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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445 인생 역전이 없어도

LNCK 2007. 1. 3. 17:07
 

◈인생 역전이 없어도...    고전4:9~16                     -출처 보기-


우리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대가가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최선을 다했을 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 역전을 주시는 하나님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주시고, 우리를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주님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을 때

결국 소원하던 자녀를 얻습니다.


한나가 자녀가 없어서 울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자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역전극을 보여주십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고, 아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역전을 만드셨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십시오.

9회말 투아웃에서 믿지 못할 역전극이 벌어집니다.


혹시 오늘 당장 그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시일이 지나서 보상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살면서 나의 생애동안에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보상이 나의 자녀, 나의 후손에게라도 그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셈은 확실히 해주십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산 사람!’ 그냥 버리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미안해서도 못 버리십니다.



◑그러나 인생역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그렇게 바르게 살고, 주님을 위해 살았는데도

주님이 우리를 섭섭하게 대하실 때가 있습니다.


▲1. 인생역전이 없었던 에티오피아의 목사님

최근에 가장 핍박이 많은 곳이 에티오피아라고 합니다.

군사정권이 그렇게 교회를 핍박한답니다.

이렇게 어렵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선한 애국자들인데도,

그런데도 그 선한 사람들에게 핍박이 대단하답니다.


이 에티오피아에 굉장히 지금 큰 부흥을 일으키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엄청난 부흥이 이 목사님을 통해서 이뤄졌는데,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군인이 자기 눈앞에서 자기 아이를 3층 높이의 건물에서 떨어뜨렸답니다.

사모님을 감옥에다 집어넣고, 목사님 고문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식이 자기 눈앞에서 죽는데 얼마나 큰 고통이 있겠습니까!


그 장면이 잊혀지겠습니까!

나중에 교회가 성장하고, 아이 더 낳는다고 그 상처가 사라집니까?

아이가 떨어지는 모습 -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살았는데, 왜 하나님은 기적을 안보여주셨을까요?

내가 그렇게 충성했는데 내 자식만큼은 좀 살려주시면 안 되나요?

그런 원망이 왜 없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것 주고, 돈 주고 해도

자녀가 죽으면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안 됩니다.


△인생역전 -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상의 눈으로 완전히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바르게 살았는데도

세상적으로 완전히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이럴 수 있냐?’ - 그런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이 단순히 한 순간, 잠시가 아니라, 평생 동안도 그럴 수 있습니다.

침몰한 내 가정을 영원히 되찾지도 못하고,

곤핍함과 가난 속에 허덕이며 평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물질의 축복이 잘도 있지만,

나는 죽어라고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닮으려고 살았는데도

그런 도우심 한번 받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속하게도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아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털터리로 인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인생이라는 것이, 꼭 의인이 성공하고, 악인이 실패만 합니까?

꼭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의인으로 살았어도 그렇게 버림받는 인생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이 끝나도, 모진 인생을 살다 보상 없는 인생으로 끝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여전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영원한 보상인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열심히 살고, 충성을 다했는데도 대가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면 역전극이 일어나야 하는데

하나님이 무심할 때가 있습니다.


평생 동안 살아가면서 주님을 위해 살았는데도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고,

평생 고통 속에서 살다 죽는다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겐 이 땅에서 누릴 수 없는 영원한 행복이 있고,

영원한 기쁨이 있는 천국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벼랑 끝에 있는 삶을 살다가, 그 벼랑 끝에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너무 절망하거나,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인생역전이 없었던 예수님

저는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도 참 상처가 많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고통을 당하는 건 견딜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린시절에 아픔, 얼마나 상처가 큽니까!

예수님도 어린 시절이 참 아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동네 사람들이 부를 때 사람들이 ‘마리아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요셉의 아들'이라고 해야 되는데, 무슨 말입니까!

요셉이 일찍 죽어서, 남편을 잃고 어머니가 키운 자녀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시골 사람들은 동네 사정에 훤합니다.

무슨 집이 토마토, 상치 등 무슨 농사짓고 하는 것 훤하게 다 압니다.

그런데 그 옛날 사람들이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런 비난 속에서 비하 속에서 예수님이 어린시절을 자랐다는 겁니다.


거기다 예수님의 아버지만 해도 12살까지는 생존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에는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의 이름들이 다 나오는데

아버지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30살 이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크게 성공 한 번 못 하고, 십자가에서 강도처럼 죽습니다. 졌습니다.

좀 멋있게 로마를 제압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제압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저는 이게 또 위안이 되는 겁니다.

제 어머니가, 제가 29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시절은 아니지만, 요즘같이 장수하는 때에

어머니가 58세에 돌아가신 것 제게는 큰 상처였습니다.


‘예수님은 저보다 더 젊었을 때, 청소년 때 부모님을 여위었구나...’

이게 위안이 되더라구요.


‘예수님도 내 맘 아시겠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은 내 맘 아시겠네, 이것이 제게 위안이 됩니다.


이 땅의 고난, 아픔 그걸 모르시고 사셨던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실만큼 다 아신 분이셨습니다.

