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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 보통 사람 아모스

LNCK 2007. 1. 11. 17:55
 ◈보통 사람 아모스               암7:15               스크랩, 편집한 글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암7:15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 아모스

*복장 - 아모스는 에스겔(겔44:18)이나 엘리야(왕하1:8)가 그랬던 것처럼

특별하고 이상한 복장을 하지 않았다.

 

*사역기간 - 그는 이사야나 사무엘처럼 일평생 선지자로 섬긴 것도 아니었다.

 

(에스겔, 예레미야서에 보면, 무슨 왕 5년에 예언하고,

이어서 무슨 왕 10년에 예언 하는 등 예언이 계속 이어지지만, 아모스는 그런 언급이 없다.)

 

*행동 - 그는 엘리야, 호세아 같은 선지자들처럼 특이한 행동을 한 적도 없다.

 

(엘리야는 불을 내리고, 산에 홀로 앉아 있었고,

호세아는 상징적으로 음부를 아내로 맞이했고, 에스겔은 한 쪽으로 드러눕는 등

상징적인 행동을 여러 차례 연출했다.)

 

아모스는 목자였고(1:1), 뽕나무를 치던 농부였다.(7:14)

그러니까 오늘날의 평범한 시민, 평범한 직장인 같은 사람이었다고 본다.

 

이 글의 제목이 ‘보통 사람 아모스’ 라고 정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아모스 같은 보통 사람이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얼마든지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 여호와의 말씀이 임할 때에만 그렇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7:15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민11:29

 


▲반대를 받은 아모스

여호와로부터 사명을 받은 아모스는 자기 하던 일을 모두 관두고,

국경을 지나서 북 이스라엘 왕국, 벧엘과 사마리아로 건너갔다.


거기서 그는, 그들이 돌이키지 않으면, 파멸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2:6~끝

이 때는 남유다의 웃시야,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2세가 치리하던 때였다. 1:1


그러자 벧엘의 제사장이었던 아마샤는 분노했다.

그래서 여로보암2세에게 그를 고발하고, 너는 고향에 돌아가라고 했다. 7:10,

거기서나 예언하며 먹고 살아라고 박대했다. 7:12

이스라엘을 치는 예언을 하지 말고, 이삭의 집을 치는 설교를 하지 말라 7:16


그러자 아모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①자기는 예언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오. 나는 집짐승을 먹이며,

돌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오.  7:14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7:15

그래서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예언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②아모스서의 다른 부분에서 아모스는 재미있는 표현을 쓴다.

“사자가 울면 누가 두려워하지 않으랴!

(하물며 사자보다 더 두려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누가 예언하지 않고 견디랴!”  3:8, 1:2참조 


아모스는 자기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개의치 않았다.

또한 그들이 자기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든지 말든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냥 자기에게 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만 집중했다.


▲아모스와 12제자들, 우리들 - 모두 보통 사람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고 전파하라고 내보내셨다.

이 제자들도 오늘날 우리처럼, 당시 아모스처럼,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특별히 뚜렷하게 나은 점을 솔직히 발견할 수 없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무 짐보따리도 갖지 말고,

빈 몸으로 다니면서 말씀만 선포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그 말씀을 받으면 좋고, 안 받으면 빨리 떠나서 다른 마을로 가라고 하셨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가정, 교회, 사회에 뭔가 허물어져가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오늘날은 죄가 문화가 되어, 사람들은 잘못된 삶의 기준으로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가서 말하라’고 하실 때에는, 우리는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

(단, 그렇게 하다가 사이비가 되기 쉬우므로 기도하며 매우 조심해야 한다.

특히 처음에 순수하게 나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변질된다.)


▲진리는 항상 승리한다.

과거에 전 세계 교회의 삼분의 이(2/3)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바로 ‘아리우스 파’ 이단이 활개 치던 시대였다.


전 교회의 삼분의 이(2/3)라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고 해서

아리우스의 주장이 맞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진리는 항상 승리하게 되어있다.

시일이 지나자 아리우스 파들은 역사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예수님의 신성’을 굳건히 믿고 있다.


오늘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귀의 미혹을 받고 진리를 혼동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도 선지자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활동은 꼭 필요하다.


단,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이나 주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서 온 것인지 잘 분별해야 한다. (이상 인터넷 영문자료 번역) 

 


◑황소개구리 - 한국 생태계 질서에 편입되다


▲생태계의 파괴자, 황소개구리

2006년 8월 30일경, TV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아마 '환경스페셜')

앞서 10년 전, 천적도 없다고 알려진 '황소개구리'.

