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예술과 신앙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자기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표현하고자 애썼던 그의 예술가적 표현은
결국은 가난한 자들과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의 표현이었다는 주제의 글.
고흐의 삶 전체가 우리에게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자기 속에 끓어오르는 신앙심과 자기 은사인 예술성을 상호 조화,
서로 접목시키려고 갈등하고 노력했다는 점은... 본 받을만 하다.
획일화되어가는 사회에서, 획일화되기를 거부했던 사람, 고흐!
오늘 우리 사회에도, 크리스천 예술가들이 더 많이 나와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출처: http://blog.naver.com/kaikk/70021477379
「영혼의 창」에서 부분발췌, 켄 가이어 저, 윤종석 역
▲그림의 문외한이 고흐를 만나다
그림에 거의 문외한이었던 내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처음 만났던 것은
박물관에서였다. 그때까지 내가 반 고흐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그의 생전에 팔린 그림이 단 한 점뿐이라는 것,
괴로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기 귀를 잘랐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자살로 그 괴로운 인생을 끝냈다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곳에 있는 〈아이리스〉라는 그림 앞에 단 4분도 서있지 않았다.
이렇게 평범한 그림이 소더비 경매에서 수천만 달러에 팔리다니!
또한 하고많은 꽃 중에 하필 아이리스란 말인가?
<아이리스, 그는 아이리스 꽃을 소재로 여러 작품을 남겼다 >
그러나 몇 년 후, 누군가로부터 반 고흐가 하나님을 믿었으며
인생의 한때는 아주 뜨겁게 믿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경을 읽으며 받은 영감으로 그림의 소재를 얻다
나는 서점에 가 이 화가에 대한 책을 몇 권 구입해
그의 삶의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군데군데 나오는 그림도 유심히 보았다.
해바라기,
밀밭 위로 나는 새들,
소박한 사람들(대부분 가난하고 슬픈 사람들)의 초상,
밭에서 씨 뿌리는 자의 초상.
그러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 계급 사람들에게 ‘성경 말씀의 씨를 뿌리고’ 싶었다.
그 일을 준비하기 위해 밤마다 책상에 앉아 성경을 영어, 독어, 불어로 번역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옮겨 적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매일 읽었다. 말씀을 외우고 그 말씀에 비추어 삶을 보고 싶었다.”
<감자 먹는 사람들>
▲부적응자 고흐
런던에 살 때, 그는 도시의 가장 먼 변두리로 가 극빈자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목사인 아버지의 소명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 자신의 갈 길이라 느낀 그는
신학 교육을 받고자 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특유의 기질과 열정과 괴벽 때문에
빈센트는 기성 종교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의 동료 학생 중 한 명은 “그는 복종의 의미를 몰랐다”고 말했다.
그가 다녔던 학교에서 그를 가난한 탄광촌의 ‘평신도 전도자’로 지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광부가 된 고흐
광부들의 작업 조건은 한없이 열악했다.
빈센트는 광부들 속에서 그들과 똑같이 가난하게 살았다.
그들과 함께 탄광에 들어갔고, 그들이 마시는 까만 흙먼지를 함께 들이마셨다.
병자들을 찾아가 상처를 싸매 주고 그들과 함께 기도했다.
주일이면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그는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그들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언젠가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잊혀진 삶을 사람들 눈앞에 보여 줄 수 있도록 말이다.”
후에 시인 릴케는, 이것이 화가로서 반 고흐의 삶의 시발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그는 소위 전도자가 되어 광산 구역에 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말하면서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말하는 것을 멈추고 그림만 그리게 된다.”
▲신앙의 예술적 표현
나는 빈센트의 편지글들을 읽으며 거기서 그를 만났다.
화가 자신과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직접 그의 그림을 보는 법을 배웠다.
그의 스케치 <영원의 문에서>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림에서 나는 하나님과 영원이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를 표현하려 했다.
그것은 바로 이 왜소한 노인의 표정 속에 담겨 있다.
구석진 곳 불가에 말없이 앉아 얼굴을 두 손에 묻고 있는 노인…
그런 무한한 감동이 또 있을까.
거기에는 뭔가 소중한 것, 뭔가 고귀한 것이 있다.
벌레들에게 먹힐 운명으로 끝날 수 없는 그 무엇이.”
▲정신병원에 보내진 빈센트 반 고흐
그러나 이 감동한 화가가 말하려는 바를
세상에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거부와 고독과 우울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빈센트의 정신 상태는 서서히 쇠퇴해 갔고, 신앙의 상태도 같이 침식해 갔다.
화가 인생 10년 동안 그가 썼던 편지들이 그 과정을 잘 보여 준다.
그의 고뇌와 절망은 점점 깊어지고 어두워지고 격해진다.
1889년 이 병든 화가는 생 레미 정신 병원에 보내진다.
이때 방을 안내한 수녀가 묻는다. “창문을 열어 드릴까요?”
빈센트는 고개를 끄덕인다. 수녀가 창문을 열자,
그는 창 밖으로 햇빛이 부서지는 시골의 들녘을 내다본다.
창 밑으로 보이는 정원 한 자락에는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그린 첫 작품이 바로 그 꽃이었다.
그는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 ‘빈센트’라고 이름을 써넣었다.
그리고 짤막하게 ‘아이리스’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가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 바로 이 그림이었다.
<그가 정신병원에서 그렸다고 알려진 작품 - '별이 빛나는 밤'>
▲신앙심을 그림으로 표현하다.
그 해 후반에 그는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을 완성했다.
그 속에는 빈센트의 영혼의 어두운 밤 같은 것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또한 별빛 같은 것도 보인다.