부모를 일찍 여윈 아픔, 그 아픔을 가지셨던 분입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들에게 있는 헤아리기 어려운 아픔들,

그 아픔들을 충분히 아셨던 분입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가 아프실 때, 하나님의 역전극을 기대했습니다.

9회말 투아웃의 대 역전극이 벌어지게 해주십시오.

이것 하나만 해주시면 됩니다.

제 인생의 최고의 기도 제목입니다.

제발 들어주세요. 제발!


그런데 하나님이 야속하게도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분이라면, 기대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하시지 않아서, 그래서 많이 아팠습니다.

하나님이 역전극을 벌여주시지 않으셨습니다.


▲3. 인생역전이 없었던 바울

우리보다 더 큰 재난과 어려움을 겪었던 바울은

그것을 기쁨이요, 즐거움이라고 느꼈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같이 되었습니다.

그 잘나고 똑똑하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다한 사람

보상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고전4:10절,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 너희는 잘나고 똑똑한데 우리는 너무 약하다...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 보상 받고, 기도 응답 받아야 할 바울이 더 비천한 지경입니다.


고전4:11절,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 지금 이 시간까지 하나님이 하나도 응답 안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저 버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울을 외면하셨습니다.

먹는 것도 광야에 메추라기가 떨어지듯이 떨어져야 당연한데

하나님이 하나도 채워주지 않았는지 주렸다고 했습니다.

굶기만 하냐? 매 맞고, 잘 곳도 없습니다. 정처가 없다고 했습니다.


고전4:12절,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 사람들이 박해해도 당한대로 대하는 게 아니라, 축복하고, 위로해줍니다.

그렇게 주님 위해서 주님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느냐?

고전4:13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 세상의 쓰레기처럼, 세상의 찌꺼기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전극은커녕 그의 인생은 (세상적 관점에서) 더 망가진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4:16절, 내가 너희에게 원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그래도 나처럼 사세요. 어려워도 아파도 그래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4. 인생역전이 없었던 선교사들

국제 복음 선교회(WEC)의 지하실에는, 수 십 개가 넘는 가방들이

바닥과 선반에 가지런히 정리된 채 놓여 있다고 합니다.

누구의 가방이냐?

선교를 떠나고 돌아오지 못한 선교사들의 가방이라는 겁니다.


선교 갔다가 돌아와서 가져갈 가방이라고 했는데

선교사님들이 돌아오지 못하여, 그 가방들만 남아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선교사가 되고, 그 어려운 곳에 일하러 가면

다 부흥을 일으키고 성공해서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개인이 사는 곳에 가면

오병이어의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선교사님들의 보고를 들으면

때로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 얼마나 자주 봅니까!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라는 책에 보면 거기는 온갖 기적들이 일어나는데,

왜 그분들은 돌아오시지 못한 겁니까?


잘못 선교해서 그런 겁니까?

선교하다가 딴 짓하고, 하다가 욕심이 많아서 하나님이 버리신 겁니까?


그 중에는 가자마자 원주민에게 죽은 사람도 있고,

병에 걸려 죽은 사람도 있고,

그곳에서 뼈를 묻기 위해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아무 역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교사님들만 죽으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됩니까?

가족은 누가 돌봅니까!

자녀들은 누가 키웁니까!

이름 모를 기부자가 그들을 키워주고 도와줍니까?


오히려 더 비참하게 된 선교사의 자녀들

순교자의 자녀들의 이야기만 더 들었습니다.


학업도 제대로 계속하지 못하고, 먹기도 제대로 못 먹어서 어렵게 살고

지금도 어려운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저는 꽤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겠다고 또 거기를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보 멍청이 멍텅구리 같은 인간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이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5. 인생역전이 없었던 한국의 순교자들

우리나라에는 일제의 핍박의 시기 때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런 분들이 옥에서 순교하고, 박해받고 목숨을 걸어서,

신앙의 위엄을 한국교회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올해 제가 저희교단 순교지에 가보니까 애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3살, 2살 이런 애들이 죽었습니다.


어머니가 믿음 지키고, 아버지가 믿음 지키면서 자식만 살려 달라 그랬는데

일제시대 일본 군인들이 죽이고, 6.25때 북한군이 죽여서

그렇게 죽은 사람이 너무 많이 있었습니다.


아이들만 몰래 피신시켜서 보냈는데, 애들이 나도 같이 죽겠다고 돌아와서

순교한 젊은 애들도 있었습니다.

나 혼자만의 고통이야 감당하지만, 자녀의 죽음까지 같이 지켜보는 것을

어떻게 차마 눈뜨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런 피의 순교가 우리 교단에 스며있는 것을 봤습니다.


어떤 분은 마지막 가는 길도, 기도하면서 그렇게 순교한 분도 있었습니다.

지금 계속해서 사람을 죽여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기도의 모습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그 와중에 그 목을 쳐서 죽였답니다.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이들에게 피의 흔적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분들 중에 자녀가 있는 분도 있겠지만,

그대에서 자손이 끊어진 집안이 꽤 있습니다.

그러면 다 망한 것 아닙니까!



