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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돈 박사님 옥스퍼드 유학 간증

LNCK 2008. 2. 16. 20:34

 

◈이희돈 박사님 옥스퍼드 유학 간증            수14:9

 

 

그러자 그날 모세가 내게 맹세했습니다. ‘네가 마음을 다해 네 하나님 여호와를 따랐으므로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유산이 될 것이다. 여호수아14:9

 

 

세계무역센타 수석 부총재 이희돈 박사님의 간증 중 녹취

*출처: http://video.google.com/videoplay?docid=439621594918011792&hl=en (휘발)

 


제가 청년 때, 옥스퍼드 대학교에 공부하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지금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 종신교수’가 되는 영예를 갖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피눈물 나는 이야기였다.

 

 

▲무일푼으로 떠난 유학생활

내가 한국에서 유럽으로 유학 올 때, 부모님이 편도 비행기 표만 끊어주셨다.

그리고 비행기 타고 떠나는 날, 공항에서 부모님이 봉투를 한 장 쥐어주셨다.

 

저는 이 봉투 안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을까,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기내 좌석을 찾아서 앉아마자, 봉투를 열어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거기엔 정성어린 글씨가 적힌, 달랑 종이 한 장 뿐이었다.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리라!”

딱 이 문구가 적힌 종이 한 장 뿐이었다. 돈이나 수표는 단 한 푼도 없었다.

 

저는 그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유학 떠나는 자식에게...!

 

나는 혹시 여행자수표가 봉투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나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방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그러자 JAL항공 스튜어디스가 몇 번이나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 매라’고 야단 쳤다.

 

믿음의 부모는 정말 무섭다!

여기 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여, 부모님들이 돈 안 보내준다고 불평하지 마시라.

그리고 부모들이여, 자식에게 돈이 없어 못 보내준다고 한탄하지 마시라.

결단코 하나님께 맡기시라. 돈 없이 키운 자녀들이 더 잘 된다! (날 보시라)

 

이렇게 무일푼으로 비행기에 탔으니, 할 게 기도 밖에 없었다.

그렇게 공중에 떠서 절박하게 기도하니, 주님과 더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공중이라서)

 

나는 거기서, 마치 하란으로 떠나는 야곱처럼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저를 무사히 돌아오게 하시면...’

 

그렇게 무일푼으로 시작된 나의 유학생활은

일단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유학 생활

 

저는 한국의 감리교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요한 웨슬리, 옥스퍼드 대학교의 홀리 클럽, ‘캠브리지 세븐’ 등에 익숙했다.

*캠브리지 세븐 : 19세기, 명문 캠브리지 출신 7명이 선교사로 자원, 해외선교운동 촉발. 

 

그래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이 단순한 학문의 요람일 뿐만 아니라,

거기가 ‘해외선교운동의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에 늘 감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나도 그 대학에 가서, 과거에 그들이 한 것처럼,

나도 그 장소에서 그들처럼 한 번 해외선교를 위해 기도해 보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요한 웨슬리가 학생신앙운동을 펼치던 그 예배당에 한 번 꼭 가보고 싶어 했었다.

 

가난한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으랴!

거기 가는 차비만 어떻게 겨우 마련해서, 옥스퍼드(세인트 엔써니)대학을 찾아갔다.

 

 

▲학비를 해결하게 된 사연

그날따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먼저 존 웨슬리 기념교회에 가서, 거기서 무릎 꿇고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마침 그 대학에 내 전공과 같은 과가 개설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 학교(옥스퍼드 세인트 엔써니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소원이 생겼다.

 

 

하나님은 먼저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그 다음에 이루어 주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다음에 크리스천들이 잘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도는 것’(땅밟기) 아닌가!

 

그래서 이틀 동안 여리고성 돌듯이 계속 그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기도드렸다.

당연히 길바닥에서 잤다.(숙소 잡을 돈도 없었고)

 

 

그리고 이틀 후에, (비장한) 기도를 한 번 드린 다음에,

교수님을 만나러 올라갔다.

 

거기 비서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목적으로 왔습니까?”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서 왔습니다!”

 

“지금은 입학 시기가 아니라서 안 됩니다.”

“아니, 나는 멀리서 고생하고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학장님을 만나서, 왜 입학이 안 되는지, 그 이유라도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면담이 거절당하자, 할 수 없이 나는 또 학교를 돌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비서는 나이가 60이 넘게 보였는데, 애처롭게 창문 밖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오전도 돌고, 오후가 되어서도 (삼일 째) 계속 교정을 돌았다.

그러자 그 비서가 나를 들어오라고 불렀다.

드디어 학장님과 면담이 이루어졌다.

 

“학장님, 제가 특별히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옥스퍼드는 대단히 비싼 학교다. 그리고 우선 여기서 공부할 실력이 되느냐?”

 

“실력은 있지만, 만약 모자라더라도, 학생이니까 배우러 온 것 아닙니까!”

