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군중 (막5:24)
그들 무리의 숫자가 많아서 미는 것을 보시고, 고깃배 한 척을 대라고 하셨다.
그제야 군중들이 예수님을 떠밀며 만지고자 하는 것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막3:9
공생애동안, 예수님은 종종 군중들에게 둘러싸이셨다.
그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사역에 지장을 주기도 할 정도였다.
때때로 수 천 명의 군중들은 예수님을 따라왔고
그들은 서로 발에 밟힐 정도로 위험했다. 눅12:1
(누가 깔려 죽었다는 소식이 없어서 다행이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떠밀리고, 밀침을 당하기까지 하셨다.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막5:24
예수님은 군중들 때문에 가끔은 식사하실 시간도 없으셨다. 막3:20
얼마나 군중이 많았는지,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한 중풍병자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붕을 뚫고서야
예수님께 접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막2:4
이런 경우, 키 작은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래서 삭게오 같은 경우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눅19:3~4
▲오늘날의 색다른 군중
심지어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군중에 둘러싸이신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때때로 자만심pride, 자기를 미워함self-hatred, 혼돈confusion,
의심doubt, 예수님을 만지는 두려움fear to touch 등의 색다른 '군중'에
겹겹이 둘러싸여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
또한 우리 세속 문화는 너무 다양한 쾌락에 우리를 푹 빠지게 만든다.
그것 역시 ‘군중’처럼 예수님을 에워싸고 꽁꽁 가려 버린다.
우리는 회개하며 복잡한 우리 라이프스타일을 단순화시켜야 한다.
그제야 우리는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그분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번역)
◑하나님이 눈에 안 보여서 좋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들을 태어나게 하셔서 빛을 보게 하시고,
이렇게 쓰디쓴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욥3:20
(어떤 수녀님이 작은 본당에서 잠시 도와주시던 때다.
매일 성체조배 오시는 한 신도님이 하루는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그 내용을 나누면 다음과 같다.)
그 자매님은 글자를 깨칠 수 없는 장애인이라고 했다.
친정에서는 불편 없이 지냈지만 시집가서 얼마 후 글자를 모르는 것이 들통 나
남편의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중에 첫아이를 낳았는데 뇌성마비 장애아였다.
그러자 시집 식구들도 대놓고 구박하기 시작했다.
자매님은 갈 곳이 없어 성당을 찾았고 세례를 받았는데
성당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런데 둘째, 셋째, 넷째까지도 뇌성마비 아이를 낳았고
냉대는 더욱 심해져 결국 집에서 쫓겨나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수녀님, 저는 첫아이 때문에 구원의 열매를 얻었고,
둘째아이 때문에 사랑의 열매를 얻었고,
셋째아이 때문에 겸손의 열매를 얻었고,
넷째아이 때문에 인내의 열매를 얻어 너무 기뻐요”라고 했다.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장애 아이 넷을 파출부하면서 키웠는데
아이들이 일고여덟 살이 되면 그냥 천당으로 갔단다.
“수녀님, 제가 키울 능력이 없으니 하느님께서 데려가시더군요...” 하면서
그 뒤로 딸 셋을 더 두었는데 착한 딸들이라고 얼굴이 환해진다.
막내를 가졌을 때 사람들이 모두 낙태시키라고 했지만
숨어숨어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낳았다면서
“지금 그 아이 없으면 저는 못 살아요!” 한다.
재롱을 얼마나 떠는지 ‘행복’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자매님은 “수녀님, 저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아 너무 좋아요” 한다.
만약 하느님이 보였다면 돈 있고 힘 있고 잘난 사람들이
먼저 성당을 다 메워서 자기같이 글자도 모르는 보잘것없는 사람은
성당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란다.
하느님이 보이지 않으니, 늘 성당이 비어 있는 것이고,
그래서 자기가 가고 싶은 때 성당에 들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어느 곳이나 성당이 텅텅 비어 있다.
하느님의 집인 성전은 비었는데
오늘날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인가?
그 옛날 예수님 주위에도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그들도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병을 고치고 빵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는 사람만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했을 때
군중들은 “우리가 식인종인가?” 하며 모두 떠나갔다.
오늘 우리는 어디로 몰려가고 있는가?
진정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살아 계신 그분 곁으로 가는가,
아니면 이익이 생기는 곳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생명과 거리가 먼 곳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펀글)
◈물량 최고 주의 조심!
