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욥1:10 출처
▲인생은 누구나 욥기를 심각하게 읽을 때가 온다.
욥기는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곤란에 처한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떠오르게 한다.
자기 계획과 생각대로 인생이 잘 풀려나가고,
젊고, 실력 있고, 유능하고, 맘먹은 대로 인생이 잘 되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즐길 것이 너무나 많아서 이런 질문을 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한번은 인생의 곤고한 날이 다가오게 된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 과정처럼...
▲욥기의 주제 - 욥의 위대함에 있지 않다.
욥기를 읽으면, 다들 자연스럽게 욥이 극한 시련을 당하면서도
어떻게 순전함을 지켰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욥은 처음에는 순전함을 지킨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자기 의를 계속 주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결국 욥기는 욥이 얼마나 신앙적으로 위대했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잘 지켰는가
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는 우리 범인보다는 한수 위의 신앙적인 경지에 있었고,
나름대로 이 땅에 살면서 훌륭한 믿음의 본을 보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나님도 사단에게 욥을 소개하면서
그를 자랑스러워하신 것을 보면 분명 욥은 대단했던 것 같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정도로... 욥1:8
▲1. 축복도, 저주도 전적인 주권 - 이것이 욥기의 1주제
그러나 오늘 욥기를 다시 읽으면서
갑자기 사단이 하나님께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욥1:10
우선 하나님이 사단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영 이질감이 들고
인생들을 두고 하나님과 사단이 거래를 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욥기는 욥이 시련 가운데 어떻게 인내하고 순전함을 지켰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이 세계가 아닌,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에 계신 분이
우리의 삶을 어찌하면, 어찌되어지는 그런 인생이라는 데 있다.
욥이 아무리 순전하고 인내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보여도
어차피 그도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는다면 그가 자랑하는 의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사단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는다면 인생이란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내에서 사단이 욥의 삶에 재앙을 내리는 것을 보면,
결국 우리의 인생에 주어지는 어떤 재난이나 어려움이든
결국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내에서 주어질 것이며,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고 내버려 두신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망할 수 있고,
얼마든지 험악한 재난과 멸망과 어려움 속에 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욥의 순종, 불순종이 - 큰 변수 아니다. 욥기의 주제 아니다.
하나님이 만약 욥의 생명까지 사단에게 내어주셨다면,
욥이 순전을 지키면 뭐하고, 인내하면 뭐하겠는가 말이다.
그의 의나 순전함이 하나님에게 무슨 큰 이득을 주고,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그리고 설사 그가 순전하지 못하여 (사단과) 내기에 진다한들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그의 영원한 통치에 무슨 흠집이 될 수 있겠는가!
결국 욥기의 마지막(38장~)에는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질문을 하심으로써
욥이 자기의 모든 의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직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면 어떻게 되어지는 세계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욥기가 끝나게 된다.
▲2. 고난을 통해 네 미천함을 깨달으라 - 욥기의 2주제
우리가 살면서 내가 잘했느니 네가 잘났느니, 서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한다할지라도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사단에게 붙이시거나, 우리를 내어주신다면
그들이 가진 자랑이나 의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헛것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 당장 당신이 자랑하는 세상재물이나, 명예나, 건강이나, 금쪽같은 자식들이나,
기타 인생이 자랑하는 그 어떤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사단에게 내어주시는 순간, 그것은 바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이 욥을 어렵게 하신 것은,
그가 자기의 의를 의지하여 시험을 이기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 것을 깨닫고, 주님께 소망을 두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욥의 믿음을 본 받는게 하니라, 욥을 통해 인간의 처절함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욥기를 강해하면서
욥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얼마나 인내하고 믿음을 잘 지켰는가를 강조하고
우리도 욥같이 어려운 시련이 있을 때,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자는
이런 <불가능한?> 이야기를 한다.
욥기는 오히려 정반대의 이야기(자기 연약을 깨닫고, 주께 소망을 두라)를
계속해서 들려주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우리 ‘인생의 운명’이란,
결국 내가 얼마나 잘나고, 똑똑하고,
내가 얼마나 의롭고, 선하며, 열심히 노력했는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천상의 회의에서 어떻게 결론이 났느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욥 같은 시련 당하면, 멀쩡할 믿음의 거장은 아무도 없다.
당신이 순전하고 믿음이 좋으면 얼마나 좋은가?
하나님이 우리의 소유를 산울로 두르고 적당한 시험을 주셔서 견딜 만 하니까
이렇게 멀쩡하게 보이지,
만약 욥에게 허락하신 시험 정도만 주셔도
벌써 믿음은 온데 간데 없이 바닥을 치고,
겉으로는 인상을 쓰며 참고 있을 수 있지만
속으로는 온갖 원망하고 싶은 말로 가득 차서...
욥이 드디어 욥기 3장에서부터 마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금새 내가 가진 의라는 것이, 내가 가진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초라한 것인가를 드러낼 뿐이다.
