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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자

LNCK 2007. 5. 10. 18:55

www.youtube.com/watch?v=c8ruWE2nxmw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자                 고전3:12~18절            인터넷설교스크랩, 녹취

 

 

우리 삶에, 예배에, 찬양에, 설교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뭔가 감동적이고, 엄위하며, 거룩한 기운이 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후광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정말 성인(聖人)처럼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그가 거룩하게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거룩한 줄 모르고 거룩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들의 과거에 대한 어떤 것에도 상관없이

항상 처음처럼 새롭게 대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사람들 중에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여,

한번은 수호천사를 불러 그에게 모습을 보이고

소원을 하나 꼭 들어주도록 시켰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수호천사가 그에게 모습을 보이고

소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는 소원이라고는 없다고 하였다.

 

글쎄 소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그는 한사코 소원이 없다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천사가 "네게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기적의 은사를 줄까?" 묻자,

병자를 치유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라면서 거절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죄인들을 회개시켜 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힘을 줄까?" 묻자,

그런 일이라면 당신들 천사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거절하였다.

 

마지막으로 천사가 "그러면 너의 거룩한 삶을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아

존경할 수 있도록 해 줄까?" 하고 묻자,

그는 펄쩍 뛰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교만해져서 사람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는 꼭 들어주어야 한다는 명을 받은 천사가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난처해하자,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저를 통해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해 주시되,

그 사실을 내가 모르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 천사는 하나님께 가서 그대로 고하였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천사를 시켜 그 착한 사람에게 후광(後光)을 걸어 주도록 하였다.

(자기는 광채가 나는 것을 모르게 된다)

 

이것이 성인들의 후광(後光)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앞도 옆도 아닌 성인의 머리 뒤에 빛나는 광테이다.

자신만 볼 수 없고, 다른 사람만 볼 수 있는 후광인 것이다.

 

물론 살아 있는 우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후광을 빛내고 있으리라. (펀 글)

 

▲영광 돌릴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11세기 영국의 왕 카누트는

신하와 백성이 자기를 지나치게 섬기고 영광 돌리는 일을 매우 싫어해서

심지어는 군왕의 상징물인 왕관조차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카누트왕은

어느 날 그의 왕좌를 바닷가로 옮기고 신하들을 주위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이 영문을 몰라 웅성거리고 있을 때 왕은 왕좌에 앉아 시시각각으로

차오르는 밀물을 향해 명령하였습니다.

 

"바다여! 멈추어라" 열 번, 스무 번, 수 십 번을 소리쳤으나

밀물은 끊임없이 차올라 왕좌의 중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에 왕좌가 휩쓸리는 바람에

그만 왕도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 일어선 왕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은 잘 보았겠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 있으므로 너희가 의지하고 영광 돌릴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시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왕은 왕으로서의 권위와 영광을 상징하는 왕관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상에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카누트 왕이 극적으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진정으로 영광 중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만이 창조세계와 인간으로부터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의 인간은 너무나도 ‘헛된 영광만을 추구’합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의 허무한 영광에 중독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예수님의 산상변모 주일입니다.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된 예수님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영광이 광채에 조명되는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만나면, 얼굴에 영광의 광채가 나타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두 개의 돌판에 새겨진 10계명,

곧 율법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고 있는 산 밑으로 내려올 때에,

그의 얼굴에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신비한 광채가 있었습니다.

 

이 광채는 모세가 하나님과 40일간 시내산 정상에서 만나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받고 그것을 반사해 빛나게 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징표인 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모세의 생명을 건 기도와 섬김,

중보의 사역과 기도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어

그와의 친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광채는 모세 자신의 인격이나

어떤 노력과 수련의 결과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세는 동포와 이웃, 남을 위하여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섬기며

희생하는 행위와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다가설 수 있었고

그 영광을 반사하여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신적 본질의 거룩함과 찬란함에 감히 다가서거나 마주서지 못하여

그 빛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그들의 죄와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배신의 죄 때문에

모세의 얼굴에 빛나는 하나님 영광의 광채를 보고 그렇게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죄악은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인간을 단절시켜버립니다.

 

지금 내 얼굴에는 영광의 광채가 있는가요? 모세처럼!

만약 없다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의 영광’을 보지 못한 고린도교인

고린도후서 3장의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의 얼굴의 광채를 가리기 위하여

수건을 쓴 앞서의 그 사건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는 대목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옛 언약’과 ‘새 언약’,

‘율법’의 역할과 ‘복음’의 의미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수건 혹은 베일'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심령의 눈이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성경을 읽을 때,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와 그 영광)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욕심과 편견, 무지와 단편적인 사고,

의심과 불순종 등 죄의 수건(베일)을 통하여 율법을 봄으로써

거기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책망과 징벌만을 보고,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이요 뜻인 의와 사랑,

은총과 선하신 경륜을 미쳐 보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모세의 얼굴에 빛나던 하나님의 일시적 부분적인 영광의 광채,

다른 말로 율법의 광채 자체도

새로운 계시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비추일 때는

끝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죄악의 수건을 쓰고 율법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영원한 진리와 영광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참 빛이신 그리스도와 복음을 배격하며

그 영광의 계시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같은 인간 심령의 수건을 벗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이켜야 하고

바로 그때 옛 이스라엘에게 나타났던 율법의 일시적인 영광 대신

하나님의 뜻과 모습 그 영광의 광채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영광에 조명 받은 사람은

그 광채를 반사하고, 그 빛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 - 영광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든지

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라는 말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 혹은 그 광채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영광을 뜻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는 "카보드"이고 희랍어로는 "독사"입니다.

이 말의 본래의 뜻은 중량(무거움), 가치, 명성, 영예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무게 있고, 값지고, 이름 높은 것을

영광스러운 대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완전하심 그분의 크고 넓으며 높고 깊으신 본성이

찬란한 태양처럼 현현되는 모습‘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 어떤 부수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분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 더할 수 없이 밝은 빛과 광채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

그분의 본성과 임재는 창조세계와 인간에게 영광스런 광채로 비추입니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납니다.

 

그 상징적인 본보기가 산정에서 변모하신 예수의 찬란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아들 예수의 영광이며

이 영광은 모든 사람에게 비추었습니다.

 

곧 예수의 순종과 성육신이요, 생애와 사역이며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말은

이처럼 우리에게 빛과 영광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 드리고 감사하고 찬양함으로

그분을 기리고 높이는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뵈온 모세와

산정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된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임재의 영광, 그 환한 빛에 조명이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변화산에서는 그 영광이 극대화 되었겠지만,

평소의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몸가짐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을 반사하는 거울이었고,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분이시니,

예수님의 영광스런 삶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자!

그런데 지금도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그 분의 영광의 빛은 이미 우리를 비추고 있었으나

우리가 제대로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참회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를 통하여

그리고 사랑의 실천과 섬김으로써

'하나님 임재의 영광'에 감싸이는 교우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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