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오해, 매도의 벽을 넘어 (막 3:20-30)
*출처: http://blog.naver.com/jjkkhh2232/50013896724
◑1. 인기를 넘어 섬김으로 막3:20
▶예수님께서 2차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이적을 일으키자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을 방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가는 곳마다 인기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해주면 얼마나 우쭐해지겠습니까?
지지도만 올라가도 마치 대통령이 된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가수들이 인기가 올라가면 얼마나 대우가 달라집니까?
이렇게 인기가 올라가면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대표적인 특징이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인기가 올라가면 그 때부터는 스스로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부분에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결국 자신이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지배권 속에 묶어 두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려 하는 것입니다.
회사가 인기가 없어 어려울 때는 겸손했던 사람이
회사의 인기가 사람들에게 올라가면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 담을 넘지 못하면 큰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이 담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을 때 예수님은 무엇을 합니까?
오늘 성경은 그 상황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식사할 겨를도 없습니까? 종으로 섬기느라 그렇습니다.
아픈 사람 고쳐 주시고, 귀신들린 사람 났게 해주시고
고통 받는 사람 위로해 주고, 억울한 사람 한을 풀어 주시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종처럼 수발들기 위해 뛰어 다녔기 때문에
식사할 겨를도 없는 것입니다.
왕처럼 했다면 이미 임명된 제자들에게 다 맡겨 버리고
여유 있게 식사하며 존경만 받으면 될 것입니다.
주인이 되어 종들을 부리면 됩니다. 조직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자신은 존경받은 자리에만 얼굴 마담으로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종으로 오셔서 희생적으로 일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섬기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종노릇하시는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 전율이 흐르지 않습니까?
예수님 말씀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우리 시대는 서로 왕이 되기 위한 싸움들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종이 되셨고 우리에게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서로 왕이 되기 위하여 권력다툼을 할 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3-4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네로처럼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종으로 살기를 원하는 지도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 오해를 넘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함으로 막3:21, 31~35
▶이렇게 종으로서 예수님께서 바쁘게 사명을 이루고 있을 때
예수님의 친속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30세가 넘은 성인입니다.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정식 제자들이 12명이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며 따라 다닙니다.
그런데 모친과 형제들이 그를 붙잡기 위해 나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잡수실 시간도 없이 열심히 일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속들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협력해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나쁜 소문이 있으면 그것을 변호해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이 미쳤다고 그들이 믿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주격이 없이 3인칭 복수로 쓰여 있습니다.
주격 없이 쓰이는 3인칭 복수는 대개 사람들 사이에
막연히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소개할 때 쓰이는 어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미쳤다”는 말은
사람들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이었다는 말입니다.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친족들도 그렇게 단정해 버린 것입니다.
사실 확인도 없이 소문만 듣고 판단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어 번역에서는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소문을 듣고 붙들어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였다. (막 3:21)”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소문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습니다. 여론 역시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이며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는 그의 책 [여론 조작]이란 책에서
미국의 예를 들어 그 사례들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뉴스라는 것은 사실 보도라고 말하지만 결국 편집권을 통해 여과 장치를 통과해
독자에게 가는 것입니다. 일정한 분량 안에서 그 많은 사건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여론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허위 사실이라도, 계속 반복적으로 들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믿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언행이 선전 선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파멸시키고
자기들의 지위와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사람들을 동원하여 악선전을 하였습니다.
후에 보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악선전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참람죄를 뒤집어 씌워 군중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못 박도록 충동질한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군병들에게
돈을 주어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 해 갔다고 헛소문을 퍼뜨리게도 하였습니다.
여론 조작을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용어로 말하면 백성들로부터 자신들이 지지를 받기 위해,
종교적 권력을 계속적으로 누리며 자신들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여론 조작을 한 것입니다. 가족들은 이들의 계략에 넘어간 것입니다.
▶여론이란 것은 계속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추종하게 되어있습니다.
계속 보게 되면 미운 사람도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해외 독재 국가의 언론들이 여론을 조작할 때
계속 한 사람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나쁘게 조작하려면 계속 그 사람의 나쁜 점만 부각시켜 버립니다.
▶마리아가 진정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하여 분명히 듣고 체험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 이미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임마누엘 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요2:1-5).
