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 요2:1~11
◑요한복음의 전반부와 후반부 ★★
전반부 - 공개적으로 대중들에게, 표적을 강조, 1~12장까지.
후반부 - 비공개적으로 제자들에게, 수난을 강조. 13~21장.
예수님의 사역에 따라서 요한복음을 나누어본다면
전반부와 후반부로 양분할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12장까지, 후반부는 13~21장까지입니다.
요한복음의 전반부는 예수님 사역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public ministry).
예수님은 백성들을 가르치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무리를 먹이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여러 가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전반부를 가리켜서 이른바 “표적의 책”(Book of Sign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후반부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이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private ministry).
이 때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만 따로 모아서 그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가르치심을 베푸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곧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후반부를 가리켜서 이른바 “수난의 책”(Book of the Passion)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전반부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들 가운데서
대표적인 7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입니다(2장).
②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입니다(4장).
③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를 고치신 표적입니다(5장).
④5천명을 먹이신 표적입니다(6장).
⑤바다 위를 걸어가신 표적입니다(6장).
⑥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표적입니다(9장).
⑦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입니다(11장).
한편 요한복음의 후반부에서는 예수님의 표적이
요한복음의 마지막장인 21장에 단 한번 나타나고 있을 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해주신 표적입니다.
▲표적이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miracle)을 가리켜서 표적(sign)이라고 부릅니다.
“기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놀라운 초자연적인 사건을 의미하지만,
“표적”이라는 말은 그 사건이 주는 의미(significance)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표적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2:11
즉,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1. 현장에 대한 설명 (Scene, 1-2절).
요2: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때
요한복음 1장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이 빌립과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때는 그로부터 사흘 되던 날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계산하면 모레는 이틀 뒤가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오늘도 하루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모레는 제삼일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모레는 오늘로부터 사흘 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는 주일 새벽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이틀이지만, 유대 식으로는 제삼일에 다시 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첫 표적을 행하신 날은, 예수님이 빌립과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신 날로부터 사흘 되던 날이었습니다.
▲장소
예수님이 첫 표적을 행하신 장소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이었습니다.
요1:28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된 일들은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되어졌습니다.
그곳에서 갈릴리 가나까지는 약 35km입니다.
그러니까 걸어서는 이박 삼일 정도 가야하는 거리입니다. ←사흘 되던 날에...
중요한 것은 이 갈릴리 가나가 누구의 고향이었습니까?
요21: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나다나엘에게 약속하신 것이 성취되다
갈릴리 가나는 나다나엘의 고향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요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요1: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약속은 ‘사흘째’ 반드시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하신 약속은 불과 사흘 되던 날에 성취되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자신의 고향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첫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광을 분명히 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붙든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맙시다.
또한 내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낙심하지도 맙시다.
제3일에는, 곧 사흘 되는 날에는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어서 신실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그대로 응하여지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계셨음을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기록한 요한복음에서 단 한번도 자기의 이름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가리켜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 등으로 부르면서
자신을 익명으로 나타내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도
전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모셨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았던 사도 요한이었기에,
그가 자기의 어머니로 모셨던 마리아의 이름도 드러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역할입니다.
본문 2절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초청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본문 1절에서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할 때의
헬라어 동사의 시제가 미완료형입니다.
이는 마리아가 처음부터 그곳에 와있었던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준비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아는 오늘 본문 5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 집에 있는 하인들을 명령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마리아는 그 혼인집과 가까운 친척 관계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일찌감치 그 집으로 가서 음식을 준비하는 등
잔치에 관한 일들을 여러 가지로 돕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잔치에 큰 기쁨이 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서 예수님을 초청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영광스럽고 축복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기에
그 혼인집에서 생겼던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기 때문에
혼인잔치는 즐겁고도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5월에는 많은 잔치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어린이들을 위한 잔치가 있습니다. 어버이들을 위한 잔치도 있습니다.