▲인간의 자기 공로 주장은 절대 불가!
차라리 그렇게 드러나 버리는 것이 진정한 신앙으로 갈 수 있기에 소망스럽다.
일생에 불에 타 없어질 공력을 의지하여 ‘하나님, 나 이만큼 했습니다!’ 라고
자기 의를 내세우기 보다는,
일찌감치 ‘아, 나는 안 되는 인간이구나!
내가 아무리 일평생 도를 닦고 선한 일을 하여 의를 쌓고 무슨 공로를 세울지라도
하나님이 사단에게 내어주시는 순간 홀랑 타서 잿더미가 될
허망하고 무의미한 것들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미 해놓으신 일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뤄놓은 죄 사함과 영생을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욥의 순전함과 의로움 - 아무 보탬 안 된다.
욥은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시고 만물을 붙드시는 일을 하실 때
옆에서 거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욥이 의롭다고 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보탬이 되었던 적이 없었다.
욥기 38장부터 하나님이 폭풍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시는 내용들을 보면,
내가 잘나고 의로운 것이, 하나님께 도대체 무슨 보탬이 될까 싶은 것이다.
(욥은 한 마디로 대답을 못 한다.)
우리는 조금 한 것 가지고 스스로 높아져서, 하나님의 것에 내 것을 자꾸 섞는다.
새벽기도 좀 나간 성도는 모든 성도들을 판단하고
자기가 가장 의로운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내 생각이 자꾸 앞서고
내가 한 일과 잘 하지 못한 일에 매이게 되는 것처럼
-사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걸레와 같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3. 욥기의 3주제 - 자기 의를 박살내는 것
욥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가 의지한 의’가 박살이 나야했다.
그가 의지한 재물이나, 자식이나, 신앙적인 행위나,
자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해왔던 그 "마음"까지도
생명을 제외한 그가 인생을 살면서 의지해왔던 모든 것들이
깡그리 벗겨지고 깨어지고 무너지는 순간을 맛보았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큰 축복이었다.
우리가 이런 자아의 죽음을 맛보지 못한다면
늘 이 땅에 살면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이것을 뺏기지 않을까, 하나님이 저 것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다 뺏기고 나서도, ‘그래도 내 의가 있어야 구원을 받지 않을까?’
‘이럴 때 원망해버리면, 그동안 쌓아놓은 신앙의 공력이 망가져서
완전히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이것은 믿음이 아니다. 이것은 정확히 표현하면 자기 의이고,
두려움이고, 불타 없어질 공력에 불과한 것이다.
내게 속한 모든 것들은 이 땅에 살면서 홀랑 다 타서 없어져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해놓으신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 안에서 발견해야하는 것이다.
▲자아, 자기 업적, 자기 공로 - 거두어 가시기 전에, 다 버려라!
이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한순간, 한순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고,
순간순간 내가 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래야 하나님의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욥이 끝까지 자기 (의)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에 다 이뤄놓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않고
기어이 내가 어떻게 해야, 내가 무슨 의를 쌓아야...
하는 식으로 마음이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이 딱 끝이 나야한다. 자아의 모든 노력과 자랑이 죽음을 맞이해야한다.
그 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세계를 누리는 것이다.
▲인간의 잘, 잘못 - 큰 변수 아니다. 자기 공로, 죄에 집착하지 말라.
어쩌면 하나님이 지금 나를 그런 세계로 이끄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나름대로 그래도 자랑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은 휴지조각처럼 날아가 버리고,
지금은 내가 뭘 잘못했는가, 잘했는가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천상회의에서 무엇을 결정하셨는가가 유일한 관심사가 되었다.
여하튼 지금은 내가 잘하고 못하고 와는 상관없는 어떤 세계 속으로 옮겨진 것과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하나님이 이미 나를 위해 이뤄놓으신 것들이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이 진리로 다가온다.
하나님은 다시 나를 벗겨놓으시고 연약하게 해놓으신다.
하나님은 내가 나를 위해... 뭔가를 보이고, 나를 위해 뭔가를 하고,
내 의를 쌓고, 나의 구원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고, 당신의 구원역사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기신다.
▲벌거벗어라! 아니면 강제로(은혜로) 벗기신다.
하나님이 벗겨놓으셨으면 벗은 채로 있어야지,
하나님이 내 속에 의를 주신 적이 없으면.. 의가 없는 모습이 내 모습이지,
내게 능력을 주신 일이 없으면.. 무력하고 무능함이 바로 내 본래의 모습이지...
왜 자꾸 내 스스로 뭔가 쌓으려고, 자기를 내세우려고 애를 쓰는가 말이다!
욥기는 욥이 잘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욥기는 하나님이 거두시면, 하루아침에 벌거숭이가 되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렇게 벌거벗겨 놓고, 참된 신앙을 가지도록 인도하신다는 책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어보니, 너무 무슨 업적을 남기려고 안달하거나,
사람들에게 어떤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려고 인위적으로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주제별 분류] 제자 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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