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라도 사랑하라! 롬5:8, 10
◑연약하니까 사랑하라
▲그러니까 사랑해야지!
제(설교자)가 중국 선교지에서 6개월쯤 사역했을 때였다.
때로는 중국인들에게 거짓말로 배신당하기도 하고,
말씀으로 그렇게 양육했던 사람들이 결국에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협을 가해오는 것을 보면서,
저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실망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동역하던 선교사님 댁에 찾아갔다.
그 집 문패에 이런 글을 적어놓았던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사랑해야지!”
그 글을 보는 순간, 나는 즉시 ‘내게 사랑이 없음’을 회개했다.
연약한 중국인을 볼 때, ‘그러니까, 연약하니까 더 사랑해야’ 옳았을 터인데,
너무 실망한 나머지 그들에 대해 섭섭한 마음만 가득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중국인들을 사랑하기로 굳게 기도하며 결심했다.
‘그러니까 사랑해야지!’
사실 부모가 자기 자녀의 연약한 모습을 보면, 그러니까 더 사랑한다.
그러나 타인이 어떤 연약한 아이의 모습을 보면, 그러니까 더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지!
이제 중국선교한지 약 1년쯤 지났을 때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때로는 신변의 위협까지 당하면서,
제 속에 있었던 예수님의 사랑마저도 흔들릴 즈음이었다.
저는 낙심이 가득한 채, 다시금 그 선교사님 댁을 방문했다.
그 때 바꿔진 그 집 문패에 적힌 글귀를 보고 다시금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지!”
나는 다시금 잔잔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중국인을 품고 사랑하기로 굳게 결심하며 기도했다.
‘주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게 하옵소서!’
내가 이렇게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먼저 죄인 중 괴수된 나를 ‘그러니까 사랑해 주셨고’,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사랑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5:13
예수님은 친구인 우리를 위하여,
별로 좋은 친구도 못되는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 사랑을 친히 나타내 보여주셨다.
그런 큰 사랑을 나는, 내 주위의 친구, 형제를 사랑할 때,
어떤 조건을 따지면서 사랑하고 있는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내 마음에 품으면
사랑하지 못할 형제가 한 사람도 없다. 다 품을 수 있다.
친구 같지도 않은 나를, 주님은 당신의 친구로 삼아주셨는데,
우리는 왜 이웃 형제들을 그렇게 경원시하는가?
◑원수라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우리 각자에게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는 ‘원수’가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은 사랑해도, 그 사람만큼은 결코 사랑할 수 없다는
그런 ‘원수’가 있다.
그런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때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이다.
전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죄인이었을 때, ‘그러니까 사랑해야지’해 주셨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 즉.... 롬5:10
→더 나아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변명이 없어진다.
하나님께 내가 입은 사랑은,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무조건 사랑해 주셨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저 놈이 철천지원수라서 사랑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을 입지 않았든지,
아니면 배은망덕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마더 테레사의 사랑 철학
마더 테레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때, 기자들이 이렇게 질문했다.
“어떻게 당신은 일평생 문둥병자들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까?”
“이 세상에 문둥병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문둥병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람(죄인)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증오하시는 죄만 있을 뿐이다.
▲내가 주의 종이 된 계기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아직 믿음이 매우 연약할 때
선교사님으로부터 성경공부 지도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저는 지각을 하며 모임에 늦게 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단으로 결석하며 모임에 두 주간 빠진 적도 있었다.
그 때 선교사님이 한 번은 학교로 저를 찾아오셨다.
제가 수업을 마치자, 교정에서 저를 기다리시던 선교사님을 뵈었다.
저는 찾아오신 선교사님을 발견하고는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두 주간을 아무 연락도 없이 무단으로 결석을 해서...
그래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제 곁에 다가오신 선교사님,
잔잔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응렬 형제, 보고 싶었어요, 우리 같이 성경공부 합시다!”
이것이 오늘 나를 목사로 이끈 내 인생의 가장 큰 모멘트였다.
▲베드로를 찾아가신 예수님
그물이 찢어지도록 가득한 물고기를 잡는 것도 기적이지만,
밤새도록 그물질을 해도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는 것도 기적이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이 친히 찾아가셨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같이 먹자”고 하셨다.
때로는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그를 귀찮게 하고 괴롭히는 것이 되지만,
때로는 우리가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이,
그를 회복시키고 일으켜 세워주는 계기가 된다.
학교로 저를 찾아오신 선교사님,
갈릴리로 베드로를 찾아오신 선교사님,
그 사랑의 실천이... 어쩌면 베드로가 배운 3년 동안의 수많은 가르침보다
더 폐부에 길이 남은 스승의 가르침이 되었으리라!
자기를 배신한 제자를 찾아가는 그 사랑이야말로
보통 사람이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이다.
우리 가슴 속에 예수님이 심어주신 이 놀라운 사랑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찾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란다.
▲탈레반도 사랑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오직 사랑하는 권한 밖에는 없다.
그들은 아직 복음을 모르기에,
아직 내가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않았기에,
저들이 지금 저렇게 (납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맹렬히 비난하는 것보다,
도리어 자기 가슴을 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도리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형제를 죽여도, 저들을 사랑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사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들도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영화로운 새로운 피조물로 바꿔질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들이기 때문이다.
<07.08.19. 인터넷 설교 중 발췌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 인격 http://blog.daum.net/bible3/12577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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