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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시험의 유익

LNCK 2007. 2. 8. 23:54
 

◈시험의 유익    눅4:1~13  



▲성경에 나오는 '시험'은 크게 3가지의 뜻을 갖고 있다.

①유혹temptation, ②고난, 시련suffering, trial ③테스트test이다.

혹자는 이 3가지를 따로 떼서, 서로 다른 것으로 해석하는데,

비록 원어가 서로 다를 때도 있겠지만, 저는 이 세 개가 ‘비슷한 말’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아침=새벽=여명이다. 각 자 조금씩 다른 뜻이지만, 서로 비슷한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경구절에 있어서 ‘시험’이란 단어는 그 어떤 의미로 쓰였든지

유혹이자 고난이며 동시에 테스트’로, 광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옳다고 본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시험temptation도 위 3가지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베드로서에 나오는 시험, 또는 시련suffering, trial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고난이지만, 동시에 (배도의) 유혹이며, 동시에 (승진) 시험인 것이다.



◑1. ‘시험’에 관한 편견 버리기


①잘 되는 일도 시험이다. 

‘시험’이라고 하면, 어려운 일 당하는 것만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험은 일이 잘 풀리는 것이 사실상 더 큰 시험이다.


‘건강한 것은 복, 병든 것은 시험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건강할 때 시험에 더 잘 드는 면도 있다. 자만, 방종, 낭비한다.


곧 어떤(모든) 사건도 시험이 될 수 있다.


②시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수님도 시험당하셨다.

시험이 없어야 좋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신앙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시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사업 관계로 시험당하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③기도해도 시험 당한다.

예수님도 40일동안, 그것도 금식으로 기도하시고 시험 당하셨다.

‘기도 안 했구만...!’ 이 아니다.


물론 기도 안 할 때, 시험에 잘 빠진다.

그래서 예수님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예수님도 40일 금식기도 하시고, 마귀가 찾아왔다.

기도생활해도 시험은 온다. 더 큰 시험이 올 때도 있다.

이 시험을 이김으로써 더 큰 승진, 은혜, 상급을 주기 위한 test이다. 


그러므로 시험 당하는 사람을 무조건 ‘기도 안 해서’로 판단하지 말고,

또한 시험 당할 때, 그것을 승리하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아야 하겠다.


④성령에게 이끌리셔서 시험받는다.

성령의 인도함 받는 사람은 시험 없는 줄로 생각하지만, 그건 잘못이다.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시험이 있었다. 

초대교회가 성령 충만 했지만, 스데반과 야고보가 죽고 핍박을 당하면서

많은 시험을 당했다. (그 고난의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더 큰 축복 받았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교회도 시험 받는다.


그러므로 ‘저 이는 왜 저렇게 고난이 많을꼬?’ 라고 의아할 필요 없다.



◑2. 시험의 유익


▲Test로서의 시험

시험이 무조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험을 보면서, 자기 능력을 확인하게 된다. 합격하기 위한 시험이다.

운동선수는, 자기가 정말 잘하는 것인지,

시합에 나가서 시험해 봐야 알 수 있고, 시합에서 이기면 상도 받는다.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을 통해서, 앞으로 일생을 다 계획을 세우신다.

떡에, 인기에, 권력에 절대 절하지 않기로 다짐하신 것이다.

특별히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까지 다 계획을 세우신다.(아래 설명 나옴)

또 공생애의 전략적인 준비도 마치셨다.


▲시험을 통해 교리가 정립되다

초대교회가 성령 충만했지만 스데반, 야고보죽고 핍박을 당하면서

많은 시험을 당했다.

그 시험과 싸우면서 새로운 기독교 위상을 정립하고,

교리와 신앙을 정립하게 된다.


짧은 시간(몇 십 년)만에 기독교의 교리가 확정되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그 복음, 교리가 지금까지 전래되어 왔다.


지금도 우리가 모든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초대교회를 돌아가는데

거기에 진정한 교회의 모델, 표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초대교회는 많은 핍박과 어려움과 시험이 있었다. 

그 시험 속에서 기독교가 진리로, 교회가 의로 나타나고 증명되었다.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서 확실히 드러났다.

그러므로 시험은 있어야 한다.


시험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 바로 그것이 시험이다. 

개인과 교회도 각종 시험을 끊임없이 거치면서

신앙이 순수해지고,

교리가 정립되어지고,

기독교의 진리와 정통성을 이어나갈 것이다.

시험을 통해서!



◑3. 예수님의 시험


▲예수님 시험의 초점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었다. 십자가를 질 것이냐, 말 것이냐?

십자가 외에 다른 길은 없느냐?

-3가지 마귀의 시험은 궁극적으로 이런 것이었다.

