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심각성, 예방책, 처방책 요일2:1~2
◐1. 죄의 심각성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통해서 ‘sin is real and serious '죄는 진짜고 심각하다’
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요한일서의 상반된 두 주제 - ‘죄’와 ‘사랑’
요한일서에는 죄와 사랑, 이 두 상반된 주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반복해서 나온다.
성도는 이 땅에 살 때, 죄의 문제를 원칙적으로, 근본적으로 해결했지만
죄를 완전히 정복하고 승리하는 그 날이 앞으로 올 것을 믿지만,
그 날이 될 때까지 우리는 아직 죄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일서의 저자 사도요한은, 아니 성경의 저자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문제를 똑바로 보고,
그것을 성경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성경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를 원하신다.
▲1. 죄의 현실성 sin is real
죄는 진짜 존재한다. 가상이 아니다. 신학적인 개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가장 많이 부닥치는 것은 ‘죄의 문제’이다.
일주일동안 우리는 죄와 씨름한다.
죄는 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가까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
▲2. 죄는 심각하다 sin is serious
오늘날 세상은 죄의 심각성을 자꾸 고의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동성애’는 죄가 아니고 경향성이라고 한다.
사람이 훔치는 것은, 죄가 아니라 환경이 그를 가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을 잘 시키고 좋은 정치를 펴면, 훔치는 죄는 해결될 것으로 여긴다.
(그러면 물론 빈도는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죄는 존재할 것이다.)
▲신앙이 성숙할수록 죄를 더 심각하게 본다.
그런데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성숙하게 된 사람은,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주님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죄의 현실성과 죄의 심각성에 대해서 더욱 확실하게 보게 된다.
①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When a man is getting better, he understands more and more clearly
that the evil is still left in him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점점 더 성숙할 때, 자기 안에 잔재로 남아있는 죄를
더욱 더 선명하게 보게 된다.
When a man is getting worse, he understand that
his own veil(evil과 스펠링비교) is left in him
사람이 점점 더 악해지고 신앙적으로 퇴보할 때,
자기 죄의 문제가 점점 더 안 보이게 된다. 점점 더 베일에 가려진다.
자기가 자기 영적성숙도를 측정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자기의 죄에 대한 심각성 정도’를 정직하게 보면 된다.
② 그래서 영적으로 씨름하던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1~24
▲무지함 때문에 죄가 더 심각해진다.
한국은 건강과 질병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고 후진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별로 깊지도 않은 우물물을 소독도 하지 않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마시며 살았다.
병균이 눈에 안 보였고, 우물물이 깨끗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오염된 지하수로 인해 많은 질병에 노출되면서도
그 원인을 잘 알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민도가 향상되면서, 물을 끓여먹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물을 소독해서 마시기 시작했다.
<건강은 병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병에 대한 더 깊은 이해 속에서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과 사이에 가장 크게 가로막고 있는 것은 죄이다.
영적인 성숙과 거룩은,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모르는 척하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더 확실한 이해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공관복음, 로마서, 요한일서를 읽어보시라!
성경에 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인간이 자기 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없는가,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죄의 문제를 인식시키고, 죄의 해결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예수님은 죄에 대해 예방책이시고, 처방책이 되시는데...
◑2. 죄의 예방책 - 말씀
▲성경 읽으면, 죄에 대해 예방이 된다.
요한이 요한일서를 쓴 이유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요한일서)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일2:1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예방은 말씀이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죄의 바이러스가 만연된 세상에 살고 있다. 거기에 노출되어 있다.
먼저 우리는 죄를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예방책이란... 성경을 매일 읽는 것이다.
▲죄를 알아야 죄를 조심한다.
‘죄’란 원래 의미로 ‘과녁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먼저 과녁을 뭔지를 알아야, 그것에 벗어났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그 과녁, 그 기준standard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그 과녁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다.
말씀이 우리를 범죄 치 않게 예방해 주며,
혹시 범죄 하였을지라도 즉시 회개해서 다시 청결해지도록 인도해준다.
①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엡5:26~27
②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성경을 읽을 때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 받는다.
③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119:9
저는 목사이지만, 아내보다 성경을 못 읽을 때가 종종 있다.
(제 아내를 자랑하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부부로 같이 사는데, 아내가 죄에 대해 더 민감한 것을 본다.
무슨 예민한 안테나 또는 센서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바로... 날마다 성경을 읽으니까 그런 것 같다.
▲성경을 안 읽을 수 없는 이유
*죄의 심각성을 철저히 깨달으신다면,
**성경이 죄의 예방책임을 인식하신다면,
***또한 성경이 죄의 처방책임을 인식하신다면,
우리는 성경을 매일 안 읽을 수 없다.
바꾸어 말해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니까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읽은 것이 중요하다
비타민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몇 가지 질병에서 예방할 수 있다.
비타민은 매일 복용해야 한다. 일주일치, 한 달 치를 한꺼번에 먹으면 소용없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같은 예로, 우리 몸도 매일 씻으면 좋다. 매일 씻는 사람은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 목욕하는 사람보다 더 청결하고, 더 건강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말씀으로 매일 씻으면 좋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씻는 사람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3. 죄의 처방(해결)책 -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죄를 안 지으면 좋지만,
우리가 죄를 만약 범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언자요, 화목제물 되심이
그 해결책이라고 제시하고 있는데...
