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유를 창조하라 창1:1~2 06.12.31.녹취
지금 저희 교회가 비전센터를 건축하면서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중에
제게 마음이 무거운 것이 있었는데,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위로와 응답을 받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을 갖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것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였다.
5년 전에 우리교회에 물질이 부족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 때 기도할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다’는 말씀을 강하게 받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데, 지금 아무리 어려워도 그게 무슨 문제겠는가!’
그런 마음에 확신이 들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여러분 가정도 마찬가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면... 물질은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는 믿음을 갖고 살면 해결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핵심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다.
개척교회를 하는데, 성도가 몇 사람 없고 헌금이 없으니까 위축이 되는데
그런데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등 두려울 게 없다.
▲이성적인 판단, 믿음은 아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유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자본 좀 두둑이 있으면, 돈 많이 벌 수 있어!’
‘요즘은 돈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야!’
물론 그 말은 옳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지, 성경은 아니다.
물론 달란트 비유에서 있는 자에게 더 주라는 말씀도 있다.
그런데 창세기 1:1~2절을 보면, 유에서 유가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옆에 앉은 분과 인사 나누시기 바란다. “없어도 됩니다!”
‘뭐가 좀 있어야만 된다. 시작할 때 얼마가 있어야 된다.
내가 시작하는데 누가 도와줘야 된다!’
그렇게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성경은 ‘없어도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역사, 기적은 깡그리 없는 데서 잘 일어난다.
뭔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되, 적게 일어난다.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가?
무식해야 한다. 그래야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
◑ 왜 현대 교인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못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현대인들이 똑똑하고 전문가 시대가 되어서
인간의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 앞에 세우고 나가고 있다.
교회도 인문학적 성장전략을 논하고,
교회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굉장히 인간적인 성장과 발전에 치중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 목사님은 하나님의 능력만을 앞세우는데 무지하게 무식하다.
그 분은 배운 게 없나보다 할 정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우는 교회가 흔치 않다.
이제는 목사도 주일 날 얼굴에 화장하고 나와야 된다.
지금은 영상시대가 되어서, 목사님도 많은 준비를 한다. 머리, 화장, 의상 등...
그러다가 자칫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우지 못할 수도 있어서 경각심이 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교회가 되기 원한다면
인간의 능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해서 앞세워야 한다.
▲2.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오늘 설교의 핵심)
오늘 현대 교회와 교인들은 욕심이 너무 많다.
다시 말하면,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데 무의 상태를 만들지 않는다.
실제로 굉장히 어려운 적용이 되겠다.
다시 말하면 무에서 유가 창조되려면, 먼저 무의 상태가 되어져야 한다.
오늘 우리 삶에 유의 기적이 일어나기 원한다면
나의 삶의 부유한 것을 다 내버려야 한다.
무의 상태, 빈 그물, 빈 마음이 되어야 한다.
△저도 지금 교회건축 중에 응답을 받았다.
‘너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비워라, 자랑하지 말고 내려놓아라!
기도 많이 한 것, 헌신한 것 안다. 그런 칭찬을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놓아라. 無로, 제로를 만들어라!
낮아질 수 없을 만큼 바닥으로 내려가 있어라’
△오늘 우리는 악착같이 가지는 것에는 다들 일등이다.
그러니 버리고 버려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만드는 일에는 꼴찌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면
오늘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무의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목사님, 저희는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뭘 내려놔요?’
그렇게 말씀하는 것 보니까 아직도 자존심을 가득 갖고 있다.
말하는 투를 보니까 아직도 자만심 갖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의 상태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데,
오늘 목회자부터 온 성도들이
머릿속에 (지식을) 가득 채우고,
가슴에 (자만심, 교만, 자랑, 탐욕) 가득 채우고
주머니에 (물질) 가득 채우고... 너무 많이 갖고 있다.
무의 상태를 만들어 보시라!
△제가 이번에 캄보디아 다녀오면서 큰 깨달음이 있었다.
