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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맞아도 깨지지만 뜨겁게 사랑해도 깨진다

LNCK 2008. 2. 7. 10:01
 

◈맞아도 깨지지만 뜨겁게 사랑해도 깨진다.    레26:1~46   



◑안식일의 중요한 개념


안식일의 중요한 개념은.. 쉰다는 것 말고도, ‘주님의 은혜로 살아간다!’ 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이상한 개념을 갖고 있는데, ‘자기가 일해야만 획득한다!’ 이다.

그래서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일 하는 것을 신성하게까지 여긴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내가 지금 가진 나의 소중한 것들이, 내가 일해서 얻은 것들인가?

아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모두 <은혜로 얻어진다.>


예를 들면, 내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 - 일해서 얻었는가, 은혜로 얻었는가?

당신이 수려한 외모를 가졌다면 - 돈 벌어서 얻었는가? 은혜로 얻은 것이다.

키가 크거나, 머리 좋은 것 - 은혜로 얻는 것이다.

나의 배우자 - 은혜로 얻는 것이다. 자기가 고른다고 좋은 사람 만나지지 않는다.

자녀 임신과 출산 - 사람 힘으로 되는 것 절대 아니다. 주님의 은혜로 된다.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좋은 것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들이다.

내가 노력해서 획득한 것은 별로 없다.

은혜 없이 자기 힘으로 한 번 발버둥 쳐 보시라, 되는가?


그러므로 안식일, 안식년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발버둥치면서 뛰던 일들을, 다 내려놓는 것이다.

내 힘으로만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자주 쓰는 말이

<일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다!>라는 표현이다.


사역은, 되어 지는 것이다. (은혜로, 안 보이는 어떤 힘에 의해)

그래서 이렇게 잘 고백한다.

“어? 일이 되네!” - 누군가 위에서 도와준다는 말이다.


“어, 사역이 되네?!”

“어, 결혼이 되네?!”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서 발버둥 쳐도 안 되던 일들이,

어느 순간엔가 술술 풀리면서 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등바등 안 한다.

조금 넉넉하고, 여유 있게 살아간다.

일이 저절로 은혜로 되어 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식일, 안식년에 마음 푹 놓고 쉰다.



▲저주의 말씀이 길게 기록된 이유

레위기 26장에, 축복의 말씀은 13절인데, (26:1~13)

저주의 말씀이 33절로 길게 적힌 이유는  (26:14~46)

하나님이 축복에는 인색하고, 저주와 심판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자녀들이 말씀을 안 지키고 배반할까봐 너무 미심쩍고 안타까워

당부하고 또 당부하다보니.. 그래서 33절까지 말씀이 길어진 것이다.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는 자녀에게,

밥은 꼭 챙겨 먹어라!

낯선 사람을 조심해라!

아무 음식이나 먹지 마라!

집으로 자주 연락해라!

이렇게 충고의 말씀이 자꾸 길어지는 이치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이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맞아도 깨지지만, 뜨겁게 사랑해도 깨진다.


진정한 사명 감당하는 성도가 되려면 ‘깨어져야’ 하는데,

거기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맞아서 깨어지는 방식과

뜨겁게 사랑해서 깨어지는 방식이다.



▲1. 주님께 얻어맞고 깨지는 방법

맞고 주님께 돌아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가는 길)

맞고 깨지면 그냥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상처입고 부러져서 돌아온다.

절대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점진적으로 환란을 주신다.

레26:16절, 그래서 먼저 ‘질병’을 주신다. 가장 약한 벌이다.

17절, ‘전쟁에서 질 것’이다. 좀 더 강한 벌이다.

33~34절, 더 점진적으로 커지다가 마지막에는 ‘포로로 끌려간다.’ 가장 큰 벌이다.


이렇게 점진적인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가급적이면 이런 극심한 고난을 다 겪지 말고,

빨리빨리 깨어져서 돌아오라는 것이다.

(레위기 26장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버티고 버티면 결국 다 망한다.)


안타깝게도 탕자는 맞아서 깨어졌다.

집안에서는 변화가 안 되니까, 마지막에 쓰는 방법은

아버지가 망할 줄 알면서도 아들을 타국으로 내보낸다.

예상대로 탕자는 박살나서 돌아왔다. 완전히 폐인 되어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맛보게 되는, 쓰라림, 괴로움, 자존심의 상처, 비참함...

하나님이 마지막에 쓰시는 카드는 그런 것이다. 때려서라도 바싹 깨지게 하신다.

그래서 맞아서 깨지는데, 그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그 길을 간다.



▲2. 뜨겁게 사랑해도 깨어진다.

그런데 의를 위해서 살려고 노력해도... 깨어진다.

주님을 뜨겁게 헌신해서 살려고 해도... 깨어지고,

말씀대로 철저히 살려고 해도... 깨어진다. 이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의롭게 살려고 발버둥을 치면... 고백하게 되는데 “나는 의롭게 살 수 없다”이다.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을 치면... 고백하게 되는데 “나는 말씀대로 살수 없다”이다.

죄짓지 않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면... 고백하게 되는데 “나는 죄인입니다.”이다.


마르틴 루터가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 쳤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해성사를 드릴 정도로 발버둥 쳤다.

그리고나서 그는 고백했다. “나는 절대 의롭게 살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교회에 많은 사람이 깨어지지 않는 이유는.., 적당히 믿으니까 그렇다.

뜨겁게 믿지도 않고, 탕자처럼 나가지도 않는다. 미지근하게 믿으니까...

