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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631 종의 자세

LNCK 2007. 4. 11. 10:12
 

◈종의 자세                                    눅17:7~10



▲기본이 제일 어렵다

세상의 모든 원리와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기본은, 기본basic이지만 동시에 최고의 수준이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주님의 종으로 살며, 항상 종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고차원이며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렵다.


▲종이란, 주인의 반대 개념

성도가 종종 “주여, 주여!” 라고 기도하거나 말하는데,

그것은 반대로 자신이 “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여!”하는 것은, 자기가 “종”처럼 살겠다는 각오이다.


바울은 종처럼 산다는 고백을 이렇게 표현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작년에 죽은 것 가지고 자랑하면 안 된다.

과거에 죽은 것 가지고 안심하면 안 된다.

날마다 죽어야 한다.

주님이, (나의) 주님이 되시고,

종이 (종다운) 종이 되려면 날마다 죽어야 한다.


▲나는 ‘부활’(?)의 명수

그런데 내가 내 자신을 돌아봐도 왜 이렇게 부활(?)을 잘 하는지...!

죽여 놓으면 또 살아나고,

또 죽여 놓으면 어느 틈엔가 또 살아나 활개치고 있다.


주님의 성품, 거듭난 성품... 이런 것들이 날마다 부활해야 하는데,

내 욕심, 내 죄성, 내 교만... 이런 것들이 날마다 부활한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바울이 날마다 죽으면 I die every day, 우리는 시시로every hour 죽어야 한다.

내가 버젓이 살아 있으니까 신앙생활이 어지럽다.


‘내가 주님의 일을 많이 한다!’ -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먼저 죽어 있어야 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고전9:27  


▲종은 내 것이 없다

포도원 일꾼들이 포도원에서 오래 일하다가,

주인의 상속자까지 죽이고 그것을 자기들이 차지하려고 했던 것처럼 마21:38

(이런 말씀을 항상 남의 얘기로 들으면 곤란하다) 

 

교회 일도 오래 하다보면,

자기가 마치 주인이 된 것처럼, 모든 것을 자기주장대로 하려고 한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것은

자기 것이 없다는 고백도 거기에 담겨 있다고 본다.


성전 건축을 위해 자기 소유 전부를 아낌없이 드렸던 다윗,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깨어 드렸던 마리아, 마26:13

자기 소유 전부인 동전 두 닢을 드린 과부 여인,

이들은 모두 종의 자세가 있었다.

헌금 내 놓고,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았다.

내 헌금 내가 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쓰려고 하지 않았다.


언젠가 TV에서 천주교 수도사 훈련과정을 1시간 정도 본 적이 있다.

수도사 훈련생(신학생)들은, 기숙사 자기 방을 매 석 달마다 서로 바꾸었다.

기숙사 방, 빌려 쓰는 것이지만, 자기가 계속 쓰다보면 자기 소유처럼 여길까봐,

그런 욕심이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마음을 비우는 조치였던 것이다.


▲종은 꾸준하다.

종은 자기 뜻이 없다

오직 주인의 뜻만 있다.


한 번 생각해보자.

누가 매일 밭 갈고 양치는 일만 하고 싶겠는가?

자기(종)도 쉬고 싶고, 자기도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이기 때문에, 자기 의지를 버리고

종은 꾸준히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며 산다.


오늘도, 내일도...

남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이것이 종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기본이지만 쉽지 않다.


종은 아무것도 아니다. 마치 어린아이요, 바보 같다. 

그런데 종이 자꾸 뭐가 되려고 하고, 똑똑해 지려고 하니까

오히려 문제가 된다.


▲사도바울의 목회의 초점은 -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갈4:19~20


그가 음성을 변하려 한다는 뜻은 뭔가 꾸짖고자 한다는 뜻이다.

이유인즉,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해야 되겠다고 결심한다.

사도바울의 목회의 초점은 -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었다는 뜻이다.


그 속에 예수의 형상이 없는데,(부족한데)

자꾸 교회 일(교회 성장)만 하라고 몰아붙이니까 문제가 생긴다.


▲봉사를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마시라

교회 봉사는 그냥 하면 된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면 된다.

너무 전문가처럼 잘 하면, 다른 사람이 기죽어서 다 손을 놓을 수도 있고

너무 두드러질 정도로 못 하면, 다른 사람이 오히려 기가 살아서

동참자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종으로서,

잘하고 못하고에 관계없이 그냥 봉사하면 된다.       

자기는 잘 못 하기 때문에 봉사를 못 한다는 것은, 그저 변명에 불과하다.


나는 그저 항아리에 물을 채워놓으면 되는 것이고 요2:7

돌을 옮겨 놓으면 되는 것이다. 요11:41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신다.


▲‘품꾼의 하나’의 심정으로

설교도, 봉사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꼭 나로 인해 시험 드는 사람도 일부 생긴다.

그래도 계속한다. 종이니까!

잘하고 못하고에 상관없이 계속한다. 종이니까!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소서! 하는 심정으로 섬긴다. 눅15:19


<인터넷 설교 발췌 편집 07.04.01. *원제목 : 종, 눅1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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