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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 몸 사리신 예수님?

LNCK 2007. 1. 22. 12:41
 

◈몸 사리신 예수님? (마17:11~12)



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사기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면,

그러면 평소에 그와 가까웠던 친구들은 모두 몸을 사리게 된다.

그 집에 전화도 하지 않고, 그에게 면회도 가지 않는다.

괜히 얼씬거리다가는 공범으로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몸을 사리게 된다.

십자가 주변에서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처럼...


그런데 이런 몸 사리는 모습이 한편으로 예수님께도 발견된다.

바로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 예수님이 보여주신 어정쩡한(?) 태도이다.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마17:12


‘임의로 대우하였다’란 말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처리했다는 뜻이다.

they did not recognize him, they have done to him everything they wished (NIV)


종교지도자들이 세례요한을 오해한 것은 당연하다. 바리새인이니까!

종교지도자들이 답을 미리 정해놓고 그를 처리한 것도 당연하다.

사두개인이니까! (그들은 영안이 가려져 있었으니까)!


▲예수님도 팔짱 끼시고 수수방관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다.

예수님만큼은 세례요한이 ‘오리라 한 엘리야’인줄 분명히 아셨다. 말4:5, 마17:11~12

 

왜 예수님은 내막을 다 아시면서, 

'오리라 한 엘리야'인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히는 것과 어이 없이 죽는 것을 

뻔히 보고만 계셨는가? 팔짱끼고 강 건너 불보듯 하시는 것 같다.


왜 한번 감옥에 심방도 안 가셨나?

물론 몸 사리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서로 친척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연배도 서로 비슷하고 동갑일 수도 있다.(6개월 차)

예수님이 이토록 무정하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세례요한의 나이 당시 30대 초반,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였다.

실제로 요단강에서 그는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세례요한은 그냥 잡히더니 무기력하게 참수되고 말았다.

예수님이 좀 구해 주실 수 없으셨나?

그래서 좀 더 왕성하게 활동하도록 왜 보장해 주지 못하셨나?


예를 들면, 어린 애가 '혼자 몰래' 물놀이 갔다가 물에 빠져 익사했다면,

어찌하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랑 같이 물놀이 갔다가, 부모가 뻔히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서

물에 빠져 익사했다면...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거 이런 상처 있는 분께는 죄송합니다!)  


넓지도 않은 땅, 유대에서

모든 소문을 뻔히 들으시고,

세례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면담 요청한 적도 있었는데

예수님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마11:2

적극적으로 그를 변호하거나 석방을 촉구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다.


물론 예수님이 몸 사리신 것도 아니다. 무슨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 깊은 뜻에 대해 잠시 묵상해 보았다.


▲색다르게 사역하는 방식

우리는 많은 물적, 인적 자원을 가지고 승승장구하면서

사역ministry할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사역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지고 패배하면서 사역하는 방식도 소개되어 있다.

이른바 십자가 방식이다.

예수님도 지고 패배하시면서, 수치와 모욕과 고난 가운데... 승리하셨고

세례요한도 지고 패배하면서, 수치와 모욕과 고난 가운데... 사역했다. 


예수님의 말씀, 반응은 다음과 같다.

“세례요한을 구출해 달라고? 나도 머잖아 그와 똑 같은 길을 갈 터인데...?”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마17:12


▲색다른 방식으로 회복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은, 세례요한이 승승장구하면서 사역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사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마17:11


‘회복’이 뭔가?

지난 수 백 년 간 신구약 중간기의 이스라엘에는

말라기 이후 아무 선지자도 없었다. 어떤 계시도 없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등 종교지도자들의 수탈과 압제와 신앙왜곡은 도를 넘었다.

그 모든 것을 세례요한이 회복한다는 뜻이다.

To be sure, Elijah comes and will restore all things 마17:11


그런데 회복하는 방식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감옥에 갇히고, 참수당하고,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실패하고 패배하면서 이기는 방식이다.


종교지도자들의 양심의 가책을 유도하신 것인가?

따르는 무리들의 양심의 단호한 결단을 유도하신 것인가?

‘나도 세례요한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하는 결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은 묵상이 필요하지만...)


▲예수님이 수수방관하신 이유

어쨌든 예수님이 손끝만큼도 안 도와주신 이유는 이런 심정 때문이다.

‘지금 그가 잘 하고 있는데, 무슨 난리냐!

나도 곧 저 길을 갈 것이니라!’

그리고 실제로 세례요한처럼 그 길을 가셨다.


▲오늘날의 적용

어떤 목사님이 사경을 헤매는 수술을 받으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을 계기로 많은 성도들이

평일에도 교회에 모여서 중보기도하게 되었다.

그 기도를 계기로, 목사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자신들 각자의 신앙이 회복되고, 살아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단초가 목사님의 사경을 헤매는 수술 때문이었다.

 

6살 아이가 암투병을 했다.

온 가족이 매달리고, 온 성도가 기도로 매달리고,

병원의 간호사 신우회까지 합심해서 기도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안타깝게도 3달 후에 죽었다.

헛 수고였을까?

그런데 그 이후로 부모들이 투철한 신앙의 용사로 변했다.

남은 여생을 어린이 전도에 다 바쳤다.

간호사들도, 성도들도  이 일을 계기로 믿음이 더욱 뜨거워졌다.

엄마는 말했다. "우리 아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고 떠났어요." 라고...

 

특히 해외선교지에 이런 일은 오늘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선교사역을 방해하고 생트집을 잡는다.

선교사들은 다 집어치고 당장 한국에 들어가고픈 심정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기에,

원수를 사랑하라 하시기에,

정말 사기치고 도적질하고 도리어 협박하는 원수들에게

사기당하고, 도적질당하고, 협박당하고, 고소당하고,

끊임없이 지고, 패하고, 망하고, 쫓겨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내가 도리어 저들을 고소하고 혼내 주고 싶은데,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도 또 내어주고자 하는 자세가 정답이라 하시니...

사역을 위해서라면...


한 알의 밀알이 수 백 배의 열매를 맺는 것은 너무 놀라운 기적인데,

그 과정에서 ‘세례요한처럼 죽는 일’은 사실 너무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수 백 배의 열매를 사실 맺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너무 ‘승리주의식 사역 패턴’만 강조되어지고 있다.

그런 것도 있겠지만 신약을 찬찬히 읽어보면,

세례요한, 예수님, 바울, 베드로(베드로전후서), ,사도행전에는

색다른, 우리가 전혀 원치 않는 방식의 사역 패턴을 읽게 된다.

파선하고, 매 맞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병 들고, (후)욕먹고, 갇히는 등...

지고 패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결국 이기는 방식이다.  <김지윤


[주제별 분류] 기독교승리주의 http://blog.daum.net/bible3/9519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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