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사는 길 시27:1~6 10.03.14.설교스크랩/축약
◑고백으로 승리한 다윗
▲서론 : 신앙생활은 ‘고백’으로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귀신을 쫓아내실 때.. ‘묵상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드시 ‘말로써’ 귀신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당신을 그리스도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술의 고백을 받으시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16:18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은, 각종 두려움을 주는 마귀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마귀가 주는 두려움을 물리치는 길도.. ‘고백의 힘’에 있습니다.
▲두려움의 공격
심리학자들은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은 약 75가지나 되는
공포증으로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공이론가인 나폴레옹 힐은 두려움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두려움은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자신감을 꺾어버리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열성과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닌다.
그리고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나태와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두려움이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들의 마음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스트레스는, 모든 평안과 행복을 빼앗고
심신을 병들게 하며, 생활에 낭패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이상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공포의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길은 알아야 합니다.
먼저, 나의 신앙과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십시오.
선포하십시오.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오늘 생각해 보고 싶은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도, 이 고백이 해결책이었습니다.
골리앗이 나와서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데,
사울과 그 백성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삼상17:11
그런데 다윗은 십대의 소년이었습니다. 요사이로 말하면 중고등학생 정도지요.
그런 다윗이 형들 면회 왔다가 이 상황을 보고, 용기 있는 말을 했습니다.
역전의 용사들이 다 무서워서 도망을 치는데,
다윗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시를 많이 적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고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함께 계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자기와 골리앗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계신 하나님과 골리앗을 비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골리앗은 하나님 앞에 먼지와 티끌 같지요.
다윗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점령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고백’으로 승리한 다윗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보고 저주를 했습니다. 삼상17:41~44
여러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가만히 보세요.
말싸움입니다. 먼저 말로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귀와 싸우는 것은 처음에는 말싸움으로 싸웁니다.
우리 환경과 싸우는 것도 말싸움인 것입니다. (신앙고백으로 싸웁니다.)
세상이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으면, 마귀의 협박과 공갈에 무릎 꿇게 되고, 부정적인 언어가 나오지만,
내 속에 하나님이 점령하고 계시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를..
예수 이름으로, 내 말의 선포로 물리쳐 버리는 것입니다.
영적전쟁은 ‘말싸움’(내 입술의 신앙고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깊은 기도와 순종의 생활이 뒷받침된 성도가.. 그 말에 권세가 있겠지요.
다윗이 하나님과 평소에 깊이 교제했기 때문에.. 그 말에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의 기선에 제압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17:45
골리앗이 다윗을 잘못 봤습니다.
다윗을 어린 소년으로 봤는데, 실상은 다윗의 마음속에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 골리앗은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삼상17:46~47
◑적용
시험을 만날 때, 또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평소에 신앙을 늘 고백하십시오.
다시 말해서, 성경말씀을 암송하십시오.
▲자꾸 나의 육신이 살아나려고 할 때,
그래서 내가 육신과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다가, 사망으로 나아가려 할 때’
이 말씀을 입술로 고백하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2:20
고백을 잘 하려면, 말씀을 많이 암송해야 합니다.
젊어서 말씀을 많이 암송해 두면, 평생 그 고백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에 어떤 두려움이 엄습하면, 다음 말씀을 외우면서/고백하면서
두려움을 주는 마귀를 물리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27:1~2
이것은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마음에 비밀로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입술로 늘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에 힘이 생겨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0
내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늘 믿지만
늘 입으로 시인하면 그것이 구원의 힘으로 나를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늘 마귀와의 싸움에서 늘 지는 것은
입술로 고백을 안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시편91편에 보면 기가 막힌 좋은 간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늘 이 다윗의 시편 91편을 외웁니다. 내 입술로 고백합니다.
그때 내 마음에 믿음이 밀려오면서, 다윗과 같은 담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것을 입술로 고백해야 힘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은 그 말 자체로 가지고서는 힘이 안 됩니다.
일단 우리가 그것을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 승리하려면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워서 그것을 말하거나
잘 안 외워지거든 수시로 적어서 그것을 읽으면 되는 것입니다.
