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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부자 관원과 현대 청년

LNCK 2007. 12. 21. 23:15
 

◈부자 관원과 현대 청년                눅18:18-23



오늘날의 청년들은 정말 공부도 많이 했고, 어학에, 컴퓨터에, 운동에... 만능입니다.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두루두루 다 갖춘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마치 성경에 ‘예수님께 찾아왔던 청년 관원’을 연상케 하는데요...


 

◑1. 자신의 부족을 모르는 완벽주의자


▶영생의 길을 묻는 이 청년 관원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입니다.

그는 권력위주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관원이었습니다.

게다가 유산이 많은지, 젊었지만 벌써 큰 부자였습니다(눅18:18-23).

그야말로 일류에 일등 신랑감입니다.


또한 그는 어려서부터 철두철미한 신앙생활을 해 오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계명을 잘 지켜 왔습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도덕적으로는 흠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빌3:6절에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신을 일컬었던 것처럼,

이 청년도 투철한 신앙, 투철한 율법의 의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생을 찾는, 열렬한 구도자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겸손의 미덕까지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막10:17절에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 오되"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력과 물질과 지식과 지혜와 모든 것을 갖춘 이 청년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을 지녔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선한 일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19:16에서 그는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질문하였습니다.


▶“나는 완벽합니다!”

이렇게 그는 출세의 상징인 권력으로, 물질의 부요에서, 젊음의 패기에서,

윤리도덕과 겸손과 구도의 열심에서,

즉 세상과 신앙에서 두루두루 걸쳐 완벽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청년은, 의인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눈썹 하나 까닭 않고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며 자기의 완벽성을 주장했습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들

마찬가지로 오늘날 현대의 소위 잘나가는 청장년들도 다 갖춘 줄 압니다.

까딱 잘못하면 자기가 다 된 줄 압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모릅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문제점은 ‘자기의 부족함을 알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현대인중에 물질과 권력과 젊음과, 게다가 적당한 신앙과 적당한 도덕성,

이런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사람, 즉 ‘완벽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인본주의적 문제’들은,

이런 전인병全人病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을 모르며,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자기만족과 오만 속에 빠져, 하늘과 땅의 이치를 살펴 볼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청년의 결여된 인간성, 결여된 삶의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최고의 통치자였지만,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볼 때 - 부족했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은 벨사살 왕입니다.

지금의 미국과 소련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국가를 건설한 나라의 왕으로,

어느 날 연회장의 벽에 손이 나타나더니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를 기록했습니다.


'메네'란 말은 '세어 보았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왕의 인격 됨됨이를 세어 보고 나라의 허실을 세어 보았던 것입니다.


'데겔'이란 하나님이 벨사살 왕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즉, 왕이 될 자격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우르바신'이란 바벨론 나라를 통치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이 나라를 갈라서 메대와 페르시아 나라로 갈라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전 세계 최고의 군왕도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을 때,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가 다 갖추어 스스로 완벽하다는 사람은,

부자 관원처럼, 또는 벨사살 왕처럼...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2. 사랑의 결핍


▶누구나 한 가지 부족한 점은 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저울에 달아보실 때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무엇을 가졌건 간에 우리에게는

한 가지 결여된 부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한 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인간은 신이 될 수가 없는 것이며, 전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핵심을 놓치고 있었던 청년 관원

마19:21절에서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라는 말씀은 ‘네가 지금은 온전하지 못하다’ 입니다.

그리고 ‘너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청년에게는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주님이 지적하신 사랑이 없다는 말씀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 완벽했지만, 가장 핵심 가치를 놓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에서 제일 좋은 자동차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기름이 없으면 그 차는 결국 아무 쓸데없어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름과 같은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스 월드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녀에게 영혼의 사랑이 없으면, 그 아름다움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백치미’라고 비꼬듯이 말합니다.

오늘날 외모를 가꾸는 여인들이 거의 예외가 없을 정도로 많지만,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정한 내면적 사랑을 품은 여인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청년은 경쟁적인 자질은 다 갖추었으나,

이웃의 약자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인데도 말입니다.

