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소명 롬15:17~33 하용조 목사님 설교 스크랩, 출처 휘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지만, 동족을 사랑한 바울
오늘 우리는 로마서의 결론 부분에서 사도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자기 민족을 향해 절규하고 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회개하고 예수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는데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거부하고 복음을 거부하고
구원을 거부하는 것을 생각하면 사도바울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롬9:1~2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가 큰 근심이 있는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내 민족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예수에게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천국의 생명책에 자기의 이름이 빠지게 될지라도
자기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통은 사랑하는 자기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을 위해 소명 받은 바울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것을 이룬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의 간절한 꿈은 ‘민족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사도바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에게 이방인을 위하여 살라고 명령했습니다.
여러분, 은혜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바울은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데 일생을 바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이방인을 위해서 순교하는데
바울의 생애를 바치기를 원하셨습니다.
16절에서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은 것이 자신의 마음이지만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 것이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자기의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16절에서 자신을 이방인을 위하여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은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부족하고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십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분도 있겠지만
어떤 분은 대답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기의 소명이 확실한 사람이 부럽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복음의 제사장입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입니까?
당신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든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가정에서 일을 하든지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혹은 한국에서 살든지 아프리카에서 살든지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 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희미하고 불안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이 분명하지 않고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이 말을 아직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냐고 물을 때 ‘저는 대통령인데요, 저는 장관인데요,
저는 사장인데요’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사장이건 대통령이건 노동자건 간에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인가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방인을 위한 일꾼’이라고
자기가 헌신할 대상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시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예수 믿는 한 자매가 불교를 믿는 집안에 시집을 갔습니다.
제사를 지내야 하는,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는 이 집에 보내진 선교사다’라고 생각하고
20~30년을 버티고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30년후 에 그 집안이 예수 믿는 가정으로 변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직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이 직장에 보내주셨다.
내 월급을 반으로 줄여도 상관없다.
나는 월급 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분명한 하나님의 일꾼이요,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생애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싶어 하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로마서를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한 가정에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서 딸은 ‘나는 시집가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살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미국으로 시집을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 딸의 심정,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일 수 있고 사도바울의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동족을 두고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 기막힌 심정이 로마서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소명)을 듣는 자
▲농촌으로 전도하러 떠난 목회자
제가 최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지난 12월에 교회를 사임한 강동진
목사님입니다. 그분은 제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함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농촌목회를 위해 충북 보은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저는 이 교회에서 더 일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가야한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웃으면서 거절하는 사람이 무서운 법입니다.
가기로 결정하고 인사까지 했지만 저에게는 그를 향한 미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설득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온누리교회에 있으면서 그곳에 파송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그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잘 가라고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도 무섭지 않고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인구 3, 4만 명이 있는 그 지역에 가서
예수를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목사라는 자격을 포기하고 농사꾼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분이 그 일을 한 번 정도 생각해 본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기 때문에 할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일생을 서울에서 살지 않고 교회도 없는 시골에 가서 살겠다’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을 만듭니다.
좋은 환경을 쫓아다니고 좋은 조건을 쫓아다니면 행복할 것 같지만
결국 불행합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직업이나 위치가 분명하고, 사무실에 내 자리가 분명해야 만족합니다.
그것을 빼앗으면 모두 가버립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빼앗아도 있어야 합니다. 월급을 주지 않아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서든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나는 이방인을 위하여 하나님이 특별하게 세워주신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일을 꼭 해야 한다. 내 생명 끝날 때까지 이 일만은 굶더라도 죽더라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겠다’ 이런 마음을 갖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16절을 보십시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목표는 한가지였습니다. 곧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꿈은 자기의 사랑하는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들을 제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교사가 나오고, 목사가 나와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구원의 축제가 이루어지는 제물로까지 바쳐지도록
하게 하는 것이 바울의 꿈이었습니다.
▲다른 일에는 침묵함
그래서 그에게는 소위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그 자존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7,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사도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절제 하겠다는 것입니다. 말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 시대에도 할 말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 외에는!
