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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올라가는 길, 내려가는 길

LNCK 2007. 4. 11. 23:07
 

◈올라가는 길, 내려가는 길            막10:32~34

 

 

젖이 아니라, 단단한 음식입니다.


 

◑1. 올라가는 길, 내려가는 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막10:32



정치가는 정권 쥐기 위해 수도로 올라가고,

경제인은 돈을 벌기 위해 수도로 올라간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수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은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다.

주님은 죽으시러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자기들은 좋은 자리를 기대하며 올라가고 있다.


오늘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이렇게 동상이몽이다.

제자는 주님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는 각오로 올라가고,

무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혜택만을 취하고,

그래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크게 잘 되기를 기대하며 (성전에) 올라간다



▲1. 올라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크리스천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예수 믿고, 죄 씻음 받고, 하늘나라 백성이 되고

큰 은혜를 받고, 경제적으로도 축복을 받다 보니까


‘예수 믿는 일은 무조건 올라가는 길이구나’

‘칭찬 받고, 사람들 위에 머리되고, 잘 되기만 하는 길이구나’

인기도 차지하고, 대접도 받고...

이런 잘못된 착각이 우리 마음에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 하다가 약간만 고난을 당해도 이겨내지 못한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일은 끔찍하게 여기고 피해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보다 올라가기만 원하고

교회 안에서도 서로 올라가려고만 애를 쓴다.



▲2. 실제로는 내려가는 길이다.

주님이 올라가신 예루살렘 길은 실제로는 내려가는 길이었다.

손해보고, 모욕당하고, 핍박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길이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막10:33


 


▲흑인을 이해하려고 흑인이 된 존 그리핀 (John Howard Griffin, 1920~1980)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한 미국 남부 지방의 백인으로 태어난 존 그리핀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된 뒤 흑인들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흑인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당신이 우리의 피부 색깔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핀은 그렇게 흑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약품과 염료, 방사선을 이용하여 자기의 피부를 검게 만들기 시작했다.

괴롭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결국 그의 피부는 검게 변했다.


그리고 그는 흑인들만이 사는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때는 1959년으로, 당시 인종차별을 받던 미국 남부 흑인들의 생활은 무척 참혹했다.

따라서 그는 목이 말라서 물을 먹을 때에도

흑인들만이 먹게 되어 있는 곳을 찾아가서 마셔야 했고,

화장실을 사용할 때에도 ‘흑인 전용’이라는 팻말이 붙은 화장실을 찾아가야만 했다.


많은 고난과 위험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은 때도 있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흑인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체험했고

또한 그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핀은 60세가 되어서 피부암으로 죽는다.

그의 병은 피부를 검게 하려고 사용했던 약품과 염료, 방사선으로 인한 결과였다.


존 그리핀은, 죄인을 사랑하사 죄인이 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내려오는 삶을 자기 생활에 실제로 적용했던 신앙인이었다.



▲기독교는 내려오는 종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이 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내려오셨다.

계속 내려오셔서 죄인들과 세리의 친구가 되시고

더 내려오셔서 가장 낮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의 가치는 내려가는데 있다.

아직도 올라가서 영광 받고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마음이 가 있다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는 주님의 초대를 받아야 한다. 눅18:31

그것은 현상적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내려가는 길이다.



▲내려가게 하시는 섭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지만, 사실은 내려가는 길이다.

내가 낮아지고, 손해보고, 포기하고,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는 길이다.


참된 제자는, 주님처럼 스스로 낮아져서

포기하고, 희생하며, 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게 스스로 잘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섭리적으로 내려가게 하실 때도 있다.

요셉이 겪었던 낮아짐, 모세가 겪었던 낮아짐, 다윗이 겪었던 낮아짐 등이다.

그러므로 그런 섭리적인 낮아짐을 당할 때에, 크게 놀라면 안 된다.



◑2. 내려간 후에 올라온다.


▲십자가에 내려감 후에는 부활의 영광으로 올라온다.

그러나 그 끝에는 부활의 놀라운 영광이 있다.

죽음으로 내려가는 길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 후에, 그 내려가신 후에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셨듯이

그와 함께 내려간 제자들도 반드시 다시 올라오게 되어 있다.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막10:34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24:26


만일 우리가 주님 때문에 손해보고 고난당하는 것으로 끝이라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고난의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부활의 아침, 태양이 올라오듯이 부활의 영광이 올라오고 있다.



▲소풍가는 마음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그는 매일 매일 출근할 때

“나는 소풍가는 마음으로 제 사무실로 갑니다!”라고 말했다.


