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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841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

LNCK 2007. 8. 29. 08:58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                                           왕상18:17



드디어 아프간에서 피랍자들이 곧 석방된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세상은, 기뻐하면서도 습관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비방할지 모르나

크리스천들은, 그런 비방을 어쩌면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이유는, 성경에 그런 비방을 받았던 사람들의 예가 무수히 나오기 때문이다.



▲모세 - 괴롭힘(?)은 평생 계속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바로 앞에 나아갔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광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 것은,

당시 사회 질서와 제도 속에서 있을 수 없는, 황당하고도 무모한 요청이었다.


결국 그 무모한 시도의 결과는,

히브리 노예 대표들이 채찍에 맞는 고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벽돌에 소용되는 짚을 주지 않고도,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게 함으로써,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고, 순경(순탄한 환경)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경도 반드시 따른다. 거기에는 마귀의 총체적 방해 공작도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모세를 보면, 마치 파도처럼 계속 밀려오는 역경의 파도를 -일평생- 넘었다.

넘고, 또 넘고, 잠시 쉬면 또 산더미 같은 큰 파도가 다가왔다.

홍해 앞에 갇힘, 아말렉과 전쟁, 광야에 물이 없음, 애굽으로 되돌아가자는 백성들..


몽매한 백성들의 눈에는, 무슨 일만 터지면 항상 그 잘못은 모세에게 있었고, 

모세는 그들을 ‘광야에 몰아내서 죽게 하려는 자’로 매도 당했다.


그러나 모세는 그 파도를 때마다 잘 타고 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사람’이 ‘동족을 해방시킨 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기란 결코 쉽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세상이 말하는 그 '괴롭힘'이란 - 내가 사는날 동안 평생 계속되는 성격이 있다.



▲엘리야 - 괴롭힘(?)의 전도현상                                                                      *전도: 뒤바뀜

아합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라고 불렀다.                 왕상18:17

아마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자,             왕상17:1

실제로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이스라엘 국민들이 큰 고충을 겪었다.


엘리야가 비가 없을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온 나라를 골탕 먹이려고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그대로 대언한 것이었고,

(물론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탄원하며 그것을 막지 않았을 수는 있다.)

그런 기근을 통해서, 백성들이 회개하고 속히 주께로 돌아오라는 의도였다.


엘리야가 대답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는 내가 아니라, 실제로는 왕과 왕의 집안이요!

당신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요!                              왕상18:18


말세가 될 수록, 세상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괴롭게 한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은 자기들의 온갖 우상숭배가 나라에 재앙을 가져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말세가 될 수록 진리의 역전현상, 전도顚倒현상이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평가에 한편으로 귀담아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상의 평가가 진리인양, 거기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면 안 된다.


오늘날에도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은, 선량한 기독교인보다는,

사실 악플을 달고 거침없는 악의적 평가를 쏟아내는 ‘세상’(마귀 지배 받는 영역)이다.



▲모르드개 - 괴롭힘(?)은 극적 반전된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모르드개는, 자기 한 사람이 하만에게 미운 살 박힌 것 때문에

페르시아 제국 전체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하만의 음모로 몰살당할 뻔했던 위기에 몰렸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에스더를 통한 반전이 일어났다.

그래서 도리어 유대 민족이, 하만은 물론 유대인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처형하는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되었지만,

반드시 극적 반전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결국은 이스라엘을 이롭게 하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많은 ‘괴롭힘’들,

저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역사인지,

아니면 인간의 실수로 빚어진 진짜 괴롭힘인지

‘극적 반전’이 그 시금석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유대인들에게  ‘거치는 것’(스켄달론)이었지만,            고전1:23

결국에는 그것이 만인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었다. 극적 반전이었다.

 


▲스데반 - 괴롭힘(?)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신다. 

스데반 한 사람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 날에(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한 날)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되었다.

사도들을 빼고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행8:1


스데반 집사는, 모르드개처럼, 어마어마한 큰 사고를 쳤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가 풍비박산 나면서

급기야 교회는 거의 일시적으로나마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아마 그 때, 스데반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꼬장꼬장하게? 말대꾸한 것을 두고

교계 여론이 시끄러웠을 수도 있다.

다행히 성경에는 그런 네거티브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많이 없었나 보다...


스데반 역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였지만,

그의 ‘괴롭힘’은, 예루살렘 교회의 놀라운 선교 확장을 가져오는 기폭제가 되었다.

때로는 하나님은, '괴롭힘'같은 신비한 방법으로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가신다.  



▲바울 - 온 세계를 괴롭히는 자

그의 별명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였다. 즉, ‘온 세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자’였다.

영어로 upside down 뒤집어엎음이다.                                                 KJV, 행17:6

그는 ‘어디를 가든지 반대를 받았으며’                                                  행28:22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은, 밥도 먹지 않고 결사대를 조직해서 길에 매복하기도 했다.

                                                                                                                               행25:3

그 어지럽힘(괴롭힘)의 영역이 - 세계화 수준이었다.

 

 

▲마치는 말

작년 말에 이렇게 설교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지나오면서, 여러분 중에,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핍박을 당해 보지 않았다면,

죄송한 이야기지만,

여러분은 잘 못 믿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귀는 자기편을 결코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최근에 아프간에 피랍된 분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기독교인들이 나라를(선량한 국민들 심정을) 괴롭힌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데,

‘괴롭게 하는 자’라는 소문을 듣는 것도

장차 하나님 앞에 가서는 훈장을 달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일평생 일어나야 정상이며,

극적 반전을 이룰 것이며,

주님이 그런 일을 통해서 구속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며

그런 일은 세계적으로 계속 일어나야 .... 성경적이다.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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