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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3 신중한 사람 '늙은 종'

LNCK 2008. 3. 18. 20:48


◈신중한 사람 '늙은 종'              창24:1-67


 

*출처:    민경진 교수님, '한 늙은 종 이야기' 

 

 

우리가 늘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하는 사람이 매사에 신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한 다음에... 신중하지 못하고 덜렁거릴 때가 많으나

이 '늙은 종'은 기도한 다음에도... 계속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눈길 끄는 본문

창세기 24장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길기 때문이다. 67절이나 된다.

창세기에서는 가장 긴 장(章)이다.

길게 적은 것을 보니 저자에게 본문에 실려 있는 이야기가 꽤 중요했던 것 같다.

궁금해진다.


그런데 이 긴 장을 이끌어 가는 이는 의외의 인물이다.

족장사史(창12―50장) 한 복판에 위치해 있지만,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주인공이 되어 이 긴 장을 이끌고 있다.


이삭이 창세기 전체에서 고작 80절 가량 언급되어 있는 것에 견주어 보면

이 늙은 종 이야기는 가히 파격적이다. (중략)

 

 

◑부름 받은 종, 쓰임 받는 종


이삭의 아내를 찾아오라는 쉽지 않은 사역이 아브라함의 종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이 중대한 사역을 잘 감당한 이 종의 수고로 인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순탄하게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 종은 하나님께 제대로 쓰임 받은 신실한 종이 된 것이다.



▲약속과 성취 사이에 간격을 메우는 데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본문이 겨냥하고 있는 메시지는 뭔가?

창세기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만 흐른다고 갑자기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 무수히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약속은 성취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요컨대 약속과 성취 사이의 간격과 틈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메워지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에 의해 그 틈이 채워져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으시라. 늙은 종처럼!

만일 이 늙은 종이 당시에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약속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반드시 성취되었을 것이다.


만일 늙은 종이 없었더라도, 혹은 심부름하지 않겠다고 했다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활용해서 그 일을 이루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은 뭘 말하고 있는가? 이런 일에 쓰임 받으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에 ‘초대’는 받지만 다 ‘쓰임’을 받는 것은 아니다. 마22:14

사실 종으로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기쁨이 있다.



▲많은 사람이 초대 받았으나, 일하는 종들만 쓰임 받았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가나지역의 혼인잔치 이야기가 나온다.

포도주가 모자라자 결국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신다.


그곳에서 연회를 즐긴 손님들은 맛있는 포도주를 맛보고 깜짝 놀란다.

사람들은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요2:9).

몸으로 섬긴 종들은 그 비밀을 아는 복을 받았던 것이다.



▲일을 잘 하는 종이, 스스로 기쁘고 감격이 있다.

우리 크리스천은 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다.

‘종’은 ‘주인’의 일을 효과적으로 잘해야 참 종이고,

그럴 때 종으로서의 기쁨과 영광이 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감동과 감격이 없다면,

종으로서 부름은 받았지만

정작 쓰임 받지 못한 게으른 종으로,

늘 금 ‘밖’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종이었기에?


창24장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역을 너무도 잘 수행한 한 늙은 종을 소개한다.

부름 받은 종은 많지만 쓰임 받은 종은 많지 않음을 기억할 때,

본문의 종에게로 우리의 관심이 모아진다.

생각해 보자. 이 종은 우리와 어떤 점에서 달랐을까?



▲첫째, 이 종은 주인의 인정을 받은 종이었다.

24:2절을 보면 이 종은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것을 관할했다고 했다.


나이 40세 가량 된 이삭보다도, 어느 면에서는 이 종이 더 미더웠던 것 같다.

더군다나 며느리 간택이라는 ‘큰’ 일을 앞에 두고,

아브라함은 ‘작은’ 지침만 내린다.

거의 전권을 이 종에게 준 셈이다.


평소 그 늙은 종의 행실에 대해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받은 분량은 다른 법이다.

어떤 이는 한 달란트 받았지만, 다른 이들은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

중요한 것은 받은 달란트만큼은 충성하라는 것이다.


가령, 하루에 5분밖에 기도를 못한다면, 5분은 하라는 것이다.

5분만이라도 충성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맡겨진 작은 일을, ‘작은’ 일로 여기지 않고 ‘큰’ 일로 충성한 자가

요셉처럼, 본문의 늙은 종처럼 쓰임 받는다는 것이다.



▲둘째, 이 종은 주인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신중했다.

‘늙은’ 종이라고 했다.

그는 아브라함의 식솔 중 가장 늙은 종이었을 것이다(cf. 2절).

인생경륜이 많고 아브라함과 평생을 살았을 것이므로

아브라함의 의중을 눈치로도 충분히 잘 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지침을 하달할 때, 이 종은 건성으로 듣지 않았다.

오히려 구체적 상황에 대해 질문한다.

결혼할 마음은 있는데, 그곳에서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 본다.

얼마나 중요한 질문인가? 충분히 예상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메소포타미아에서 받았을 경우

아브라함에게 묻기 위해 다시 올 수도 없는 형편이 아닌가!

참 본받을만한 자세이다.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주인의 의중을 확실히 파악하려고 했다.