‘4천석 비전센터 건축 내려 놔! 땅바닥에 다 내려 놔!
너무 높아져 있어, 너무 자랑을 많이 해, 너무 심령이 커져 있어!
옛날에 우리 못살 때처럼 ‘정말 우린 하나님 밖에 없다’고 말한 것처럼
무의 상태로, 제로로 돌아가야 해, 하나님 앞에서 다 내려놓아야 해!’
그렇다. 하나님 한 분만, 예수님 한 분만 있으면 된다.
뭘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그래야 교회가 꼭 부흥되는 것은 아니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면, ‘무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1. 고난을 통해 억지로 무의 상태가 되는 사람 (가장 낮은 신앙 수준)
자기 스스로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억지로 무의 상태로 만드신다.
고난당하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 자연재해의 어려움 당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 나는 밑바닥 인생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계속해서 요셉처럼 외국에 감옥에 팔려가고 고난에 고난이 계속되니까
어쩔 수 없이 화가 나지만 자존심도 버리고, 자기의 혈기도 버리고,
이렇게 타의에 의해 모두 버리게 된다.
내가 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고난이 너무 계속 되니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버리게 된다.
△여러분, 고난이 계속되면 죄 짓는 것도 그만 둔다.
죄는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잘 짓는다.
지금 막 죽어가는 사람이... 다른 여자 안 만난다. 만날 여유가 없다.
고난을 계속 받는 사람은 죄를 자제한다. 정욕을 버리고 무의 상태로 만들어진다.
사업에 계속 실패하는 성도, 사업만 착수하면 계속 망하는 사람,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려 하지만 계속 빈 그물만 올라온다.
그러자 교만한 게 쑥 꺾어진다.
누가 버리라고 하지 않는데 혈기도 버리게 된다.
그래서 예수 앞에 나와서 자진해서 엎드리게 된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완악했으면 이렇게 고난, 실패, 자연재해를 주시는가?
일년 내내 농사지었는데, 추수를 앞두고 우박이 5분만 내리면
과일에 구멍이 다 뚫어지며 일년 과수원농사를 망치게 된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 있다.
여러분, 우리가 버리지 않으니까, 고난, 실패, 질병, 자연재해 등을 통해서
우리가 버리지 않는 우리 욕심과 자기중심적 삶을 내려놓게 만드신다.
그렇게 시달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내려놓는데
무의 상태가 빨리 될수록 하나님의 역사는 빨리 일어난다.
△그런데 평소 삶이 적당하게 부패하고 적당히 썩어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큰 환란은 없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무의 상태를 안 만들고
대충대충 사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기적은 안 일어난다.
차라리 진한 고난 받아서 나도 모르게 다 내려놓고 무의 상태가 되면
그 빈 그릇에 하나님이 임하실 것이다.
오늘 여러분에게 고난, 실패, 자연재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성도의 가정에
무의 상태로 통해 하나님의 기적이 빠른 시간에 임하기를 축원 드린다.
▲2. 나눔을 통해 스스로 무의 상태가 되는 사람 (높은 신앙 수준)
그 축복을 혼자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축복을 자꾸 나눠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환경과 내 주머니를 자꾸 무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요한복음 2장에 가나의 혼인잔치가 있었다.
포도주를 ‘나눠주다 보니’ 포도주가 모자랐다.
그 때 예수님은 물이 포도주 되는 기적을 만드셨다.
자꾸 베풀다가 모자라면,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모자란 부분을 자꾸 채워주신다.
포도주가 남아 있는 동안에, 예수님은 기적을 안 베푸신다.
눅6: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요,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주신다고 하셨다.
지금 어떤 집사님이 나에게 ‘목사님, 축복받는 비결이 한 마디로 뭡니까?’
그렇게 한 마디만 원하신다면, 저는 서슴없이 “주라!”고 말씀드릴 것이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주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
애들은 이기심이 많아서, 자기 것을 친구에게 안 준다.
