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에 초점 맞춰야 하는 이유 마7:21
◑‘구원’ 너무 쉽게 보면 ... 현세적 복을 강조하게 된다.
▲나는 어디인가?
*매우 쉽게 보는 사람 - 지옥도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지옥은 ‘상징’이다.
천국에 못 가면 연옥에라도 간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원하신다.
*쉽게 보는 사람 - 믿기만 하면 무조건 천국에 간다. 교인은 대부분 간다.
요3:16절 믿고, 영접기도만 하면 다 구원받는다고 여긴다.
*꽤 어렵게 보는 사람 - 믿어도 확실히 거듭나야 천국에 간다.
좁은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믿어도 순종해야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구원받는 무리는 소수라는 주장
구약에도 보면, 거의 다수는 타락하고 주님을 배반한 역사이다.
노아의 홍수에도 소수의 사람만 구원 받았고,
다수의 사람들은 우상숭배에 빠졌고,
오직 ‘남은 자’the remnant만 구원 얻는다고 했다. 롬9:27
예수님도 멸망 받을 사람은 많다고 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7:13
▲구원받는 것을 쉽게 여길 때... 현세적 메시지를 전한다. ★★
자기 눈에 성도들이 80~90% 믿어서 구원받은 것처럼 보인다.
‘자기계발’, ‘성공주의’ 이런 현세적 유익을 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믿기만 하면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전제가 있으니까,
더 이상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지겹게 반복해서 전할 필요 없고,
지금 현실적으로 성도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메시지를 주로 전하게 된다.
▲구원받는 것, 거듭나는 것을 어렵게 볼 때... (강경파)
그런데 반대로 구원받는 것을 매우 어렵게 여기는 목사님도 계신다.
자기 눈에는 성도들이 50~90% 거듭나지 않게 보인다.
심하면 다른 목사, 장로, 권사들도 대부분 거듭나지 못했다고 외치는 분도 있다.
그렇게 곧이곧대로 외치면 큰 싸움 일어난다.
사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 영적인 사람이 대충 알아도...
그러므로 남의 구원/거듭남 여부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혹시 옳다해도 덕을 세우지는 않는다.
어떤 목사님은 몇 년 동안 주일 낮 설교 주제는 항상 ‘거듭남’이었다.
성경 어느 본문을 택해도, 주제는 ‘거듭남’과 관련지어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다.
(극단적이지만, 그만큼 성도들이 거듭나지 못했다고 판단, 늘 안타까워서...)
▲구원받는 것, 거듭나는 것을 조금 어렵게 볼 때... (온건파)
어떤 분은, 자기 교회 성도 대부분이 아직 확실히 거듭 못 났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것을 속으로 알고만 있지, 그렇게 침 튀기며 강조하진 않는다.
자기 교회 성도들이 상당수 거듭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면,
거기에 대한 경각심이 있다면,
그 주제는...항상 영생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현세적인 메시지를 전하되(교육도 해야하니까), 그것이 주류가 될 수는 없다.
요3:16의 '믿음'은 항상 요3:1~15절의 '거듭남'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믿음=거듭남=쉽지 않다는 뜻)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자연인의 상태에서,
사전 지식, 책에서 읽은 내용, 이런 것 다 내려놓고
사복음서를 음미하며 읽어보면 된다.
그 때 예수님의 말씀이 ‘좀 이상하다. 비현실적이다’ 라고 느껴질 때가 많은데
현실적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그렇다.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다 이해된다.
가톨릭 교회는 예배 때 성경을 길게, 한 두 장 정도 낭독한다고 한다.
개신교회는 전통적으로 성경을 짧게 읽고, 그것을 해석한 설교에 주안점을 둔다.
그런데 예배 때 성경을 길게 읽는 것은, '말씀 선포, 말씀 자체를 들어라' 이다.
(그들은 말씀은 '선포'가 그 주요 목적이라고 믿는다. 개인큐티 목적보다)
개신교회는 전통적으로 말씀을 잘 해석한 설교에 강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설교가 '현세적 메시지'로만 자의적으로 해석되면
차라리 성경말씀만 그대로 선포하고, 그것을 그대로 듣는 것이 더 낫지는 않을까?
▲구원에 대한 이해의 차이/신학의 차이
*어떤 분은, 한 번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그 구원이 영원히 견고하다고 믿고, 그대로 가르친다.
내가 주님 손에 붙잡혔으니, 주님의 전능한 손이 천국까지 인도해 주신다고 믿는다.
내 손이 아니라 주님의 손이니까, (자기 구원에) 변동이 없는 것이다.
이 ‘견인교리’(주님이 천국까지 끌어주신다는 뜻)는,
원래 좋은 의도(구원에 대해 너무 불안해 떨지 말라)로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이것이 ‘나태’의 근거구절로 악용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어떤 분은, (교파의 차이에 따라)
구원을 한 번 받았지만, 날마다 계속 이루어(완성해)가는데 강조점을 둔다.
