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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 신앙의 하늘 바람을 타고...

LNCK 2007. 6. 28. 13:30
 

◈신앙의 하늘 바람(상승기류)을 타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1:2


 

▲성령은 바람wind과 같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으며,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영이신 하나님, 성령은

비유컨대 바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하늘바람을 한번 쐰 사람이고,

하늘바람 안에서 하늘바람을 숨쉬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인데, 그것은 '바람 or 숨'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민중들의 신앙 영웅 엘리야에 관한 이야기 결론을 보면,

엘리야는 하늘바람 회오리바람에 실려 엘리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성령은 하늘바람'이라고 붙였습니다.


▲철새가 장거리를 나는 비결 - 상승기류를 탄다.

하늘바람을 타고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땅의 바람부터 잠시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땅위 공기층 속에서 공기의 이동을 우리는 바람이라 부르고

기상학적으로 '기류'라고 부릅니다.


최근 교육방송을 보니까, 철새들이 어떻게 그렇게 멀고 긴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일부분이나마 풀어주었습니다.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는 새들을 철새라 하는데, ‘겨울새’, ‘여름새’,

그리고 그냥 잠시 멈췄다가 통과만 하는 ‘나그네새’를 합하여

한반도에 무려 2백여 종의 철새가 있다고 합니다.


환경생태계가 날로 각박해지는데도 한반도는

철새도래지로서 천혜의 조건과 위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철새가 이동하는 속도로 말하면 작은 새들은 시속 40~50 킬로,

기러기 오리류는 시속 80~90킬로라니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은 새류는 이동 도중에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먹이사냥을 반복하기도 하지만,

도요새류, 물떼새류는 한번에 수 백 킬로, 수 천 킬로를 날아간다고 하니,

부산 목포에서 뜨면 한번도 안 쉬고 북간도 시베리아까지 날아간다는 셈인데,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따라 갈 수 없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이런 철새들의 이동은 대체로 상승온난기류를 타고 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장거리를 자기 힘으로 날개쭉지를 퍼덕여서 날아간다면

너무나 지치고 힘이 들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철새의 비행을 통해서 본, 신앙생활의 3단계


신앙세계에 있어서도 그 원리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장거리 이동을 하는 철새들이 자기 날개를 퍼덕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 날개 짓을 하는데 드는 힘은 지극히 작아서

거의 흐르는 상승기류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날아간다는 원리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철새가 날아가는 일을 비유로 삼고 생각을 더 해보면

신앙생활 하는데도 3단계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1. 신앙의 첫째단계는 이륙단계입니다.


물위에서 헤엄치던 오리류가

또는 철원평원에서 낟알을 주어먹던 두루미나 기러기 철새들이

물 수면과 대지를 박차고 공중으로 떠오른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비행기 조종사들의 이륙이 어렵다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일 것입니다.

몸뚱이를 잡아당기는 중력을 이기고 공중으로 몸을 부양시키려면

온 힘을 다해 달리며 날개 짓을 힘껏 해야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봅니다.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모든 엔진을 풀가동시키고

전 속력으로 활주로를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로 사람이 육적인 욕망과 혈기, 자기자랑과 탐심,

지배욕과 이기심으로 구성된 지상에서

내 몸에 작동하는 그 모든 중력을 끊어버리고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 정신적 자유의 왕국,

은혜와 진리의 세계, 사랑과 빛의 세계로 날기 위해서는

비상한 노력과 정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일이 하도 어려운 일이기에 예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륙하는 데는 힘이 든다.

크리스천들은 성령 은혜, 하나님의 은총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결단과 자기의지로서 해야 할 경건훈련과 정진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은 타성의 동물이기에 예수 믿은 후에도 잘못된 습관이나 죄된 생활로부터

과감히 일신하여 돌이키는 새 삶을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이륙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에 영원히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신앙의 둘째단계는 고공비행단계 입니다.


철새들은 상승온난기류를 타고 높이 공중으로 올라갔을 뿐 아니라,

그 기류를 타고 가볍게 날아갑니다.


믿음의 단계에서도, 이제 성령의 상승기류를 탄 신앙인은

바울의 말대로, 내가 했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내 속에 계신 성령이, 그리스도가 은혜로 하신 일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기독교 신앙과 도덕주의가 다른 점이 거기에 있습니다.