이 은혜를 받은 자신을 만세에 복있는 여인이라고 말하는 마리아의 찬양을
(눅 1:46-56) 보면 마리아가 이 사실로 얼마나 기뻐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미 가나 혼인 잔치에 예수님과 같이 참여하여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예수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대한 여론 앞에... 모친 마리아마저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아들, 딸(예수님의 동생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간 것입니다.
그만큼 여론의 힘이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오해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즉각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일하려다가 이런 오해받으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아픕니까?
그래서 이런 오해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거칠어지고 그 말을 전해준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분노의 반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감정을 정확하게 통제하시는 분이십니다.
감정의 충동으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망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즉각적인 반응은 감정 충돌이 생길 것을 잘 아셨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머님과 형제들에게 열을 올리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어머님이 잘 못 들었고 동생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열을 내어 설명한다면 얼마나 가족 망신이고
예수님 스스로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일이겠습니까? 사역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침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을 아신 것입니다.
◑3. 매도를 넘어 사탄을 제어하는 권세로 막3:22-30
사람들이 적대세력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매도입니다.
정치인들이 정적을 제거할 때 흔히 써먹는 방법입니다.
매도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가장 쉬운 기준이 도덕성입니다.
부정축제했다고 하면 충분히 제거시킬 수 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인들이 써먹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사상성입니다. 이데올로기입니다.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올무에 걸어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자신과 반대세력을 숙청하는데 사용하는 방법은
자신의 통치철학에 반대하는 반동분자로 낙인 찍는 것입니다.
‘미제의 앞잡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누구도 반발할 수 없습니다.
자신도 똑같이 반동분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기준은 친근성입니다. 혈연 지연 학연을 통한 방법입니다.
‘우리가 남인가?’ 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틀로 적과 동지를 구별해 버리기 때문에
쉽게 지지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획일적 편 가르기는 다양성을 차단해 버립니다.
쉽게 사람을 정죄해 버리게 합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방법은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것입니다.
인혁당 사건에서 보듯이 유신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반공을 붙이면
그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최고 지식인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군중심리를 잘 이용할 줄
아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안식일의 틀로 묶었습니다.
이제는 무슨 틀로 묶는가 보십시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2차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자 예수님의 행동과 말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왔습니다.
어쩌면 이들을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평생 율법을 연구하는 전문가 그룹입니다.
그들은 율법 전문가로 산헤드린에서 파송한 공식적인 조사단일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판정을 하고 있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바알세불을 지폈다.”라고 말합니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을 말합니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단의 대행자라고 매도하는 것입니다.
▶전선을 하나님과 사단이라는 이분법적 이데올로기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근거는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가버나움에서 귀신들린 자를 낫게 해 준 일이 있는데,
그 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오히려 예수님을 귀신들린 자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민중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권세의 근거를 오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지식으로 예수님을 완전히 매도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능력을 부인할 수 없으니까 예수님은 정상인이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힌 자라고 매도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단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지 못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 매도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의 매도에 대하여 예수님은 어떻게 대처합니까?
아주 논리적으로 답변을 합니다. 너희들이 나를 사단이라고 말한다면
사단이 어떻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23).
26절을 보십시오. 만약 사단이 분쟁하면 스스로 망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나라 비유이고, 둘째는 집 비유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집 비유를 들어 다시 설명합니다.
가족 공동체마저도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매일 매일 부부가 싸운다면 그 가정이 얼마나 서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누구시라는 말씀입니까? 27절을 보십시오.
강한 자 즉 사단을 결박하러 온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인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사망, 죄, 귀신들림, 질병 등으로 사람을 자신의 노예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그들의 집에 들어가 거주하며 사람들을 도구화해 버립니다.
그 사단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더 강한 자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예수님이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하여 소개한 후 예수님은 예수님을 매도하고 있는
그들의 본질적인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짓고 있는 죄가 성령 훼방 죄라고 경고하십니다.(28-30)
그들은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 사역을 거역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사역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비난하고 거부하는 행위를 예수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고 말씀합니다.
서기관들 의도적으로 성령을 모독함으로 구원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예수님께서는 인기 앞에서 교만하여 섬김의 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해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매도 앞에서 나약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역을 이루어 갔습니다.
[주제별 분류] 꿈, 비전, 소명 http://blog.daum.net/bible3/1335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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