한 번 구원받았다고 안심하지 말고,
날마다 그 구원을 유지하고,
더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 분도 늘 구원(의 유지, 성화)에 관해 설교하니까,
현세적 복에 관해서는 많이 강조할 시간이 없다.
◑육적인 성도와 거듭난 성도
그리스도인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분리할 수 있는데,
'거듭나서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과
아직 '거듭나지 못해서 여전히 육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그가 아직 거듭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요3:5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체로 1:9 정도로 압도적으로
육적인 그리스도인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인용, 교회마다 다를 것임)
(자기가 거듭났다고 99% 확신하는 사람은 거듭났습니다. 그 시기도 압니다.
그런데 긴가 민가 어렴풋하다는 사람은... 확실히는 모르겠다는 사람은
아직 거듭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단, 여기에는 많은 신학적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지식'으로 이해해서 깨닫기 보다는,
'영적'으로 깨달아지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로 거듭난 사람과 불로 거듭난 사람이 있다.
물로 거듭남이란 물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신앙고백을 하면 의례적으로 세례를 받게 되며, 하나님 자녀가 된다.
이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보증(인, 워런티)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불세례(성령세례, 거듭남)가 있는데,
이 과정을 거칠 수 있어야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구원의 인(보증)을 친 사람이 된다.
(견인교리가 적용되는 사람, 한 번 거듭나면 좀처럼 완전히 안 자빠짐)
이 글의 주제는,
구주로 영접하고 물세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만족하면 안 된다.
반드시 영혼이 거듭나고, 불세례, 성령세례를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거듭나기 전에는, 거듭남에 대해서 몇 년동안 설교를 듣고,
목사님과 개인적으로 몇 시간씩 일대일 성경공부를 해도 잘 깨닫지 못한다.
그것은 지식으로 공부해서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어렴풋이는 알겠지만...
자기는 요3:16, 5:24, 롬1:17 등을 통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구절로 사람은 ‘지식적 동의’에 머무른다. 거듭나지 않을 가능성 높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성령의 빛을 비춰주시고, 그는 참된 회개에 이르게 된다.
자기는 너무 비참한 죄인이며, 영적 소경이었으며,
구세주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어렵게) 거듭난 사람은, 그 중요성을 철저히 인식하고 많이 전파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거듭나야 한다고 종종 강조한다.
이제 그는 - 영원 천국에 목적을 두고 남은 생애를 살아간다.
◑믿어도 천국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 (하나님만 아시지만...)
*믿으면서 우상숭배도 같이 하는 사람은... 못 갈 수 있다. 못 갈 가능성이 크다.
*믿다가 타락해서 세상으로 간 사람은... 못 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믿어도 회개 안 하면... 천국에 못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지속적으로 죄를 지으면서도, 회개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때 그렇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1:8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부를 선한 목적으로 나누지 않을 때 (믿어도) 그렇게 되기 쉽다.
진짜 믿으면 그렇게 안 산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고 했다. 마7:21
*달란트를 받았으나, 그것을 땅에 파묻어두고, 그것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슬피 울며 이를 갈았다고 했다. 천국이라면 이를 갈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은 불신자라기보다는, 하나님을 한 때 믿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마25:30
▲마치는 말
위에서 언급한 구원, 거듭남의 문제는 (하나로 보느냐, 두 단계로 보느냐)
사실 신학적 견해가 모두가 일치하지 않는다.
일단 하나님만 아신다고 전제한 후에, 지루한 논쟁은 피해야 한다.
요지는,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즉 쉽게/어렵게 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매우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설교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양떼들의 영원한 운명이 달라진다고 본다.
쉽게 보는 사람은, 어렵게 보는 사람을 ‘독선적이다’라고 비판할 수 있고,
어렵게 보는 사람은, 쉽게 보는 사람을 ‘위험하다’라고 비판할 수 있다.
겸손히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통해
내 주변에 만나는 많은 양떼들이 천국 영생을 얻기를 늘 초점 삼아야 하겠다.
거듭남은 자기가 의지적 결단으로 믿고, 원해야 되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이 위에서 성령의 조명, 세례를 부어 주셔야 된다.
그제야 자기 눈에 비늘이 벗겨진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은, 늘 자기의 구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죄를 더욱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본 받는 삶을 살려고 계속 노력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큰 교회가 좋기도 하지만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서 많은 성도 대부분 다 구원받으면 하나님께 큰 상급을 받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많이 구원받지 못하면, 선생된 자에게 큰 책임이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지윤
▲관련글 : 남연의 권사의 사후 체험
저는 이런 체험을 <성경을 넘어가는 설명>으로 보고 강조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체험자가 '한 번 정도' 체험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바울의 삼층천 체험처럼)
그런데 수 차례, 수 년에 걸쳐 계속 천국, 지옥을 보고 경험한다는 분은,
맨 처음에는 바로 보았을지 모르나, 계속 보는 것은 사탄에 이용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넘어가면 안 됩니다. 계22:18
한 번 체험은, 비록 성경처럼 완벽하진 않고, 그 체험 자체에도 어딘가 부분적인 오류가
있겠지만, 그런 체험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신비체험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편집자.
▲관련글 : 임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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