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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650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침묵

LNCK 2007. 4. 23. 09:01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침묵            사53:7


 


▲영화 [집으로]를 ‘침묵’이란 관점에서 보면...

수년 전 이정향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국산 명화 [집으로]는

‘침묵’이라는 관점에서 성찰한 영화 평론가가 있었다.


주인공 아이 상우는 도시 속에서 수많은 소음과 말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었다.

상우에게 침묵은 무엇보다 낯선 것이었다.


상우가 도시를 떠나, 엄마를 떠나 산골에서 할머니와 한 동안 살게 된 것은,

어쩌면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상우는 평소에도 장사에 바쁜 엄마가 늘 돌봐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 지내는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상우에게 낯선 시골 생활에서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TV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침묵의 산골에서

더욱이 온종일 침묵하는 벙어리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었다.


산골 생활의 초기에 상우는, 도시에서 가져온 작은 오락기기가 내는

왱왱거리는 그 익숙한 전자음으로 위안을 얻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이 단조로운 위안거리에 싫증을 느낀 그는

이제 로봇 그림엽서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것으로 침묵을 몰아내려고 애쓴다.


이 애절하고 안타까운 어린 상우의 모습은,

어쩌면 온갖 소음의 도구에 휩쓸려 고통당하며 살아가면서도

또한 그 소음이 없이는, 깊은 고독과 정적 속에서는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일수 있다. 


▲상우, 점점 침묵을 배워가다

그러니 이 영화가 보여주는 놀라운 변화는

이런 어린 상우가 침묵을 배우면서 행복한 아이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의 목적 중 하나는,

현대인들이 침묵의 미학을 배우기를 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침묵의 모범

예수님은 이런 침묵의 중요성을 몸으로 가르치고자 하신 분이었다.

침묵은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이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7

 

이사야의 이 예언은 실제로 예수님의 삶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시면서

한 마디도 대답을 안 하시는 그의 침묵으로 성취되었다. 마27:12~14


예수님의 전 생애는 우리의 본을 위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사도 베드로는 증거 했다.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2:21


그렇다면 그 분의 고난 속에서의 침묵도 우리를 위한 모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예수께서 침묵의 본을 실천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1. 침묵은 창조적 지혜를 준다


▲꼭 필요한 말씀만 하시다

사실 예수님이 침묵하셨다고 해서, 일체의 말을 거부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되도록 말을 아끼셨고,

많은 경우에 침묵하셨다.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이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예수께서 잠잠(침묵)하시거늘,,,  마26:62~63


그러나 대제사장이 다시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했을 때

그는 마침내 침묵을 깨시고 대답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마26:63~64


주님은 결정적인 때에도 대답을 회피하신 것은 아니다.

그는 해야 할 때에는 분명히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런 그의 꼭 필요했던 말씀은, 그의 침묵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깊이 있는 말은, 침묵에서 나온다.

시성 괴테는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고 했다.

막스 피카르트는 그의 명저「침묵의 세계」에서

“침묵은 말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은 침묵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말에 침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말은 아무런 깊이를 가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위대한 말, 필요한 말, 참으로 깊이 있는 말은

오직 침묵에서만 나온다는 말이다.


▲기도는 침묵의 시간

이렇듯 침묵은 우리에게 창조적인 지혜를 제공하는데,

예수님에게 침묵은 창조적인 하늘의 지혜를 공급받으시는 기도의 시간이셨다.


▲침묵에서 나온 지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율법은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을 받고 예수님은 침묵 속에 허리를 굽히시고 땅에 글을

쓰셨다. 그리고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8:7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지혜로운 말씀을 하실 수 있었을까?

이것이 바로 침묵에서 나온 지혜인 것이다.


지혜가 필요하신가?

예수님처럼 침묵하시고, 그리고 예수님처럼 기도하시기 바란다.


▲영성은 침묵에서 온다

기독교 심리학자 웨인 오츠 박사는 그의 명저「침묵의 영성」에서

침묵이 제공하는 창조적 에너지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침묵의 영성 -

그것은 우리의 마음보다 큰마음을 지니신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의 진정한 쉼을 제공한다.

바로 이 침묵의 영성 속에서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

우리 안에 창조적인 사역을 베풀어 가신다.

만일 우리가 이 침묵의 영성을 잃어버리면 성령의 감동은 소멸되고

우리는 삶의 창조적 에너지를 다 잃어버린 채

차갑고 지친 모습으로 혼자 외로이 남게 될 것이다.



◑2. 침묵은 말의 실수를 줄인다.


(중략)



◑3. 침묵은 하나님의 섭리를 수용하는 방편

 

 

▲침묵은 하나님의 섭리를 수용하는 방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특별히 침묵하신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는가?

십자가를 지심이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이를 침묵으로 수용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변명한들 그것이 사태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사실 많은 경우 우리가 구차한 변명과 자기 방어를 포기하고 침묵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강력한 신앙의 고백이다.


그의 침묵은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주의 뜻을 수용하시는 아멘의 침묵이었던

것이다.


▲상우가 배운 침묵의 몸짓

서두에 영화 [집으로]의 주인공 상우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다.

상우가 정말 힘들어했던 것은, 엄마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에 대한 적응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산골 생활을 하면서, 점점 침묵을 배워가게 된다.


영화에 보면, 상우가 철이라는 친구에게 ‘미친 소가 온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상우가 ‘미안하다’는 진심을 전달하면서

그는 이제 벙어리 할머니에게 배운 침묵의 몸짓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상우가 훗날 할머니와의 재회를 약속하는 상징도

아무 글도 없는 백지의 편지였다.


할머니와 헤어지는 순간에도 상우는

말없이 내미는 엽서와 할머니에게 배운 몸짓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마침내 상우는 백 마디의 말보다도 더 감동 있는 커뮤니케이션은

침묵의 몸짓인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침묵만으로 이 영화는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임재 앞에 침묵한다.

그렇다. 이 시끄러운 소음의 시대에서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예수님의 몸짓

- 바로 그분의 침묵의 습관이다.

더욱 우리가 지금 그 분의 임재 앞에 서서 살아간다면,

침묵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스펠의 작사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초청한다.

주의 임재 앞에 잠잠해(침묵해), 주 여기 계시네

주의 영광 앞에 잠잠해(침묵해), 주 역사 하시네


이제 구차한 변명도, 화풀이도, 고발도, 원망도 그만 하시고

그분의 임재,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며

잠잠히 살아가지 않으시겠는가?


우리가 잠잠하면 그 분이 친히 일하실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 침묵을 연습할 때이다.



▲침묵하는 연습 (유안진)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 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위 시의 원 제목은 ‘그리운 말 한 마디’인 듯 합니다.)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07.04.15.  *원제목 :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 침묵  마 27:12-14, 사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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