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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612 토요일에 Max Lucado

LNCK 2007. 3. 30. 11:13
◈토요일에                 요20:1~3           Max Lucado

                                                        on Saturday by Max Lucado


아직 큰 믿음이 없더라도, 삶에 아무 희망이 안 보이더라도,

완전히 끊고 떠나버리지 말고,

근처에서 지체하며 어슬렁거리기라도 하다보면 좋은 때가 온다는 주제의 글.

 

그런데 우리 지상의 삶 일생 전체가... '토요일'의 삶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일생동안 어슬렁거려야 할지도 모른다...    

 


요한은 그날 예수님이 못 박히신 그 금요일에, 그 모든 일의 돌아가는 정황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자세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더욱이 이틀이 지나 주일이 되면, 오늘 금요일의 참담한 비극이

놀라운 승리로 바뀌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었다.


후에 그가 고백한 말을 들어보면,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요20:9

 

그래서 요한이 금요일과 주일 사이, 토요일에 과연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데 성경에는 거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이란, 주일 아침이 되었을 때까지,

요한은 멀리 달아나지 않고, 그 근처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일 아침,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다가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놀라서

집(늘 모이던 장소)으로 달려왔을 때, (베드로와 함께) 요한이 거기 있었다.

누군가 지금 도와줄 손이 필요하다고 찾았을 때,

요한이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20:1~3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다. 선생님의 몸은 아무 생기가 없이 죽어서 누워있다.

그 분이 무덤에 놓여질 때, 요한은, 자기의 가장 가까운 친구요,

자기의 소중한 장래future까지도... 모두 함께 매장되고 말았다.

돌문은 굳게 닫혔고,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 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한은 거기를 떠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가 부활을 기대했었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입술이 영원히 닫혀져 있을 것이요,

예수님의 손이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요20:9에서 보았듯이,

그는 주일 아침 무덤에 달려와서 빈 것을 본 그 시각 까지도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부활의 기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어디론가 떠나지 않았을까?

우리 생각에는, 그 정황은 그가 어디론가 떠나야할 상황이다.

예수님을 못 박은 자들이, 그 제자들을 뒤쫓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해 주었는가?

(보통 범인을 잡으면, 공범도 같이 잡는다.)


더욱이 군중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대대적으로 환호했다.

그렇다면 종교지도자들은 그 일을 더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런 위급한 정황에서, 토요일에, 왜 요한은 그 도시를 떠나지 않았을까?

장례도 끝나고 돌문도 닫혔는데... 참 의문스럽다.


실제적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 그는 예수님의 모친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고,

또한 그는 어쩌면 쉽게 떠날 수 있는 마땅한 연고지가 없었나보다.

아니면 돈이 없었거나, 멀리 갈 만큼 몸이 안 좋았든지...

어쩌면 위의 이유가 모두 다 해당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떠남을 지체했으리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다른 제자들보다 그는 예수님의 더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예수님께 안겨있었고, ‘사랑하시던 제자’로 통했다. 요13:23, 20:2

 

다른 사람에게 예수는 선생이요, 이스라엘의 희망이요, 기적을 행하는 자였지만,

요한에게는 달랐다. 매우 가까운 친구였다.

우리는 매우 가까운 친구가 죽었을 때,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아마 요한이 계속 그 무덤 근처에서 지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예수님 근처에 항상 얼쩡거리는 것은 요한의 생활습관이었다.

다락방에서도 그는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다. 요13:23 ('최후의 만찬' 그림 참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그는 돌 던질 만 한 거리에 있었고, 눅22:41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그는 예수님 바로 발밑에 있었다. 요19:27

 

그는 막달라 마리아가 시신이 없어졌다고 달려와서 전하는 소리를 즉시 들을 만큼

무덤 가까이에서 지내고 있었다. 어디에 멀리 다른 데 가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완전히 이해했는가? - 아직 아니다.

     그가 예수님이 하신 일(십자가, 장례)을 보고 기뻐서 머물렀는가? -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예수님을 멀리 떠났는가? - 아니다.


 

이제 나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내가 만약 요한의 입장에 처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처신할까?

그 토요일에, 나는 요한처럼 과연 그 근처에 어슬렁거렸을까?


오늘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어제는 참담한 비극이 있었고, 내일은 영광스런 부활이 올 것인데

지금 나는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캄캄한 토요일에 살고 있다.

그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주님을 멀리 떠나버릴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주님 근처에 어슬렁거릴 것인가? 요한처럼...


요한은 아직 비록 견고한 믿음은 없었지만,

그는 지체하며 어슬렁거리는 쪽을 택했다.

갑갑하고 답답한 토요일에, 어디론가 멀리 훌쩍 떠나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그 근처에 계속 얼쩡거렸기 때문에,

그는 주일날 아침, 영광스런 기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요20:19, 20:8참조   ▣ 크리스천 리빙     



◈On Saturday


by Max Lucado


John didn’t know on that Friday what you and I now know.

He didn’t know that Friday’s tragedy would be Sunday’s triumph.

John would later confess that he “did not yet understand from the Scriptures that

Jesus must rise from the dead” (John 20:9).

That’s why what he did on Saturday is so important.

We don’t know anything about this day; we have no passage to read,

no knowledge to share. All we know is this: When Sunday came, John was still present.

When Mary Magdalene came looking for him, she found him.

Jesus was dead. The Master’s body was lifeless. John’s friend and future were buried.

But John had not left. Why? Was he waiting for the resurrection? No.

As far as he knew, the lips were forever silent and the hands forever still.

He wasn’t expecting a Sunday surprise. Then why was he here?

You’d think he would have left.

Who was to say that the men who crucified Christ wouldn’t come after him?

The crowds were pleased with one crucifixion;

the religious leaders might have called for more. Why didn’t John get out of town?

Perhaps the answer was pragmatic; perhaps he was taking care of Jesus’ mother.

Or perhaps he didn’t have anywhere else to go.

Could be he didn’t have any money or energy or direction … or all of the above.

Or maybe he lingered because he loved Jesus.

To others, Jesus was a miracle worker. To others, Jesus was a master teacher.

To others, Jesus was the hope of Israel. But to John, he was all of these and more.

To John, Jesus was a friend.

You don't abandon a friend-not even when that friend is dead. John stayed close to Jesus.

He had a habit of doing this. He was close to Jesus in the upper room.

He was close to Jesus in the Garden of Gethsemane.

He was at the foot of the cross at the crucifixion,

and he was a quick walk from the tomb at the burial.

Did he understand Jesus? No.

Was he glad Jesus did what he did? No.

But did he leave Jesus? No.

What about you? When you’re in John’s position, what do you do?

When it’s Saturday in your life, how do you react?

When you are somewhere between yesterday’s tragedy and tomorrow’s triumph,

what do you do? Do you leave God—or do you linger near him?

John chose to linger. And because he lingered on Saturday,

he was around on Sunday to see the mira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