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아들 만들기 히12:7 출처:「하나님의 열심」 박영선 목사님 저,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는 구절은
오해하기 참 좋게 되어 있습니다. 히12:7
‘너희가 참음은(오래 참고 인내했더니 그 결과 )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예수 믿는 게 어떤 때 보면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은 생각을
안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곤 합니다.
오늘 그 문제가 여기서 다 풀렸으면 합니다.
이 ‘징계’라는 말은
번역을 잘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해를 사게 되었습니다.
‘징계’의 원문을 직역하면 ‘아들 만들기’입니다.
그럼 풀어서 성경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참음은 ‘아들로 만들어지기 위함’이라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아들로 훈련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아들로 만들어지는 훈련은 다 받는 것이거늘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아들로 훈련하여도’ 공경하였거든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히12:7~9
그렇습니다.
‘징계’란 말은 ‘아들 만들기’입니다.
‘아들 만들기’ 라는 것은
‘자식을 낳기만 하면 저절로 다 만들어다’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낳았으면 그때 부터 시작입니다. 이제 잘 키워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중생해서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도
‘징계’, 즉 ‘아들 만들기’를 통해 끊임없이 다듬어져야 합니다.
영어로 번역한 discipline(디서플린)은 ‘훈육, 징계’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들을 만들되, 엄하게 다룬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출처
◑아들 만들기, 비명 나오는 것
신앙 훈련(아들 만들기)이 힘들어서 울고, 비명 막 지르는 사람을
너무 무시하지 말라는 주제의 글.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이 있습니다.
빅토르 프랭클이라는 유대인 정신과 의사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는 살아난 몇 사람 중에 끼이게 되었고,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책으로 썼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이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프랭클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어려운 곳에서 무엇을 근거로 해서 이겨 냈는가,
신앙이었는가, 가족의 사랑이었는가,
나치에 대한 증오심이었는가?’
박사의 대답은 이 한 마디였습니다.
“눈물과 한숨으로 이겨냈습니다!”
(눈물과 한숨이 없었던 사람은, 자포자기해서, 중도에 다 죽었다는 뜻)
▲이 대답은 참으로 음미할 만 합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는 사탄의 계교 중에서
가장 성공을 잘 하는 계교가 이것입니다.
‘비명이 나오면, 자기 스스로 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비명을 지르고 우는 것은
타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타협을 하려면, 울 필요가 없고 비명을 지를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게 하는데
주사 안 맞고 병원 견학만 가면, 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사를 맞으니까 우는 것입니다. 아프니까요.
우리가 당할 훈련이 아프지 않는 것이라고 공상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인내하고 신앙만 가진다면
당장 이길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사실은 무지무지하게 아픕니다.
비명이 저절로 잇새에서 새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은 이 훈련(징계와 비슷한 말)을 받겠다는
신앙에서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오는 비명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한숨도 없고 갈등도 없고
고민도 없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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