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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동일시 안 하면 비판 된다.

LNCK 2008. 2. 19. 20:14
 

◈동일시 안 하면 비판 된다.                       엡4:15



죄인과 나를 동일시 할 때, 비판이 사라진다.

죄인과 나를 별개로 볼 때, 비판이 되고만다.

우리는 다 죄인 아닌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랍비가 한 술주정꾼에게 돈을 좀 주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랍비를 비난했다. ‘왜 술주정꾼을 도와주나?’

 

그러자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에게도 돈을 주셨는데,

가 돈을 좀 도움 받는 것이, 뭐가 그리 특별하겠습니까!”


이렇게 그 훌륭한 랍비는, 자기를 술주정꾼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참 신앙인은, 결코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는다.

비판할 일이 생기면, 언제나 자기를 그와 동일시한다.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거기에 세례 받으러 줄서서 기다리는 군중들 틈에 들어가셔서

거룩하신 자신을, 그들 세례 받는 죄인들과 동일시하지 않으셨던가!



오늘날 잘못된 신앙인들은, 항상 남을 비판한다.

그들은 남을 정죄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신앙심이 돈독하다고 (잘못) 느낀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죄악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기 자신의 죄악을 언급할 때는, (거짓말, 탐심, 음욕 등)

꼭 다른 사람의 예를 들어, 자기가 아니라, 그에게 투사해서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와 죄인을 동일시할 줄 모르고, 항상 별개로 취급한다.


그래서 다른 죄인을 보고 화를 내면서 비판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모습에 대한 투사이다. 다시 말해서,

(평소에) 자기에게 화를 낼 것을, (기회가 오니까) 그에게 투사해서 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자기 내면이 깨끗한 사람은,

그 죄인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다.

자기가 자기에 대해 속으로 화를 내지 않으니까,

투사해서 그 죄인을 쳐다봐도, 덤덤한 면이 있다.


비록 그들이 지적하고 비판하는 내용이 정확하고 옳다 하더라도

화를 내고, 분노하고, 사랑이 빠진 비판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그래서 한 늙은 성직자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신자들을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라도, 설교를 관두시오!”


그 말이 아무리 옳아도, 성경은 모든 말에 사랑을 더하라고 가르친다.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하며...” 엡4:15


당신이 ‘진실’을 용감하게 말한다고 하는 그 자부심이나 사명감이,

당신 속에 감춰진 ‘미움’이란 죄를 못 보게 만들 수도 있다.


정리하면,

*부득이 잘못을 지적할 때는, 나와 그 죄인을 동일시해야 한다. 그래야 ‘비판’을 면한다.

*교만한 자는, 동일시하지 못하고, 죄를, 항상 남의 이야기로 투사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남의 죄에 분노하는 것은, 자기 죄에 대한 투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옳은 말을 할 때, 그 사명감에 들떠서, 자기 속의 ‘미움’을 못 볼 수도 있다.


 

(아래 펀 글을 위에서 풀어서 대충 번역했음)
There’s a story about a rabbi who gave money to a drunkard.

When criticised for it, he said,

“Should I be more particular than God who gave me the money?”

An authentic religious person doesn’t judge the sinner

but identifies with him, like Jesus queuing up with sinners

for John’s baptism of repentance (Mark 1:9).


But fake religious people are always judging;

they exist on it. They are religious in order to be able to condemn others.

They haven't acknowledged their own sinfulness,

so they project it onto others;

then all their fury is fuelled by a hidden self-hatred.

Even when the content of what they are saying is correct,

everything they say is vitiated.


I once heard an old man say to a group of young priests,

“If you don't love people, for God's sake don't preach!”

You may be able to express some true opinions,

but you will not be able to “speak the truth in love” (Ephesians 4:15).


The very truth of what you say will blind you to the underlying hatred.

The Pharisees have long disappeared from history,

but the Church has us reading about them frequently in the Liturgy.

Why? Because we haven't gone away, you know!


 


◑죄인은 다른 죄인을 쉽게 용서하지 못합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실험을 했습니다.

죄수들을 시험하는데, 한 청년을 중범죄자로 꾸며가지고

강력범들이 수감되어있는 감방 안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그 감방 안에 강력범들은 정말 신이 나서

마치 먹이가 하나 들어온 것처럼 별의별 방법으로 그 청년을 괴롭히고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도저히 같이 지낼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청년을 괴롭혔던 겁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그 청년을 똑같은 죄목으로 위장을 해서

죄 없이 억울하게 갇혀있는 사람들(혹은 경범죄자)의 감방에 넣어 보았더니

아무도 그 청년을 괴롭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 청년의 죄를 따지거나 다그쳐 묻지 않았고,

오히려 친절하게 도와주면서 위로를 했습니다.

그것은 거기 있는 사람들이 선하기 때문에,

죄인을 보고도 공격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펀 글)


[주제별 분류] 언어의 중요성 http://blog.daum.net/bible3/11154873