큰 기업에 매일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는 기쁘게 감당했다.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기쁘게 감당했다.


성도는 오늘을 힘차게 살아가려고 하지만, 오늘 현실적인 고난이 있다.

그러나 부활의 영광, 부활의 새 아침을 바라보면

오늘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을 줄 믿는다.


정 회장이 문제 후에 희망찬 결과를 바라보며 소풍가는 마음이었듯이,

성도도 고난 후에 영광의 부활을 믿고, 늘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정말 부활을 믿으시는가?

오늘날, 고난이 심하다고 절망하는 사람은,

사실은 부활을 확실히 믿지 않는 것이 된다.


주님은 사흘 후에 부활하셨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흘을 못 기다리겠는가?


조금만 참으면 된다.

오늘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면

영광스런 부활의 아침이 마침내 올 것이다. 마침내 올라가게 될 것이다.

생전에, 이 땅에서 못 올라가면 죽어서 올라간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처럼)



◑3. 부활을 기대하는 신앙


▲벳뿌의 순교자들

일본 규수 지방의 벳뿌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거기는 섭씨 90~110도의 뜨거운 온천이다.

달걀을 넣으면 바로 삶긴다. 물을 안 타면 원래 온천수에는 손도 못 담근다.


그런데 일본에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당할 때,

예수 믿지 않기로 말하면 살려주지만

끝까지 믿기로 고집하면, 그 뜨거운 온천에 산 채로 집어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일본 크리스천들이 온천 속에 던져져서 기쁜 가운데 순교했다.


그들은 어떻게 그 뜨거운 유황 온천수를 참았을까?

그 피어오르는 연기와 퀘퀘한 유황냄새만 맡아도 우리는 질려버리는데,

어떻게 그 펄펄 끓는 물속에 기꺼이 던져질 수 있었을까?


그들은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았기에

순교당할 때 그 고난을 견딜 수 있었다.



▲스데반은 돌이 지금 날아오지만, 그 돌을 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이빨을 갈지만, 그 가는 이빨을 보지 않았다.

멀리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좌와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행7:55


그러자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처럼 변했다고 했다.

우리의 얼굴도 그렇게 바뀔 줄 믿는다.



▲예수님은 앞장서서 나가셨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 데 저희가 놀라고...

막10:32


조금도 주저함 없이 앞장서서 당당하게 나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놀랍다.

제자들은 그 결의에 차신 모습을 보고 두려워했다. 저희가 놀라고...


어릴 때 학교에서 주사 맞는 것 싫어한다. 주사 바늘만 봐도 겁을 낸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주사를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른은 주사를 맞는 것이 오히려 유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릴 때 누가 앞장서서 주사를 맞으러 나가면 용기 있다고 칭찬했을 것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앙생활 중에 고난이 오면, 앞장서서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을 주사처럼 유익하다고 느끼면, 앞장설 수 있다.


오늘, 해외선교를 위해서 헌신하고

복음전파를 위해 고난당하는 일에

우리 가운데 과연 누가 앞장 설 것인가?



앞장서신 주기철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 반대를 위해 앞장 서 섰다.

총회가 결정을 해서, 신사참배를 가결할 때

아무도 반대를 못하고 있을 때,

주기철 목사님은 끝까지 반대하며 앞장서서 일어서셨다.


이렇게 앞장서서 내려가신 분들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은 우리 시대에 우리 중에 과연 누가 앞장 설 것인가?



▲마치는 말, 적용

주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원하신다.

이 길은 죽으러 내려가는 길이다.


자기를 위한 헛된 욕망과 정욕을 포기하는 길이다.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낮아지는 길이요,

섬김을 받는 길이 아니라, 섬기는 길이요,

사는 길이 아니라, 죽으러 가는 길이다.


사실상 손해 보는 길이다.

그러나 이 길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올라가는 길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되는 게 없어!’

그렇다고 이 길을 이탈하지 마시라, 중단하지 마시라!

조금 더 참고 믿음으로 나가시라!


오늘 현재 내 눈 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사실 한 숨 나올 때가 많다. 그리 기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의 그 날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실 그 영광의 날을 기대해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그런 사람은 오늘 찬송할 수 있다. 오늘 인내할 수 있다.

오늘 기뻐할 수 있다. 오늘 앞장 설 수 있다.

그는 부활의 영광을 앞당기며 맛보게 될 것이다.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07.04.01. *원제목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막10:32~34



[주제별 분류] 십자가  http://blog.daum.net/bible3/1115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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