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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615 좋은 면을 보자

LNCK 2007. 3. 31. 23:59
 

◈좋은 면을 보자 창15:5



◑언론보도 방향에 따라 민심이 달라진다.


아래 글은 2002.05.17. 중앙일보에서 스크랩 한 것인데,

언론이 보도하는 방향에 따라, 국민 여론이 거기에 따라가는 현실을 보여준다.



프랑스 언론에서 범죄(보도)가 사라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파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FN)당수의 돌풍을 만들어낸 주역인

‘범죄’(보도)가 선거가 끝나자 자취를 감췄다. 적어도 TV 뉴스에서는 그렇다.


대선 1차 투표 전만 해도 프랑스 TV의 저녁뉴스는

으레 폭력과 강. 절도 등 범죄 소식으로 시작됐다.


방송사 간에 경쟁이라도 벌이듯 불타는 자동차나 깨진 은행 유리창 등의 모습이

브라운관을 메웠다. 하지만 요즘은 TV 뉴스에서 그런 장면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같은 현상은 통계수치로도 드러난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1차투표 전 20일 동안

프랑스 3대 방송의 범죄관련 보도건수는 모두 205차례였다.

하지만 1차투표 후 20일 동안의 범죄 보도는 1백8건으로 줄었다.


범죄 소탕을 호언한 르펜의 기세에 놀라 프랑스의 범법자들이 꼬리를 내린 걸까?

물론 그건 아니다. 프랑스의 범죄율은 대선 전후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여과되지 않거나 과장된 범죄 보도가 르펜 돌풍에 일조했다"는 호된 비판을 받은

프랑스 TV들이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보도건수만 준 게 아니라 내용도 달라졌다. 섬뜩한 범죄현장 대신

정부의 대책이나 마을 주민들의 방범활동 등이 주류를 이룬다.


이처럼 프랑스 TV들은 최근 르펜 충격에 반성하는 태도가 역력하다.

지난달 30일 열린 국영방송 프랑스2의 보도국 총회에서는

"뉴스가 지나치게 사회불안을 조성했다"는 자체 비판이 쏟아졌다.


프랑스3 TV도 이번 주 중 자신들의 보도태도를 돌아보는 총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다만 프랑스 최대 방송사로 "선정적인 범죄보도에 앞장선다"는 비판을 받았던

민영 TF1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현실을 보도했을 뿐"이라는 태도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 사회부 기자는

"우리는 무뇌아처럼 아무 비판의식도 없이 상부의 지시에 따랐다"고 자탄했다.


미디어 민주주의 시대에도 미디어에 의한 여론 오도는 가능하다.

르펜 돌풍에서 보듯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프랑스 TV들이 사회의 올바른 거울로 거듭나

프랑스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훈범 특파원, 중앙일보 2002.05.17




◑이성적 보도가 더 확대되어야...


우리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좋은 약보다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답다.


특별히 신문잡지에 글을 써서 올리는 언론인들은

더 큰 주의가 필요하다.


비판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비판할 때 감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정말 비판을 하려면 감정적인 언어보다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비판하려는 내용은 없어지고, 감정의 찌꺼기만 남게 된다.


신문을 읽는 제삼자가 불쾌할 때가 종종 있다.

전달하려는 내용은 사라지고, 문제의 해결은커녕,

문제가 더 증폭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신문 칼럼, 정당 논평 등은 자제해야 한다.

(그 신문을 읽는 온 국민이 다 신문의 논설을 따라서 비판자가 되기 싶다.

그러나 금년 들어 많이 좋아지고 있음이 느껴짐.

우리 사회를 보다 밝게 만드려는 언론인들의 사명감과 남다른 노고에 감사드리며...)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있으면, 미움과 분노의 말이 나온다.

마음속에 사랑과 감사가 있으면, 사랑과 감사의 말이 나온다.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님 설교 06.09.24



*외국어를 몰라서 그렇지만, 가끔 독일어나 불어, 일본어 뉴스를 볼 때가 있다.

무슨 범죄 사실을 보도하는데, 리포터는 너무 이성적이다. ‘사실’만 그대로 전달한다.

거기에 자기 ‘감정’을 넣어서 판단하는 것을 전혀 느낄 수가 없는 적이 많다.


그런데 한국 방송에서 어떤 리포터가 보도를 하는데,

어쩌다 드물게 “쯧쯧”하는 마음으로 자기 감정이 섞인 보도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상식적으로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믿음은 눈이 열리는 것


무엇을 보고 사느냐? - 이것이 사람의 가치관, 믿음을 말해준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다.

이전에 사소한 세상일에 집착하던 사람이, 이제는 큰일을 바라보게 된다.

가까운 곳만 보고 살던 사람이 먼 곳, 저 하늘까지 바라보게 된다.

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한번도 보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를 보게 만든다.


“너는 너 있는 곳에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13:14 

- 아브라함은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다.


바울은 이전에 개, 지옥의 불쏘시게 정도로 여기던 이방인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새로운 꿈이 생기는 것이다.


마포삼열 박사는 미국의 고위 공직으로 초청받았으나 고사하고

관직의 명예보다는 조선이 눈에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조선예수교를 세웠다. 


루터와 캘빈은 새로운 교회에 대한 꿈을 꾸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을 보았고, 윌리엄 캐리는 인도를 보았다.


구소련은 알레스카를 얼음덩어리로 보았지만, 미국은 그것을 보물창고로 보았다.

그래서 단돈 720만 불에 미국 본토의 1/5이 넘는 알래스카를 헐값에 사들였다.

지금도 군사기지로 쓰일 뿐만 아니라

석유와 지하자원이 무궁무진하게 숨겨져 있다.


LA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들은 수백 km 밖에서 물을 끌어와서 나무를 심고

오늘날 로스앤젤레스라는 대도시를 건설했다.


롯은 눈을 들어 소돔과 고모라 - 멸망의 땅을 바라보았다.  창13:10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창15:5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다. 창13:14 

오늘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인터넷 설교 2002년



◑인생 싸움은 눈 싸움


http://blog.daum.net/ygbhygbh/7508353

 

 

 

[주제별 분류] 기독교 사상 http://blog.daum.net/bible3/1136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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