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주님의 인도함 받기 행23:1~11 10.02.07.설교스크랩/정리
*원제목 :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정말 잘 살고 있습니까? 바로 가고 있습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
눈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다 좋아지는 것이.. 하나님 뜻대로 가는 길입니까?
눈으로 보기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다고.. 결코 속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정답은..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동행/교제하며 사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지금 주님과 놀라운 교제 속에서 산다면
항상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면..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매우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인도를 잘 받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외적으로 모든 점에 있어 다 잘 되고 있는 것 같이 보여도
주님과의 교제가 친밀하지 못하면.. 문제가 지금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제 속에서 한 걸음씩 인도를 받으십시오.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공부하는 젊은 대학원생,
혹은 박사학위 받고 앞으로의 길을 찾고 있는 분들의 가장 흔하고 빈번한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할 수 있습니까?’ 입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 경우에도 그랬고,
또한 많은 분들의 경험을 통해서 검증된 답변은 이렇습니다.
“만일 당신이 앞으로 5년, 10년, 혹은 20년 동안
(당신 생각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분명한 길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내 뜻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망설이면서 내딛는 걸음이지만,
바로 그 걸음이 하나님에 의해서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오늘 내 걸음이 하나님에 의해서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즉,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감동, 위로, 교제가 나의 매일의 삶에 있다면..
비록 미래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안개 속을 헤쳐 가더라도
나는 지금 바르게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곳이 꼭 ‘하나님의 인도’는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당시 가장 화려하고 풍요한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여 갔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잘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의 판단 기준은.. 오직 어디 가면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의논했다는 말이 안 나옵니다.
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망했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그에 비해서 기가막한 고난의 구렁텅이로 빠진 것 같았습니다.
형들이 죽이려 했고, 구덩이에 빠졌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인생은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은 너무나 황홀하게 끝났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온 가족들을 다 구원할 뿐만 아니라, 7년 동안 주변에 있는
다른 나라 모든 사람들까지 다 먹여 살리는 놀라운 일을 요셉이 감당합니다.
이유는, 그가 종으로 팔려갈지라도, 그가 감옥에 갔을지라도,
항상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지 그 분별 기준은
초막이든지/궁궐이든지, 그 어디든지..
‘내가 매일 예수님의 인도를 받고 사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내가 인도를 받고 있다는 증거는.. 은혜, 평안, 감사, 감동, 위로, 친밀함 입니다.
◑사도바울은 철저히 주님의 인도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불같은 시련의 환경 속에서도.. 말씀을 받으니까 담대하다.
오늘 본문 말씀을 가만히 읽어보면
사도바울은 지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벼르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이라도 작심을 하고 여러분을 죽이려 벼른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잠이 잘 오겠습니까? 밥이 잘 먹히겠습니까?
한 사람이 마음에 작심을 하고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사방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합니다.
게다가 자신은 붙들린 죄수 신분입니다.
결박당하여 심문을 당하고 재판을 받는 상황입니다.
로마 군인에게서 채찍질 당할 뻔 했습니다.
종교권력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사도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사형 판결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흔히 앞이 캄캄하다고 하지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두려운 일이 계속되는 중에
어떻게 그렇게 담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행23:11절입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지시를 듣고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항상 경험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에게 그런 담대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극심한 내 문제의 환경 속에서도
항상 나를 만나주시고, 나에게 말씀하시고, 나에게 답을 주십니다.
내가 주님께 가까이 붙어있을 때.. 말입니다.
▲기도 중에 깨달음이 오니까.. 담대하다
사도바울은 ‘내가 빨리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될 터인데
왜 여기(예루살렘-가이사랴)서 이렇게 갇혀서, 지체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기도 중에 교제하다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결박당한 것이 사실은 기도 응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사도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기도해 왔습니다. 롬1:3
로마가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의 소원/기도대로, 로마로 가도록 해 주셨습니다.
단 방법이 바울이 예측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래서 특히 주님과 교제가 깊지 않은 사람인 경우 내 생각은..
거의 하나님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울은 전도자로 로마에 가기를 원했으나
주님은, 사슬에 묶인 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방문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가 막힌 방법으로 사도바울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주1)
◑특별한 인도와 일상의 인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내 안에 오셨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 예수님을 그렇게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을..
어떤 특별한 체험, 아주 놀라운 신비한 체험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그런 ‘특별한 인도, 특별한 체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의 인도, 일상의 체험’도 있습니다.
평소 일상에서는 ‘일상의 교제, 일상의 인도’를 받으면 되고,
특별하고 긴급한 상황에서는 ‘특별한 교제, 특별한 인도’를 받으면 됩니다.
▲바울이 특별하고도, 긴급한 인도를 받았던 예
아주 특별하고도 긴급한 인도하심/위로하심/격려하심이 필요할 때마다
주님은 드문드문 나타나, 바울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밤중에 예수님이 사도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서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한 것처럼
네가 로마에서도 내 증인이 될 것이라.’ 행23:11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행16: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행18:9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행27:23-24
사실 이런 체험은, 매일 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생애 통 털어도,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전체를 통 털어서도
그렇게 다반사로 일어난 것은 아니고, 특별한 경우에만 가끔씩 일어났습니다.
▲일상의 인도, 일상의 교제
이것은 사도행전에 자세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너무 일상적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쓸 수는 없잖아요.