▲표를 많이 얻으면 무조건 위대한 지도자인가?
민주주의는 투표할 때 무조건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이 당선된다.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은 가장 훌륭한 지도자다.
반대로 표를 많이 얻지 못한 정치가는 ‘뭔가 문제가 있는’ 지도자다.
-이런 논리와 사고 구조는 맞기도 하지만, 틀릴 수도 있다.
▲많이 팔면 일등 기업?
일등 기업의 잣대는 무엇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상품을 많이 팔아서 매출을 1등 하면- 일등 기업으로 쳐준다.
그러나 기업의 정직성, 품질의 우수성, 가격의 적정선,
우수한 고객만족도를 얻고도 ‘매출’이 1등 못 할 수 있다.
정말 정직하게 세금내고, 제품 가격을 낮게 책정해서 이윤이 안 남을 수 있다.
학교 재단이 정직하게 경영하면 발전할 수도 있지만, 망할 가능성도 크다.
▲자본주의의 특성-물량주의
자본주의의 최대 미덕은 양(量)이다.
성공의 잣대는 물량에 있다. 가치의 잣대도 물량이다.
일단 물량이 많으면 어깨에 힘을 준다.
물량이 적으면 스스로 어깨 힘을 빼야 한다.
하기야 티코 타면서 제아무리 어깨 힘 줘도 먹히지 않는 세상이다.
내가 타는 차의 가격에 의해-내 존재 가치가 매김 되고
내가 사는 집의 평수에 따라-내 신인도와 사회적 위신이 세워진다.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유난히 중형차가 대세를 이루는 한국에서는
‘물량주의’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단적인 증명이 된다.
▲일등 언론사, 톱스타
일단 시청률이나 발행부수가 많으면 그 언론사가 일등 방송국, 언론사가 된다.
그것이 언론 매체의 충실도(質)와 상관있을 수 있으나, 없을 수도 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라고 위세를 부려대는 유명한 출판물을 보더라도
그 명분은 오로지 판매량의 수치 하나뿐이다.
그 책의 내용이나 품질 수준이 따라줄 때가 있지만, 못 따라줄 때도 많다.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도 마찬가지-오로지 관객의 수와 입장료 액수로 결정된다.
이른바 가수와 탈렌트 등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도
1시간에 몇 명을 모으는 ‘게릴라 콘서트’ 등 그저 양(量)만이 미덕이다.
요즘 가수왕, 인기 연예인은 모두 십대들의 우상이다.
십대들이 몰려다니며 엄청난 표를 뿌리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투표를 하면, 십대들이 그 결과를 결정한다.
네티즌 숫자는 십대가 단연히 압도적이다.
그럼 장년들이 좋아하는 조용필, 심수봉은 질이 떨어지는 가수인가?
▲'양은 질을 수반한다'는 대세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양(量)의 위력을 능가할 만한 것은 사라져 버렸다.
양을 제압할만한 가치 개념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시대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
교회 역시 '질은 양을 수반하고, 양은 질을 수반한다'는 명제가 대세를 이룬다.
그 말이 맞다. 그러나 틀릴 가능성도 있다.
언제나 맞는 절대 진리는 결코 <아니다.>
일례로,
국회의사당을 동양 최대로 짓는다고 최고의 정치 문화를 이루는 것 아니며,
국회의원을 많이 뽑는다고 국가의 정치가 발전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넓은 객실을 갖추고, 여러 가지 요리 수가 많으면 좋은 음식점이다.
그렇지만 일품요리 한 가지로 전통을 이어가는 (작지만) 훌륭한 음식점도 있다.
기독교가 이런 자본주의 대세에 영향을 받아서 자기도 모르게
물량주의식 신학과 신앙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자기도 모르게 그 쪽으로 완전히 치우칠 우려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신학과 설교가
많이 나타나야 한다.
▲나름대로 모두 훌륭함
비록 작은 교회지만 오늘도 성실히 새벽 기도를 이끌어 가시는 목회자도 있고,
비록 많이 모이진 않지만 혼신을 다해 전도와 양육에 애쓰시는 목회자도 있다.
그들을 작다고 누가 비난할 것인가?
내가 많아서 크다고 누가 스스로 자랑할 것인가?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9:9 <이만재 칼럼을 읽고서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http://blog.daum.net/bible3/1058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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