▲1. 대언자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2:1
※대언자가 필요한 이유, 직접 못 하는 이유
우리가 죄에 빠지면, 스스로 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여러 죄가 나의 삶 속에 도사리고 앉아서 나에게 상처를 입힐 때,
내 마음에 그 죄 문제로 쓰러졌을 때,
나는 스스로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요즘 변호사들은, 진짜 죄를 지었는데,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는 것을 찾는다.
예수님은 그런 머리 좋은 변호사란 뜻은 아니다.
옛날 법정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엄위하고 높은 왕이 있는데, 한 미천한 죄수가 법정에 서 있다.
그런데 그 미천한 죄수가 아무리 자기를 변호해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 자신의 신분에 어떤 신용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죄수의 말을 곧이들으랴!
그런데 왕 옆에 왕과 가까운 사이인 왕자가 있다.
그 왕자가 변호를 하면, 왕이 신용을 갖고 왕자의 변호를 듣는다.
예수님은 그런 개념의 대언자(변호사)이다.
그리고 당신이 ‘화목제물(아래 설명)’이 되셨다는 사실을 대언해 주시므로
우리 죄가 대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죄를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다.
우리는 대언자가 절실히 필요하며, 그 분이 대언자가 되어주셨다는 사실에
감사드려야 한다. 요일2:1
▲2. 화목제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2:2
①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대충 봐 주시겠지...’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을
- 하나님이 죄를 그냥 봐 주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한국에는 ‘봐 주는 문화’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교통경찰에게 잡히면 ‘아저씨, 한번만 봐 주세요!’ 하듯이
하나님께도 봐 달라고 한다.
봐 주는 것이 죄의 용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죄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정의와 거룩의 속성이 있어서
죄를 봐주지 못하신다. 죄를 없다고 무시하고 못 본 척 넘어가지 못 하신다.
하나님께는 ‘사랑의 속성’이 있지만,
동시에 ‘모든 죄는 대가 지불을 해야 한다’는 공의의 속성이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모든 사람은 죽지만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히9:27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확실히 이야기해 주고 있다.
내 모든 죄는 반드시 응당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봐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②화목제물
그런데 하나님은 그 죄를 대신 대가를 지불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화목제물 propitiation’이다.
죄에 대해 묵과할 수 없고, 응당 처벌하셔야 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그 속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 처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대언자(변호사)로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자신이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요일2:2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법정에서 죄의 처벌은 면한다고 대언해 주신다.
▲3. 우리가 할 일 한 가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9
예수님은 나의 죄 문제의 ‘유일한 해결자’가 되신다.
죄인이 해야 할 일은, 변호사 앞에 모두 토로하는 것이다.
변호사와 자기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라도 있어서도 안 된다.
법률용어로 Attorney-Client Privilege(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비밀유지특권)
가 있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대화 등을 통해 주고받은 내용은
법정에서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다.
그래서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아무 말이라도 마음 놓고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언자 예수님께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다 털어놓게 되시기를 바란다.
▲마치는 말
우리 죄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된다.
매우 심각하게 봐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도 심각하게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우리에게 화목제물이 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것은
우리 죄에 대한 대언자(변호사)가 되시기 때문이다.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07.03.25. *원제목 : 용서의 근원이신 예수님 요일2:1~2
▲관련 예화 : “저를 1분만 지상에 보내주세요, 제가 가진 것 다 드릴게요!”
어떤 분이 환상 중에 지옥을 체험했는데,
거기서 고통당하던 어떤 사람이 주님께 ‘단 1분만 지상에 보내 달라’고 간청했다.
자기 모든 것을 다 드릴 터이니, 제발 ‘단 1분만 지상에 보내 달라‘는 탄원이었다.
이유인즉, 그는 단 1분 만이라도 지상에 가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탄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돼지몰이꾼의 비결
부흥사이신 T. L. 오스본 목사님은 하루는 항구에 서서 배를 기다리다가
매우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원래 돼지란 동물은 말을 안 듣고 제 멋대로 도망가는 습관이 있는데,
그 날 보니 돼지 여러 마리가 몰이꾼을 따라 마치 순한 양떼처럼 졸졸 따라갔다.
그래서 그들은 도살장에 철커덕 갇히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하도 신기해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 몰이꾼에게 물어보았다.
“목사님, 돼지는 콩을 무지 좋아하거든요.
제가 돼지를 몰고 갈 때는 주머니에서 콩을 한 줌씩 꺼내서 땅바닥에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녀석들이 그냥 졸졸 따라오지요.
콩 주워 먹으려고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땅만 쳐다보고 따라온답니다.”
오스본 목사는 거기서 마귀와 지옥을 생각했다.
마귀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자기 약점, 콩)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길에 중간 중간 뿌려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그것을 주워 먹으려고 마귀를 졸졸 따라간다.
결국 무섭고 캄캄하고 뜨거운 지옥에 철커덕 갇히는 것이다.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는 자인 줄도 모르고,
뭐 미끼 같은 것 좀 던져주면... 졸졸 잘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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