도덕주의는 진지하긴 하지만 결국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율법을 지키느라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의 신앙생활은 율법이 가벼운 멍에처럼 됩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은 더 이상 무거운 명령법이 아니라,

나와 너를 자유하게 하고 생기 있게 하는 은혜의 법이 됩니다.

몸과 마음의 갈등도 초극(초월적으로 극복?)이 되어 버립니다.


▲현실은 약하지만... 신앙은 상승기류를 탄다.

바울이 삼층천에 오른 신비체험을 했는데, 그가 몸 그대로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서 그리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두 번이나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은혜 받았던 나,

성령의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 바람을 타고 신비 경험했던 나를 생각하면,

자랑도 하고 싶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를 생각하면 약함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증언합니다.


그처럼 성령 안에서의 삶은, 철새가 상승기류를 타고 먼 거리를

힘들이지 않고 날아가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3. 신앙의 셋째단계는 철새가 다시 육지로 착륙하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기러기 때가 대열을 지어 창공을 나는 것은

그냥 영원히 공중에 떠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시 먹이를 구하고, 새끼 칠 둥지를 틀고,

새끼가 알에서 깨면, 잘 기르기 위해 또 먼 거리를 날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마지막 단계도 그렇습니다.

하늘은 분명히 땅보다 더 영적인 세계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궁극적 성취점은 하늘이 아니고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천사들의 장래가 아니라,

흙으로 빚어 만들었으나 성령 안에서 그 영성이 익어 가는

인간들의 장래가 더 관심의 초점입니다.


예수님의 변화산에서 말씀처럼,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앞에서 잠시 영광 가운데 그 몸이 영광으로 변하시었으나,

제자들의 희망과 달리,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종교가 종교노릇을 제대로 하자면 시장바닥에서 아옹다옹하지만 말고,

산정에 올라 변화되는 영광의 황홀체험을 할 필요가 있지만,

종국엔 종교가 참으로 돌아갈 자리는 산정이 아니고,

다시 시장 바닥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원이 아니고 ‘가정집’인 것입니다.



◑현실적인 애국자들   (↔이상적)


▲성령충만은 신비적이 아니라, 현실적이어야 한다.

오늘은 현충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1백년간만 생각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거룩한 피와 땀들이 이 땅에 뿌려졌습니까?

우리가 가족 혈육들과 함께 오붓이 살고 싶듯이,

일제시대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바람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을 뒤로 두고,

만주 땅과 중국 수 천리를 풍찬노숙 바람을 먹고(찬) 이슬(로)에 잠잔다 했습니다.


개화기 땐 얼마나 많은 국내외 전도자들이

교회를 지키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박해와 고난을 받았습니까?

민주주의를 이 땅에 심고 자유와 평등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다 꽃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불구가 되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소년 소녀 노동자들이 산업전선에서

그들의 청춘을 산업근대화의 제단에 제물처럼 바쳤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땅, 이사회, 이 역사의 무대는

그런 엄청난 사람들의 피와 땀이 스며 들어있는 곳입니다.


그런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생각이 없어도 유분수지

몇 천 만원 고급 옷으로 몸을 휘감고,

몇 백 만원 골프채를 휘두르고 다니는 것을

능력 있는 사람들의 권리라고 강변하고,

자기들의 정치기반 고수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파당을 만들고,

온갖 현란한 미사여구로 국민을 현혹시키면서

어떻게 오늘 현충일을 맞을 수 있는가 말입니다.


▲하늘 바람(상승 기류)이 필요한 시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 땅을 오물 묻은 발로 밟을 뿐만 아니라

몰록 숭배와 바알 숭배와 황금송아지 숭배하는 자들에게

떠넘겨주고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모두 하늘 바람 쐬지 못해서 공기가 썩어서,

썩은 공기 마시고 오랫동안 살다보니.. 정신이 동시에 썩어버린 조짐입니다.


하늘 바람(상승 기류)이 그립습니다. 하늘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셔서

우리 폐와 사회 속에 깃들인 모든 독가스들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져서

나의 약함과 실패와 부족함을 도리어

그리스도안에서 자랑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됩시다.


성령이여, 교인들의 심령 속에,

한민족의 마음속에 하늘 바람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2000년도 이전 설교, *원제목 : 성령은 하늘 바람 

 


[주제별 분류] 거듭남, 회심  http://blog.daum.net/bible3/1207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