아마 특별한 사건을 위주로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약 4차례에 드문드문 특별한 인도를 받은 것을 볼 때
이것은 평소에 ‘일상의 인도’를 늘 받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상의 인도’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특별한 인도’를 받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다만 우리에게 혹시 ‘일상의 인도’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하루아침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경건에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경건의 연습을 통해, 일상의 인도를 받는 훈련을 쌓아 가면
하나님은 특별한 때에, ‘특별한 인도’까지도 보여주시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은사적으로 이런 것을 남보다 잘 받는, 예언의 은사 같은,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적용
▲하나님은 ‘마음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제/설교자가 간절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로 부르신 것이 사실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목사 되라고 해서 목사가 된 건가?’
제가 그것을 꼭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갔습니다,
제 기도 제목은 하나님께서 “OOO아, 내가 너를 내 종으로 불렀다.”하는
한 마디를 꼭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기도원에서 내려왔습니다.
너무나 낙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저를 불렀다면, 그 말씀을 안해 주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당시 제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육성으로 들으려 했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체험으로만 하나님을 만난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깨닫고 보니 하나님의 음성은..
‘육성’으로 듣는 (특별한 경우도) 가끔 있지만,
일상에서는 ‘생각’으로 듣는 것이었습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저는 주님께서 생각을 통하여 제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고부터
하나님이 일상에서 내적 음성을 통해서 나를 인도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보니 성령께서 생각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여러 군데에서 말씀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롬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성경에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예언을 잘 읽어 보면
성령의 역사가 마음과 생각으로 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여러분, 하루 종일 여러분이 생각으로, 주님과 대화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 무엇을 할까요?’ ‘예수님은 어떠세요?’
‘주님, 이런 때는 제게 좀 지혜를 주세요.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제가 할께요.’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주차할 자리 주세요!’
‘좋은 식당 고르게 해 주세요’, ‘좋은 물건 사게 해 주세요.’
이런 대화식 기도는 잘 응답된다고 합니다.
이런 일상의 인도함을 받는 것에서 출발해서
사역적인 측면에서, 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매달리고/묻고/대화하며 교제하는.. 훈련을 쌓아 나갑시다.
‘주님, 오늘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하루아침에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미숙하게 시작합니다.
우리가 워낙 마음에 계신 예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공부를 하다가 “엄마, 나는 안 되나 봐요.”
그럴 때 가슴이 무너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 나는 안 되나 봐요.”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과 동행하기,
주님의 말씀을 내가 분별해 듣게 되는 것,
그것을 지속적으로 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문을 읽는 동안 물으시기 바랍니다. 음악을 듣는 동안 물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잠에서 깰 때, 잠자리에 들 때 물으시기 바랍니다.
집 안에 기도처와 시간을 마련해 두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45번이나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때까지는 어떤 행동도,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음대로 아무 것이나 안하고 항상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만 했다고 했습니다.
이 완벽한 순종이야말로 예수님을 아버지와 하나 되게 만들었고,
아버지께서 아들을 온전히 신뢰하게 만들었습니다. 요5:19 등
▲김하중 장로님이 쓰신「하나님의 대사」중에
이런 생생한 간증들이 많이 나옵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야말로 모든 것을 주님께 묻고 대답을 듣고 무슨 일이든지 했습니다.
그 분이 중국 대사로 있으면서, 사스SARS가 중국에 퍼졌을 때
각국 대사관이 다 철수하고, 자기 교민들을 철수시킬 때
‘하나님, 철수해야 됩니까?’ 물었을 때 ‘철수하지 말라’ 하셨답니다.
이 조치는, 중국 정부와의 관계에 큰 신뢰를 심어주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각국 대사관과 기업들이 철수하면서,
큰 상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 대통령의 중국방문도, 사스 때문에 취소 혹은 연기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받은 음성에 의지해서’
김 대사는, 오히려 한국 대통령을 중국 방문을 하도록 준비를 시키셨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대통령이 중국 가시기 이틀 전에,
중국에 사스가 종결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음성대로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을 지낼 때,
항상 김대중 대통령께 결재하러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답니다.
어느 날 대통령께 보고 드리러 갔는데, 기도하지 않았음을 깨달으면
‘중요한 것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는,
다시 나와서 잠깐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대통령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 지
여러분이 직접 책을 읽고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특별한 사람에게만 그렇게 하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에 대해서 믿음의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
주1) 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방문하게 된 사도바울.. 그 주님의 섭리
① 죄수였기에 많은 높은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만약 평범한 전도자로 로마를 가게 되었다면
그는 일반 사람들만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가는 과정에서, 로마 최정예 군대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 시절에는 군인이 곧 권력자였습니다.)
벨릭스 총독,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 왕을 만나서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는 하나님의 소관이고
바울이 할 일은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재판을 받으면서, 심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도의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바울의 재판 기록은, 그 자체가 간증이고, 전도입니다. 나중에 성경이 되었습니다.
②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방문했기 때문에, 생명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이 선교사로 로마에 갔다면 로마로 가는 중간에 암살되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천부장까지 동원하여, 그를 보호했습니다.
하나님이 로마 군대 안에 죄수로 가두어놓게 하시므로
사도바울을 부자유하게 만든 것이 아니고
사도바울을 죽이려는 사람들에게서, 그를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가 막힌 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죽임의 위협 앞에서 안전하 로마로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의 호위를 받으면서 말입니다.
③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방문했기에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로마로 가려면 많은 돈이 듭니다.
바울은 로마의 국고 비용으로 배도 타고, 음식도 먹으면서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사람의 지혜를 뛰어넘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나는 예수 믿고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신 것을 믿는데
왜 나에게는 어려움이 있을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답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하는 고난이.. 어쩌면 ‘하나님의 지혜’일 수 있습니다.
우리 과거를 돌아봐도,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매일 교제하는 사람만..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도바울처럼요!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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