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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 말씀의 능력

LNCK 2008. 1. 29. 19:59
 

◈말씀의 능력          창세기 1:1-5



*출처 : http://cafe.daum.net/tjdehd27/1aNc/133 

창세기 강해 (1) *원제목 : 빛이 있으라!



▲오늘날 ‘말씀의 능력’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무엇으로 창조 하셨습니까? - ‘말씀’

성경은 누구의 말씀 입니까? - ‘하나님의 말씀’

너무 쉬운 질문을 하였지요? 이제 조금 어려운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 ‘말씀의 능력’

한 가지만 더 질문 합니다. 교회는 어떻게 유지됩니까? - ‘말씀의 능력’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믿음을 갖게 되었다 라든가 교회유지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되는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거대한 건물이 있더라도

무늬만 교회일 뿐이지 내용은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창조 사건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1 - 창조적 역사


▲하나님의 말씀은 -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원래 있던 빛이 나타났습니까?

아닙니다. 원래 없던 빛이 말씀의 능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을 무에서 유로의 창조다 그러지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만이 가득한 곳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말씀의 능력’으로 빛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의 능력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면,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지금도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역사는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만 말씀으로 창조 해 놓으시고

지금은 팔짱 끼시고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지금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계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창조를 하고 계십니까?

처음 창조한 것이 인간의 범죄로 뒤틀려 졌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재창조의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재창조의 작업으로 인하여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살려내는 것입니다.



▲내 믿음도 - 말씀의 능력으로 창조되었다. 내가 믿은 것 아님.

‘믿음’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믿음을, 자꾸만 자기가 믿어 줘서 믿음이 생겼다고 우깁니다.

만약 믿음이, 사람이 믿어 주었기에 믿음이 생겼다면,

그럼 믿음은 인간의 신념의 산물이지, 하나님의 선물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믿음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믿음)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셨지요?

그때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무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나사로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순종해서 살아났습니까? 아니지요.

죽은 자가 무슨 수로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주께서 말씀의 능력으로 살려내신 것이지요!



▲말씀에는 변화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윤형주 씨가 작사 작곡한 복음성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후렴)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 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 시켜 주세요.♪


말씀의 능력이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것도, 말씀을 통하여 만나는 것이고,

우리가 주님의 사람 되는 것도, 주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유지되려면 - ‘말씀의 능력’이 창조하고 변화시켜야!

‘교회’를 생각해 봅시다.

교회 역시, 사람들은, 사람들이 세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동기 목사들도 개척을 하기도 하고, 개척을 준비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개척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제일 큰 문제가 돈이라는 것입니다.

최소한 한 장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를 세울 수 있다면

모양은 교회 흉내를 낼 수 있어도, 내용은 아닙니다.


교회란 주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피 값으로 사서 세운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특정 건물이나 사람의 조직이 아니라

바로 예수 믿는 여러분이 교회요,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를 누가 세울 수 있단 말입니까?

누가 여러분을 위하여 피 흘렸습니까?

목사입니까? 이 교회 개척멤버 입니까?

혹시 사람이 피를 흘리고 땀을 흘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교회를 세우시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창조 - 후유증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달리,

그 말씀이 창조 역사를 이루어 내시기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의미로)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도 창조력이 있어서 자동차도 비행기도 만들어 내지 않느냐고요!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

무에서 유의 창조는 아닌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신념을 가지고 커다란 계획을 가지고 과학을 발달시키면서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수록

인류는 점점 더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후에 문제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발전 progress, development 은 불완전합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발전’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러나 이제는 ‘발전’이란 개념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발전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 인류의 현실입니다.


끊임없이 더 좋은 차, 가전제품, 생필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으니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가 내리막길로 달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사태를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이라는 유대인 랍비는

수렁에 빠진 황새에 비유합니다.

수렁에 발이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황새가 꾀를 내었습니다.

자신의 긴 부리를 땅에 박고서 발을 빼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걸 어쩝니까? 발은 빠져 나왔지만 부리가 수렁에 박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미래는 이와 같습니다.