▲사명과 십자가 이외에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남을 비판하고 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모른척하고 오직 이방인을 위하여 나를 부르신 그것만을 생각하겠다는 것입니다.
고전2:2에도 사도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것은 반지성주의나 비지성주의적인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바울은 지성의 세계와 학문의 세계와 상식과 합리성의 세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결혼도 중요하지 않았고 어떤 위치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처녀지라도 좋다.
그는 죄수도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갇힌 몸이 되어도 아무런 갈등이 없었습니다.
감옥에서 그렇게 많은 매를 맞았어도 찬송을 불렀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지성이 뛰어나고 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보면 거세된 사람이요 편협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을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복음을 알고 난 후에 자기 자신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살던 지역도 민족도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다른 사람이 전도한 곳에서는 전도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무서운 소리입니다. 복음의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개척정신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곳에만 찾아 가겠다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의 싸움은 예수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기득권 싸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포기하겠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만들어 놓은 곳에 가서 앉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그런 기득권과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며 개척정신을 갖습니다.
남이 전도하지 않는 곳, 처녀지를 향해 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꾸었다.
제가 온누리교회를 시작하기 전에 이곳에 땅을 준비하고 목회를 하라는 초청을
받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일 년 동안 고민한 것은 가까운 곳에 충신교회가 있고
영락교회, 사랑의교회, 소망교회가 있는데
왜 여기에 교회를 또 세워야 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잘못하면 경쟁하기 쉬워집니다. 차라리 선교를 하러 나가거나 농촌에 가서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면서 고민했습니다.
일 년 만에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신 것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이 의도했던 교회, 사도행전에서 보여주었던 교회가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가능한가?’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생각을 할 때 제 가슴에 불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교회라면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바로 12년 전의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전도한 곳에서는 사도바울은 전도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곳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미지의 세계로 가야하고, 기득권을 포기하고
안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로마를 넘어서 스페인으로! 롬15:22~33
이제 우리는 로마서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22~2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로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다
이 곳에서 두 절을 주의하여 보십시오. 먼저 2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로마가 아니라 서바나였습니다. 서바나는 지금의 스페인입니다.
그 당시 세계관에 의하면 서바나는 지구의 끝이고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전설적인 그 곳에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기 위하여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이고 이것이 로마서입니다.
그가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 로마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로마는 그 당시 전 세계의 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로마의 유혹에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쓴 진짜 이유는
서바나로 가기 전에 로마에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그들로부터 지원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영혼을 위하여!
사도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그 정도로 일을 했다면 기득권에 안주할 수도 있습니다.
원로목사가 되어 자기가 고생한 것만큼 남은 여생을 편안히 지내고 싶어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거절하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합니다.
지구의 끝이고 죽음의 땅이라고 하는 서바나에 관심이 있고
그곳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한 영혼이 있다면 거기에서 죽겠다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는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인 위구르족, 하나족과 같은
미전도종족을 입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풍토병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전도하려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받아야 할 한 사람의 영혼이 있다면 그곳에 가겠다고 말합니다.
28절을 보면 복음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고한 대가로 열매를 따먹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이것이 복음의 개척정신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 위에 있지 않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있고 한 나라가 있다면,
한 민족이 있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거기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30절 이후에 3가지 기도부탁을 합니다.
첫째는 전도하는 그 지역의 사람들이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둘째 부탁은 이방인들이 바울에게 헌금을 했는데
그 헌금으로 인해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로마에 가는 여정을 인도해 주실 것과
장차 서바나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고 로마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은 땅 끝에 한 영혼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그 곳까지 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사도바울의 이 뜨거운 심장이 여러분의 혈관 속에서
똑같이 맥박하기를 바랍니다.
온누리교회를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미전도 종족으로 가게 하십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갈 수도 있습니다.
한 영혼이 있다면 우리는 그곳까지 가야 합니다. 그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바울은 서바나로 가기 위해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주님, 여기에 머리 숙인 당신의 종들에게 성령이 임하사
저들의 마음이 복음으로 불타게 도와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축복해 주시고
복음의 제사장으로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꿈, 비전, 소명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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