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 → 정화 → 복음전파 요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15:2
최근 들어 설교와 칼럼을 편집하는 중에,
주제가 공통적으로 <핍박, 정화, 복음전파>에 우연히 수렴됨을 발견했습니다.
핍박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고, 특별히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그 핍박의 효능은 크게 2가지인데,
내부적으로 교회를 더 정결하게 정화시키고,
외부적으로 복음전파에 더 열심 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프간 피랍 사태를 맞이한 지금의 시점에,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과 엇박자로 나가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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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671213(요한 계시록의 주제)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하고 징계하신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7교회로 보내는 서론적 편지 속에 간결하게 나타나 있다.
결론부터 살피면,
“나는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3:19)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전권을 장악하고 계시는데 어째서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숨은 의도가 있는데,
성도들을 연단하고, 견책하고, 정화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신다는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전체 주제이다.
지금 핍박을 받고 있는 성도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은 부당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들에게 큰 잘못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그들은 주님이 전능하지 못하셔서,
교회가 이런 환난을 당하도록
사탄의 지배 하에 그냥 방치해 버리셨다고 믿을 수도 있었다.
▶성경은 환난과 핍박이 참된 교회의 표지라고 가르치나,
오늘날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승승장구 하는 것(소위 성공주의)이 참된 교회인 것처럼
잘 못 인식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이상적 교회는
환난과 핍박과 징계를 통해서
(내부적으로) 교회가 더 정화되고 새롭게 되고
(외부적으로) 더욱 더 복음전파의 사명을 땅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이 미래를 예언하는 책이라면,
말세가 될 수록, 참된 교회와 참된 성도는 더 많은 고난을 겪게 될 것 같다.
말세에, 감당해야할 사명이 더 중대하고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된 교회와 성도는 고난, 핍박, 징계를 통해 더욱 정결하게 될 것이다.
최근 '평양 대부흥 백주년'을 계기로, 'revival 1907'의 재현을 위해 기도해 왔는데,
그런 와중에 주님이 응답하신 방식은 우리가 기대했던 바
<아무 문제없이 승승장구하는 식>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아프간 피랍사태가 터진 것이다.
그것은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식의 부흥이었다.
내부적으로 시련을 통해 정결하게 되고
외부적으로 선교와 복음전파를 새롭게 추스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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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683913
◑2국면. 핍박과 복음전파 (마24:9~14절)
핍박과 복음전파는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마24:9~14절에 한데 연결되어 있습니다.
눅21:12~19절의 병행구절에 보면,
핍박을 받아서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려가는데
그 앞에서 복음증거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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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썩어서 죽는 사람’을 통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고, 우대해야 하�습니다.
▲똥처럼 썩어서 사라져버린 ‘어떤 이들’
히11:35 후반부터 등장하는 ‘어떤 이들’을 놓치지 마시라.
이 ‘어떤 이들’의 믿음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좋은 증언을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히11:35~40
‘어떤 이들’이 겪은 삶은,
성경의 다른 유명 인들과 비교할 때 정말 비참하다.
그러나 그들의 삶 역시 유명한 믿음의 영웅들 못지않게
자기들의 ‘믿음의 삶’을 당당히 증거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어떤 이들’의 이름은, 유명인들 보다 그 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성경에 일일이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다가 고난으로 실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믿음의 조상’으로 자리매김 되는 영광을 누렸다.
비록 그들 각각의 이름이 성경책에는 기록이 없고, 다만 ‘어떤 이들’로 나오지만,
그러나 천국의 생명책에는, 그들의 이름과 업적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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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660493
극심한 핍박이 있었지만 결코 신앙을 변절하지 않았던 초대교회 성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은 초대교회 제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길(제자의 길)을 걷는 대가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초대교회 신자들은 유대교인들에게 핍박당하고,
스데반 같은 이는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에서의 삶의 터전을 버려야 했고,
거기서 2백 키로나 떨어진 다마스쿠스로 피신을 가야 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사울 같은 극우 유대인들은 원정대를 조직해서
2백 키로나 떨어진 곳으로 그들을 잡으러 갔으므로
다마스쿠스에서조차도 제자들은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의 크리스천들이 그런 상황에서 ‘예수 믿는 제자로 산다는 것’은
유대교인들에게 ‘자기들의 생명을 내어 맡기는 것’과 같았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생명의 위협적 상황 속에서도
당시의 ‘제자’들은, 신앙을 지키고 변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혹독한 박해를 당했다.
◑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버리지 않은 바울
▲오늘까지 2천년간 쓰임 받는 사도 바울 - 그의 선택은 옳았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길을 발견했다.
그 후로 그는 일평생 초지일관 예수 그리스도의 길만 걸었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바울이 된 그는 이렇게 증거 한다.
그리스도의 길이(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그는, 자기가 믿었던 대로, 그가 걷고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길 위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전1:18) 영원한 ‘사도’로 세움 받았고,
그가 전한 모든 말과 그가 쓴 글은, 영원한 성경말씀이 되었다.