꼭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외워 놓으면 훨씬 편리합니다.
나는 어려움만 다가오면, 꼭 이 말씀을 입술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의 요새가 되시고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니
저가 나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시리라." 시91:2~3
“그러므로 사탄아 물러가라! 아무리 올무에 나를 집어넣으려고 해도 못 들어간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게 굉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전쟁은 눈에 안 보이는 배후의 전쟁입니다.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격할 줄도 알아야 되고, 방어할 줄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공격도 하나님 말씀으로 공격하고, 방어도 하나님 말씀으로 방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두려움을
말씀으로 내어 쫓아야 돼요.
시편 56:3~4절에 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찬송이 굉장히 좋은 것은 찬송은 곡조를 붙인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
이 찬송을 불러서 그렇지, 찬송을 안 부르면
내 주가 강한 성이요, 나의 방패와 병기가 되신다는 사실이
피부에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찬송을 부를 때, 영적인 힘과 담대함이 생기면서
‘너희 원수가 어떻게 하겠느냐. 물러가라!’
그래서 찬송은 바로 곡조를 붙인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집에서 찬송을 많이 부르면,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에 굉장히 도움이 많이 돼요.
▲이사야41:10절에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정말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거짓말 같습니다.
그런데 믿고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그 거짓말 같은 사실이.. 그대로 자기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화가 없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여러분을 보호하고 여러분을 능력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이종수 박사의 이야기를 감동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이종수 박사는 독일 본 대학의 교수로 간 이식 수술에서
세계 최초의 시술자였습니다.
그는 그 공로로, 독일인도 되기 힘들다는, 본 대학의 종신교수로 초빙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럽에서, 동양 사람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심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람의 간을 떼어서 다른 사람 간에 옮겨주는
‘간이식 수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하도록 내정되었습니다.
독일인 의사들도 전부 안하려고 해요. 겁이 났기 때문이지요.
아직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으니까요.
돼지의 간을 사람에게 이식 수술은 다 해봤어도,
사람의 간을 사람에게 이식한 수술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양 사람인 이박사가, 만약에 실패하면.. 쫓아낼 생각으로
이종수 박사에게 간 이식 수술을 시킨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이 수술을 실패하면, 본 대학에서 쫓겨나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는 수술실에서 간이식 수술을 마치고,
환자가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애타게 기도를 했습니다.
간이식 수술할 때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과 고통을 주었는지,
이종수 박사는 그 때처럼 간절하게 기도했던 적은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한 번만 저를 돌보아 주시옵소서. 제발 환자를 살려주시면
다시는 의사로서 더 이상의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한 번 만요. 꼭 한 번 만요.” 간장이 타도록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사실 그는 연구성과 발표에 대한 욕심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수술보다는
연구 성과에 더 많이 집착 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수술을 해놓고 난 다음에 못 깨어나면, 의사로서 완전히 파멸입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기도하면서
연구 성과에 더 치중한 자신의 모습을 깊이 회개하고
앞으로는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더욱 소중히 여길 것이라고 서원하고 기도하자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간 이식을 받은 환자가, 오랜 시간 기다렸는데 깨어났습니다.
수술실에 달려온 의사들은 전부다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습니다.
(세계에서 피겨 스케이팅만 우리 한국이 제일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간이식 수술도 제일 잘합니다.
우리 한국이 조그마한 나라지만 잘하는 것 참 많아요.)
치밀함을 추구하는 의사로서, 그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두려움을 쫓아내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가지고
간이식 수술을 성공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환자가 살아났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같이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너희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꼭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벧전2:24
저는 이 말씀을 얼마나 많이 입으로 시인하는지 모릅니다.
과거에 제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말씀을 증거할 때도 굉장히 몸이 허약해서
오늘 도저히 군중들 앞에 못서겠다고 그러한 어려움이 있을 때도
수 십 번, 수 백 번 내 입술로 고백을 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그러면서 집회 장소에 나가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도
“하나님 나갑시다. 주님 함께 갑시다.” 그것이 저는 제 습관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여기 설교단에 올라올 때에도 “하나님 함께 갑시다.” 이렇게 속으로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나 혼자는 못하니까요.
