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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829 실족케 하는 일

LNCK 2007. 8. 20. 23:59
 

◈실족케 하는 일                                                    눅17:1~6



▲실족이란?

‘실족’이란 한자어 뜻은, ‘헛디딘다. 발을 잘못 디딘다.’는 뜻이다.

등산하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것을 ‘실족했다’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실족’(스켄달론)은 약간 다른 뜻이다.

그것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란 뜻이다.

원래 ‘스켄달론’은 ‘짐승 잡을 때 쓰는 올가미의 미끼’를 뜻한다.

그 미끼를 잡으면, 그것 때문에 내가 올무에 붙잡히고, 낭패를 당한다.


우리가 쓰는 스캔들(추문, 추한 소문)이 바로 이 말에서 나왔다.

그러나 원래 뜻은, ‘나를 걸려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란 뜻, 비슷하지만 다르다.


 

◑1. 내가 실족해서 넘어질 때, 남까지 실족케 하지 마시라.


▲내가 스켄달론에 빠지면, 먼저 내 마음이 쓰게 된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가만있지 않고,

반드시 주변 사람에게 쓴 마음을 퍼뜨리게 된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 가 두려워하고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히12:15

내가 무슨 연고로든지, 스켄달론(실족케 하는 일)에 일단 빠지면

내 마음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 영향을 받게 되는데, 

정작 본인은 그것을 잘 모른다.


대신에 ‘저 놈이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분노하는 거야!’ 하며

내가 옳고 정당하며, 저 사람이 나쁘다고 여긴다.

사실 그것은 악한 마귀의 스켄달론(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에 빠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이것이 본인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매우 나쁜 영향을 확산한다는 것이다.


▲사례1 : 부정적 영향은 자연히 확산된다.

예를 들면, 제(설교자)가 실족해서 화가 단단히 나서

매우 흥분한 얼굴로 교회 안에서 걸어 다닌다고 하자.


제가 분노한 표정을 짓고 다닌다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쨌거나 나쁜 영향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나를 쳐다만 봐도, 은혜가 안 된다. 또한 나를 피하게 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속으로 이렇게 비판할 수도 있다.

‘목사라는 사람이 왜 저러나?, 목사가 저래서 쓰나?’

그러면 벌써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목사비판)을 확산시킨 결과가 된다.


▲예수님의 경고 - 남에게 퍼뜨리는 자에게 화로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                             눅17:1~2


예를 들면, 제가 화난 얼굴로 다니면,

저는 속으로 ‘그 못된 놈이 나를 화나게 했다.’며 스스로 정당화 하겠지만,

분노하는 저 때문에

제가 속한 공동체의 다른 선량한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실족하게 된다.

특히 저보다 더 ‘작은 자’(소자)들이 더욱 실족하게 된다.


예수님의 경고는,

네가 실족했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확산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실족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눅17:1

이 말씀처럼, 우리가 살다보면 그런 실족당할 일은 반드시 생긴다.

그러나 자기가 실족하더라도,

그 파장으로 선량한 다른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라고 경고하신다.


▲사례2

예를 들면, 시댁 관계에 있어서 며느리가 실족할 수 있다.

물론 실족 안 하면 좋지만, 실족하는 일은 반드시 있다고 하셨다.               눅17:1

그런데 그 실족한 며느리가 자기 남편에게 그것을 확산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남편을 자기 우군으로 만들어서 합세해서 시어머니께 대항하면,

집안에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확산시키면 안 된다. 남까지 실족시키면 안 된다.

(물론 시어머니도 상처를 받았다고, 우군을 만들어서 며느리를 골탕 먹일 수 있다.)


▲미끼에 넘어가면 안 된다

나에게는, 나를 실족하게 만든 그 누군가에게

비판적이 되고 싶은 충동이 있다.

그것은 ‘달콤한 미끼’인줄 깨달아야 한다.

자기는 비극의 주인공(더 심하면 상처 입은 순교자?) 같은 마음으로

그 사람을 비판하며, 그가 내게 준 상처를 곱씹기 쉽다.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잠깐 방심하면, 누구나 그렇게 하게 되어 있다.


또한 그 나쁜 놈의 비리를 뒷조사해서 파헤치는데

내 귀한 에너지를 낭비해도 안 된다.

그 미끼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2. 남이 나를 실족케 해도, 스스로 지켜 실족하지 마시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17:3~4


▲회개할 때만, 용서해야 하는가?

눅17:1절이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가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회개 안 하면 용서 안 해도 된다는 뜻인가?


그가 회개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그를 비판하며 그에게 분노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이렇다.

‘형제가 어떤 죄를 범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너는 너의 마음을

실족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위 본문 눅17:3~4절은,

<누가 너를 실족케 하는 일이 발생해도,

너는 스스로 지켜 실족하지 말라>는 뜻이다.


눅17:1~2절은, 자기가 실족해도 남까지 끌어들이지 말라는 것이고,

이어지는 3~4절은, 남이 자기를 실족시키려 해도, 스스로 자기를 지키라는 뜻이다.


스스로 큰 소리로 이렇게 몇 번 선포해 보자!

“스켄달론을 먹지 맙시다!”   <마귀의 올가미의 미끼

 

▲실족하지 않으려면 - 믿음이 필요하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 가르침을 들었을 때, 아마 은혜를 받았나 보다.