또한 스승을 위한 잔치도 있습니다. 우리도 잔치 때마다 예수님을 초청하십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초청에 응하셔서 우리를 기쁘게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큰 기쁨도 주실 것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더욱 분명히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상황에 대한 설명 (Situation, 3-5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요2:3~5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2:3
잔치집에 포도주가 동이 났습니다. 옛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오늘날의 술이라기보다는 음료수와 같았습니다.
물의 질이 나빴기 때문에 갈증이 날 경우 어린아이들은 우유를 마셨고,
어른들은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당시에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포도로 만든 음료수는 쉽게 발효해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음료수로 사용할 때는 포도주에 물을 타서 마셨습니다.
물을 타지 않은 포도주를 “독주”라고 불렀습니다.
일반적으로 독주는 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결혼 잔치를 하면서 뛰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잔치 비용을 담당하는 신랑은 말할 것도 없고,
잔치 준비에 일익을 담당했던 마리아도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얼른 예수님에게 와서 그 사실을 일렀습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죽고 난 뒤였습니다.
그 이후로 마리아의 장남이었던 예수님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에게 그 문제를 상의했을 것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도 마리아를 부르실 때 같은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왕이 왕후를 부를 때도 사용될 만큼 정중하게 예의를 갖춘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말이 어머니라는 호칭보다는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는 호칭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다소 거리감이 있는 말인 “여자여”라고 불렀겠습니까?
이미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더 이상 예수님을 자기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을 언뜻 들으면 이런 뜻으로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자여, 포도주가 떨어졌으면 당신이 알아서 하실 일이 아닙니까?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내게 와서 그런 말을 하시나이까?”
만일 예수님이 그런 뜻으로 말씀을 하셨다면, 예수님은 곧 이어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일을 구태여 하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묻고 계신 것은 포도주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과 마리아의 관계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직도 예수님을 자기의 아들로 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이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대할 것을
촉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의 때를 결정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뿐이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뿐만 아니라 사람은 그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의 때를 임의로 주장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때를 자기 임의대로 판단해서
지금이 예수님의 능력을 발휘할 적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또한 마리아의 잘못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말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은 그 집에 포도주가 동이 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그곳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표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하여 그곳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은 마리아가 자기의 임의로 때를 판단해서
예수님의 권능을 나타내시기를 바라는 마음 자세를 고쳐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믿음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비로소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바로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전적인 순종입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리고는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스스로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능을 나타내실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의 관심은 포도주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포도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들의 예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면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어 우리 생각대로만 살아갑니까?
우리의 삶을 예수님에게 맡깁시다. 우리 자녀도 예수님에게 맡깁시다.
예수님은 우리와 우리 자녀의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살펴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때를 주장하지 맙시다. 예수님의 때에 온전히 맡깁시다.
예수님의 약속은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3. 표적에 대한 설명 (Sign 6-10절).
▲풍성함
예수님이 앉으신 출입구 곁에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여있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정)결례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막7:3
사도 요한은 그 돌항아리들이 크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두세 통의 물이 들어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큰 돌항아리 여섯에 든 물을 전부 포도주로 만드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은혜가 그만큼 풍성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없는 자의 풍성이십니다. 이처럼 풍성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언제나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순종
오늘날처럼 그곳에 수도꼭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습니다.
두세 통이나 드는 큰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가득 채운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아구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이런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온전함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포도주의 품질은 최고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표적은 온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난처한 문제가 생겼습니까?
그럴수록 예수님을 더욱 힘있게 의지합시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의 표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표적은 ‘온전한’ 표적입니다.
그 표적을 통해, 우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더욱 굳게 믿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2:11
▲또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즉 존재의 본질을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본재의 본질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됐네" 찬송을
기쁨과 생기로 부릅니다. 놀라운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설교 발췌, 축약.
[주제별 분류] 제자 양육 http://blog.daum.net/bible3/13800970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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