학장님은, 저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는 것을 느끼신 모양이다.

 

“그러면 공부할 돈은 있느냐?”

“이 학교에서 제게 장학금을 주면 되지 않습니까!”

 

“장학금은 줄 수 없다. 네 실력이 증명이 안 되었는데, 장학금은 안 된다!

설령 우리가 장학금을 준다 해도,

보아하니 너는 여기 잘 데도 없다던데, 잘 곳도 없는 학생에게 장학금은 못 준다”

 

“만약 제가 잘 데가 확실히 보장되면, 학교에서 장학금을 줄 수 있습니까?”

“그럼 <내일까지> 여기서 확실히 먹고 잘 곳을 마련했다는 증명서를 가져 오게,  

그렇다면 장학금을 주겠네!”

 

그리고는 냉정하게 “나가라!”고 하셨다.

기숙사만 정한다면, 그것도 내일까지, 학교에서 장학금을 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아마 무일푼 학생이, 하루 만에 숙식할 곳을 정하지 못할 줄 알고서...)

 

 

▲숙식을 해결하게 된 사연

이제 나는 기숙사 정하는 일이 남았다.

그렇지만 옥스퍼드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수중에 돈도 한 푼 없는데,

어떻게 먹고 자는 것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단 하루 만에!

 

그래도 하나님께 일단 감사드렸다. 그리고 옥스퍼드에서 빠져나왔다.

런던브리지를 걸어가는데, 왜 그렇게 강바람이 센지..?

배도 고프고, 길에서 누가 감자를 먹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제 앞에 한 사람이 “헬로~!” 하면서 나타났다.

그러면서 종이 한 장을 내 앞에 딱 내밀었다.

쳐다보니 중국어로 ‘耶蘇天堂(예수천당)’ 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Jesus Paradise?”(예수천당) 라고 말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내게 말했다.

“너는 이 글자를 읽을 줄 아니?”

아무리 한자가 서툴러도, 한국인은 누구나 그 정도는 알지 않는가!

 

사연을 들어보니, 자기가 <캠브리지 미션>에서 나왔다고 한다.

요즘 중국인들이 런던에 많이 오니까, 중국인들을 전도하고 싶은데,

자기 선교회원들 가운데, 중국말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나마 중국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도하며 돌아다니다가, 중국어를 읽을 줄 아는 나를 만나서

그렇게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참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늘 이렇게 익사이팅하고 놀랍다.

그가 내게 이런 제안을 해 왔다.

“우리 선교회에서 네게 숙식을 제공해 줄 터이니,

너는 여기서 중국인들에게, 이 중국어 전도지를 전해 줄 수 있겠니?”

 

“나는 중국 사람도 아니고, 중국어도 못 하는데?”

“아냐, 그 정도 알면 됐어!”

 

생긴 것도 중국인처럼 생겼고, 영어도 할 줄 알고,

중국말도 그 정도 알면... 그런 사람을 우리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숙식할 수 있는 보증서를 얻게 되었다.. 단 하루만에!

 

참 지나간 과거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너무 익사이팅한(흥분된) 일 이었다!

 

나는 그 ‘숙식제공 보증서’를 들고, 다음날 아침 일찍 옥스퍼드로 달려갔다.

학교에서는 그것이 진짜인지,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했다.

그래서 약속한 장학금을 받아서, 제가 옥스퍼드 대학을 다녔다. (우레와 같은 박수)

 

 

◑옥스퍼드의 종신교수가 된 사연

 

작년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를 세운 집안의 공작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학교운영회의board of Regent가 열렸다.

이제 옥스퍼드 대학교가 ‘전 세계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데,

교수진을 서구권에서만 뽑아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그 돌아가신 공작 대신에 '대학 평의원foundation fellowship'으로

참신한 인물을 끌어들이자고 결정했다.

 

유럽과 미국을 알고, 거기에다 아시아까지 영향력을 미칠 사람을 물색하고 있는데,

약 한 달을 섭외해 보았지만,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 때 ‘그 노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옛날에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이상한 한국학생을 알고 있는데,

그가 요즘 세계무역센타에서 고위직에 있다는데,

그 사람이 어떨까요?’ (그가 바로 옛날에 나를 입학시켜준 학장이었다)

 

그래서 옥스퍼드에서 대표단이 나를 만나러 미국으로 찾아왔다.

결국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종신교수’로 임명되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종신교수 임명식’은 영국 여왕의 초청으로 이루어진다.

그 임명식에서 나보고 수락연설을 하라고 했다.

원래 그런 자리에선, 종교에 대해 발언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연설했다.

 

“나는 이 학교가

진리를 탐구하고, 자유를 탐구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인 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진리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내가 확신하건데,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순식간에 장내에 적막이 흘렀다.

 

제가 느끼는 바는, 제가 실력으로 옥스퍼드의 종신교수가 된 것이 아니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부디 여러분께도 저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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