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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치심 출9:8-12 2001.05.06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할수록 재앙이 점점 더 깊어집니다.
다섯 번째 재앙은 짐승에게만 악질이 일어났는데
이제는 사람 여섯 번째로 몸에 까지 독종이 일어 나는 것입니다.
짐승에게도 독종이 일어나고 사람의 몸에도 악한종기가 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시기를
풀무에서 재 두 웅큼을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느 풀무라고 하지는 않으셨지만 아마 그 당시에 유명한 풀무가 있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러한 풀무를 어떤 신학자는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그러한 제단의 풀무였을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 모세가 그 풀무의 재를 두 웅큼 가져다가 바로가 보는 앞에서 하늘에 날리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풀무의 재가 오히려 자기들의 짐승과 몸을 치는 독종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한다든지 신을 섬긴다고 할 때에는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우상을 섬기는 제단의 재를 하늘에 날리니
애굽 온 땅의 짐승과 사람에게 붙어서 독한 종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기가 바로의 술사에게 까지 발하게 된 것입니다.
고대의 술사란 마술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병도 치료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오지 마을에 들어가면 무당들이 치료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배가 아프다 그러면 배위에 나뭇잎같은 것을 흔들어 가면서 주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의 술사들 자신이 독종이 발하였으니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할 수가 없을텐데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성을 저는 독종(毒種)이라고 봅니다.
‘독한 종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섯 번째 재앙의 독종(毒腫)은 ‘독한 종기’ 이지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독종이란, 독한 종자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독종이면 지금 가축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까지 침을 당하면서도
항복을 하지 않는 완악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란 이정도로 독하고 질긴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 항복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독종정도는 견딜만 한 모양입니다.
온 몸이 침을 당한다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6:2절에도 보시면 일곱 대접 재앙중에 첫째 대접을 쏟으니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고 합니다.
주님을 반역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 즉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독한 헌데가, 독종이 나는 것입니다.
지금 애굽의 백성들이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으로 인하여 독종의 재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앙을 통하여서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계시록 16:8-11절 ‘네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인간이란 이 정도로 독종들입니다.
하나님의 재앙을 받고 있으면서도 항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요일 저녁에 <100분 토론>에서 보건 복지부 장관과 의사협회 회장, 약사협회 회장,
시민단체 대표가 나와서 토론 하였습니다.
사람이 아프고 병들기에 그러한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관이 하는 말이 국민이 아픈데
병원비 때문에 병원에 못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결국 자기 밥그릇 챙기는 것입니다.
사회자인 유시민씨가 끝에 한마디 하기를 "단체는 양심이 없다"라는 말을 합디다.
단체란 자기들의 집단이기심이 있기에 양심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단체란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결국 개인도 양심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고 병들면 다 겁을 냅니다. 많이 아프면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죽음이 어떻게 온 것입니까? 죄로 인하여 온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음이 왔는데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죽음을 고칠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의사가 죽음을 고칠수가 있습니까?
죽음은 인간이 해결을 못하니, 사는 동안 내몸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사가 자기 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자기 몸이 우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마다 몸에 좋다면
무엇을 마다 합니까? 온갖 보약에다 보신탕에다 천년기념물까지 다잡아 먹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처음에 지음을 받을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원래의 흙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아담이란 뜻이 흙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것은
단지 죽어서 사람의 몸이 흙으로 분해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아담, 즉 흙의 형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죄 이후에 태어난 인간은 모두가 흙인 것입니다.
창세기 6: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육체가 된 것입니다.
물론 숨을 쉬고 생각하고 문명을 이루어가면서 산다고 하여도
결국은 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들의 관심사가 결국 자기의 몸을 우상화하고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오래살까? 그래서 불사약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오래 사는 것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의 몸을 어떻게 아름답게 하는가 하는 문제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 제일 장사 잘되는 병원이 성형외과입니다.
경제가 어려운데 어떻게 성형외과가 잘되는냐 하면
남자도 외모가 잘 생겨야 취직도 잘된다고 남자들까지 성형수술을 하니
병원이 더 잘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러한 몸을 육체라 겉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하시겠지만 성경은 영혼과 육체라고 분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것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입니다.
영은 순수하고 육체는 더럽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철학자가 플라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느냐 아니냐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예수님안에 있느냐 아니냐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안에 있지 않으면 육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속과 출처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기에 모든 사람이 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짐승보다 못하여 진 것입니다.
만약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파괴하실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골1:15-16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권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믈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고"
그러므로 모든 창조물이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흙에 속한 형상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입으리라"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에 관심을 두기 보다
내가 감각할수 있는 이몸에만 관심을 가지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육체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직도 옛 사람을 그리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영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있기에 우리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기에
창기와 합할수없는 몸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몸이라는 의미에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관심사가 내 몸의 편리와 유익만을 생각한다면
아직도 우리가 옛사람, 겉사람, 흙에 속한 것을 그리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반드시 새 몸을 입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옛 사람, 후패하는 겉사람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죄악의 쾌락을 좇아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자신의 옛 몸, 아담 아래 있는 몸으로 선행을 행할수 있고
그것으로 구원을 이룰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흙에 속한 형상을 입고 있는 증거들입니다.
오직 자기의 배를 섬기고 자기의 쾌락을 위하여 살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선한 행실을 통하여 구원에 이를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몸을 우상으로 여기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자신의 몸의 행실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디도서 3:5절을 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거듭나게 하심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거듭난 자는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몸은 이제 무엇을 위하는가 하면,
빌립보서 1:29절에서는 자신이 살든지 죽든지 자기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자기의 몸을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몸으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욥기서를 봅니다.
욥2:1-10절, 각자 찾아보십시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자랑하자, 사단이 재산을 치면 그렇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몸은 손대지 말고 허락하시니 하루 아침에 재산과 자녀가 다 날아가지만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합니다.
그러자 사단은 이번에는 욥의 몸을 치라고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원망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온 몸에 정말 독종보다 더한 악창(惡瘡)이 난 것입니다.
기와 조각으로 긁고 있는데 아내는 그런 하나님 욕이나 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렇게 심하게 몸이 침을 받았는데도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재앙도 받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가 몸의 침을 받고서도 항복하지 않는 것과 비교해서 보면,
욥이 몸이 침을 당하여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도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혹시 몸이 약하고 병이 들었습니까?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약한 몸을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로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와 같이 강퍅한 자가 아니라 하님의 긍휼을 입은 자라면
우리의 몸이 건강하든지 약하든지 간에 우리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어떤 소망이 있는 것입니까?
빌3:17~21절을 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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