그러므로 애들 때부터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야 어른 되어도 주는 복된 사람이 된다.
우리 교회 식구들은 금년에 각자 자기 생일을 잘 챙기시기 바란다.
생일날, 생일잔치할 돈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시기 바란다.
백일 잔치할 돈 가지고 주변에 어려운 사람 도와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너무 많이 주셨는데 그것을 안 나눠주면 썩는다.
거기에 기적은 안 일어난다.
계속 나누어주고 나누어 주면, 무의 상태가 되면서
다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고, 그 곳에 하나님의 기적이 임한다.
성숙한 신앙의 단계는 스스로 무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비우기를 하는 것이다.
▲3. 성공한 것을 무의 상태로 되돌리는 사람
(항상 무의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 가장 높은 신앙 수준)
우리는 지금 마치 달나라로 가는 우주인들이 대기권을 막 빠져나가는 흥분처럼
새 성전 4천석 비전센터에 들어가는 열망을 코앞에 두고 있다.
정말 어마어마한 새로운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리라고 믿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시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거기에 들어가는 우리의 자세가 빈 그릇, 빈 마음이 되기 바란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것처럼 다시 제로의 상태로 내려가 앉을 때
건축 후에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계속 기적이 일어날 줄 믿는다.
그래야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새로운 창조 역사를 이룰 수 있다.
계속해서 낮아져 있고, 계속해서 빈 마음을 가지고 있고,
빈 그릇, 빈 그물,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할 때
계속 하나님만 바라볼 것이요, 하나님은 그 빈 그릇에 계속 임하실 것이다.
날마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계속 무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래를 계속 참조하시라!
◑간증 및 실제 적용
▲교회 재정을 비우니까 차더라.
저희 교회가 요즘은 아주 부자가 되었다.
초기에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좋은 교회가 되고 싶은 욕심에
‘교회 재정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
를 고민하다가
그래서 ‘매월 교회 재정에 잔고가 백만 원 이상 남으면 안 된다’는
그런 결심을 기도 중에 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에 헌금이 들어오면 빨리빨리 지출을 시켰다.
장애인집에게도 보내고, 선교지에도 보내고,
계속 들어온 헌금을 빨리빨리 내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재정이 백만 원 이상 남으면 죄를 짓는 것처럼 살아갔다.
어떨 때는 너무 줘서 재정이 달랑 20만원 남아있으면 전기세 등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다음 주일에 헌금이 더 넘치게 들어왔다.
부족하니까 더 많이 기도해서 좋고,
기도하니까 더 많이 채워져서 좋고,
날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어서 좋다.
▲말씀도 아낌없이 흘려보내라!
살아있는 교회의 특징은 목사님은 키가 크냐?
목사님이 어느 학교를 나왔냐가 아니라,
살아있는 교회는 강대상(제단)에서 생수가 콸콸 쏟아져서
그 곳에 생명수가 가득 차서 넘쳐서,
그것이 넘쳐서 바깥으로까지 흘러가는 것이다.
에스겔47:1절에, 에스겔은 환상 중에 성전 문지방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환상을 본다. 지성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넘쳐서 바깥으로 새어나온 것이다.
그 물이 나중에 헤엄할 물처럼 넘쳐서 동, 서, 남, 북 이스라엘 전역으로 퍼진다.
겔47:17~20
우리 교회 강단에서 흘러나온 은혜의 강수가 이 교회를 차고 넘쳐서 이 도시로,
이 도시를 지나서 인근 도시로!
이렇게 예배당에서 생수가 쏟아져서, 생명수가 차고 넘쳐서 계속 흘러가고,
이 생수가 흘러 들어가는 동네마다 살아나고 축복을 받는 교회가 되자!
생명수를 계속 흘려보내자!
