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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세겜에서 신앙 성장이 멈춘 야곱

LNCK 2007. 5. 12. 07:16
 

◈세겜에서 신앙 성장이 멈춘 야곱         창35:1~5      07.05.06. 인터넷설교 발췌, 정리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

 

①이사야서 42장8절을 보자.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다른 신이나 다른 우상과 나누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홀로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다.


②출애굽기20장2-3절을 보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구속하신 대속자라고 하시며

당신의 앞에 어떠한 다른 신도 두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③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라고 하셨다.

내 삶의 모든 영역을 남김없이 주님께 드리는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다.


우리들은 과연 이렇게 살고 있는가?

이것은 대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이다.

진정으로 온전하게 우리의 100%를 다 드려서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원하신다.


▲에서를 만나면서 진행방향을 변경하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가?

야곱은 그동안 숙곳과 세겜이라는 지역에 살면서

그 지역에 토착화된 우상들과 타협하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물론 그가 고의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사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들이

야곱의 가족을 침범했기 때문이었다.


벧엘은, 그가 오래 전에 형 에서를 피해서 집을 나왔을 때

처음으로 묵었던 곳이 바로 벧엘이었다.

하나님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야곱은 하란의 외삼촌 집에서 20년 동안 부서지고 다듬어지게 된다.

그 즈음 창세기31장3절을 보면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야곱이 하란에서 다시 돌아가야 했던 곳은

그의 할아버지가 묻히고 이삭이 있는 헤브론이었다.

바로 그 근처에 벧엘이 있었다.


이곳은 야곱이 오래 전 집을 떠나서 하란으로 가던 중

하나님이 그를 만나주셨던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헤브론과 벧엘이 위치한 쪽으로 돌아가라고

야곱에게 지시하신 것이다. 창31:3,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그런데 야곱은 돌아오는 과정 중에 얍복강 가에서 그의 형 에서를 만났다.

거기서 두 형제는 화목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

화목한 후에 야곱은 그의 형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한다.


자녀들과 가축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지금은 함께 갈 수 없다고 형을 설득하지만,

<사실은 형과 함께 가는 것이 적지 않게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진행방향을 약간 변경해서 숙곳에 가서 정착한다.


▲숙곳, 세겜에 정착하다.

그리하여 야곱 가족은 다시 세겜에 가서 정착한다.

그는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곳은 기름지고 살기에 편해서 호감이 가는 곳이었다.


마치 롯이 아브라함과 협상하며 기름진 땅으로 방향을 잡는 장면과 유사하다.

여기서 야곱은 실수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조상들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조상들의 가졌던 믿음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그곳으로 돌아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숙곳과 세겜에 정착하였다.


특히 세겜은 부요한 도시였다.

아마도 그는 ‘팔레스타인 드림’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불순종한 것이 아니라 다만 부분적으로 순종했던 것이다.

(조상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왔지만, 광야가 아닌 부유한 도시에 정착했다)


▲위기가 닥치면서 정신을 차리다

거기서 야곱 가문은 자신도 모르게 우상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창34장을 보면, 이제 야곱의 가문에 큰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그의 딸인 디나가 그 땅의 여인들을 보려고 나갔다가 불상사를 당한다.


그리고 야곱의 두아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끔찍한 복수를 하고 만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추장 집안을 모두 죽이고 만다.


그러자 야곱은 가나안 사람들의 복수를 두려워하였는데,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야곱은 정신이 들었을 것이다.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불순종하였더니

그곳에서 우상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가족을 불러서 모든 우상을 묻고 태우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간증하고

가족들로 하여금 철저한 준비를 시킨 후에 벧엘로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의 우상이라는 것은 대부분 장식물들이었다.

행운을 기리며 몸에 지니고 있었던 장식품이나 귀걸이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야곱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둔해졌다.


그렇지만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 그는 과감히 우상들을 불태우고

그곳을 떠날 것을 지시한 것이다.


그는 아마도 숙곳과 세겜 땅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것 같다.

어렸던 디나가 숙녀로 변하였고

아들들도 복수를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던 것을 보면

그곳에서 꽤나 오랫동안 기거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기간에도 하나님의 음성은 계속 들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 비로소 알고 깨닫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 위기라는 것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제 야곱의 가족들은 모든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향하게 된다.