◑색다른 역전을 주시는 하나님 


▲1. 순교자의 피 위에 교회가 세워지다

그러나 그분들의 고난은 값없이 사라지지 않고,

그들의 피가 이 땅에 수많은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전혀 의미 없지 않았습니다.

순교의 피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더 큰 열매가 있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역전극만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순교와 같은) 역전이 없는 실패가 더 위대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역전하지 못한 인생이 더 우리에게 와 닿고,

우리를 힘내게 만들게 합니다.

오히려 성공보다 실패의 인생이 우리에게 더 큰 힘을 주기도 합니다.


▲2. 예수님의 실패?

예수님의 실패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오히려 우리의 아픔을 치유해주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우리를 죄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지금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역전극을 기대했을 겁니다.

성탄절의 위대한 밤이 있었을 때 사람들은

그 메시야가 위대한 일을 일으키리라 기대했을 겁니다.


하늘에 별이 예수의 길을 비추어주었고,

동방에 있는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아마 사람들은 역전극을 기대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로마로부터의 압제, 유다 정치인들의 핍박, 종교인들의 거짓된 억압,

여기서 구원해줄 분을 기대하는 것 이게 뭐 그리 잘못이었겠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자녀를 권력자의 노예로 팔수밖에 없었고,

성전세니, 관세니 하면서 없는 자들의 돈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인생들에게

철퇴가 내려지기를 기대했을 겁니다.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많은 밑바닥 인생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시대가 얼마나 빈익빈 부익부의 시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가난에 찌들어 살았고, 굶주리고, 병에 걸려 있습니다.

이런 엉터리 세상을 만든 종교의 나라, 혼나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역전극이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외면하시고, 역전극을 일으키지도 않으시고,

예수님의 실패로 끝이 납니다.


기대했던 반란은 일어나지도 않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힘없이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끝이, 그 실패가 우리를 살리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 실패가 온 세상에 복음이 되고,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소식이 되지 않습니까!


▲3. 결국 역전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이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해도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성공한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

사업이나, 직장에서 성공한 사람의 구세주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성공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구세주시지만,

그분의 관심은 주로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 가장 낮은 사람과 같이 계셨고,

가장 낮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 역전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 위로와 평안으로 충분합니다!


①미래 천국에서의 역전

그리고 이 세상의 실패를 다 모아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

천국이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두 손 벌려서 우리 손을 잡아줄 날이 있을 겁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역전의 이야기들이 거의 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전의 이야기들로 쌓여있습니다.

에스더의 역전, 다니엘의 역전, 요셉의 역전, 전부 역전극들입니다.


그럼에도 역전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게 아니라는 겁니다.

바울의 실패도, 예수님의 실패도

오히려 그 실패가 그 성공보다 더 위대했습니다.


실패의 이야기가 되던, 성공의 이야기가 되던,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역전극만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2세 미만의 아이를 다 죽일 때

예수님만 살아남는 역전극만이 최고가 아닙니다.

때로는 예수님의 실패가 우리를 살려줍니다.

예수님의 눈물이 우리를 더 울립니다.

예수님의 실패가 우리를 살려냅니다.


마음에 천국이 임하는 평안

순교를 앞두신 손양원 목사님의 기록을 보면,

어떤 면에서 목사님은 오히려 순교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순교를 앞둔 시점에, ‘거룩한 순교’를 계속 마음으로 다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런 소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육신은 모질게 고난이었지만,

마음에는 신비하고도 놀라운 천국이 임하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변화산상의 체험 같은 것이었다고 봅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목이 잘려 죽은 세례요한,

가장 유능한 집사였던 스데반,

짐 엘리엇 선교사가 에콰도르 강가에서 인디언에게 잡혀 죽을 때,  

그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무능하고 실패한 인생처럼 젊은 나이에 개죽음을 당했을 때,


그들은 절대로 허약한 실패자로서 절망 가운데 탄식하며 죽지 않았습니다.

감격적인 천국을 누리며, 천사의 호위와 보호 속에

가장 영광스럽고 거룩하게 죽었습니다.(순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누릴 수 없는

놀라운 평화와 은혜와 영광스런 임재와 당당한 순교자로서의 영광을

그들 마음에 주셨습니다.

죽은 후가 아니라, 순교를 앞두고 살았을 때 말입니다...

 

(물론 성도가 자기 죄와 허물로 인해 당하는 실패와 고난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마음의 평화, 천국이 없고 불안과 탄식만 있을 것입니다.)  

 

▲4.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의 역전

칭찬받는 교회였던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보상, 역전’은 무엇인가요?

서머나 교회에게는 - 생명의 면류관, 둘째 사망을 면하는 영생,

빌라델비아 교회는 - 시험 면하게 해 주고, 성전 기둥이 되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 까짓 것 안 받아도 되겠다!’ 라고 생각할 만큼

지금 우리 세상적 관점으로 보면, 아무 쓸 데가 없는 축복들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성공, 물질, 지위 - 이런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러나 깊이 묵상해 보면, 그것들은 정말 소중한 ‘보상, 역전’입니다.

 

*관련 글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환란 받도록 운명지어졌다

 

[주제별 분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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