그 그림에 대해 빈센트는 이렇게 썼다.
“그것은 또다시 영원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인생의 전모일까?
아니면, 우리는 죽기 전까지는 과연 삶의 반쪽밖에 모르는 것일까?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저 별은 나를 꿈꾸게 한다.
지도에 도시와 마을로 표시된 검은 점을 보며 꿈꾸는 것과 똑같이.”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
그러나 데오 외에 빈센트의 영혼의 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빈센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썼다.
“우리 영혼에는 거대한 불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몸을 녹이러 오지 않는다.
지나는 사람들은 굴뚝에서 나오는 한 줄기 연기만 보고
총총 제 갈 길로 가 버린다.”
그에게 삶은 얼마나 슬픈 것이었을까.
그렇게 깊이 느꼈고 그 느낌을 그렇게 뜨겁게 전하고 싶었건만,
모두들 멀찌감치 비켜서서 고개를 저으며 발길을 돌렸으니.
결국 그는 육체와 영혼과 정신과 감정의 상태가 모두 쇠퇴했다.
어두움 일색이었다.
▲‘어지러운 하늘 밑의 광활한 옥수수 밭’
마침내 빈센트 안에서 타오르던 열정, 끝내 재 한 줌 없이
다 소멸할 때까지 타오르고 타오르던 그 불꽃의 마지막 불씨가
1890년 7월에 그린 화폭에 떨어져 있다.
제목은 <까마귀 나는 옥수수 밭>.
“어지러운 하늘 밑의 광활한 옥수수 밭.” (의미를 묵상해야 함)
그것이 그림에 대한 그의 묘사였다.
그 어지러운 하늘 밑 그 광활한 밭 어디선가 빈센트는 제 몸에 총을 쏘았다.
1890년 7월 29일 새벽 1시 30분,
데오의 팔에 안겨 화가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슬픔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고흐를 제일 잘 알았던 사람들
누군가가 말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이 바로 자신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일 때,
그는 인생에 성공한 것이라고.
빈센트를 가장 잘 알던 두 사람은 그의 형제와 어머니였다.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을 찾는 고귀한 심성을 지녔다.”
그의 형제가 비문에 쓴 말이다.
그의 어머니는 이런 글을 남겼다.
“빈센트는 그 모든 기벽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며 살았다.
그것만은 분명 하나님도 그냥 지나치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그의 작품도 무심하게 외면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한테만은.
▲고흐, 예수님의 삶을 따라간 것일까?
그의 그림들과 편지들을 통해, 그에 관한 영화와 노래를 통해
나는 화가를 보았고 화가의 영혼의 일면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본 것이 또 있다.
나는 그를 통해서 영혼의 위대한 예술가이신 예수님의 일면을 보았다.
반 고흐는 말했다.
“그리스도는 예술가들보다 더 예술가이시다.
그분은 살아 있는 영혼과 살아 있는 육체로 작업하신다.
그리하여 동상이 아닌 인간의 만드신다.”
빈센트처럼 예수님도 밭에서 씨 뿌리는 자, 공중의 새, 들판의 꽃,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 우리의 시선을 향하게 하셨다.
빈센트처럼 그분도 내 영혼의 어두움을 아는 눈과
고생에 시달린 주름진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화가 같은 손을 지니셨다.
빈센트처럼 그분도 누더기 옷을 걸친 누더기 인생들을 사진틀에 담으셨다.
빈센트처럼 그분도 그들에게 자유를 주려 하셨다.
▲그러나 고흐와 예수님이 다른 점
그러나 스스로 입힌 상처로 죽어 간 빈센트와는 달리,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입힌 상처로 돌아가셨다.
마지막 날들이 절망으로 가득 찼던 빈센트와는 달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에 그들이 거할 곳을 예비하러 가신다며
절대 근심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셨다.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그분은 천국의 소망으로
옆 십자가의 강도를 격려해 주셨다.
버림받으신 중에도 예수님은 당신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셨다.
유사점도 있지만 많은 점에서 두 예술가는 확연히 구분된다.
삶의 방식에서도, 죽음의 방식에서도.
▲그러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슬픔을 당하였거늘.”
구경꾼들은 멀찌감치 서서 두 예술가를 모두 비난했다.
그들의 그림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렸다.
이 두 예술가가 말하려던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당신에게 말하려던 것은 무엇일까?
“그림을 보라.”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주님은 낮고 겸손한 방식으로 찾아오신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어느 이교도가 랍비를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왜 떨기나무 속에서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이시라면 적어도 영산(靈山)의 정상에서 천둥소리로 말씀하셔야 한다는 것이
그 이교도의 생각이었다.
랍비는 이렇게 답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
보잘것없는 가시덤불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방식에서 그분의 겸손이 보이지 않는가?
마구간의 낮아진 그곳에서
갓난아기 울음소리로 통해 말씀하시는,
우리는 주님의 겸손의 극치를 보지 않는가?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부족해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좋은 자격임에 틀림없다.
낮고 겸손하게 찾아오시는 하나님 특유의 방법을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이 땅에 천국이 가득한 순간들,
하나님이 인간의 태를 빌려 태어나는 베들레헴의 그 순간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 것이다.
말구유 건초더미 위에서 성스러운 것을 볼 때까지
우리는 우리 마음의 눈을 끊임없이 고쳐나가야 한다.
Still Life with Open Bible, 1885, 65x78cm
Wood Gatherers in the Snow (1884)
Vincent van Gogh
[주제별 분류] 감동 스토리 http://blog.daum.net/bible3/1118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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