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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배운다

LNCK 2007. 8. 23. 21:08

◈자연에서 배운다.

 

'여호와여,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시8:9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보다 더 순박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보다 대자연을 더 가까이 대합니다.

현관문을 열면 채소밭이요, 대문을 나서면 푸른 논밭이요,

마을을 나서면 드넓은 들판과 강산입니다.

 

이렇게 자연을 접하면 호연지기가 생기면서

사람의 마음이 순박해 집니다.

그래서 모세, 다윗은 대자연속에서 자기 심신을 단련하며

아모스와 등 많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대부분 시골출신, 촌뜨기였습니다.

 

휴가의 계절, 대자연을 더 가까이 접하면서,

내 마음이 더 순박해지기를 소원해 봅니다.

오늘은 제 손에 부드러운 흙이라도 한 번 묻혀보고,

연한 나뭇잎사귀라도 한 번 만져봐야 하겠습니다. 

  

 

▲바다 속 비밀 창고

 

제주도 해녀들에게는 오직 장녀에게만 상속되는

바다 속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 합니다.

평소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지만, 집안에 큰 경사가 있다든지

가장 소중한 사람이 왔을 때만 찾아가.. 접시만한 전복을 따는 자리라 합니다.

 

삶이 아무리 척박하고 물질이 제아무리 신통찮아도,

바다 속 어딘가 감춰둔 보물 창고를 생각하면

마음 한 켠에 등불이 환하게 밝아오게 마련입니다. 

 

내 마음이 울적하고, 안정되지 못할 때,

내가 종종 찾아가서 안식을 누리는, 대자연의 쉼터가 내게 있습니까?

‘바다 속 비밀창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못생긴 것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세상

 

나는 못생기고 예쁘지도 않은 미운 돌맹이다.

돌맹이들 가운데도 모양이 예쁘고

색깔이 고운 돌맹이도 있는데

나는 아무런 특징도 없고 색깔도 없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그렇고 그런 돌맹이다.

 

돌맹이로 태어나 모양이 예쁜들 무엇하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내가 이리 저리 굴러다니다가

지금 자리 잡고 있는 개울에서만 해도

벌써 여러 돌맹이들이 놀러 나온 사람들의 눈에 띄어

그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거나 배낭에 실려 먼 곳으로 갔다.

 

생각하면 야속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못생긴 자신을 서러워하면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남모르게 눈물짓는 것뿐이다.

 

어느 날, 나는 작은 물새의 깃털을 입에 물고 내 위를

스쳐가는 하늬바람에게 물었다.

"왜 사람들은 예쁜 돌맹이만 좋아할까?"

 

"사람들은 그 돌맹이로 자기 방을 아름답게 꾸미기 때문이야."

 

"아! 나도 나도 그런 사람의 방안에서

한 자리 차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무룩해진 나는 하늬바람에게 물었다.

"너도 사람이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니?"

 

하늬바람이 내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더욱 더 슬퍼졌다.

 

그러나 하늬바람은 살며시 웃는 얼굴로,

나와 다른 못생긴 돌맹이들 둘레를 돌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슬퍼하지 말어.

사람들이 가지고간 돌맹이는 겨우 한 칸 방을 꾸미지만

너희는 이 지구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잖아!"

 

 

승자독식시대에 대부분 대중인 ‘돌맹이’들은  결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군요.

아니,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군요.

 

 

▲대자연 속에서도 순박함을 잃어버린 사람들

한 무리 관광객들이 봄 소풍을 떠났습니다.

버스는 호수와 산, 전원과 강이 어우러진 매우 아름다운 지방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차창 밖으로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버스의 상석에, 좀 더 편안한 자리에 앉힐 것인가?’

‘누구를 더 중요한 사람으로 여길 것인가?’

 

바깥에는 황홀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엉뚱한 주제를 두고 말다툼하느라

여행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런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계속할 것입니다. -앤소니 드 멜로

 

 

◑방파제나 갯바위 끝에 설 때마다 드는 느낌

 

 

방파제나 갯바위 끝에 설 때마다 드는 느낌입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세상 끝에 서서

한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지금 비록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 바다 건너에 또 다른 대륙이 자리 잡고 있겠지?

마찬가지로 이 고단한 이 세상 삶을 건너가면

반드시 또 다른, 더 나은 삶이 새롭게 시작되겠지,

결코 여기가 끝이 아니겠지...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갑자기 가슴이 훈훈해져 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훨씬 부드러워 집니다.

가슴이 설렙니다. 다시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걸어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인생의 끝, 삶의 막다른 골목은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

길목이 아닙니다. 인생 종치는 날도 아닙니다.

어쩌면 희망으로 가득 찬 또 다른 출발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을 통해 이런 진리를 다시 한번 확증해주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요18:36

 

비록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련의 파도가 높기만 할지라도,

극심한 고통에 힘겨운 나날을 보낼지라도 절대로 낙담하지 말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은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반드시 끝이 있을 것이며,

언젠가 주님께서는 축복의 잔으로 변화시켜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고통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실패만 거듭된다 하더라도

우리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세상 저 너머에

이 세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풍요로운 주님 나라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이승살이에 지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기 위해

환한 얼굴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콜럼부스가 항상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신대륙을 꿈꾼 것처럼

우리들은 항상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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