◑이런 본문을 배경으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받게 된다.


▲1. 서 있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 넘어질까 조심하라

야곱은 숙곳에 집을 짓고 정착하기 전에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고도 죽지 않는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

그는 분명히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큰 은혜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그 엄청난 은혜 직후에 현실과 타협하고 부분적인 순종만 하더니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은혜가 충만할 때에 겸비하고 낮아져야만 한다.


사도바울도 삼층천을 경험한 직후에 몸의 가시로 인해서

오히려 평생을 겸손하고 겸비할 수 있었다.


고전10:12절을 보자. ‘그런 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은혜를 체험하고 영적으로 올라갔을 때,

도리어 넘어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할 때이다.

왜냐하면 나태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였고,

20년 동안 형의 얼굴을 대할 것을 고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한순간에 형을 변화시키셔서 함께 울게 하셨던 은혜를 체험하였는데,

그는 바로 그 직후에 세겜 땅에 남아서 불순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홀로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지내야 한다.

어떤 것이라도 우상을 만들면... 반드시 패망한다.


▲2. 지속적인 성숙을 추구하라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은혜를 입었고 이름도 이스라엘로 바뀌게 되었다.

이때에 야곱의 영성은 크게 도약Jump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적인 성숙은 그 후로 정지되었다.

모세는 출애굽기33장에서, 하나님이 같이 가리라고 했을 때에도

오히려 ‘당신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그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였다.


야곱은 숙곳과 세겜에서 멈추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성장해야만 했다.

에베소서4장12절을 보자.

‘성도를 온전케 하며 종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의 전 구절은 왜 목회자를 세웠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즉, 교회를 허락하시고 목회자들을 세우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말씀하신다.

에베소서4장15절에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목회자들을 세우셨고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원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와 같이 주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계속 자라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나 자신도 신학교를 나와서 지금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 때가 바로 조심할 때라고 여겨진다.

성장을 멈추면, 그로 인해서 넘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자.


신앙 생활하다가 쓰러지고 넘어지는 성도, 목회자를 주위에서 본다.

최근 미국에서도 그런 소식을 듣고 곰곰이 묵상해보니

그 이유는 ‘They stopped growing’이었다.


그들은 자라는 것을 멈추었다.

이 만큼 했으니, 이 만큼 이루었으니 이제 되었다고 생각하고 성숙을 멈추니

사탄이 그들을 넘어뜨린 것이다.


이렇게 물어보자. Are you growing? ‘당신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습니까?’

Have'nt you stopped growing? “당신은 지금 성장이 멈추지 않았나요?‘


우리는 성숙이 중지하는 순간에 넘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성숙하고 성장해야 한다.

야곱이 숙곳과 세겜에 머무는 순간에 그의 성장이 멈추었던 것이다.

훈련을 통해서 자라기를 원하는 우리들은

천국 가는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중단 없이 자라야 한다.


▲3.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

우상의 자리에서 벧엘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계신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야곱 자신도 자신의 신앙과 영성이 많이 약해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을 맛보아야 했다.


계시록2~3장을 보면 당시의 책망 받는 일곱 교회가 나온다.

그들이 책망을 받는 이유는 ‘타협하는 신앙’ 때문이었다.

그들은 초대교회 중에서 대표적인 교회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세상의 우상들과 싸우면서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여주고 계신가?

바로 보좌 앞에 앉으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계시록4장을 보자.

엄청난 천국의 보좌 앞에서 일어나는 압도적인 빛을 받을 때에

우리는 부흥하게 되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 보자.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 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토해내면서

불만을 터뜨린다.

그는 이런 상황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헌신할 수 없고

온전한 예배도 드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를 덮는 그의 영광이 임할 때에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해결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Revival 부흥이다.

죽었던 영성이 다시 살아나고,

타협된 나의 삶이 태워지고 부흥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부흥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동안 타협했던 나의 신앙,

부분적인 나의 순종,

성장이 멈추었던 나의 영성,

이 모든 것을 태우고 벧엘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신다.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순종을 드리는 것이다.

나의 모든 우상을 묻고 태운 후에 벧엘로 올라가서,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하나님의 부흥의 물결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07.05.06.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원제목 : 홀로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창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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