평소에 자기들이 많이 실족하고, 또한 실족을 주위에 확산시켰던 모양이다.


이제 제자들은 새로워지기를 굳게 결심하면서,

실족하지 않기를 굳게 다짐하면서 이렇게 요청 드린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눅17:5


그렇다. 실족하지 않으려면, 또한 실족을 확산시키지 않으려면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겨자씨 한 알 같은 진실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                                        눅17:6


▲사례3

(저를 포함한) 대부분이, 자기는 설교를 꽤 잘 하는 줄로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설교 못 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성도는.., 사실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어쩌다가 직선적인 사람도 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요즘 우리 목사님 설교, 더 많이 연구하셔야 된다!’고 말했다고 치자.


아무리 선의로 말했다고 치더라도

앞으로 그 사람이 가급적 보기 싫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 때 실족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 형제를 통해서

제 설교가 서투르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제 서투른 설교를 그동안 불평 없이 들어주신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래야 실족하지 않는다.

그래야 그 형제를 만나도 인사도 할 수 있고, 대화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그를 비판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실족하게 된다.

 

 

◑실족거리를 이기면...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된다.


실족거리(스켄달론,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는 극복이 어렵지만,

극복하기만 하면, 그것은 내게 큰 복이 된다. 내가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의적으로 실족거리를 내게 허락하실 때도 있다.


▲사례4 : 내 관심은 네게 있다!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한 자매가

학교에서 계속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이지메(왕따)를 당했다.


자매는 새벽기도하며 자기 고충을 토로하는 중에,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내 관심은 네게 있느니라!’ (고통을 주는 타인에 있지 않다는 뜻)


그 후로 그 자매에게 이지메가 그쳤느냐? - 아니다. 전처럼 계속 당했다.

그런데 변한 것은 바로 그 자매 자신이다.

그 자매는 이지메를 당할 때마다 이렇게 속으로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관심은 나에게 있어! 너는 그냥 이용당하고 있는 것뿐이야!’


지금 그 자매는 아름답고 헌신적으로 공동체를 섬기고 있다.

공동체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이 자매가 중심을 잘 잡아주어서

그 어려움을 넘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 때 이지메(자기에게 스켄달론)를 당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면서,

자매에게 영적인 뿌리가 깊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 연단의 기간을 거쳐서, 그녀는 이제 영적 거목으로 성장된 것이다.


그녀에게 실족거리(스켄달론)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실족하지 않았다. 자기 삶이 거기에 방해받지 않았다.

자매님은, 그것이 자기를 실족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도리어 그 스켄달론을 통해, 더욱 성숙한 믿음이 되었다.


그렇다. 우리를 성숙시키고, 연단시키고, 강건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끔, 어려운 도가니에 우리를 일부러 집어넣으실 때도 있다.

우리는 그 실족할 일을 반드시 이겨서, 축복으로 바꾸어야 하겠다.

그것이 ‘믿음’이 있는 사람의 증거다.


▲있는 자리에서 실족거리(스켄달론)를 처리하는 법을 배우기

사람이 실족을 당하게 되면, 자기 믿음이 연단되기 보다는

어떤 외부적 상황이 완벽하게 천국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면, 실족하는 장소를 도피해서,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보다 더 성숙하고, 더 완벽한 환경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있다.

거기 가서 ‘내가 과거에 이렇게 심한 고통을 당했어요!’ 하소연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유혹(스켄달론)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먼저 나의 영적 뿌리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뿌리가 깊고 튼튼하지 못하면, 결국은 위로 열매도 못 맺는다.


크리스천은 더 이상 도피하면 안 된다.

떠나면 없을 것 같지만, 아니다. 상황은 재연되고, 더 심해진다.

그러므로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자기의 실족거리(스켄달론)를 처리하는 법을 스스로 배워가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내 불순물이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연단의 도가니일수도 있다.

나를 정말 새롭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끊어야 한다.

마귀는 결코 나를 ‘하나님의 뜻, 정하신 영역’ 밖으로 끌고 나갈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종종 그 영역 밖으로 나가서 낭패를 당하는 것은,

그 실족거리를 대하는 나의 태도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스스로 실족하는 쪽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 때 내 인생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 객지에서 방황하게 된다.

동시에 그 때 악한 원수 마귀의 목적이 이루어진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실족하는 사람은

자기가 실족하는 편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귀가 건드리고,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실족케 해도

자기가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남 핑계하면 안 된다.

 

 

▲마치는 말

우리는 실족거리(스켄달론)를 만날 때,

자기가 실족하고서 그 부정적 영향력을 주위에 퍼뜨리려는 유혹을 이겨야 한다.

 

자기 스스로 실족해서도 안 되겠다. 겨자씨 같은 믿음으로 굳세게 이겨야 한다.


내가 실족거리를 만나도 당당히 믿음으로 승리한다면, 

나 스스로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려지며,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된다.

하나님이 때로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을 겪게 하시고

더욱이 그 때 손끝만큼도 도와주시지도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믿음으로 그 실족거리를 끊으라!’는 뜻이다.


<07.08.17.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편집 *원제목:실족의 소용돌이를 끊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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