처음에 수입해서 유포시켰는데, 너무 번식 속도가 빨라서

전국 농촌을 떨게 만든 한국 생태계의 파괴자요, 포식자였다.


농민들은 ‘황소개구리’로 인해 농어촌에서 토종붕어, 치어가 사라진다고 탄식했다.

어떤 TV는 황소개구리가 뱀까지 먹어치우는 장면을 방영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의 강력한 번식력과, 밤새 울어대는 큰 목청으로 주민수면 방해 등,

한국에 모세의 ‘개구리 재앙’을 곧 가져올 것만 같아서 모두들 한 때 떨고 있었다.


▲황소개구리, 자취를 감추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2006년 즈음,

황소개구리는... 한국 강산에서 자취를 싹 감추고 말았다고 한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다각적으로 조사해 보니,

-황소개구리란 먹잇감이 늘어나자 천적인 너구리 류가 갑자기 번식했다.

그래서 너구리 류가 전국에 늘어나면서, 황소개구리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옛날에는 적어도 황소개구리 1마리에 5백 그람~1킬로 나가던 것이

요즘은 2백 그람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큰 놈들은 다 너구리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그 외 왜가리(새), 뱀, 큰입배스(물고기)가 늘어나면서

황소개구리의 알, 올챙이들을 마구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질서를 잡아간다.

수입 초창기에 한국의 생태계를 교란시켰던 황소개구리가

이제는 한국의 생태계 질서에 서서히 편입되고 있다.


농림부 차원의 별도 대책이 필요했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황소개구리,

이제는 소리 소문 없이 점점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농림부의 대책이 없어도, 이렇게 대자연은 스스로 정화능력이 있는 것이다. 


▲너무 큰 대책 - 오히려 역효과

기독교계도 이렇게 스스로 정화능력이 있다고 본다.


아모스 같은 선한 선지자들도 한 때 일어났다가 자기 소임을 다하면 사라질 것이고,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한 무리들도 한 때 일어났다가, 때가 되면 자연 소멸할 것이다.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행5:38~39


10년 전에, 많은 교인들은 상가 개척교회가 너무 많다고 걱정했다.

그것도 지금 스스로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

요즘은 오히려 너무 줄어서 걱정이라고 한다.


▲박상익 님의 글을 아래에 인용하면,

(가톨릭과 달리 지나친 ‘자유’로 인해) 개신교엔 참 문제가 많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자유”라는 여건 속에서 부글거리며 끓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서 바야흐로 선과 악 사이의 스펙트럼이 조금씩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스스로 복원력이 있다는 뜻이다. 있기 때문에 지난 5세기 동안 개신교가 존재해 왔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가장 강력한 기반은 바로 ‘자유’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허락하신 여건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실존적 상황이다.

물론 타락과 일탈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 진리의 편에 설 수 있는 복원력도 갖고 있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를 보시라.)

역사의 수레바퀴는 아주 천천히 돈다.

무질서와 혼란에 설령 분노는 할지라도, 좌절할 필요는 결코 없다.


(일사분란하게 보이는) 가톨릭에 주눅들 필요 없다.

프로테스탄티즘은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티즘의 근본적 사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각을 가져야 한다.

종교개혁이 개신교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것은 바로

'신앙(또는 교권)에서의 자유'이다.   

 

 

 

아모스서의 기본 구성에 대한 이해

여덟 예언

1

다 메 섹 심판에 대한 예언  (1: 3~ 5)

2

가    사 심판에 대한 예언  (1: 6~ 8)

3

두    로 심판에 대한 예언  (1: 9~10)

4

에    돔 심판에 대한 예언  (1:11~12)

5

암    몬 심판에 대한 예언  (1:13~15)

6

모    압 심판에 대한 예언  (2: 1~ 3)

7

유    다 심판에 대한 예언  (2: 4~ 5)

8

이스라엘 심판에 대한 예언  (2: 6~16)

세 설교

1

사자의 부르짖음(3: 1~15)

2

 

이스라엘 부패와 8재앙(양식, 가뭄, 풍재,

깜부기, 팟종이, 염병, 칼, 불)(4:1~15)

3

이스라엘의 죄와 운명에 대한 애가(5:1~6:14)

다섯 환상

1

황    충 환상  (7: 1~ 3)

2

    불    환상  (7: 4~ 6)

3

다 림 줄 환상  (7: 7~14)

4

여름실과 환상  (8: 1~ 3)

5

문 지 방 환상  (9: 1~ 4)

다섯 약속

1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암9:11)

2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암9:12)

3

풍요  (9:13)

4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저희가

황무한 성읍을 건축하고...(암9:14)

5

 

저희가 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

라...(암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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