‘죽고 사는 권세가 입에 있으니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느니라.’ 잠18:21
이 신앙의 고백이란 것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마치는 말
다윗은 초립동이 거대한 장군인 골리앗을 말싸움해서 이긴 것입니다.
무기로써 안 이겼어요. 칼도 없었습니다. 활도 없었습니다.
무기로써 이긴 것이 아니라 말싸움으로 이긴 것입니다.
자기 입으로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으로,
그의 진실된 ‘신앙고백’으로 이긴 것입니다.
사울과 그 군대는 완전한 무장을 했지만, 무엇에 졌느냐.. 말싸움에 졌습니다.
골리앗의 말에 간담이 녹아서 다 도망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까, 하나님 빽으로 말싸움을 해서 이겼습니다.
믿음의 고백으로 이긴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몇 번이고 고백을 드리세요.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굉장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성경말씀을 반복적으로 암송/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다윗같은 담대함을 줄 것입니다. (후략)
◑믿음의 안전망을 가지셨습니까? 시27:1~3
▲안전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금문교를 만들면서 너무 많은 사람이 공사 중에 바다에 떨어져 죽게 되었습니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1933~37년에 걸쳐서 만든 2,825m의 세계적 교량입니다.
이 다리는 교각이 없어 밑으로 배가 다닐 수 있으니(현수교) 놀랍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지금부터 벌써 80여 년 전에 벌써 이걸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다리를 만들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공사하는 밑에다가 안전망, 그물을 쳤는데,
그 이후로, 수 만 명이 공사를 하는데, 사고가 없었습니다.
왜요? 그물이라는 믿는 게 있으니까,
믿는 것과 안 믿는 것이 그렇게 다릅니다.
그리고 작업능률도 몇 배나 올라갔습니다.
벌벌 떨면서 걷는 것보다,
마음 놓고 떨어져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고 걸으니까,
작업능률도 올라가고, 사고도 없고, 일거양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믿는 성도들이 왜 큰일을 할까요?
위 금문교 안전망과 같은 원리입니다.
성도는 믿는 게 있으니까요.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안전망이 보장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걸어갈 때에도, 일을 행할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어떤 환난, 시험, 재난, 사고를 만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 보호해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 싸 둘러치려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시3:6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27:1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18:29
군대가 나를 둘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시27:3
성도에게 삶이 왜 두렵지 않습니까?
전쟁이든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안전망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도우실 것을 믿으니까, 담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주 간단한 이 <믿음의 안전망> 하나가 중요합니다.
인간은 권력의 안전망에 기대보려 하지만, 완전한 안전망이 아닙니다.
물질의 안전망을 치고 우리는 안전하게 거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과학기술의 안전망을 쳐도
나를 지켜주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없습니다.
성도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 하나를 가지고
우리는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고, 요셉과 같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너무나 값진 보화입니다.
이 믿음 하나로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고
광야를 통행할 수 있고
바로 왕과 싸워 이길 수 있고
홍해도 건널 수 있고
요단도 건널 수 있고,
어떤 병마도, 시험도, 악의 세력도 우리는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왜요? 만군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이 믿음,
우리의 자녀들도 이 믿음, 우리의 부모들도 이 믿음,
여러분이 사업을 할 때도, 이 믿음으로 사업을 해야 합니다.
인간의 번영과 발전은 영적인 이런 배경, 영적인 보장이 주어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많은 가정이 ‘이 그물’이 없어서 떨어지고
오늘 우리의 모든 삶이 ‘이 그물’이 없어서 파괴되고
깊은 바다 속에 빠지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간단한 이 장치(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 하나를 우리 가정에 치면,
별로 속상할 일도 없습니다.
별로 화날 일도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들어도 섭섭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이런 믿음의 안전망이 있을 때,
다윗은 전쟁이 일어나도 편안하다고 했는데, 고작 그런 일쯤이야...
그러나 이 간단한 안전망 하나가 없으면,
말 한마디에 다 걸려서 넘어지고, 자기 삶이 파괴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이 믿음을 손에 붙잡고 살아갑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