우리는 의롭게 살려고 발버둥치면 ... 깨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는 고백이 나오게 된다.

이것은 범죄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사람 바울의 고백이다.


효자가... 자기를 불효자라고 고백한다.

정말 효자가 있었다. 그들이 10년 동안 부모님 병 수발하며 공경했다.

주변에서 모두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그들 부부를 칭찬했다.

장례식 때 사람들은, 그들이 “자기 할 도리를 다 했다!”라고 고백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장례식 때 그들은 이렇게 고백했다. “용서해 주세요, 저는 불효자입니다!”

나는 해 드린 게 없다고, 어머님, 하나님, 용서해 달라고 우는 것을 목격했다.


가장 뜨겁게 사랑하고, 자기 영혼을 바쳐 사랑하고 나서

자기가 ‘효자가 자기가 불효자라고 고백한다.’

뜨겁게 사랑하면... 깨어지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깊이’를 깨달아야 한다.


결혼해서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남편이 나중에 고백했다.

“나는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내가 당신에게 못 해준 게 뭐가 있어?”

이런 말하는 사람은... 진짜 사랑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안 해준 게 뭐가 있어?”

이렇게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말하는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더 깊은 경지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항상 그렇게 고백한다.

“나는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높은 경지에 올라가서 깨어졌기 때문이다.


참회록은 성자가 쓴다.

누가 자기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회개하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철저히 살았던 사람이다.

‘내가 죄인 중의 괴수니라!’ - 나는 처음에 진짜 그가 괴수인줄 알았다.

아니다. 진짜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의 고백이다.


참회록은 죄인이 쓰는 것이 아니다.

의인, 성자가 쓰는 것이다. 어거스틴 같은 성자가 쓰는 것이다.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자기 죄악이 다 드러나는 것이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니이다!’

이것은 순종했던 사람의 고백이다. 불순종한 사람이 아니다.

말씀을 열심히 지킨 사람이...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신자는 이 모양, 저 모양이라도 깨어져야 하는데.

가급적 신앙으로, 은혜로 깨어져야지,

징계로, 얻어 터져서 깨지면... 자기가 힘들다.



다윗 일생의 클라이맥스는 왕국이 크게 융성했을 때가 아니다.

밧세바와 범죄 한 다음에 회개할 때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인 것이다.


시51:17절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다.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로다


다시 말해서, 큰 교회 짓고, 찬양하고, 영광 돌린다고 외치고... 그런 때보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는 바로 그 때가... 우리 사역의 클라이맥스이다.


교회가 언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가?

다윗처럼 깨어졌을 때이다.

그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드러난다.


세상에 가장 두꺼운 껍데기가 종교의 껍데기이다.

목사, 간사, 집사, 권사 등

과거에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우리가 그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리고 밤낮 남들이나 정죄하고 있다.

자기가 깨어져야 할 터인데 말이다.


우리 교회에 이런 깨어짐의 역사가 나타나는 축복된 교회가 되기 바란다.


불순종의 마지막 형태가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포로로 끌려가면, 본질이 회복된다.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레26:33


실제로 이스라엘에 포로기가 있었다.

나라의 형체도 없어지고, 성전의 형체도 없어졌다.

자기들은 존재하지만 폼이 없었다. formless 했다.


하나님과 진정한 만남을 만나라고,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이끌어 가실 때도 있다.

하나님이 우리 폼을 다 깨어버리시는 것이다.


가정, 국가, 타이틀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포로기다. 다 박살이 나 버렸다.

자기는 존재하는데, 아무 폼이 없다. 폼이 안 난다.


다시 회복 되면, 그 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게 된다.

그렇게 끊기가 힘들었던 우상숭배가

포로를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형태’(폼)을 깨뜨리는 것을 통해서, ‘내용’을 살리셨다.


포로 기간에도 하나님은 계속 일하셨다.

결코 이스라엘의 족보가 끊어지지 않았다.

포로 기간에도 하나님은 그 포로 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마치 가출한 아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계속 공과금 대신 내주는 부모와 같다.

하나님은 포로 기에도 계속 버리지 않으시고, 자기 백성을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반전의 역사


광야와 포로를 통해, 모든 형태(폼)을 다 깨어버리시고,

오직 말씀만 붙들게 하셨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인생이

껍데기 밖에 없는 인생이다.

내용이 없는 인생이다.


하나님 백성의 역사는, ‘반전의 역사’이다.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홍해에서 반전의 역사!

골리앗 앞에서 다윗의 반전!

하만 앞에서 모르드개의 반전!

로마가 바울을 죽이고 핍박하는데, 로마가 바울의 메시지 앞에 굴복한 반전!

마귀의 십자가 죽임과 예수님의 부활의 반전!

예수님은 부활로 대 반전 하셨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대반전의 역사가

무지하게 자주 일어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여길 때

그 때 목회가 되기 시작한다.


또 다른 반전 (일어나서는 안 되는 반전)

“이거 별거 아니네, 장난이네!” 하는데... 그 때 목회가 안 된다.

“사람에게 알려졌네, 유명해졌네!” 하는데... 수치를 당하고 비참해진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밀스럽게 슬쩍 알려준 말씀이 있다.

“높아지고 싶냐? - 낮아져라

영광스러운 길 가고 싶니? - 십자가의 길을 가라!”


이런 반전의 노하우를 아는 사람은, 항상 반대의 길로 간다.

낮은 길, 십자가의 길로만 간다. <07.12.26. 인터넷 설교에서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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