 

▶참 사랑을 모르면, 하나님도 모르는 것

요한1서 4장 7절에서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는 신앙은, 참된 믿음이 없는 신앙입니다.

 

식물이 빛을 잃어버릴 때에 죽기 시작하듯이

인간은 사랑을 잃어버릴 때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아가페적인 사랑에 점점 더 눈을 떠가는 것입니다.



◑3. 물질적 탐욕


본문은 "네 있는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가진 재산을 다 정리해서 고아원, 양로원에 갖다 주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주신 재산을 재량껏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자기 자신만 위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의 과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계층은

월 400-450만원 이상의 수입을 가진 20% 이내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열심히 돈을 벌어 마음대로 쓰고 사는데,

누가 잔소리를 하느냐 할지 모르지만

이런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 생활이

우리들을 슬프게 하고 경제를 파탄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그 사람이 벌어들이는 400-450만원의 돈을 그 사람에게 모아 주기 위해서

수고하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註) 

정말 어리석은 부자들입니다.


그럼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물질에 대하여 탐심을 가지는 네 생활이 부족해,

그런 면에서 너는 신앙이 결여된 사람이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이 청년은 큰 부자였던 고로 근심하며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고 영생의 길을 포기하고 떠나갔습니다.

- 탐심과 물질적 욕심을 정리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의 자리에는 나오면서,

자신의 물질적 욕심과 욕망은 버리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골3:5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돈이 많으면 그것을 나누어 쓸 줄 알아야 하고,

지식이 많으면 그것으로 다른 사람의 무지를 도와야 하며,

건강이 좋으면 이웃의 아픔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나누어주고, 즐거운 사람은 즐거움을 함께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 몇 달, 몇 년 해서 은혜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도 더 두고 봐야 합니다.

대학에서 수석 졸업을 했다 해도 두고 봐야 합니다.

사회에 나가서 잘 봉사하는 것을 볼 때, 비로소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은혜, 순간적인 실력, 두고 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물질이나 다른 무엇에 대한 이기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직 부족한 사람입니다.


▶마치는 말

오늘의 현대인들, 너무도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완벽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물질적 탐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결핍된 인간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말로, 참 사랑의 깊이와 의미를 점점 더 발견해 나가는 것입니다.

(본 블로그가 그런 주제를 차츰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루어 나가려고 합니다.)

 

*원제목 :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

*출처 : http://blog.naver.com/kco6567/120041253491 >10월의 복음적 설교 >10-09

 

 

▲註, 백배의 원리

인생은 자기 혼자 잘 산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모두 같이 잘 살아야 한다.

생태계에는 백배의 원리가 존재한다.

 

상어 한 마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1백 마리 정도의 고등어가 필요하다.

그래야 상어가 고등어를 먹고 살아도, 고등어는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다.

 

또한 1백 마리의 고등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백배인 1만 마리의 새우가 존재해야 한다.

 

또한 1만 마리의 새우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백배인 1백만 마리의 동물성 플랑크톤이 존재해야 한다.

 

1백만 마리의 동물성 플랑크톤이 존재하려면

그 백배인 1억 마리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존재해야 한다고 한다.

 

즉, 식물성 플랑크톤 1억 마리가 있어야 상어 한 마리가 생존하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기는 고등어로 혼자서 존재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배경에 1백 마리의 새우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까먹는다.

새우뿐만 아니라, 동물성, 식물성 플랑크톤이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근시안이 되어서 자기 혼자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호랑이 한 마리가 생존하려면, 1달에 들소 한 마리를 먹어치운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1년에 들소 12마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들소가 12마리가 호랑이 먹이로 사라져도 그 숫자가 계속 유지되려면

호랑이 한 마리의 백배인 1백 마리의 들소가 필요하다.

 

즉 호랑이가 1년에 12마리쯤 잡아먹어도, 그 1백 배의 들소가 있어야

들소는 자기 먹이사슬의 위치를 잘 감당하며 감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옛말에도 큰 산에는 호랑이 1마리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이 서로 물고 물리며 관계되어 살아가게 되어 있다.

 

재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주제별 분류] 지도자, 리더십  http://blog.daum.net/bible3/13299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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