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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651 발 아래의 마리아

LNCK 2007. 4. 23. 18:20
 

◈발 아래의 마리아         눅10:38~42



▲분주한 마르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눅10:41



*염려-마음이 걱정되고, 조바심난다는 뜻worry.

*근심-마음의 격동, 얼굴빛이 초조하고 화가 난 모습upset, trouble이다.


자기는 식사 준비에 바빠서 정신이 없는데,

차라리 마리아가 집에 없었더라면, 마르다는 화가 덜 났을 것이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버젓이 앉아서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으니

마르다는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참다못한 마르다가 예수께 나아갔다(:40)는 것은 거의 쳐들어간 수준이다.

발소리도 쿵쿵 났을 것이다.


마르다는 본인도 상당히 혼란스럽고

동생에 대해서 원망스럽고

더욱이 예수님에 대해서도 섭섭하다.


지금 이 마르다의 마음... 혹시 지금 내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나?

‘교회에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만 이렇게 분주해야 하나?’



▲예수님의 판결

예수님은 마리아가 바르게 행했다고 판결해 주셨다.

이 본문은, 한 집안의 언니와 동생 사이의 갈등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마리아, 마르다는 수많은 사람의 상징적 인물이요, 대변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오늘날도 모든 신자를 마리아 편과 마르다 편으로 나눌 수도 있다.


예수님의 판결은 우리가 둘 중에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준다.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우리가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발치에 앉아서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더 칭찬하신다.


즉 예수님은, 행동 지향적, 업적 중심적 인물보다는

내면의 성숙을 지향하는 사람을 칭찬하신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마르다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발 아래(발치, :39)란, 원어로 ‘발 곁에, 발 주위에’란 말이다.


즉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실 때, 마리아가 발치에서 그 말씀을 듣고 있지만

예수님의 바로 앞자리를 약간 비켜 앉아서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 바로 앞자리는 지금 비어있는 것이다.


아마 그 바로 앞자리는 언니 마르다를 위한 자리였으리라.   

지금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방문했으니,

그 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마르다였고, (마르다가 예수님을 초청 :38)

그런 마르다를 위해서 가장 좋은 예수님의 정면 앞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는데,

마르다는 지금 음식 준비에 바빠서 정신없이 분주하다.


예수님도 그 앞자리에 마르다가 속히 와서 앉아주기를 기다리셨을 것이다.

(심방을 가도 목사님 바로 앞에 그 집 주인이 앉는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봉사에, 사역에 너무 바빠서

마르다처럼 예수님 임재 앞의 자리를 비워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열심히 신앙생활, 교회 생활을 하시는 분을 위한 권고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동안에도 정신없이 분주하게 보내셨을 것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항상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만을 만족해하시지 않으신다.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실패했다면,

이 세상을, 혹은 교회 일로 아무리 분주하게 열심히 살았다 하더라도

그 삶은 실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요6:27


예수님 발아래 앉지 않고는, 그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받아먹을 수 없다.

그 양식은 다른 이가 아니라, 오직 인자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교회 일에 열심인 분이 위험하다

마르다는 구원받았고, 예수님을 사랑했고, 부지런히 섬기고 봉사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영혼을 위하여 시간을 많이 내지는 않았다.

예수님 발아래 지내는 시간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중에 그런 분 없는가?

열심히 교회 생활 한다. 늘 열심히 봉사하며 매일 분주하다.


그런데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예수님 발 곁에 머물렀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삶의 스타일이 진정한 것이라고 칭찬하셨다.


혹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분주하게 주의 일을 하지만

자기 영혼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시는 분 없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발 곁에 있는 것이다.

항상 예수님께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한 가지 만으로도 족하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42


‘이 한 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 한 가지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된다’

라는 뜻이다.

주님 발아래서 기도하며, 예배드리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그만큼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도 여러 가지가 늘려있다.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해 보고 싶은 일도 많고,

올라가보고(되고) 싶은 자리도 많다.


그러나 주님 말씀하시기를,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을 포착하라는 것이다.

그 한 편을 택하라고 하신다.



▲발밑에 있는 사람이 강하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발 곁을 떠나버린다면,

생명과 능력의 원천을 잃어버리게 된다.


예수님 발아래서 우리는

자기 죄 사함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 된다.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 된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을 얻는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거룩함을 덧입는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지혜를 얻는다.


활발하게 다니고, 많은 업적을 쌓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 것 같고

반면에 발 앞에 머무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결코 나약하고 소극적인 삶이 아니다.


그것만큼 가장 적극적인 삶은 없다. 가장 능력의 사람이 된다.

가장 두려운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마르다의 길로 가는 개신교

올해 96세가 되시는 교계 원로 방지일 목사님이 최근 목회자들 모임에서

이렇게 권고하셨다.

“한국 교회가 지난 1백년의 세월 동안 부흥과 성장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향기를 잃어버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불교, 천주교와 비교할 때, 개신교는 특히 ‘영성’이 약할 수 있다.

불교는 산 속에 들어가 있으니... 늘 하는 일이 도 닦는 수행이다.

천주교도 사목활동이 개신교만큼 분주하지는 않다.


개신교는 구역예배, 돌잔치, 결혼식, 회갑, 병원심방, 졸업식, 사업장 개업식,

그 외 여러 가지 목회 활동에 목회자들도, 평신도 지도자들도 너무 바쁘다.


그래서 ‘예수님 발아래서 그 음성을 듣는 마리아’보다는

대부분 ‘일에 분주한 마르다’의 길로 가고 있다.


특히 오늘, 활발하게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분위기로 몰아가는데,

정치나 사업계 쪽으로는 그런 사람이 인정받을지 모르나...

앞으로 교계에서는, 조용히 마리아처럼,

말씀사역에 힘쓰는 분들이 더욱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해외집회 이런 데 다녀와서도 그 다음 주일에

불같은 말씀을 전하는 종들은, 진짜 실력 있는 하나님의 종인 것 같다.

 

목자가 양떼에게 은혜스러운 꼴을 먹이려면,

심방하면서 성도들의 현실도 뼈저리게 파악해야 하지만

자기 방에 붙박이로 눌러 붙어서 예수님의 발을 붙드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전9:17


<인터넷 설교 발췌, 편집  07.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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