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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치료

LNCK 2008. 2. 18. 22:41
 

◈근심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치료     요14:1



존 번연,「마음에 평안을 얻는 지혜」도서출판 작은 행복

어느 분이 요약해서 인터넷에 올리신 글을, 제가 소제목 달아서 정리, 편집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바로 전,

공생애 마지막 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려고 하시는 것은

그들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명령은 27절에서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어떤 손해를 당하게 될 때,

혹은 어떤 고난을 당하게 될 때,

혹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혀 근심하지 말라뇨, 말이 되는 소립니까?



▲죄를 대하는 태도의 양면성

우리는 항상 죄를 과도하게, 혹은 경미하게 취급하는 극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즉 죄를 너무 크게, 혹은 너무 사소하게 처리하려고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혹자는 아주 사악한 죄악에 대해서, 아주 적게 고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혹자는 죄악에 대해 너무 심하게 고민함으로써,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사죄의 약속으로 자기가 위로 받는 것을

거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아주 소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를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마땅히 느껴야 할 만큼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억누를 수 있는 무거운 죄를, 그렇게 무겁게 느끼지 않습니다.

많은 죄악을 가벼운 짐 정도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의 헛된 생각, 태만, 거룩한 책임에 대한 부주의한 태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 등도 우리가 고통스러워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너무 무겁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가볍게 생각해도 근심하는 일이 생길 것이며, 무겁게 생각해도 근심하게 됩니다.)


 

▲징계를 대하는 태도의 양면성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의 교정을 싫어하지 말라.”(잠 3:11)

구절을 인용해서 사도들은

“너는 주님의 징계를 무시하지 말며, 그분께 책망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권고합니다(히12:5).


“이는 주님께서 자신이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자신이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 12:6)


5절 전자는 징계를 쉽게, 6절 후자는 징계를 무겁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태도를 모두 가져야 합니다.


여전히 아들은, 아버지에게 있어서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징계와 벌을 경멸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들은 그것들을 가볍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채찍은 사랑스럽고 현명한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징계 때문에 피곤해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연약해져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징계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로 인해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징계 받더라도, 연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괴로운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버지로부터 나온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히브리서에서 ‘아버지의 징계’를 믿으므로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 하듯이, 히12:5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므로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요14:1

   

여기에 마음의 동요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생각해서도 안 되며,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채찍을 무섭게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회초리는 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소리를 잘 들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시기 위해서 손을 올리실 때,

우리는 채찍과 하나님을 동시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사랑과 동일한 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고 했는데... 믿지 못하는 우리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에서 사랑을 못 봅니다.

고난이 닥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 않습니다.


그저 괴로워만 합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괴로움을,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치료(징계)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채찍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너무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너무 가볍게 여기는 극단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너무 무겁게 여겨서, 마음에 근심, 낙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진짜 염려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의 자유, 재산, 친밀한 사람, 우리의 가슴에 기쁨이 되는 것을

빼앗기고 고통스러워 하는데,

우리의 마음속에 근심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물론 우리는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소망 없는 다른 자들과 같이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처럼(살전4:13-14)

소망이 없는 자처럼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근심하는 마음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너희는 하나님을 믿어라. 또한 나를 믿어라. 네 아버지 집에 거할 것이 많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떠나 있을 동안에도,

결코 너희를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믿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믿어라!

“내가 아버지께 청하겠으니, 그분께서 또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히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요14:16-17)


앞서, 하나님을 믿고, 또 나(예수님)를 믿으라고 하셨는데,

이어서 성령님(이 영원히 함께하실 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너희가 여기에서 거하는 집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찬란한 집들이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되어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의 문제마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하실 때,

다른 삶의 문제는... 죽음의 문제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지상을 떠나시기 전의 당부

이 세상에서 너희는 환난을 당하지만, 너희는 하나님을 믿어라.

또한 나를 믿어라. 그리고 성령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믿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한 치료제가 될 것이다. 너희는 이 치료제를 복용해야 한다.

너희의 평안은 나를 철저히 믿는데서 온다!


이렇게 예수님은, 떠나시기 직전에

제자들의 마음의 질병(근심)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해독제,

곧 연약한 자와 근심하는 자를 위한 일종의 강심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어라.”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은, 최고의 치료제가 될 것이며,

최고의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왕자이지만, 육적으로 근심하는 현실

연약한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변장한 왕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모두 왕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동안 그들은 신분이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임이라.”(요일 3:2)


그들은 아주 커다란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알려지지 않은 땅에 있습니다.

거룩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분깃이며 상속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충만이시며, 마지막이시며, 영원한 몫이십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왕국을 상속으로 받게 될 자들입니다(약2:5).

그들은 또한 구원의 상속자들입니다(히1:14).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이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롬8:17).


그렇습니다. 만물이 다 그들의 것입니다(고전3:21).

만물은 그들을 축복하고 있으며, 영적이고 영원한 복지로 이끌 것입니다(롬8:28).



▲마치는 말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생명과 앞으로 올 생명에 대한 약속이 있다 할지라도(딤전4:8),

성도들이 현 세상과 오는 세상의 모든 선한 것을 누릴 참된 자격이 있다 할지라도,

성도들은 여전히 세상에서 갖가지 ‘근심’을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에 어두움을 만나게 되며,

슬픔과 폭풍우에 부딪히게 됩니다. 세상적인 모든 위로를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음의 불안을 미리 예방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천국을 소유한 제자들이

좌절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주님은 이런 불안이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죄로 만성된 마음의 불안을 막기 위해 적절한 예방책을 주셨습니다.

즉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불안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을 믿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제별 분류] 고난의 신학, 영광의 신학 http://blog.daum.net/bible3/13865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