사실 일을 하다보면 종이 ‘주인’의 일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 일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다름 아닌 ‘주인’의 일을 잘하는 것이 바로 종의 임무이다.

모르면 물어 보는 것이다. 주인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있는 자가 참 종이다.



▲셋째, 이 종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가나안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는 약 8백km 가량 된다.

서너 달은 족히 걸리는 여행이었을 것이다.


먼 거리를 달려온 후 메소포타미아 근방에 도착했을 때

이 종은 얼마나 흥분되고 긴장됐겠는가?

이때 이 종은 섣부르게 외모로 판단하지 않도록, 실수하지 않도록 기도로 준비한다.


사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란 참 어렵다.

시간이 한참 지나야 제대로 사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종에게는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자칫하면 자기 생각대로 판단할 수 있음을 간파한 종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기도하면,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차분하고 신중해진다.

그리고 기도 중에 한 기준을 세우게 된다.

곧 ‘관대한’ 마음을 가진 여인을 찾은 것이다.

“물 항아리를 기울여 마시게 해 달라”는 청에

“그러지요,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여인을 찾는다.


생각해 보라. 낙타가 10마리나 되었다.

먼 길을 왔으니 낙타에게 다 물을 주려면 보통 수고가 아니었을 것이다.


▲기도하고도, 비신앙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는데...

종은 기도 가운데 중요한 기준을 세웠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부딪히면, 우리는 비신앙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기도는 심혈을 기울여 했으면서도, 응답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늙은 종은 기도한 대로, 기도한 다음에도, 시종 신중하게 선택했다.


▲기도하면 번득이는 지혜가 생긴다.  

곰곰이 따져보면 그 정황에서

이것 이외에 더 좋은 무슨 기준이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때는 저녁이었다.

여인들은 빨리 집에 돌아가서 저녁 준비를 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낯선 남자의 부탁을 받고 “낙타에게도 물을 먹일까요?”

라고 물을 수 있는 그런 관대한 마음을 가진 여인이라면

이삭의 아내가 되기에 너무도 적합한 기준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재치가 어디서 왔는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12-14절).



▲넷째, 이 종은 신중하고 조리 있게 설명했다.

그래서 상대방이 설득 당한 것이다.

남의 딸을 빼앗아 와야 하는 정황 아닌가?

이때 이 종은 조리 있게 설명한다.


아브라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낯선 땅에 가서 부자가 되어 있는 아브라함을 자랑한다.

이삭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낳은 아들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의 사람임을 강조한다.


리브가를 우물가에서 만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서 이루어진 것임을 논증한다.

성경은 짧게 기록하고 있기에, 종이 리브가 가족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종은 이때 가슴이 뜨거웠을 것이다.

추정컨대 자기 이야기도 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나를 종으로 여기지 않고 아들처럼 믿어주고 길러 주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이라고 눈물을 적시며 말했을 것이다.


우리도 훈련해야 한다.

말을 하되 삶의 증거와 감동이 서려있는 말을 해야 한다.

지식이 혹 부족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셨는지

가슴으로라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신중한 언행은, 평소의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에서 나온다. 살전5:17)


▲다 주께서 하신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라반과 브두엘이 어떻게 반응했나?

꼼짝 못했다. 그리고 “다 주께서 하신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라반과 부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창24:50-51



▲다섯 째, 이 종의 마음은 온통 자기 주인 생각뿐이었다.

리브가의 식구들이 간청한다. 조금 더 머물다 가라고. 냉정하게 거절한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나겠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려운 거절인가?


하지만 이 종의 마음은 자기 주인인 아브라함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늦게 오면, 행여 걱정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뿐이었다.


주인만 집중해서 살아가는 종이야말로 참 종이며,

이런 종이 하나님의 역사에 큰 쓰임을 받았음을 본문은 보여준다.



나가면서

정리해 보자. 창세기 24장에 나오는 이 종은 늙었다. 이름도 없었다.

말 그대로 종이요, 노예였다. 하지만, 이 종은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았다.

창세기의 저자도 이 종이 행한 일이 감동스러웠던 것 같다.

길게 적어 후세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도 때로는 이 종처럼 하나님의 중요한 일이 맡겨질 때가 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너무 의외의 일이고 낯설어서 피하고 싶은 일들도 있다.


오늘 본문의 종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늙은 관계로 건강도 문제였고, 판단력도 문제였을 것이다.

그 일의 비중을 생각해 보면 (늙은 종이 처리하기엔) 뭔가 어색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이 종은 이 일을 멋지게 잘 감당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전적으로 위임한 것도,

그가 기도의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인듯 하다.

 

(무슨 중임을 맡길 때는,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자기가 모든 일을 다 처리하지 않고,

이렇게 기도하는 종에게 맡길 줄 아는 것도, 아브라함의 실력이었다.)

 

그리고 이 기도하는 늙은 종의 신중한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가 면면히 이어졌다.


올해 한 해도 이제 저물었다. 후회하며 한 해를 부끄러워하게 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후대에 누군가 2006년의 역사를 기록할 때

우리의 수고를 기억하며 고맙다고

창24장의 '늙은 종'처럼 길게 할애해 줄 날을 기대하며

이 종처럼 내년을 살 것을 다짐해 본다.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14218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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