만약 그가 계속해서 자기 길을 걸었다면, 2천년 전에,
그가 유대교 내에서 출세하고, 한 때 화려하게 살았을 런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2천년 전에 이미, 한 줌의 흙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란 영원한 이름은, 다른 이에게 그 촛대가 옮겨졌을 것이다.
그는 참수형을 당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고수했기에
자기 삶에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 안에서 세상과 영생을 둘 다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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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652422 (어려울 때가 돕는 기회다)
▲아둘람 동굴의 다윗에게로 사람들이 몰려들다
많은 사람이 다윗에게 몰려왔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과 빚을 진 사람,
그리고 마음에 억울함을 가진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 들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몰려온 사람들은 4백 명 가량 되었습니다.
삼상22:2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든 다윗이,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가!
집도 없고, 안식처도 없고, 돈도 없는 다윗에게,
그것도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기준으로는 별로 쓸데없는 사람들, 자기가 도와 줘야 하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을 돌봐야 하는 지도자가 되다니... 다윗은 분명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유랑하는 신세가 되다보니,
그런 방랑자들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들을 측은하게 여긴 모양이다.
(나중에 나발에게 음식을 요청한 것을 보면, 다윗이 이들을 돌본 것은 확실하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에 가장 좋은 때
제가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드리겠다.
사람들을 돕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남편과 사이가 좋고, 자녀들이 말도 잘 들어서 가정이 화목한 때인가?
사업도 잘 되고, 은행 잔고도 넉넉해서 아무 걱정 없을 때인가?
그것보다 더 좋은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어려움을 느낄 때, 내가 연약함을 느낄 때이다.
내 지난 삶의 경험을 봐도, 그것은 사실이다.
다윗은 외적으로, 자기 앞가림도 힘들고, 남들을 도울 여력은 전혀 없었지만,
어떻게 되었는지, 그를 따르는 자들이 4백에서 → 6백 명으로 늘어났다.삼상23:13
어쨌거나 다윗이 그들과 동거동락 하면서 그들을 잘 도와준 모양이다.
▲이때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모두 다윗 왕국의 용사요, 장군이요, 건국의 일등공신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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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과 순교의 공동체인 교회
환난이나 순교는 참된 교회의 표지(겉으로 나타난 증거)이다.
환난과 순교를 당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이다.
http://blog.daum.net/rfcdrfcd/12466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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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를 허락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시대마다 전환기에는 순교를 특별히 허락하시고,
이번에도 두 분의 순교를 통해
아프간 선교는 영적으로 앞으로 한국이 사명을 갖게 되었다.
http://blog.daum.net/rfcdrfcd/123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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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여는데는, 희생 제물이 필요하다
두 분의 값지고 고귀한 순교가,
한국 해외 선교의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는 설교.
http://blog.daum.net/rfcdrfcd/1259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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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626321 (충성된 증인, 안디바)
죽기까지 참된 증거를 마다하지 않았던 안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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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594072 (40일을 지난 후)
고통의 시간(환난)이 지나면, 새 날과 새 역사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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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299375
▲부흥에 관한 주님의 관점을 가져야!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해서 우리가 다시 부흥을 달라고 구할 때,
우리는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마 이렇게 물으실 것이다.
‘그래, 부흥 주면 뭐 하게?’
사도행전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부흥의 목적과 결과를 말해준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이기적 목적(세상 나라)의 성취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그 근본 목적으로 한다.
▲부흥 후에 도리어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핍박 온다.
여러분,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에 부흥이 임한 후에,
‘불행 끝, 행복 시작!’이었나?
그렇지 않았다. 사도행전의 패턴을 보면,
부흥 다음에는, 부흥의 결과로 (원치 않는) ‘핍박’이 왔다.
교회 지도자들이 목숨의 위협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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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177821 (좋은 무화과, 나쁜 무화과)
하나님은 좋은 무화과를 바벨론에 보내셔서 환란과 핍박을 받게 하셨다.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좋은 무화과)
가능성 없는 자들은 '내버려두신다.'(나쁜 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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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678266 (터키에서 일어난 영광스런 순교)
◑터키 크리스천들의 기도제목 부탁
핍박을 통해 정결해지고, 더욱 복음을 전파하는데 앞장서는 터키의 크리스천들!
▲1. 핍박의 피함이 아니라, 성도의 인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2. 내적으로 정결케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3. 사건 가담자들 중에 한 명이라도 주께 돌아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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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rfcdrfcd/12687656 (천로역정 요약집)
천국 가는 순례 길에, 허영의 도시에서 둘 다 붙잡혔지만,
‘크리스천’은 살아서 풀려났고, ‘믿음’은 붙잡혀 죽음으로써 순교했다...
환난과 순교는 하나님이 천로역정(천국순례자의 고난의 길)에
미리 정하신 것이다.
▲전도자의 교훈 - 환난을 준비하라!
▲두 순례자, 허영의 시장을 지나다.
▲허영의 도시에서 당하는 순례자들의 고난
▲믿음, 결국 순교하다.
[주제별 분류] 고난의 신학 http://blog.daum.net/bible3/1274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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