제로 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 흘려보내서 무가 되면
하나님의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헌금에 이름을 빼라
벳세다 광야에서 한 어린아이가 5병2어를 드렸다. 요6:9
그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의 이름이,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여러분, 우리가 많은 헌금을 드리는 것은 좋다. 그러나 성경적인 헌금관은
헌금을 통해 너무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하면, 이미 시험에 걸려 있는 것이다.
헌금은 내가 기쁜 마음으로 드리면 되는 것이다. 내 이름이 나올 이유는 없다.
‘헌금을 조금 내는 사람이니까 이름 없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그 무명의 헌금에 주님이 축복기도 하시자,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 자신의 것을 드리면, 우리 자신을 무의 상태로 만들면서 드리면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난다.
▲바울의 버리기(자기 비움)
우리가 너무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버려야 할 것도 너무 많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쓰임 받고 능력을 나타낸 것은
예수님을 얻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7~8
‘예수님 한 분으로 기뻐합니다.
예수님 한 분 외에는 다 버리기 원합니다.
나에게 유익한 것까지라도...
그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장애가 된다면, 다 버리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모세의 버리기(자기 비움)
제가 목사로서 정말 버려야 할 것은, 모세처럼 지팡이만 가지고,
나머지는 다 버리는 것이다.
내가 학문을 가지고 있고, 논문과 지식과 언어실력을 자랑하는 동안에,
내 손에 모세의 지팡이(하나님의 능력)는 오지 않는다.
내 실력을 버릴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식한 지팡이를 쥐어주시며
‘이것 갖고 가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능력 갖고 가서 이 민족을 살리라고 하신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그 지팡이가, 가서 치기만 하니까 강물이 피가 되고,
난리(기적)가 일어나면서 민족을 구해 냈다.
오늘날 지팡이 하나들고 민족을 살리겠다는 목사가 있다면
그는 정말 정신병원에 가야 할 것이다.
그런 하나님 절대적인 신앙을 가진 목회자가 드문 시대가 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들고 나왔다고 말하는 무식한 목회자(?)가 오늘날 흔치 않다.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 나에게 유익한 것까지라도 버리는
그런 결단을 오늘 여러분들이 얻게 되기를 축원 드린다.
▲예수님 - 생명까지도 내려놓기
예수님과 바울의 공통점은 ‘내 생명까지도 원하신다면
내 생명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겠습니다!’ 하는 헌신이었다.
하물며 그들이 생활비를, 사역비를 내려놓지 않겠는가!
목숨을 내려놓은 사람은 ‘얼마를 받아야 일 한다’가 아니라
‘주시는 대로 일하겠습니다.’의 각오를 가진다.
제가 개척한 첫해 교회 주보에 표어가 ‘주시는 대로!’였다.
그 때는 아무 것도 없었다. 주시는 것밖에는 없었다.
만원이 들어와도 감사하고, 백만 원이 들어와도 감사하고,
주시는 대로 쓰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얼마를 받는데 나는 이게 뭡니까?’ 하며 시험 든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데는 이유가 있으며,
하나님이 많이 주실 때도 있고, 적게 주실 때도 있고
다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뿐이다.
목숨까지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은
‘주시는 대로’ 산다.
주시는 대로 오직 감사가 있을 뿐이다.
▲생명과 안전도 내려놓아야 한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가는데 파도가 치니까 물속에 빠졌다.
자기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나는 안전해야 돼, 나 죽으면 안 돼!’ 생각하니까
자꾸 물속에 빠지게 된다.
사해 바다에 가면, 한국 성지순례단이 수영복입고 들어가는데
뜨리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둥둥 잘 뜬다.
그런데 정말 뜰까 의심하는 사람은 허우적거린다. 사해바다를 안 믿기 때문이다.
계속 따지고, 연구하고, 설명을 달고 하면... 기적이 안 일어난다.
▲자기 자랑을 내려놓자.
처음에는 자랑할 것이 없었는데, 교회가 커지면서 자랑할 것이 생겨났다.
