잘 돌봐드렸는지도 모른다.


환자분들을 직접 돌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고

행여나 나의 서툰 간호로 인해 더 불편해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머니 보기에는 내가 더 안타까워 보였는지

“아가씨는 언제 집에 가서 쉬누?

여기 우리 아들이 사온 과자랑 마실 것이 있으니까 같이 먹어요.”

하시면서 저의 호주머니에도 과자를 가득 담아 주셨다.


▲화장품을 구입하신 깊은 사연

아주머니는 병 때문에 더 가늘어진 팔목에 링거주사 바늘을 꽂고

서너 개의 수액과 쉴 새 없이 투입되는 진통제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더 밝은 표정으로 나를 부르셨다.


“저기 병원 1층 편의점에 가서 화장품을 좀 사고 싶은데 나를 좀 데려다줘요.”

“그래요, 아주머니도 화장하시면 얼굴도 더 밝아 보이고 좋으실 것 같아요.”

아주머니를 휠체어에 태운 후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요새 나온 것 중에 어떤 것이 좋을지 아가씨가 좀 골라 주구려!”

“얼굴을 좀더 환하게 보이려면 미백효과가 있는 여기 화이트 제품하고,

입술에 붉은색이 더 있다면 생기가 있어 보이실 것 같아요.”

그렇게 화장품을 구입하고 온 후에 아주머니는

숙제를 끝낸 아이 마냥 기뻐하셨다.


▲아주머니의 마지막 선물

주말을 잘 보내고 출근한 월요일 아침.

내가 돌보고 있는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가는 내 발걸음은

괜히 무겁기만 하고 여느 때와 달리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순간, 섬뜩한 두려움이 뇌리를 스쳐서 정신없이 달려가

아주머니가 계신 병실 문을 열었다.


아주머니의 침대는 깨끗하게 정리가 된 상태로 비어져 있었고,

몇 번 본 아주머니의 막내 아드님이 울어서인지

충혈 된 눈으로 맥없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뜻밖의 상황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주말 전까지 환하게 웃으시며 같이 쇼핑까지 했던 아주머니였는데….


“아가씨, 기다렸어요. 이거 어머니가 전해주라고 특별히 부탁을 하셨거든요.”


막내 아드님 내민 작은 쇼핑백 안에는 지난주에 나와 함께 구입한

화장품 세트와 립스틱, 그리고 메모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쓴 흔적이 역력한 그 메모지에는,

“아가씨, 그 동안 내 곁에서 잘 돌봐주어서 고마워요.

힘들 때 나를 위해 바쁘게 뛰어 다니는 아가씨를 보면

나의 젊을 적 생각이 나면서 나에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어요.


병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를 보면서 씽긋 웃어주던 그 웃음도…

난 아들만 내리 셋이라서,

늘 아가씨 같은 예쁜 딸이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셨는지 아가씨를 만나게 되어서 감사하고 있다오.


여기 이 반지는 내가 며느리 보면 끼워주려고 간직했던 반지라오.

우리 시어머니한테 받은 건데 아가씨 손이 예뻐서 잘 어울릴 것 같아.

오래오래 행복해요. 아가씨.”

라는 글과 함께, 세월의 때가 묻은 반지가 소중하게 담겨져 있었다.


▲그 반지가 인연이 되어

반지를 받은 그 순간, 나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그러나 당시에는 차마 낄 수 없었던 그 반지를 지금은 당당하게 끼고 있다.


극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반지가 인연이 되어

1년 전에 쇼핑백을 건네주었던 그 막내아들(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고,

지금은 임신 8개월의 새댁이 되었다.


당신의 아픔보다는 피곤한 내 얼굴을 못내 더 안쓰러워 화장품까지 사주시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시어머니께서는 바라시던 대로

며느리에게 반지를 물려주고 떠나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