십자가를 택하지 말고, 쉽고 편한 길을 택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작전계획을 확정하신다. 십자가를 지시기로!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기로 결정을 하신 시간이다.

바로 예수님의 일생의 계획표를 세우시는 시간이었다.

여기서 완전한 준비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 생애는 실천해 나가신 것이었다.


▲예수님의 3가지 시험

①첫째 시험 - 돌로 떡을 만들어라

예수님도 주리셨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로 떡 만들어 먹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왜 굶고 있느냐?”의 시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느냐?”의 시험이다.


②둘째 시험 - 절하라 (누가복음에서는 이것이 둘째)

한 번만 절하면, 천하만국을 보여주고, 그것을 준다고 약속했다.

우리가 천하만국을 얻어야 하지만, 마귀와 타협해서 얻으려 하면 안 된다.


예수님은 마귀와 타협을 버리고,

대신에 십자가 지심으로, 결국 천하만국을 얻을 전략을 짜셨다.


③셋째 시험 -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굉장하다 생각하면서 추앙할 것 아닌가!

예수님은 인기주의, 화려한 기적주의 길을 택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조용히, 누룩의 비유, 씨 뿌리는 비유와 같이,

조용하고도 천천히 하나님 나라 일을 이루어 가셨다.


이것은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마귀가 한 말임과 동시에

십자가 달리셨을 때 예수님은 똑같은 유혹의 말씀을 들으셨다.

‘네가 능력이 있으면 내려와 봐라, 그러면 믿겠노라!’ - 이것은 거짓말이다.

표적을 구하는 사람은, 표적만 보고 돌아간다. 여전히 안 믿는다.


기적과 희한한 일을 통해서,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는 없다.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일을 버리고

십자가 지는 일을 택하셨다.


▲마치는 말

①우리는 모두 시험을 당한다.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시험을 이길 때, 천사가 와서 수종든다. 그의 앞길이 환하게 보인다.


그러므로 시험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이여 이 시험을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것이다. 


②시험을 통해서 기독교의 교리, 교회의 순결성

모든 것이 정립된다.


③예수님 시험의 핵심은 ‘십자가’ vs ‘경제, 명예, 권력추구’에 있었다.

오늘날도 우리 성도들에게 시험은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에 손쉬운 ‘떡, 인기, 권세’를 택하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회피하는 것은 시험에 지는 것이다.


<2001년 당시 설교 스크랩, 편집 

 

[주제별 분류] 십자가   http://blog.daum.net/bible3/10790510

                    or 고난의 신학  http://blog.daum.net/bible3/8069077

 

 

◑때려야 커 진다

 

어느 시골에 갔더니, 어떤 할머니가 밭에서 고구마 농사를 하면서 

멀쩡한 고구마를 호미로 긁어서 표면에 상처와 흠집을 내고 있었다.

농사에 경험이 없는 도시인이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다.

그런데, 그렇게 호미로 고구마 알(씨)에 긁어서 상처를 내야

나중에 '고구마 알이 커진다'고 한다.

 

강원도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할머니는 애꿎게도 멀쩡한 호박 열매를 몽둥이로 때리고 계셨다.

"왜 그러세요, 할머니?"

"호박은 때려야 커지는거여!" 

 

왕고구마, 왕호박은 그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긁어서 상처를 내고, 사정없이 때려서 멍을 만들어야 커지는 것이다.

자연의 원리가 그렇다... 

 

 

 

◑“시험”이란 말의 번역상의 문제



“유혹”(temptation, 페이라스모스, 한글성경에는 주로 ‘시험’으로 번역)이란 말은

신약성경에 약 21회 나타난다.

그 중 20회의 경우는 trial(시련), test(테스트), ordeal(고난) 등의 의미를 갖는다.


반면에 1회의 경우에 “죄에의 유혹”(temptation to sin)을 의미하는데, 딤전 6:9이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따라서 광야에서 예수님이 마귀에게 당하신 것은 temptation(유혹)보다는,

test(테스트), ordeal(고난)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유혹을 받은 자도 되겠지만,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 성경엔 ‘유혹’대신에 ‘시험’으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잘 번역한 것임)

<요아킴 예레미아스 「신약신학」새순출판사, p. 119.


▶사람이 감당할 “시험”의 의미

“사람이 감당할 시험(페이라스모스)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 영어성경은 “시험(페이라스모스)”을 “유혹”(temptation)으로 번역하고 있다.

반면 한글성경은 “시험”(고난의 뉘앙스)으로 번역했다.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주장이 맞다면, 한글 성경이 번역이 잘 된 것이다.

문맥상 고전 10:13절 말씀은 유혹(temptation)도 되지만,

시련(ordeal)이 더 가깝다.


[주제별 분류] 고난의 신학 http://blog.daum.net/bible3/1096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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