지금 부흥한 것이 이제 나의 경험과 지식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과거에 없었던 나의 경험과 지식이 생겼다.
옛날에는 ‘저도 몰라요, 기도하세요, 예수님께만 매달리세요!’ 라고 말하던 제가
요즘은 ‘이렇게 하면 부흥 되요!’ 하면서 나의 경험과 지식을 자랑하며 나눈다.
이번에 새 성전에 입당하기 전에, 이것을 내려놓고 가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님의 기적을, 계속적인 채우심을 바라기 때문이다.
▲인정받기를, 명예를,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자.
‘내가 처음부터 왔었어, 내가 여기에 시작부터 있었어,
나는 처음부터 핵심이었어!’ 그런 권세와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3년간 저는 민족을 위해 하루 4시간씩 기도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참 그럴 때마다 한편 반대로 ‘나도 이제 챙길 것은 좀 챙겨야 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속 음성이 속에서 들려온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것 자체가 영광(명예)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오르면, 이제 자기 챙길 것부터 찾으려 두리번거리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주님의 자취를 쫓아가면서
무엇을 챙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할 권한까지도 내려놓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그 다음에 계속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은 업적을 내려놓고 가라는 것이다.
너희 교회가 이룬 업적들이 많다.
세계선교 많이 하는 교회, 3만 명 영혼 전도, 4천석 비전센터 건축,
너무나 위대한 업적이다.
그러나 다 내려놓고 가라. 미래의 계획을 다 내려놓고
성령이 이끄시는 곳으로 가라!
▲캄보디아에서 다시 새해를 결심
지난주에 제가 캄보디아 선교지에 다녀왔는데
프놈펜에서 한 시간만 나가니 오지 마을이 아주 많았다.
돼지와 사람이 같이 가족처럼 한 집에서 살고
그 무더운 나라에서 나무로 집 짓고 에어컨 하나 없이 살고 있었다.
집에 물도 제대로 없었다.
거기 성도들도 스스로 전도하는 모습을 보니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전도하며 한 영혼 구원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너무 큰 감격을 받았다.
캄보디아 오지에서 본 나의 모습, 우리교회 모습은
우리는 너무 문명으로 덥혀 있었고,
너무 제 모습이 그들에 비해서 거인 같아 보였고(자만의 뜻)
그들의 모습에 비해서 너무 저는 세속화되어 있었다.
캄보디아 오지 마을에서 본 우리 교회 모습은, 너무 거창했다.
여러분, 순수하고 진실하지만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듯 거창해졌다.
그리고 그 오지 마을에서 본 우리 광명교회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가지고 시작한 교회인데
이제는 사람의 욕심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 저를 캄보디아 오지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만 남겨놓고 다 내려놓으라는 뜻인 줄 믿습니다.
이 캄보디아 오지 마을에서
나의 부풀었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욕심을
다 내려놓고 돌아가겠습니다.’
이 캄보디아 오지 마을에서 교회 건축도 내려놓고, 입당도 다 내려놓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집이니,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저는 다시 여기에서 제로 상태로, 빈 그릇, 빈 그물로,
무의 상태로 돌아가겠습니다.
생활비도 내려놓겠습니다.
건강 문제도 내려놓겠습니다.
명예도 자랑거리도 내려놓겠습니다.
업적들도 내려놓겠습니다.
미래의 계획들도 내려놓겠습니다.
나의 삶이 무의 상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삶이 무의 상태가 되었을 �, 유를 창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스스로 비우고, 스스로 낮아지자.
‘저는 예수님 한 분 만으로 갑니다.
하나님 이제까지 써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금년에 어디 쓰셔도 저는 감사할 뿐이고,
어디라도 즉시 믿음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새해에 이렇게 빈 그릇과 빈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 드린다.
<인터넷 설교 정리. 06.12.31. *원제목 :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 (창1:1~2)
[주제별 분류] 십자가 http://blog.daum.net/bible3/10790510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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