모두가 무너질 바벨탑을 열심히, 열심히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관심 있게 보아야 하고,

그 약속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온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발전시킨 문명의 종말은 - 결국 파멸입니다.

끝을 알고 있는 자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성경의 끝을 잠시 보면서

말씀이 왜 이다지도 중요하며, 왜 말씀대로만 되는지를 알고자 합니다.


계시록 18:1-4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현대인은 반드시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이 악한세대에서 우리를 주의 말씀으로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세상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방향성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경건이란 고아와 과부를 환난 가운데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성경의 시작) 하다가, 요한계시록(성경의 끝)까지 와버렸습니다만

결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나오시는 분의 최고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뜻(섭리, 경륜,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지를 알고

우리도 그의 말씀에 함께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제 빛이 있으라는 그 말씀의 위력이

단지 천지를 창조하신 것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역사하는 말씀인줄 믿으시겠습니까?



◑말씀의 능력2 - 주권적 역사



▲아브라함을 주목하지 말고, 그를 통한 말씀의 역사를 주목하시라

그러나 아직 ‘내가 그래도 뭔가 믿음의 뒷받침(공로)을 해야지’ 하는 분을 위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하면 기부터 먼저 죽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들어오기는 아브라함의 영웅적인 믿음만을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시자 친척 본토 아비 집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그리고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다!

이런 식의 위대한 아브라함만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자’ 그럽니다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 내시는가를 나타내시려고,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지

사람의 영웅적인 결단이 드러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말씀이 - 평범한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아서 당장 나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감동하시는데, 누가 안 떠나고 버틸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말씀의 능력이, 아브라함을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25년의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서

그는 아들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고야 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이루어 낸 것입니다.

아브라함 자신의 내재적 능력, 자신의 믿음의 자질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4:1-3, 17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말씀으로 부르시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그 말씀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의 주권적 역사

이 말씀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더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 아닙니까!

말씀 하시니,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원래 믿음이 없었는데,

믿음의 사람으로 불러 주시니,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심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이러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 한 곳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아 거의 외우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선포되면, 주권적 역사로 그 말씀이 이루어진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경은 ‘성령이 임하면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내 증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의지(주권)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기에, 증인이 되기 싫어도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그 말씀(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처음에 유대인들에게만 전했습니다.

그러니 복음이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 넘어가리라는 주의 약속이 지연되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을 가하여 흩어지게 하심으로써,

사마리아와 이방인 지역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가 사도행전입니다.



▲이방인 고넬료 전도도 주권적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여 복음을 전하였지만,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도록 3번이나 환상을 보여주시고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따라 가라고 성령께서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마지못해 나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도의 역사가 바로 주님께서 사도행전 1:8에 말씀하신

그 말씀을 이루어 내시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말씀의 능력3 - 성결의 역사



▲그럼에도 무시 받는 말씀의 능력

이처럼 주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보면 볼수록 처음에는 내가 말씀을 보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말씀이 말씀을 당깁니다. 그리고는 말씀이 나를 삼켜버리는 것이지요.


마치 술 먹는 사람들 이야기 비슷합니다. 이제 우리가 말씀에 취해야 합니다.

계시록 1:3절에, 때가 가깝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더욱 주의 말씀의 능력을 맛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모스 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오늘 우리의 목마름과 배고픔이 양식과 물이 아니라,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심을 믿으시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 하듯이

우리의 심령이 주의 말씀을 갈급해 하는 심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성결케 하는 말씀의 능력


히브리서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의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느니라.”


말씀이 살아있어 운동한다고 합니다. 어떤 살아있는 운동을 합니까?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예리한 칼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의 칼로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온갖 죄악들이 말씀의 검으로 도려내져야 합니다.


때로는 너무 아프고 때로는 분노가 일어 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는 마십시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주의 말씀의 능력이

그러한 것도 넉넉히 이기게 하셔서 주님을 찬양케 될 날이 올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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